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에다, ISIS가 추종하는 사이드 쿠틉 사상, 테러조직 지배하는 정치사회적 도그마
  • ▲ 지난 7일 오전 11시 30분경 프랑스 파리의 잡지사 '샤를리 엡도' 앞 광경. 경찰을 확인사살하는 테러범은 이슬람 근본주의자였다. ⓒ유튜브 관련영상 캡쳐
    ▲ 지난 7일 오전 11시 30분경 프랑스 파리의 잡지사 '샤를리 엡도' 앞 광경. 경찰을 확인사살하는 테러범은 이슬람 근본주의자였다. ⓒ유튜브 관련영상 캡쳐

    지난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잡지사 ‘샤를리 엡도’에 대한 테러와 연이은 인질극으로 20명이 사망했다. 이후 유럽 각국에서는 대테러 작전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터키 남동부의 소도시 ‘킬리스(Kilis)’에서 사라진 한국 10대 청소년은 테러조직 IS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로 넘어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유럽에서의 테러, 한국 청소년의 행방불명과 관련있는 테러조직 ISIS는 ‘이슬람 세계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이들을 취재하고 온 독일 언론인은 “ISIS 조직원이 말하기를 ‘유럽 정복은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고 했다”는 소식을 전해, 유럽인들을 놀라게 했다.

    대다수 한국 언론들은 ISIS를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단체’라고 표현하며, 이들과 일반적인 무슬림(이슬람 교도) 간의 연관성은 없다고 전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팔레스타인 테러조직과 알 카에다의 차이


    한국 사회에서 ‘테러’는 생소한 단어다. ‘테러’라고 하면, 안보기관 관계자는 북한 남파공작원의 폭탄 테러나 암살부터 떠올리고, 일반인들은 먼 중동 어떤 나라의 테러 조직을 떠올린다. 하지만 ‘테러’는 9.11테러 이후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상수(常數)’로 작용하고 있다.

    중동 테러조직이라면 대부분은 1969년 창설한 사회주의 성향의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팔레스타인 인민해방민주전선(DFLP)’이나 비슷한 시기 창설한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부터 떠 올린다. 그러나 이들과 지금부터 설명하려는 테러조직들은 근본부터 다르다.

    팔레스타인의 테러조직들은 그 목표가 단순명료하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미국이 중동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때문에 팔레스타인 테러조직들은 냉전 시절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감행하면서 소련, 북한, 쿠바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조직원들은 그 영향으로 공산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가 섞인 가치관을 갖고 있었고 정치 권력욕이 강하고 세속적인 성향이 강했다.

  • ▲ 1960년대부터 활동한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DFLP). ⓒ美뉴헤이븐大 폭력조직연구소 화면 캡쳐
    ▲ 1960년대부터 활동한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DFLP). ⓒ美뉴헤이븐大 폭력조직연구소 화면 캡쳐

    이런 탓에 팔레스타인 테러조직들은 냉전 질서가 붕괴되기 전부터 미국, 러시아 등의 중재로 평화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경험도 있다. 반면 냉전 질서가 끝난 뒤부터 활동을 시작한 테러 조직들은 목표 가운데 ‘협상’이라는 것이 없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미국은 CIA를 내세워 파키스탄 정보국 ISI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반군 세력을 도왔다. 이때 CIA는 중동의 친미 국가들을 통해 소련과 공산주의자를 극도로 싫어하는 무슬림 근본주의 세력을 끌어들였다. ‘무자헤딘’이 그들이다.

    ‘대소 항쟁’ 초창기에는 소수였던 무슬림 근본주의 세력은 198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을 철수시킨 뒤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공격하던 반군 세력들을 차례차례 공격해 일부 영토를 장악했다. 1990년대 중반 들어서는 소련군과 열심히 싸웠던 반군 ‘북부동맹군’을 몰아내고,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렇게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 가운데서도 압둘라 아잠과 오사마 빈 라덴이 만든 ‘마크탑 알-키다맛(MAK,Maktab al-Khidamat)’가 유독 눈에 띠었다. 이 단체의 창설자 가운데 오사마 빈 라덴은 대소련 전투 과정에서 CIA로부터 교육을 받기도 했다. 

    이 ‘마크탑 알 키다맛’은 이후 90년대 중반 이름을 ‘근본(The Fundamentals)’, 아랍어로는 ‘알 카에다’로 바꾼다.

