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정권 3년 집중 분석

    외형상 김정일과 다름 없는 권위를 보여주지만
    사실 김정은 신격화 조작은 수십년간 수령주의 기획과 경험을 가진
    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가 얼마든지 연출해낼 수 있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 탈북 문인

    최근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유일지도 권위를 연일 강조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진 중 하나가 30살의 김정은 앞에서
    60~70대 고령의 장령들이 옷을 벗고 수영훈련 하는 모습이다.
    마치 김정은을 띄우기 위해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듯하다.
    또한 김정은이 현지시찰 과정에 지시한 내용들도 북한의 공개매체들은 거의 매일 소개하고 있다.
     
    외형상 김정일과 다름 없는 권위를 보여주지만 사실 김정은 신격화 조작은
    수십년간 수령주의 기획과 경험을 가진 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가 
    얼마든지 연출해낼 수 있다.

    우리 언론들은 북한의 그 대외성만 보고 김정은이 모든 권력을 가졌다고 열심히 홍보해주고 있다.   
    김정은이 유일권력을 쥐지 못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 이미 북한 정권이 공개한 장성택 처형 판결문 안의
     '파벌투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김정일도 생존에 그 점을 우려했는지 2007년
    당 조직지도부 안에 소속돼 있던 당 행정부를 떼어냈고,
    장성택과 김경희에게 국방위원회 대장이란 직함으로
    후계 지원 권한을 위임했다.
 
그런 전제가 있었기에 김정일 사망 후 노동신문은 관례를 깨고
1면에 최영림 내각총리의 현지료해 사진을 과감히 공개할 수 있었다,
이는 그대로 김경희의 대체권한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선전효과를 가져왔다.
 
한편 장성택은 사법권한의 당 행정부를 당 조직지도부처럼 전국 조직으로 체계화하고,
인민보안부 안의 내무군을 대폭 확대했다. 그 이유는 당 조직지도부를 견제하자면
맹견역할을 하는 국가안전보위부부터 견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쿠데타 방지 명목의 새로운 국내정치감찰 조직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2011년 국가안전보위부 류경 부부장이 간첩혐의로 내무군에 체포되어 총살당하게 되고,
우동측 부장은 뇌출혈로 명예퇴직 당하게 된다.
국가안전보위부 지휘부가 공석인 틈을 타 인민보안 부 내무군이 공포정치를 주도하는 과정에
리영호 군총참모장이 해임 숙청됐다.
 
그가 해임된 결정적 이유는 당 조직지도부와 행정부와의 정책노선 갈등 때문이었다.
장성택은 친인척 개입정치의 합리화를 위해 김경희의 권한인 인민경제 발전으로
체제안정을 주장한 반면, 실권만 갖고 있던 당 조직지도부는 김정일의 유훈 충성을 강조하며
강한 북한, 즉 핵무장 정책을 고집했다.
 
북한정권이 핵-경제 병진정책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양측의 노선을 다 같이 수용한 결과였다.
그 대립을 반영하듯 김정일 사후 김정은 정권은 끊임없이 정치국 확대회의를 이어왔다.
김정일 같은 경우 당대회나 정치국 확대회의 같은 다수결정 형식을 아예 배제하고 절대적 유일권한의 개인명령지도체제로 독재정치를 해왔다.
 
김정은 정권 들어와 개별적 간부의 해임과 임명안까지도 정치국 확대회의 결과로 발표한 것은 그만큼 인사권을 놓고도 권력 내부에서 이견이 첨예하게 갈라졌다는 증거이다. 이는 곧 당 조직지도부가 전통적으로 확보하고 있던 기존 권력질서와 그에 대항하는 새로운 장성택 세력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성택이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직함을 가진 것도 대외정책의 외교권을 당 조직지도부가 독점하고 있는 것만큼 그 장애물을 우회하여 체육교류 명목으로 외부세계와의 대화창구를 열기 위해서였다. 장성택의 그 대외권한을 지원하기 위해 김정은은 체육강국을 열변했고, 그 덕에 로드맨 방북초청과 같은 이벤트도 성사될 수 있었다. 
 
