• 자유총연맹은 ‘이승만 정신’을 구현할 사람이 이끌어야 

           류석춘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사회학 교수)



  • 인하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원자력연구원, 국방대학교, 자유총연맹.
    이들 기관이나 단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답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직간접으로 설립한 기관들’이다.

    특히 회원 수 150만을 자랑하는 ‘한국자유총연맹’을 출범시킨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자유총연맹은 이승만 대통령의 주도에 의해 1954년 6월 15일
    ‘아시아민족반공연맹’ (APACL: the Asian People’s Anti-Communist League)으로 출발하여
    이 땅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선진한국 건설에 앞장서 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서 깊은 보수 우파 시민단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기에,
    이 단체는 지난 2011년 8월 서울 장충동 자유총연맹 회관 경내에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동상을 설립한 바도 있다.

  • ▲ 1949년 미군철수와 중국대륙의 공산화에 대비, 이승만 대통령(왼쪽)은 장개석총통(오른쪽)을 만나 '아시아 반공동맹'을 젖극추진하였다. 현재 자유총연맹은 다시 결성한 '아시아민족 반공연맹'의 한국지부가 원형이다.
    ▲ 1949년 미군철수와 중국대륙의 공산화에 대비, 이승만 대통령(왼쪽)은 장개석총통(오른쪽)을 만나 '아시아 반공동맹'을 젖극추진하였다. 현재 자유총연맹은 다시 결성한 '아시아민족 반공연맹'의 한국지부가 원형이다.

    이 단체의 기원은 194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자 미국은 우리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49년 6월 미군을 전원 철수하고
    한국군 병력 규모를 육군 6만5천, 해안경비대 4천, 경찰 3만5천 명으로 묶었다.
    또한 미국은 이들 기관에 혹시라도 모를 북진통일을 봉쇄하기 위해 경무기만을 공급했다.

    주한미군 철수로 인해 공산침략의 위험에 노출된 이 대통령은
    미국을 끌어들여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집단안보체제를 결성하여
    항구적이고 효과적인 안전보장을 추구하고자 했다.

    이런 구상에 의해 아시아 국가들에게 ‘태평양동맹’의 결성을 제안했다.
    이승만의 제안에 중국 대륙에서 밀려날 형편에 있던 국민당의 장개석 총통과
    필리핀의 키리노 대통령 등이 적극적인 호응을 보였다. 

  • ▲ 1949년 미군철수와 중국대륙의 공산화에 대비, 이승만 대통령(왼쪽)은 장개석총통(오른쪽)을 만나 '아시아 반공동맹'을 젖극추진하였다. 현재 자유총연맹은 다시 결성한 '아시아민족 반공연맹'의 한국지부가 원형이다.
    ▲ 1949년 미군철수와 중국대륙의 공산화에 대비, 이승만 대통령(왼쪽)은 장개석총통(오른쪽)을 만나 '아시아 반공동맹'을 젖극추진하였다. 현재 자유총연맹은 다시 결성한 '아시아민족 반공연맹'의 한국지부가 원형이다.

    태평양동맹의 필요성을 절감한 장개석은 이승만의 요청을 받고
    1949년 8월 6일 방한하여 진해에서 이승만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미 국무장관 애치슨은
    아시아에서 군사적 집단안보체제 결성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반대했고,
    인도의 네루 수상도 반대하고 나섰다.

    이 와중에 6‧25가 발발하자 미국을 비롯하여 자유 우방 16개국이 유엔군으로 참전했다.
    3년여에 걸친 전투 끝에 한국이 휴전협정에 동의하자
    미국은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54년 11월 발효된 상호방위조약과 더불어 같은 달 후속 조치로 체결된
    ‘한국에 대한 군사 및 경제원조에 관한 합의의사록’에 의해
    이승만은 태평양동맹을 통해 얻으려 했던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을 손에 쥐게 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는 “상호 합의에 의해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외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수락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주한 미군 제2사단이 서울 북방의 서부전선에 배치됐다.
    이는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이 자동 개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이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 없이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참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아시아의 반공지도자로 부상한 이승만은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만족하지 않고 포괄적인 집단안전보장체제 구축을 위해
    1954년 6월 15일 진해에서 아시아민족반공대회를 개최했다.

    이것은 이승만이 6‧25 전에 결성을 추진했던 태평양동맹의 복사판이었다.
    개최국인 한국을 비롯하여 대만, 필리핀, 태국, 베트남 5개국과 홍콩, 마키오, 오키나와 등
    3개 지역 대표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회에서 명칭을 아시아민족반공연맹으로 개칭했다.

    또한 공산주의 침략을 집단안전보장에 의해 적극 저지하고 분쇄하기 위해
    세계적인 반공기구 창설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이 기구의 창설에 참가한 8개국에는 모두 현지에 지부를 두었다.
    우리나라 지부는 1954년 ‘한국아시아민족반공연맹’으로 발족했다가,
    1963년 ‘한국반공연맹’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1989년 오늘과 같은 ‘한국자유총연맹’으로 개편되었다. 

  • ▲ 서울 장충동 '자유총연맹' 본부
    ▲ 서울 장충동 '자유총연맹' 본부

    2015년 2월 현재 한국자유총연맹의 15대 중앙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후보자로 출마한 분들이 모두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덕망과 경력을 갖춘 분들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다.

    예컨대 보수우파 시민사회의 상징 같은 단체를 이끌겠다고 입후보한 사람 가운데에는
    회장 자리를 여의도 입성을 위한 디딤돌로 이용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후보도 있다. 또 다른 후보는 전임 총재 선출 과정에서 선거 결과에 불복하여 물의를 야기한 경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아무쪼록 자유총연맹의 수장(首長)은 이승만의 드높은 반공과 안보 정신, 세계정세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국제적 안목, 개방과 통상을 중시하는 해양문명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물이었으면 한다.  

  • ▲ 서울 장충동 '자유총연맹' 본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자유총연맹을 통해 관철하고자 했던 정신은
    6‧25 당시 미 수복으로 남아 있던 북한을 팽개치고 어정쩡한 휴전과 함께 손을 씻고 철수하려는 미국을 상대로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동원하면서까지 한국의 안전보장을 확실하게 챙길 수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낸 안보에 대한 절박함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이런 절박한 심정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구현해 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맡을 자리가 바로 자유총연맹 중앙회장이다.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투표권을 가진 자유총연맹 대의원들은
    부디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승만 정신의 올바른 계승과 반공정신의 확산 그리고 연맹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혁신에 최상의 적임자가 누구인지를 심사숙고하면서 선거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