    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되고, 9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서방진영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관심을 끊자 알 카에다는 무슬림 근본주의 세력을 끌어 모으기 시작한다. 두목 오사마 빈 라덴은 이때부터 정신적 스승인 ‘사이드 쿠틉’의 사상을 현실에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한때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미국과 중동의 친미국가들,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멸망시키고, 전 세계를 이슬람 사회로 만든다는 꿈을 실현시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오사마 빈 라덴의 뜻에 호응하는 무슬림들이 세계 곳곳에 있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1997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美대사관에 폭탄테러를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키기 전까지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무슬림 테러조직 44개를 연결, 사상 최초의 ‘테러 펀딩 네트워크’를 만들어 냈다. 

  • ▲ 1987년 소련군을 향해 공격할 준비를 하는 무자헤딘. 당시에는 CIA와 파키스탄 정보국(ISI)이 이들을 도왔다. ⓒ위키피디아 공개 사진
    ▲ 1987년 소련군을 향해 공격할 준비를 하는 무자헤딘. 당시에는 CIA와 파키스탄 정보국(ISI)이 이들을 도왔다. ⓒ위키피디아 공개 사진

    알 카에다 마저 넘어선 테러조직 ISIS


    오사마 빈 라덴은 9.11테러에 이어 발리 나이트클럽 테러, 스페인 마드리드 통근열차 테러, 7.7 런던 테러 등 대형테러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 알 카에다와 연계한 필리핀의 아부 샤아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활동하는 제마 이슬라미야 등을 통해 동남아시아에서도 테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방 정보기관들이 연대해 ‘반격’을 개시하고, 2003년부터 무인기(드론)를 통해 알 카에다 지역조직 두목들을 공격하면서 힘이 빠지는 것처럼 보였다. 오사마 빈 라덴 또한 10년 동안의 도피생활 끝에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에서 美특수부대에게 사살 당한다.

    오사마 빈 라덴이 죽자 서방 정보기관들은 “테러와의 전쟁은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서방 정보기관들이 무슬림 테러조직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줬을 뿐이다.

    알 카에다는 소멸하지 않았고, 곳곳에서는 새로운 테러 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불었던 ‘재스민 혁명’의 바람은 오히려 알 카에다 지역 조직들이 성장할 기회를 제공했다.

    북아프리카에서는 ‘알 카에다 마그렙 지부(AQIM)’, 아라비아 반도에는 ‘알 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지부(AQAP)’, 예멘의 ‘알 카에다 예멘 지부’, 시리아의 ‘알 누스라 전선’, 서아프리카의 ‘보코하람’, 동아프리카의 ‘알 샤바브’가 세력을 넓히며, 각 나라의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부 국가에서는 무정부 상태가 일어났다.

    이런 가운데 눈에 띠게 성장한 조직이 바로 ‘유일신과 성전’이라는 이라크 알 카에다 조직이다.

  • ▲ 이라크의 알 카에다 조직이었던 '유일신과 성전'은 인질을 납치해 참수한 뒤 비디오 영상을 퍼뜨린 첫 조직이다. ⓒ위키피디아 공개 사진
    ▲ 이라크의 알 카에다 조직이었던 '유일신과 성전'은 인질을 납치해 참수한 뒤 비디오 영상을 퍼뜨린 첫 조직이다. ⓒ위키피디아 공개 사진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결성한 ‘유일신과 성전’은 2004년 한국인 김선일 씨를 납치해 참수살해한 조직이다. 납치한 인질을 참수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 전 세계에 배포한 것도 ‘유일신과 성전’이 처음이다.

    이 ‘유일신과 성전’은 서방 정보기관의 합동작전과 미군 무인기 공격으로, 2006년 6월 두목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사살되고, 이라크 내 알 카에다 주요 지도자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조직이 소멸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몇 달 뒤 이름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로 바꾼 뒤 물밑으로 숨는다.

    몇 년 동안 사라진 것 같았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는 2011년 3월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에 등장한다.

    이들은 알 아사드 독재정권에 대항해 싸우는 ‘반군연합’에 가담한 척 한 다음 세속주의 반군과 알 카에다 계열 반군을 공격해 내전에서 주도권을 쥐었다. ‘ISIL’은 특히 시리아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하자는 ‘자유시리아군(FSA)’은 보이는 대로 학살하거나 납치했다. 그 결과 시리아 내전은 알 아사드 독재정권과 ‘자유시리아군(FSA)’, 그리고 ISISL의 3파전이 됐다.

