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되돌아오는 미국:
    새로운 고립주의와 다가오는 세계의 무질서

  • 이춘근(블로그)   

저는 미국의 에너지 혁명이 가져올 미국 및 세계가 당면 할 충격에 대해 모 기관 세미나에서 발표 했고(본 블로그에 각주 제외하고 게재), 추가된 자료를 보완한 두 번째 글을 월간조선 2015년 2월호에 기고 한 바 있습니다.
(본 블로그에 미국의 에너지 혁명-No. 2 로 게재).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일부 학자들이 미국의 에너지 혁명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며 이미 셰일 오일 회사들이 채산이 맞지 않아 유정을 폐쇄하고 있으며 부도가 난 곳도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또 어떤 학자는 미국의 경제 호황이 석유 때문이 아니라 ‘양적완화’라는 재정적 꼼수 결과라고 애기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저는 경제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셰일 석유의 경제, 경영학적 측면을 권위 있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미국 땅에 그 양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셰일 석유 및 가스가 매장 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상당히 싼 값에 채굴 해 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 되었다는 사실은 미국 및 세계 정치에 대단한 충격을 가져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렇게 분석 한 것입니다.
  
  석유는 상품이 아니라 전략물자
  
  우선 필자는 석유를 일반적인 상품(merchandise) 이 아니라 전략물자(戰略物資) 로 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하루에 거의 300만 배럴 정도 수입하는 석유는 없으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는 ‘사활적’인 것입니다. 
  
  식량과 함께 석유는 대한민국, 일본, 중국 등에게 없으면 나라를 망하게 할 수 도 있는 사활적인 전략물자 입니다. 세계의 산업국가들 중에서 미국만이 유일하게 석유, 넓게 말 해 에너지를 자급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 세계정치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칠 변수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은 식량도 자급자족 할 뿐 아니라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가장 중요한 전략물자 두 가지를 자급자족하는 나라는 미국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미국은 식량을 수출, 세계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석유를 자급자족 하고 여분이 남을 경우 그것을 수출할지의 여부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미국은 석유를 자급하고 남는 경우, 그것을 ‘전략적인 도구’ 로 활용할 것 이 분명합니다. 
  
  미국은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석유를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석유를 자급하지 못하던 시절인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재임시절, 미국은 국제유가를 조작해서 소련을 붕괴 시켰던 나라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James R. Norman, The Oil Card: Global Economic Warfare in the 21st Century (Trine Day: Walterville, Oregon, 2008) 참조 ]
  
  석유는 현대 경제에 사활적인 물자이기 때문에 각국은 석유를 상당량 비축하고 있습니다. 이를 전략비축유(戰略備蓄油 Strategic Petroleum Reserve) 라고 말하며 간단히 줄여서 SPR 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그동안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지하 동굴 속에 약 7억 배럴, 즉 미국이 당시 33 일정도 사용 할 수 있는 석유를 묻어 놓고 있었습니다. 2007년 1월 State of the Union Address에서 Bush 대통령은 SPR을 두 배로 올릴 것을 요청 했을 정도로 석유는 중요한 물자입니다. 
  
  ​중동 전쟁이후 석유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1974년 8월 4일 미국은 에너지국을 설립, 에너지 정책을 국가가 관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셰일 오일 개발 기술 확보 및 엄청난 부존량은 미국이 사실상 무제한의 SPR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셰일 석유의 효과는 얼마가지 않을 것이다 ? 
  
  지금 석유가격이 많이 내려간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셰일 오일 증산과 더불어 셰일 오일 회사들을 망하게 만들겠다며 석유 생산 원가가 세계에서 제일 싼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를 더욱 증산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배럴 당 30달러에 생산 할 수 있는 반면 미국의 셰일오일은 배럴 당 평균 60달러 정도에 생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셰일 오일 유정은 채굴 가격이 다양하며 현재 최고 100달러, 최저 40달러 에 석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배럴당 65-75 달러가 유지되어야 셰일오일의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합니다. 지금 배럴당 50달러 대로 내려갔으니 셰일 오일이 타격을 입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특히 텍사스 동부의 Eagle Ford 셰일과 Permian Basin 의 셰일이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Eagle Ford 셰일의 유정 일부가 폐쇄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셰일 채굴을 위해 고용 되었던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필자가 공부한 텍사스 대학은 학교 자산이 254억 달러로 하버드 대학 다음으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대학입니다. 학교 소유 땅들에서 석유가 생산되는데, 지난 수 십 년 동안 높은 석유가격 덕택에 미국의 명문대학중 하나로 성장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석유 가격이 내려가서 학교가 울상이라 하는군요. 석유가격의 하락은 석유 생산업자들의 이익을 감소시키고 텍사스 주와 같은 석유 생산 주의 수입을 감소시키게 될 것입니다. 석유 생산업자 및 석유를 생산하는 미국의 텍사스, 노스다코타 주의 셰일 오일 붐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이 OPEC 국가들, 또는 대표적으로 러시아를 어렵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로 미국에서도 손해를 보는 부분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석유는 전략물자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덕택에 기름 값이 더 내려가면 미국도 나쁠 일 없습니다. 싼 석유 사오면 될 터이니까요. 사우디아라비아가 얼마나 오랫동안 셰일 오일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석유를 공급해 줄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미국은 셰일오일보다 국제유가가 더 싸면 그걸 사오면 되고, 국제유가가 오르면 셰일 오일을 다시 퍼 올리면 될 것입니다. 이미 확인된 방대한 매장량과 기술이 있기에 시간은 미국 편이지 사우디아라비아 편이 아닌 것입니다.
  
