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지법 “‘종북성향 핵심인사’ 표현은 언론의 자유 범위 안에 있어”
  • ▲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 사진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 사진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민군 철수 등의 주장을 하는 단체 혹은 인물에 대해 방송에서, ‘종북성향을 가진 핵심인사’, ‘종북의 선전·선동 수단’ 등의 표현을 쓴 행위는, 이들 인물이나 단체의 이념적 의혹을 제기하는 정도에 불과하고, 언론의 자유 범주 안에 있어 명예훼손의 위법성이 조각(阻却)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비록 1심 재판부의 것이기는 하나, ‘종북’이란 표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판결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판사 장준현)는 14일,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과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케이블방송 채널A와 인터넷매체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2013년 5월6일 조영환 대표와 강길모 <선진화시민행동> 공동대표는 체널A의 시사프로그램인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출연했다.

    조영환 대표는 <종북좌익척결단> 공동대표 자격으로 출연해, 강 대표와 함께 ‘대한민국 종북세력 5인방’을 주제로 ‘민언련’과 최민희 의원을 언급했다.

    당시 채널A는 방송 좌측 상단에 ‘긴급진단, 종북세력 5인방’이란 문구를 띄우고, 배경화면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사진을 걸었다.

    이날 방송에서 조영환 대표는 “종북좌익 단체들은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연방제통일론이라는 일관된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서, “민언련을 상징하는 사람이 최민희라고,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대표는, 민언련이 동국대 강정구 교수와 친북 학자 송두율씨 등을 옹호한 것은 물론 국보법 폐지 등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 대표는, 민언련이 이런 선동을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이 단체를 ‘종북의 선전·선동 수단’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언련은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서 우리도 김일성 정신으로 투쟁하자’는 글을 쓴 동국대 강정구 교수, 북한의 간첩으로 공식 판결을 받은 송두율을 비판하는 사람이나 언론을 비판하고,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를 선동했다”

    “이런 선전 선동을 민언련이 줄기차게 해왔기 때문에, 민언련을 종북세력의 선전·선동수단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국정원장이나 검찰이라면 민언련을 수사하겠다”

       - 2013년 5월6일,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


    이어 조 대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이념적 편향성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면서, 북한의 대남선동매체인 ‘우리민족끼리’가 지령을 내리면, 한국의 종북단체나 ‘종북 선전·선동 수단’들이 이를 사회현안으로 재가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교조에도 한국진보연대, 민언련과 같이 세뇌를 하는 사람이 있다. (북한의 대남선동매체인) ‘우리민족끼리’에서 지령이 떨어지면 남한 종북단체나 ‘종북 선전·선동 수단’들이 싹 변형시켜서 사회운동으로 성명도 나오고, 사회운동까지 딱 나오니까”

    “우리는 ‘우리민족끼리’를 통제하고 있는 북한 통전부 225국이 바로 남한 종북세력의 청와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 2013년 5월6일, 조영환 대표.


    이날 방송에 대해 최민희 의원과 민언련은 거세게 반발했다.

    최민희 의원은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채널A와 조 대표 등이) 나를 종북세력의 코어·핵심이자 주사파, 김일성주의에 확신을 가진 확신범으로 매도했다”며 소송을 예고했다.

    “(방송 내용은) 허위사실이거나 사실을 과장·왜곡한 일방적 주장일 뿐”

    “최민희 의원은 과거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하며, 주체사상이나 김일성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민언련의 활동 역시 마찬가지”

    “소송을 통해 명예를 회복함은 물론 일부 세력과 종편의 근거 없는 마녀사냥식 종북몰이에 경종을 울릴 것”

       - 최민희 의원


    ‘민언련’ 역시 성명을 통해 “29년 동안 민주언론을 위해 헌신해온 대표적 언론시민운동단체를 종북 주사파라고 몰면서 명예를 훼손했다.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묻겠다”고 말했다.

    채널A의 해당 방송에 대해서는 “빨갱이 사냥, 좌빨 낙인찍기”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민언련’은 조 대표 등을 ‘극우 수구 논리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이상한 단체의 대표들’ 이라고 비하했다.

    “극우 수구보수 논리로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이상한 단체의 대표들을 출연시켜 이들의 입을 통해, 우리 단체의 핵심 인사들을 종북 주사파라고 주장하고, 오랫동안 우리 단체에서 언론운동을 해온 최민희 의원을 특별히 거명해 주사파로 낙인찍은 셈”

    “채널A가 우리 단체 등에 대해 시도한 것은 ‘빨갱이 사냥’의 첫 관문인 ‘좌빨 낙인찍기’”

    “우리 단체와 회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한 것에 대해 그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

       - 민언련 성명


    최민희 의원과 민언련은 방송이 나간 직후, 채널A와 조영환, 강길모 대표를 상대로 정정보도문 게재 및 1억원의 손해배상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방송 중 나온 조 대표의 표현이 다소 과장되거나 과격했지만 발언내용이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보이고, 발언의 중요부분이 진실에 부합한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특히 재판부는 조 대표의 발언 중 “민언련에 종북성향을 가진 핵심인사들이 있고, 이들이 민언련을 종북활동을 위한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부분과 관련돼, “이를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지만,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내 종북세력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면서, “민언련의 활동 가운데 결과적으로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이익이 되거나 그 주장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조영환 대표의 발언은 민언련과 관련된 이념적 의혹을 제기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며, 조 대표 발언은 ‘언론의 자유범위’ 안에 있다고 덧붙였다.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조영환 대표가 이념논쟁의 일환으로 여러 사람들을 적시한 것은 민언련과 관련된 이념적 의혹을 제기하는 정도에 불과해, 언론의 자유범위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피고인은 민언련이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발언의 내용을 추론한 것이 아니라, 민언련과 그 소속 인사들의 전력 등을 바탕으로 추론을 한 것으로 보이고, 이 과정에 지나치게 논리성을 결여한 바가 없다면 부분적인 오류나 다소의 과장, 비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

       -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판사 장준현)


    이번 판결은, ‘종북’이라는 표현을 썼더라도, 그런 표현을 쓰게 된 배경과 원인,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위법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 비슷한 사안의 소송에 있어 주요한 판단기준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