    ISIL은 2014년부터 이라크를 침공한다. 이들이 세계의 주목을 끈 것은 미군이 공여한 막대한 무기를 가진 이라크 정규군이 수백여 명의 ISIL 조직원에게 몽땅 항복하면서부터다.

    처음 세계는 이라크 정규군이 왜 집단으로 항복했는지, 세계 곳곳에서 ISIL에 동참하기 위해 몰려든 무슬림이 몇 만 명에 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그 답은 수십 년 전에 나온 책에 있었다.

  • ▲ 이라크의 한 도시를 점령한 뒤 시가행진을 하는 테러조직 ISIS 조직원들. ⓒ이란 관영 프레스TV 보도화면 캡쳐
    ▲ 이라크의 한 도시를 점령한 뒤 시가행진을 하는 테러조직 ISIS 조직원들. ⓒ이란 관영 프레스TV 보도화면 캡쳐

    무슬림 형제단과 ISIS, 하마스가 존경하는 한 사람


    ‘무슬림 형제단’. 한국에서는 낯선 단체 이름이다. 하지만 무슬림이 발행하는 종교채권 ‘수쿠크’에 대해 설명할 때면 빠지지 않는 단체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 정치지도자 하산 알 반나(Hassan al-Banna)가 1928년 유럽 제국으로부터의 독립, 이슬람 부흥을 내걸고 세운 정치결사조직이다.

    1930년대를 거쳐 1940년대 유럽 제국주의 제도가 붕괴하고, 제3세계의 독립 붐이 이는 가운데 ‘무슬림 형제단’의 활동은 더욱 왕성해졌다. 이 과정에서 무슬림의 의무인 ‘성전(聖戰, Jihad)’를 세 가지로 분류하고, 그 중 하나로 ‘지하드 금융’을 고안, ‘수쿠크’를 발명해 내기도 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 독립 이후 1952년 왕정 타도에 참가했고, 1957년에는 나세르 암살을 시도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후 쿠데타로 집권한 사다트 정권에서는 암살 시도 혐의를 받은 뒤 무슬림 극단주의를 버리고 합법단체로 등록하는 등 적당한 세속주의를 취하면서 생존해 왔다.

    이후 세속주의를 내건 ‘무슬림 형제단’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의료, 교육, 빈민지원 등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회원을 1,000만 명 단위까지 늘렸다. 그리고 2010년 말부터 2011년 북아프리카를 휩쓴 ‘재스민 혁명’에서 그동안 숨겨왔던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재스민 혁명’을 통해 정당으로 변신했고, 이들이 지지해 당선된 사람이 무르시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무르시 대통령은 ‘무슬림 형제단’이 요구하는 대로 수니파 근본주의 식으로 나라를 바꾸려고 계속 시도하다 2013년 7월 군부 쿠데타에 의해 실각했다.

  • ▲ 재스민 혁명 이후 이집트에 무스리 정권이 들어선 뒤 무슬림 형제단의 이념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사진은 이집트 기독교(콥트교) 신도와 일부 무슬림 형제단 사이의 충돌 장면. ⓒ동방 정교회 소식지 프리브미르닷컴 보도화면 캡쳐
    ▲ 재스민 혁명 이후 이집트에 무스리 정권이 들어선 뒤 무슬림 형제단의 이념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사진은 이집트 기독교(콥트교) 신도와 일부 무슬림 형제단 사이의 충돌 장면. ⓒ동방 정교회 소식지 프리브미르닷컴 보도화면 캡쳐

    이후 이집트 군사 정권은 ‘무슬림 형제단’을 불법조직으로 규정,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680여 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이집트 군사 정권이 이처럼 ‘무슬림 형제단’을 탄압하는 것은, 무슬림 테러조직 대부분이 ‘무슬림 형제단’의 ‘가르침’에 따라 창설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무슬림 형제단’이 매우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 ‘무슬림 형제단’의 영향력을 전 세계로 퍼뜨렸다는 평가를 받는 ‘사이드 쿠틉’이다.  


