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정보 담은 中공산당 정식발급 여권…조선족 가운데 소지자 많아
  • ▲ 2014년 12월 13일 경찰에 검거된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 박춘봉. 조선족 중국인으로 '위명여권'을 사용해 20년 넘게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었다고 한다. ⓒSBS 관련보도 화면캡쳐
    ▲ 2014년 12월 13일 경찰에 검거된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 박춘봉. 조선족 중국인으로 '위명여권'을 사용해 20년 넘게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었다고 한다. ⓒSBS 관련보도 화면캡쳐

    2014년 12월 4일, 수원시 경기도청 뒤 팔달산 등산로에서 토막난 시신이 발견됐다. 사건 9일째인 13일 오후 11시 30분 무렵, 범인 박춘봉이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 수사 결과 박춘봉은 조선족 중국인으로 ‘위명여권’을 사용해 20년 넘게 한국을 드나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국내 언론은 “외국인 출입관리망에 구멍이 났다”고 지적했다.

    박춘봉이 사용한 ‘위명여권’이란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중국 공산당 정부로부터 정식 발급받은 여권을 뜻한다. 주로 조선족 중국인들이 한국에 입국할 때 많이 사용한다. 한국은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불법’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최근 법원이 조선족 중국인들의 ‘위명여권’에 대해 별 다른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 행정 4부(지대운 부장판사)는 6일, 여권 내의 개인정보와 실제 정보가 일치하지 않아 법무부가 귀화를 취소하고 강제출국을 명령한 조선족 중국인 A씨(40·여)를 구제해 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05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적발돼 한 차례 강제출국을 당해 ‘입국 규제자’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A씨는 이후 이름 마지막 한 글자와 생년월일을 바꿔 새 여권을 중국 정부로부터 발급받아 2007년 재입국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8년에는 귀화 허가까지 받았다.

    하지만 2013년 법무부가 과거 다른 인적정보를 사용한 사실을 찾아내, A씨의 한국 국적을 박탈하고 강제출국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에 A씨는 외국인 보호소에 수감된 채로 법무부의 국적박탈 처분과 강제출국 명령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낸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행정 4부는 A씨의 요구에 “두 번째로 만든 중국 여권이 허위 사실을 담은 위명 여권이라 해도 중국 정부가 발급한 서류이므로 국적법에 따른 귀화허가 취소 처분의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다음은 판결 가운데 일부다.

    “A씨가 위명의 호구부(중국 호적등본)와 사증을 발급받은 것은 ‘위조·변조’가 아니라 정당한 발급권자로부터 ‘허위 내용’의 중국 여권과 사증을 발급받은 것에 지나지 않고, 귀화 신청을 하면서 제출한 신분 증명서 사본 또한 ‘위조·변조’된 증명서가 아니라 ‘허위 작성’된 증명 서류다.”


    재판부는 “국적법 시행령에는 ‘귀화 허가를 받을 목적으로 신분관계증명서류를 위조, 변조하거나 위변조된 서류를 제출해 유죄판결이 확정된 사람’에게만 귀화취소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고 한다.

    재판부의 이어지는 설명은 충격적이다.

    불법체류 전력이 있더라도 귀화불허의 대상이 아니며, A씨 가족 대부분이 귀화해 한국에 살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법무부의 처분이 “지나치게 가혹하며 재량권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A씨가 2008년 귀화 허가를 받기 전에 한국 국적을 얻은 아버지와의 혈연관계를 확인한 점도 구제해줘야 하는 이유라고 한다.

    최근 수원지법 행정 4부(김국현 부장판사) 또한 이름은 같으나 생년월일이 다른 ‘위명여권’을 사용한 조선족 중국인 B씨(56·여)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때도 “위명여권은 개인이 위조 또는 변조한 것이 아니라 중국 정부가 발급한 것이므로 다른 국가가 그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며 B씨의 손을 들어줬다고 한다.

    서울고법과 수원지법이 조선족 중국인의 ‘위명여권’에 대해 “큰 문제가 없다”는 의미의 판결을 내리자 법무부는 긴장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판결이 계속 나올 경우 출입국 관리에 큰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지금까지는 중국 공산당 정부가 정식 발급한 ‘위명여권’ 또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단속에 걸리면 국적을 박탈하고 강제 추방해 왔다.

    국내 불법체류자 가운데 조선족 중국인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위명여권’ 단속을 완화할 경우 이들의 추적이 더욱 어려워지고,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어떤 일을 벌이는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자국 불법체류자 문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큰 문제다.

    법무부는 이번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 상소하기로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