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H 뉴욕의 '14 칸 라이언즈 필름 부문 금상 수상작 남성성 억압 받는 현대인들 가상 폭력으로 해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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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젊은이가 판타지 세계의 갑옷을 입고 마주 보고 있다. 한 사람은 커다란 도끼를, 또 한 사람은 묵직해 보이는 장검을 들었다. 도끼를 휘두르며 첫 번째 젊은이가 노래한다. “진짜 완벽한 날” 두 번째 젊은이는 장검을 상대방에게 내다꽂으며 화답한다. “우린 공원에서 상그리아를 마시지.” 

  두 전사가 부르는 노래는 70년대 언더그라운드 가수였던 루 리드(Lou Reed)의 ‘완벽한 날(Perfect Day)’. 이들의 기이한 중창은 시대와 장소를 바꿔가며 계속된다. 상대방의 칼에 찔리는 순간에도, 거친 레이스에서 몸싸움에 밀린 차가 전복되는 순간에도, 로봇 전투기가 공습을 퍼붓는 시가전에서 서로에게 기관총을 겨누는 순간에도 두 젊은이는 ‘너와 함께 이 완벽한 날을 보내서 좋다’며, ‘네 덕에 나는 버틸 수 있다’며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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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젊은이들은 이 광고 영상 속 두 젊은이들이 정말로 ‘완벽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안다. 축구공이나 농구공을 들고 근처 공터로 달려가는 것보단 게임기를 손에 쥐고 스카이림(Skyrim), 니드포스피드(Need for Speed), 킬존(Kill Zone)에서 친구를 만나 서로 죽이고 죽는 게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폭력적 본성에 비관할 필요는 없다. 고양이나 개 같은 식육목 동물들도 폭력, 즉 사냥을 놀이로 생각한다. 장난감 쥐나 테니스공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과 비슷한 유인원들은 한술 더 뜬다. 침팬지들은 전투가 끝나면 먹지도 않을 적의 시체를 아무 이유 없이 찢어발긴다. 

  •   인간은 그보다 똑똑한 만큼 더 폭력적이다. 인류가 탄생한 이후 수십만 년 동안 양질의 단백질을 얻는 최고의 방법은 사냥이었고, 좋은 땅을 얻는 최상의 방법은 전쟁이었다. 인간에게 폭력이라는 본성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문명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효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개발된 최신무기들이 역설적으로 현대문명의 존립을 위협하며 폭력이 오히려 줄게 됐다. 인간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짊어지고 조심스레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해서든 큰 전쟁으로 공멸하는 일만큼은 막으려 애쓰고 있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조차 국지전에 그치고 있으며, 사학자들은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전세계가 평화를 구가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수십만 년 동안 발전시켜온 인간의 폭력성이 최근 몇 십 년 자제했다고 쉬 사그라질 리 없다. 풍선 한 군데를 누르면 다른 곳이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다행히 현대문명은 첨단무기뿐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도 탄생시켰다. 평범한 젊은이들도 조금만 연습하면 이내 도끼나 칼은 물론 기관총, 박격포, 기갑전차 등 원하는 무기는 무엇이든 휘두르며 남아도는 남성호르몬을 소진시킬 수 있게 됐다. 

      몇 백 년 전까지만 해도 20대 전후의 남성들에게 전쟁이나 사냥 같은 폭력은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현대에 이르러 남성호르몬이 최고로 분출되는 한창 때 남성에게도 폭력이나 성적방종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억압’ 속에 살던 젊은이가 게임기 속에서나마 실컷 폭력을 휘두르다 친구의 칼에 죽는다면, 바로 그 날이 그에겐 ‘완벽한 하루’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반전시위 시대를 회상시키는 노래가 ‘폭력적인’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 광고에 삽입된 것은 그래서 더 없이 ‘완벽한’ 선택이다. 2014년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칸 국제광고제) 필름 부문 금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