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이 지켜낸 '인천상륙작전 비밀'공로에 미국, 은성훈장 수여
  • (왼쪽부터)임병래 중위·홍시욱 하사(동상).ⓒ보훈처
    ▲ (왼쪽부터)임병래 중위·홍시욱 하사(동상).ⓒ보훈처

    국가보훈처는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인 해군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를 9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지구까지 밀린 전세를 완전히 뒤바꿔 놓아 노르망디상륙작전과 함께 대표적인 상륙작전으로 손꼽히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는 대한민국 해군첩보부대의 헌신적인 활약이 있었다.

    그 주역인 임병래 중위는 1922년 평안남도 용강 출생으로 1941년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한후 1950년 4월 20일 해군 중위로 임관해 해군정보국 창설 당시부터 창설요원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영흥도 첩보전 조장이 임무였다.

    홍시욱 하사는 1929년 출생으로 1948년 6월 1일 해군의 신병 10기로 입대후 동 작전의 첩보대원으로 참여해 임무를 완수하고 1950년 9월 14일 장렬히 전사했다.

    ◇인천 상륙작전계획 지키기 위해 장렬한 죽음 선택한 두 해군 영웅

    인천상륙작전 당시 ‘영흥도 첩보전’ 일명 X-RAY작전에서 해군정보국 첩보대는 인천 앞바다에 위치한 영흥도를 거점으로 인천에 잠입해 인천 해안포대의 위치, 병력배치 상황, 주둔 병력의 규모와 해안방어태세 등을 파악하는 작업을 했다.

    인천상륙작전 D-day가 임박해 영흥도 첩보기지는 철수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미군이 상륙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북한군 1개 대대가 영흥도로 기습해왔고, 임병래 중위를 비롯한 해군 첩보대원 9명과 해군 의용대원 30여 명은 적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 인천상륙작전 당시 모습.ⓒ국가기록원
    ▲ 인천상륙작전 당시 모습.ⓒ국가기록원

    적으로부터 포위될 위기에 직면하게 되자,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다른 대원들이 보트로 탈출할 수 있도록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공격을 차단했다. 하지만 두 대원은 끝내 탈출에 실패해 적에게 포위되는 상황이 이르렀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을 불과 24시간 앞둔 시점에서 포로가 될 경우 인천상륙작전이 탄로 날 것으로 판단한 두 대원은 적을 쓰러뜨린 다음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장렬한 죽음을 택했다.

    작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군사기밀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라는 사실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기여한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1953년 7월 6일 미국 은성훈장을 수여했으며, 우리 정부는 1954년 1월 4일에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해 전공을 높이 평가했다.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