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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서의 언행이 굳어있던 진짜 이유는?장진성 뉴포커스 발행인
황병서는 방한 내내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말을 극히 아끼고 행동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과 학자들이 여러 추측을 제기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의 직업적 천성 때문이다.
즉 당 조직지도부란 음지권력 안에서 평생 몸 담고 일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자신의 유일권력 집중을 위해 철저히 권력을 이원화시켰다.
고령의 명예직 간부들에게는 공개직함을 주되 실권을 주지 않았고, 대신 김일성종합대학 동창생들로 구성된 당 조직지도부 간부들에게는 실권을 몰아주되 공개직함은 절대 주지 않았다.
세습 초기 김정일을 당중앙이라고 부른 것은 당 조직지도부의 기능과 역할 때문이다.
인사권, 검열권, 수령경호권을 비롯하여 북한 노동당원이라면 누구나 참여해야 할 당 생활총화까지도 당 조직지도부의 당 생활지도권에 속했다.
당 조직지도부의 만능권한에 대해서는, 북한 외교관 출신 현성일 박사의 논문에 이미 구체적으로 정리 돼 있다.
김정일은 수령권한 대행 부서인 당 조직지도부를 북한체제 수호의 최후보루로 여겼다.
그 노파심으로 당 조직지도부 간부선발부터 승진에 이르기까지 인사원칙에 외국 생활 경험자는 절대 안 된다는 내용을 못 박았다.
오직 주체만 알아야지 자유세계를 엿 본 짧은 과거만 있어도 향후 사상이 변질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은 당 조직지도부 간부들만은 외국출장도 못 나가게 했고, 심지어 중병에 걸려도 차라리 외국의사를 초청하여 치료받게 했다.
그렇듯 음지권력으로만 숨어있었기에 세습초기부터 김일성 사망 후 당 총비서가 된 이후에도 김정일이 비서 겸 부장직을 겸직했던 당 조직지도부는 외부세계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북한학 학자들이 북한의 선군정치에 속아 북한의 핵심권력을 당 조직지도부가 아닌 군부라고 주장했다.
대내실권과 함께 공개직함까지 가질 수 없다는 당적 원칙을 깨고 드디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최초의 당 조직지도부 출신 간부가 바로 황병서이다.
황병서는 장성택 처형 이후 당 조직지도부 군 담당 부부장 겸직으로 북한 군 총정치국장이 됐다.
이는 김정일의 신임만 있으면 대내실권으로도 만족했던 당 조직지도부가 김정은 3대 세습 안에서 공개직함의 공개명분 갈증을 느끼고 세계 앞에 비로소 자기의 실권파워를 최초로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수령 유일권력을 보좌하기 위해 공개직함과 대내실권으로 철저히 이원화 돼 있던 북한 내 이중권력질서의 겸손이 깨지는 분파현상이기도 했다.
황병서는 당 조직지도부 출신으로 평생을 위에서 지도하고 감시만 했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한 적이 없다.
더구나 북한 밖을 벗어나 외부 세계의 사람과 마주앉아 외교한 적이 단 한번도 없는 말 그대로 주체혈통의 속물이다.그런 '평양촌놈'이 첫 나들이로 제3국도 아닌 평생 증오했던 이념북한의 주적인 남한에 왔으니
얼마나 좌불안석이었겠는가,
최룡해가 적극적이고, 김양건이 수다를 떤 것도 아마 황병서의 그 촌티를 대신 벗겨줄 수 없어 더욱 열정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부 언론들에서 황병서의 소심한 언행을 놓고 2인자의 위치에서 자칫 실수만 하면 1인자 김정은에게 당할까봐서라는 억측을 내놓는데, 그런 상식적인 분석은 북한 내 열성 노동당원도 하지 않는다.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