그렇듯 핵무장이냐, 경제발전이냐는 정책적 우선결정의 갈등이 점화되면서 리영호가 첫 희생양이 됐다. 장성택은 인민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내각을 키워야 하는데 이미 북한의 주요 경제가 선군 정치 이념을 좇아 군에 집중된 상황에서 군부터 다스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던 찰나 리영호가 장성택의 권력부활에 반발하여 사석에서 "우리나라에 장가 성을 가진 수령이 또 있나?"라고 발언한 것이 수령유일지도체제를 위반한 증거물로 제시되어 당 조직지도부도 해임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장성택은 최룡해를 총정치국장으로 추천하게 된다. 최룡해는 과거 사로청위원장 직을 맡고 있을 당시 당 조직지도부 안에서 청년조직 담당 부부장으로 근무하던 장성택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인물이다. 당 조직지도부가 최룡해 임명에 제동을 걸 수 없었던 이유는 백두혈통인 최현의 아들인 것과 동시에 김정일로부터 인간적으로 신임이 두터웠던 실세여서였다.
 
그러나 군 경력이 전혀 없는데다 군의 모든 인사권과 정책권을 당 조직지도부가 관리지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룡해는 식물장군이었다. 오히려 최룡해는 완고한 군환경에 포로되어 장성택과 점 점 거리감을 두게 되었고, 나중엔 당 조직지도부 편에서 장성택 제거에 앞장서는 배신자가 된다.
 
하여 군경제가 부분적으로 내각으로 이동하던 2013년 2월 당 조직지도부와 군부는 정세 돌파를 위해 핵실험 카드를 들고 나오게 된다. 김정일의 유훈이라는 절대명분에 장성택도 감히 반기를 들 수 없다는 점을 이용했던 것이다. 핵실험이 유엔안보리 제재로 이어지자 당 조직지도부와 군부는 기다렸다는 듯 2013년 3월부터 전역에 준전시태세를 동원하며 과도한 강경정책을 펼치게 된다.
 
정세권한과 권력주도의 양칼을 쥐게 된 당 조직지도부는 그 기세를 몰아 숙청초점을 장성택에게 집중하게 된다. 결국 2013년 12월 당 중심제가 아닌 내각중심제로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중국 지도부 앞으로 보냈다는 물증을 근거로 장성택을 반당반혁명 분자로 체포하게 된다. 김정은 개인의 분노가 아닌 권력집단의 분노가 장성택을 체포 4일만에 즉결처형 하도록 만들었고, 그 사건으로 김정은의 신격화도 사실상 처형당했다.  
 
김일성이 말년에 현지시찰 권력과 외교권한만을 가진 상징적 수령으로 전락한 것은 김정일이 김일성종합대학 동창생들로 당 조직지도부를 구성하고 그것을 지렛대로 완벽한 유일적 실권의 후계질서를 구축한 결과였다.
 
그러나 지금의 김정은에겐 동창생이 있다면 스위스 유학시절 외국인들 뿐이고, 여동생 김여정이 설사 고위관료로 발탁된다고 해도 김정일 생존시 김경희가 아무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당 조직지도부가 곁가지로 분류하면 그만이다.
 
최근 그 당 조직지도부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황병서 군 담당 부부장이 북한 권력의 상징적 위치인 군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이는 김정일의 당 조직지도부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금기를 깨버린 셈이다. 김정일의 신임만으로 만족했던 당 조직지도부가 이제는 공개직함의 공개명분을 필요로 할 만큼 김정은의 신격화 권위는 내부적으로 더는 존중되지 않는다.
 
수령 유일지도 체제와 질서가 안정되지 않은 탓에 북한 군 장성들의 계급장이 나눠먹기 식으로 부단히 오르 내리고, 대남정책에서도 손바닥 뒤집기 식의 변덕이 극심해졌다. 그러나 일단 장성택 제거로 현 북한 권력 내부는 간만에 평온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대내외정책의 역학관계 속에서 권력이권을 골고루 분배하는 것인데 북한 정권의 안정은 바로 그 시점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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