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재, 이정희 종북”은 명예훼손, “주진우, 박정희 성상납” 은 옹호
  • ▲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 공개변론을 지켜보는 이정희 대표.ⓒ 사진 연합뉴스
    ▲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 공개변론을 지켜보는 이정희 대표.ⓒ 사진 연합뉴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그 배우자인 심재환 법무법인 정평 변호사에게 ‘종북, 주사파’ 등의 표현을 쓴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는 항소심 법원의 판결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미 정부가 통진당의 강령 등에 나타난 종북성을 근거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해 헌재의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정희 대표 등의 종북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법원이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모순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통진당의 전신인 민노당이 그 내부에서 불거진 종북논란으로 분당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종북’이란 표현자체가 같은 좌파진영에서 처음 쓰인 말인데도, 이정희 대표 부부에게 ‘종북’·‘주사파’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배상책임을 묻는 것은 국민 정서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거세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정희 대표 부부에게 종북 의혹을 제기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의 트윗글을 인용보도한 언론사에 대해서, 1심보다 높은 배상금을 선고해, 언론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특히 같은 재판부가 이정희 대표의 ‘종북’ 의혹을 제기한 우파논객과 보수매체에 대해선 엄격한 잣대를 앞세운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 성상납’ 주장으로 물의를 빚은 진보매체 기자에 대해서는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이유로 배상액을 낮춰, 형평성 시비도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 13부(고의영 부장판사)는 8일 이정희 통진당 대표와 심재환 법무법인 정평 변호사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조선일보, 뉴데일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수천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같은 날 재판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성상납을 받았다”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1심에서 500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은 주진우 시사인 기자에 대해, “피고인의 행위는 진실 규명을 위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배상책임을 제한했다.

    ‘이정희 대표 종북 의혹 트윗’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나온 뒤, 법조계에서는 “누구든 공당 대표의 행적에 문제를 제기하는 건 당연”하다며 재판부의 판단에 의문을 나타냈다.

    정치인의 이념이나 국가관에 관한 검증은, 언론의 기본적인 의무이자 역할이란 사실을 고려할 때, 재판부의 판단은 언론의 감시·검증기능을 무시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근거없는 주장으로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진보매체 기자에 대해서는 [진실 규명] 등을 이유로 ‘관대한’ 판결을 내려, 재판부가 균형감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법조계 “정당해산심판 청구한 정부,
    통진당 명예 훼손했나?”

    이정희 대표 종북 의혹 트윗 사건에서, 재판부는 트위터에 문제의 글을 게시한 변희재 대표에 대해 1심과 같은 1,500만원의 배상판결을 내렸다.

    변 대표는 2012년 3월,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동과 이른바 경기동부연합 연계 의혹의 중심에 있던 이정희 대표 부부의 ‘종북’ 의혹을 제기하는 댓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조선일보와 뉴데일리 등은 변 대표의 트윗글을 인용 보도했다.

    이에 이정희 대표 부부는 변 대표와 조선일보, 뉴데일리 등을 상대로 5억원이 넘는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1, 2심 법원은, 이정희 대표는 국회의원에 당선됐기 때문에 상당한 검증이 이뤄졌고, 원고 부부를 종북이나 주사파로 단정할 만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피고들의 배상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결은 언론이 가진 감시·검증기능을 사실상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종북’이란 표현은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이 과거 민노당 분당 당시, 처음 사용한 말이고,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동 등으로, 통진당의 종북성향을 의심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우파논객과 보수매체에 대해서만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통진당의 종북성을 이유로 정당해산심판을 제기한 행정부 전체가 명예훼손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종북’이나 ‘주사파’와 같은 표현이 명예훼손이 된다면, 좌파인사들이 보수매체 등에 ‘친일’, ‘수구 꼴통’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 역시 명예훼손으로 봐야 한다는 반론도 많다.

    재판부가 문제삼은 ‘종북’이란 표현이 사전적 용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종북’이란 말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보편적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즉, 우리 사회에서 ‘종북’이라는 표현은 [널리 북한을 추종하고, 북한의 3대세습체제와 그들의 주장에 우호적 입장을 견지한 사람 혹은 단체]에게 쓰이는 [대중적 용어]이므로, 이런 기준에서 사건을 심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이 상존하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에서, 정당 대표의 국가관이나 안보관을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기사에 재판부가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내세운다면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우려도 많다.



    “종북은 근거 없다”던
    재판부의 [이중잣대]

    재판부가 이정희 대표에게 ‘종북’이란 표현을 쓴 것은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성상납을 받았다”는 근거없는 주장을 한 진보매체 기자에 대해선 관대한 태도를 보인 것도 문제다.

    재판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인 지만(56)씨가, 주진우 시사인 기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젊은 여성들의 성상납을 받았다”는 주진우 기자의 발언에 대해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총리를 만나지 못했다”는 주진우 기자의 발언에 대해서만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주진우 기자는 2011년 10월, <박정희의 맨얼굴>이란 책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대학생이나 자기 딸뻘 되는 여자를 데려다가 성상납 받으면서 총 맞아 죽은 독재자는 어디에도 없다”는 발언을 했다.

    이어 주진우 기자는 박 전 대통령을 아프리카 독재자들과 비교하면서, 세계에서 우래를 찾기 힘든 부끄러운 대통령“으로 표현했다.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역사적 평가를 저하하기에 충분한 발언”이라며 주진우 기자에게 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성상납이 이뤄졌다고 인정할 자료를 찾기 어려운데도, 피고는 성상납 의혹을 단정적으로 표현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주씨의 주장에 대해 “다른 곳에서도 상당한 의혹이 제기됐고, 비슷한 취지의 자료도 있다”며 배상책임을 부정했다.

    이어 항소심 재판부는 “현대사에서 일어난 사건은 의견과 논쟁을 통해 사실이 규명돼야 한다”며 주진우 기자의 발언을 진실 규명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판단했다.

    이정희 대표의 종북 의혹에 대해선 “구체적인 근거 없이 종북이라 단정해선 안 된다”던 재판부가  주진우 기자에 대해선 “의견과 논쟁을 통해 사실규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배상책임을 부정한 것이다.

    재판부가 이정희 대표의 국가관에 의혹을 나타낸 우파 논객과 보수매체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를 보이면서, 전직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진보매체에 대해선 지나치게 관대한 기준을 앞세운 것은, [이중잣대]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고영주 변호사(전 서울남부지검장)는 “종북은 종북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공익을 목적으로 정치인의 행적과 관련돼 사실을 적시한 이상 위법성이 조각(배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희재 대표는 “통합진보당과 종북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기사만 18,000건, 네티즌 게시글은 (좌파인사인) 진중권 교수의 글까지 포함해 수백만 건이다. 대한민국 법무부가 북한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해산을 청구한 정당은 떼 돈을 벌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변 대표는 지금까지 좌파인사와 매체들이 우파논객과 보수매체를 지칭해 근거없이 ‘친일’·‘수구’ 등의 표현을 사용한 사례를 모아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