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12대 330' 세계 역사상 '불멸의 해전' 영화화이순신 '희생의 리더십'에 열광..관객수 1,700만 신화창조

  •                      이순신 '희생의 리더십'에 관객-배우 하나
                         영화 '명량', 알고보면 의리의 영화? 


    사실 저, 물 무서워합니다. 예전에 청평에서 빠진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 역할을 어떻게 맡았냐고요? 당연히 안 빠질 줄 알고 덤빈거죠.


    그 용맹함이 이웃나라에까지 미쳐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그가 사실은 수영도 못하는 맥주병이었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가정이지만, 400년 후 스크린에서 이순신을 완벽 재현해 낸 최민식은 물을 무서워하고 추위에 벌벌 떠는 연약한 남성일 뿐이었다.

    물도 무서웠지만 바람은 또 어찌나 세게 불던지…. 게다가 정말 추웠어요. 밑에서는 휘발유 냄새가 가득했고요.


    실제 바다 위에서 촬영된 '선상 백병전' 신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30m 정도 되는 판옥선을 직접 제작, 짐벌 위에 올려놓고 촬영을 진행한 제작진은 연기자들에게 '사실처럼' 연기해 줄 것을 주문했다. 그 덕분에 액션신을 찍을 때면 수많은 부상자들이 속출했고, 급기야 주연 배우인 최민식이 '안전제일'을 외치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최민식 자신이었다. 워낙 막중한 배역을 맡은데다, 6개월간 진행된 고된 촬영일정은 어느덧 50대 중턱을 바라보는 최고참 배우에겐 버거운 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최민식은 이순신 역을 제안 받았을 당시의 초심(初心)을 되새김질 했다. 우리도 이젠 자부심을 느낄만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일념. 교과서를 통해 익히 접했던 모습이 아닌, 인간 이순신에 접근해보자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최민식의 무거운 발걸음을 한발짝 한발짝 떼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 "이순신, 아니 최민식 보러 가자!" 충무로 돌풍
    이순신인가, 최민식인가...연기력-몰입감 압도


    가장 큰 고민거리는 역시 연기였다. 체력적인 문제는 정신력으로 버텼지만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정말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원래 배우는 특정 인물을 잘 흉내 내면 돼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죠. 하지만 이번은 달랐어요. '진짜 그 분이라면 어땠을까'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죠. 나중엔 강박증 같은 증세까지 생기더라고요. 그 분을 연기하는 것 자체게 저에겐 커다란 강박이었습니다.


    감독의 캐스팅 제안을 수락한 뒤 최민식은 '인간 이순신'의 면면을 알아보기 위해 그가 직접 쓴 '난중일기'를 꺼내 들었다.

    그 분이 어떤 눈빛으로 말씀을 하셨는지 어떤 목소리였을지 막연하기만했죠. 그래서 난중일기를 통해 실마리를 풀어보려고 했어요. 처음엔 제대로 검증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그 분이 위대해 보였어요. 그 분이 이룬 모든 업적이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 깨닫게 된 이후부턴 경외심마저 들었어요.


    "이순신 장군을 안 뒤로, 오히려 함부로 연기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최민식은 "내가 하는 연기가 그 분에게 조금이라도 누가 될까 정말 조심스럽고 염려가 됐다"고 토로했다.

    최민식은 영화 제작보고회에서도, 이어진 기자회견장에서도 캐릭터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놨다. '내가 과연 저 신화와 같은 존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최민식은 지난 6개월간, 오로지 이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배우의 지독한 고민은 놀라운 결실을 맺었다. 당사자의 기우와는 달리, 그가 연기한 이순신은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서 이순신 역을 맡았던 배우 김명민이 이순신 상(像)의 전형(典型)을 선보였다면, 영화 '명량'의 최민식은 대의를 위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부하의 목을 베는 이순신의 강력한 리더십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영화 속 이순신은 한없이 강하기만 한 인물은 아니었다. 전장에서 죽어나간 동료들의 혼령을 보고 눈물을 쏟는 모습이라든지, 겁먹은 장수들이 전쟁터에서 도망치는 모습을 보이자, 이를 다그치는 부하에게 "놔둬라"고 말하며 홀로 적진에 뛰어드는 모습은 그의 내면에 숨겨진 자애로움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최민식은 서슬 푸른 명령을 내리는 와중에도 주위의 병사를 돌볼 줄 아는 아버지같은 면모를 선보였다. 대사 중간 언뜻언뜻 흔들리는 최민식의 눈빛은,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 이순신도 알고보면 누군가의 남편이요 아버지일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줬다.

    명량해전 하루 전인 9월 15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들을 세워두고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卽生 必生卽死)"는 유명한 말을 남긴 대목에서도 최민식은 단순히 목에 힘을 주기보다 감정에 충실한 연기로 당시의 이순신을 재현하려 애썼다. 부하들을 사지로 내모는 장수의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두려움에 떠는 부하들을 제쳐놓고 적진 한 가운데로 돌진하는 이순신의 모습은 그가 왜 '성웅'으로 추앙받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                       이순신, 거대함대 앞의 두려움, '死卽生' 투지로 맞서
                   "'과연 그분 역할 가능할까' 난중일기 읽고 고민"


    사실 최민식도 이순신의 마음을 깨닫기까지에는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왕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인물. 사지인줄 알면서도 부하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장수의 마음을 현 시점에서 100%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도 안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런 분이 실제 인물이라고 역사라는 사실이 더욱 저를 힘들게 했어요. 이게 정말 가능할까? 실제로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흉내내기에도 벅찼어요. 아니, 내가 흉내내고 있는 모습이 정말 맞는지부터가 헷갈렸어요.

    저도 이순신의 아들처럼 그에게 왜 싸우셨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자신의 목숨까지 빼앗으려한 임금을 위해 전쟁터로 나간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해답은 영화 속에 나온다. 명량해전이 발발하기 직전, 아들 이회가 아버지 이순신에게 그동안 가슴 속에만 묻어왔던 질문을 던진다.

    아버지는 왜 싸우시는 겁니까?"

    의리때문이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따라야 하고, 그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에게 있다.


    이순신의 충(忠)은 임금이 아닌 백성에게 향해 있었다. 이는 그간의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대사다. 왕이 곧 '나라'인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백성을 높여 섬긴다는 발상은 어찌보면 반역에 가까운 생각일수도 있다.

    최민식의 연기 포인트도 바로 이 부분에 맞춰진 듯 했다. 임금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충신이 아니라, 백성에 대한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인물. 어찌보면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외계인처럼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닌,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인물 중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순신 장군은 남자로서, 또 인간으로서도 정말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원통하고 분할 텐데 그것을 꾹 참고 자기 본분을 지킨 분이죠.


    한편, 영화 '명량'은 이순신의 탁월한 리더십 외에도 일본과 역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현실 정세와도 맞물려 더욱 화제를 모으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최민식은 일본 아베 총리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려 눈길을 끌기도. 발언만 놓고 보면 그는 여전히 이순신이라는 영웅에 빙의돼 있는 모습이다.

    현재 일본인 분들도 아베 총리의 정책에 반감을 갖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지도자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어떤 비참한 일을 가져오는지 일본은 잘 알았으면 좋겠어요.


    조광형 기자 ckh@newdaily.co.kr
    [사진 = '명량' 포스터, 스틸컷 / 뉴데일리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