  에너지를 자급한 미국은 ?
  
  사실 텍사스 주는 2001년 이래 셰일 가스를 생산하고 있는 바넷 셰일(Barnett Shale Play) 덕택에 1,202억 달러의 부(富)가 축적 되었으며 주 정부 금고에 60억 달러의 돈이 더 쌓이게 되었습니다. 
  
  셰일 석유 업자의 이윤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은 석유 가격이 내려가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입니다. 
  
  미국과 세계의 보통 사람들은 현재 2009년 이후 가장 싼 석유 값을 즐기고 있습니다. 저도 며칠 전 지방에 다녀오는 길에 리터당 1,398원에 주유를 했습니다. 작년 여름 1리터에 1,900원 대에 주유 했었으니, 기름을 가득 채우는데 약 35,000 원 절약 되었습니다. 미국은 지난 1년 동안 1가구당 가솔린 가격 하락으로 인해 750 달러 세금을 돌려받은 효과를 보았다하며, 2014-2015년 겨울 동안 석유 난방을 하는 가구는 평균 767 달러가 절약 되었다고 합니다. 
  
  값싼 유가가 텍사스의 경제에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텍사스 주에는 석유를 생산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석유를 구입해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개인들은 물론 석유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기업체는 큰 이득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텍사스 주는 그 느는 속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1년 동안 텍사스 주에 44만개의 일자리가 생겼는데 2015년에도 20만-25만개의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작년 보다 못하다고 셰일 석유의 효과가 없어졌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1월 20일 저녁 워싱턴 의사당에서 행한 오바마 대통령의 신년 연설은 일찍이 보지 못한 낙관론으로 충만 해 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5년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하고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시작 되었다” 고 말 할 수 있는 배경은 셰일 석유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다시 좋아하는 트럭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미국 사람들은 트럭, SUV 45%, 승용차 55%를 구입 했었는데 2014년 미국 사람들은 트럭, SUV 55% 승용차 45%를 구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가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트럭을 출시했더군요. 추세에 잘 부응한 좋은 일입니다.
  
  앞으로 미국의 에너지 독립 상황이 미국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변하게 할지 주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의존도 (수출액+수입액을 GDP로 나눈 수치)가 세계적으로 낮은 미국이 석유문제마저 해결 되면 혹시 고립주의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우려 됩니다. 
  
  ​미국의 국제 의존도는 세계에서 거의 제일 낮은 편으로, 아프가니스탄보다도 더 낮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미국의 국제무역의 거의 절반은 캐나다와 멕시코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미국 사람들이 국제무역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독일제 및 일제 자동차를 제외하면 별로 없다 해도 과언 아닐 것입니다. 미국은 경제력으로 1위가 된 1890년대 이후에도 약 50년간(전쟁이 끝나기 1년 전인 1917년 1차 대전에 참전한 것을 제외하면) 국제정치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문자를 쓰자면 미국은 1위의 경제대국이 된 후에도 Global Balance of Power Game 혹은 Global Power Politics 에 개입하지 않았고, 그러는 동안 세계는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 대전을 벌였습니다.
  
  미국이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은연 중 미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중동, 우크라이나 문제에 미적지근한 것은 그래도 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요? 
  
  미국이 또다시 Global Balance of Power Game 에서 빠지려는 유혹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미국이 빠지지는 않을 지라도 관심이 줄어들면 그동안 미국에 국가안보를 의존했던 나라들은 어떻게 될까요? 
  
  이미 일본인 식자들 중에는 미국이 약속과는 달리 센카쿠에서 진짜 중국과 전쟁이 발발 할 경우, 적극적으로 일본을 돕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은 운명적으로 재무장 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미래의 아시아는 미중(美中) 대결이 아니라 중일(中日) 대결의 무대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미국이 다시 고립주의의 유혹을 받고 있고 고립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며,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는 책이 나왔군요. [Bret Stephens, America in Retreat: The New Isolationism and the Coming Global Disorder, (New York: Sentinel, 2014) 「되돌아오는 미국: 새로운 고립주의와 다가오는 세계의 무질서」정도로 번역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우리나라도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거친 파도를 헤쳐 나아갈 방법(즉 국가대전략)을 차분히 생각하고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춘근 
  2015년 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