    사이드 쿠틉이 말하는 ‘진정한 무슬림’


    사이드 쿠틉은 1906년 이집트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이슬람 공부를 한 뒤 카이로로 가서 영국식 교육을 받기도 했다. 이때 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1939년부터는 이집트 교육 공무원으로 일했고, 1948년부터 1950년까지는 이집트 정부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도 다녀왔다.

    이런 성장과정을 거친 사이드 쿠틉은 1952년 나세르 정권이 왕정을 몰아내고, 사회주의 혁명위원회를 결성하면서, 무슬림 형제단의 지도자인 그 또한 유망 정치 지도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이후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나세르 정권과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운 사이드 쿠틉이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면서 무슬림 형제단도 다시 탄압을 받게 된다. 사이드 쿠틉의 대표적인 저서 ‘이정표(Milestone)’는 나세르 정권에 의해 투옥되어 있을 때 쓴 책이다.

    사이드 쿠틉은 자신의 책에서 ‘이슬람’은 종교가 아니라 ‘세상을 뒤집는 체제혁명’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자신의 책에서 반복해서 한 이야기 중 일부다.

    “세상은 자힐리야(Jahiliya, 무지의 세상, 이슬람을 믿지 않는 상태)다. 무슬림은 전 세계의 자힐리야를 없애기 위해 싸워야 한다. 인간이 만든 제도, 법률, 문화는 모두 무시하고 없애라. 이슬람은 ‘방어’의 종교가 아니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가 아니다. 알라의 노예(僕)가 되어야만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참고로 사이드 쿠틉이 말하는 단어들은 우리 세상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뜻이 전혀 다르다.

    평화, 정의, 평등, 해방, 인간의 자유의지, 종교의 자유, 법률 등 모든 것은 ‘인간이 알라의 노예’가 된 뒤, 즉 모든 사람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세상을 이슬람 율법(샤리아)로 통치하는 상태를 전제로 한다. 그 과정에는 ‘지하드(Jihad, 聖戰)’가 필수적이라고 거듭 주장한다.

    사이드 쿠틉은 “인간을 해방시키고 종교적 자유를 얻는 것이 이슬람의 정신”이라며 ‘지하드’를 강조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해방’은 사전적 의미의 해방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와 법, 문화를 없애고 신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종교적 자유’는 이슬람 포교 활동에 아무런 방해가 없는 것, 즉 이교도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는 데 아무런 방해물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사이드 쿠틉은 개신교도나 천주교도, 불교도를 이슬람 교도로 개종시키는 것을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이드 쿠틉은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라 모든 것이 다스려지는 세상이 진정한 해방된 사회”라면서, “지구를 이슬람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사이드 쿠틉이 말하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천부인권 사상이 아니다. 전 인류가 ‘알라의 노예’가 되어야 ‘인권’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자힐리야 세력’을 공산주의자, 기독교와 유대교 신자, 인도와 아시아, 세속주의 이슬람으로 나눈다. 그리고는 이들을 모두 “전쟁을 통해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꼽으며, 이들을 없애야만 ‘진정한 이슬람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 민주주의 제도와 체제, 법치주의, 시장경제도 “알라의 뜻을 거역하는, 없애버려야 할 죄악”이나 “이슬람에 대한 억압”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펴던 사이드 쿠틉은 결국 1966년 처형됐다.

  • ▲ 무슬림 테러조직들이 떠받드는 사이드 쿠틉의 책 '이정표(Milestone)'은 국내에서는 "진리를 향한 이정표"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 서평'은 거의 보기 어렵다. ⓒ프레시안 서평 보도화면 캡쳐
    ▲ 무슬림 테러조직들이 떠받드는 사이드 쿠틉의 책 '이정표(Milestone)'은 국내에서는 "진리를 향한 이정표"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 서평'은 거의 보기 어렵다. ⓒ프레시안 서평 보도화면 캡쳐

    그러나 그의 동생 무하마드 쿠틉은 사우디 아라비아로 이주해 한 대학의 종교학과에서 이슬람에 대해 강의한다. 이때 만난 제자가 오사마 빈 라덴이다.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2인자로 유명한 아이만 알 자와히리 만나게 된 '연결고리'도 바로 사이드 쿠틉 연구 때문이다. 

    “진정한 무슬림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는 사이드 쿠틉의 주장은 이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사상 최악의 반인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테러조직 ISIS에 의해 현실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