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대박?…이승만 리더십 연구가 절실하다"
  • ▲ 이승만포럼이 열리는 정동제일교회ⓒ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이승만포럼이 열리는 정동제일교회ⓒ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세상에 공짜는 없다."

1894년 일본은 조선을 차지하려고 청나라를 꺾었다.(청일전쟁) 1904년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견제하려는 대한제국의 기대도 꺾었다.(러일전쟁) 일본은 한반도에서 두 번의 전쟁에 연달아 승리하며 동아시아의 맹호로 성장했다. 

1905년 7월27일, 일본은 미국과 테프트-가쓰라 밀약을 맺었다. 한반도 차지를 위한 외교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1905년 8월12일, 일본은 영국과도 동맹을 맺는다. 1905년 11월18일, 일본은 대한제국과 한일협상조약(을사늑약)을 체결한다. 그렇게 한반도에 살던 백성들은 나라를 잃었다. 

일본은 두 번의 전쟁과 美·英 등 강대국과의 외교로 한반도를 차지했다. 자신의 나라, 대한제국이 사라지는 그 순간, 29살의 청년 이승만은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1882년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존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이미 미국은 일본과 테프트-가쓰라 밀약을 맺은 상태였다. 청년 이승만의 순진했던 첫 외교는 그렇게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제국주의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던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한반도의 조선(대한제국) 백성들은 하루아침에 일본인이 됐다. 1945년 8월15일까지 조국을 잃은 백성들은 빼앗긴 들에 언제 올지도 모르는 봄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1945년 8월15일 봄은 왔지만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으로 온 '공짜' 광복이었다. 외교독립운동과 무장독립운동을 펼쳤던 한인들의 노력은 그 뜻은 위대했지만 반향은 경미했다.    

'공짜'는 '가짜'다. 한반도는 공산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난 러시아와 자유민주주의 미국의 냉전으로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 두 나라의 냉전은 한반도를 반으로 쪼갰다. 1948년 8월15일 한반도의 남쪽의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독립 국가를 세웠다. 

1945년 8월15일부터 3년간 미국과 러시아의 냉전을 극복하고 만들어낸 한반도 유일의 독립 국가 '대한민국'은 73살의 이승만의 노련한 외교의 결과였다. 하지만 이승만은 통일 대한민국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건국 후 66년간 분단된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66년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지만 핵을 든 북한을 평화와 자유의 이름으로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 ▲ 제42회 이승만포럼에 발제자로 나선 남시욱 세종대학교 석좌교수ⓒ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제42회 이승만포럼에 발제자로 나선 남시욱 세종대학교 석좌교수ⓒ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사)건국이념보급회(사무총장 김효선)가 주최하고 뉴데일리(회장 인보길)와 대한민국사랑회(회장 김길자)가 후원하는 이승만포럼. 21일 서울 중구 정동 정동제일감리교회 아펜젤러홀에서 그 42번째 포럼의 주제는 '통일을 위한 외교에 이승만의 지혜가 필요하다'였다. 발제자는 남시욱 세종대학교 석좌교수였다. 
    "이승만은 외교를 통해 독립을 쟁취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이 패망하면서 미군정의 지배를 받게 됐다. 하지만 건국의 과정에서는 이승만의 외교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우리는 분단의 아픔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를 통해 통일을 이루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외교는 타국의 힘을 빌려 평화를 유지하려는 의존적인 행위가 아니다. 외교 독립을 주장했던 이승만의 외교를 연구한 사람이라면 의존하려는 자세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게 된다. 지금 학계에서 이승만 리더십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는 거의 없다. 대한민국의 통일을 위해서라도 연구가 시급하다. 

    이승만은 29살에 '독립정신'이란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이미 외교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우리들은 그의 리더십을 연구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끄는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 이런 적극적 외교가 동아시아의 평화는 물론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보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시각이 모두 다르다. 우리의 통일을 우리의 창의적인 외교로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그 어떤 나라도 우리 통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통일을 위해 세계에 나설 외교 인재를 양성하는 게 지금 꼭 필요하다. 
    한반도 통일에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의 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승만의 리더십을 연구한다면 스스로 부족한 면이 많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아직 소극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는 듯 하다.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후 눈이 부신 성장을 했다. 그간 외교라고 할 것도 없이 다른 국가에 의존하며 살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대한민국은 약소국이 아니다.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전세계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에 나설 인재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이승만의 리더십을 연구한 젊은 인재들이 국제 무대로 나가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우리는 독립을 공짜로 얻었다. 1948년 건국을 하면서 광복을 맞았고 지난 66년간 선배들이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이제 젊음이 나설 차례다." 
  • ▲ 제42회 이승만포럼에 발제자로 나선 남시욱 세종대학교 석좌교수ⓒ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윤희성 기자 ndy@newdaily.co.kr


  • ▲ 이승만포럼이 열리는 정동제일교회ⓒ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이승만포럼이 열리는 정동제일교회ⓒ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발표문] 



    한반도 정세와 이승만식 외교  


                                               남시욱(언론인٠세종대 석좌교수)


    Ⅰ. 외교와 인간 주체성

    1)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후 외교정책분석(Foreign Policy Analysis, FPA) 이론에서는 국제구조나 국가가 아닌, 정책결정자 개인에 대한 접근방식이 본격적으로 각광 받고 있다. 

    2) 국가행위의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인 물질적 변수와 관념적 변수 사이의 교차점은 추상적인 국가나 정부가 아닌, 인간 정책결정자이다.

    3) 냉전 종식과 동시에 외교정책결정 연구에 있어서 인간을 중요시하기 시작함으로써 여러 가지 이점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4) 국제관계(IR) 이론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새로운 이론이 구성주의 이론/ 구성주의란 고전적 현실주의나 신현실주의와 달리 국제체제를 고정불변의 상수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이다. 왜냐하면 국제질서는 개별 국가들의 주체적인 행위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이다. 

    5) 국제관계(IR) 이론에서 인간 주체성의 문제를 부각시킨 구성주의 이론은 통일연구에도 유익/ 물론 구성주의에 따른 '주체-구조의 문제'는 아직도 논쟁 대상이지만  정책결정자 개인 또는 그룹의 창조적인 외교정책을 평가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이승만 외교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도 여기서 제기되고 있다.  

    Ⅱ. 이승만 외교의 특징 

    1) <독립정신>에 나타난 그의 외교사상 

      (가) 외교의 중요성-이승만, <독립정신>에서 외교의 중요성을 역설. 
      “강대국 사이에서 약한 나라가 국가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외교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역설. 

      (나) 외교의 방향-공평외교/  이승만은 '자주외교'를 통해 모든 나라와 당당하고 평등하게 교류할 것을 주장했다. 

      (다) 미국에 대한 호감-“미국은 조선의 독립을 완전케 하기 위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고 주장, 황준헌의 <조선책략>에서 제시한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 정책 가운데 고종도 찬성한 연미국 대목에는 공감하는 입장/ 그는 <독립정신>에서 4개 장을 할애, 미국 민주주의제도가 미국의 부강 원인이라 진단했다.

      (라) 반일・반러 사상의 배경-이승만은 조선은 과거 청나라에 의존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에 청나라가 쇠퇴하자 일본과 러시아에 기대어 주권을 지키려하지만 두 나라는 조선에 대해 영토와 주권을 침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2) 이승만 외교정책의 결정과정과 국제관계 구조변경 모델은 다음과 같이 그릴 수 있다.

  • ▲ 이승만포럼이 열리는 정동제일교회ⓒ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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