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가는 손들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무살 안팎 젊은 목숨을 반공구국에 기꺼이 바친 뜻을 새기고 넋을 기려다오."
     -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 KLO 8240 유격백마부대 충혼탑에 새긴 마지막 구절의 문구

  •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동작구 현충원에서 열린 호국영령 합동 위패 봉안식에서 아버지 최원모씨와 어머니 김애란씨의 위패를 들고 현충탑으로 향하고 있다. 전후 납북자로는 현충원에 처음으로 위패가 봉안된 최원모씨는 6·25 전쟁 당시 비정규 특수부대인 '켈로부대' 출신으로 1967년 납북돼 북한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4.7.11 ⓒ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동작구 현충원에서 열린 호국영령 합동 위패 봉안식에서 아버지 최원모씨와 어머니 김애란씨의 위패를 들고 현충탑으로 향하고 있다. 전후 납북자로는 현충원에 처음으로 위패가 봉안된 최원모씨는 6·25 전쟁 당시 비정규 특수부대인 '켈로부대' 출신으로 1967년 납북돼 북한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4.7.11 ⓒ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1950년 6월25일, 북한 공산군의 불법 남침으로 동족 상잔의 비극이 발생했다. 이즈음 평북정주군의 청년과 학생들은 자유와 향토사수를 결의하고 치안대를 조직해 사회질서와 방위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1950년 10월19일 중공군의 전쟁개입으로 UN군이 철수함에 따라 통일의 꿈은 부서지고 말았다. 뒤이어 침입하는 공산군을 격퇴하고자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무기, 병력의 열세 등으로 패전의 위기에 몰렸다.

    전투력을 보강하고자 1950년 11월22일 평북 정주 출신의 청년, 학생, 여성, 치안대로 유격백마부대를 창설해 서해안에 있는 대화도를 점령하고 그 인근에 있는 소화도, 탄도, 가도, 가차도 등을 차례로 점령, 병력을 배치해 경비태세를 강화했다.

    이어 유격전, 첩보수집 및 공작망 구축, 본토 내륙에서 특수전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유격전사상 찬란한 전과를 이룩했다. 그러나 전투 기간 중 용전분투하다 꽃다운 청춘을 불사르고 552명의 전사들이 호국영령이 됐으니 슬프도다.

    전쟁영웅들이시여!

    휴전협정 체결이 임박할 무렵인 1953년 7월에 피와 목숨으로 점령했던 모든 섬들을 포기하고 남하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우리땅임을 주장해보지도 못하고 NLL 영해선안에 포함되지도 않았으니 그 아픈 기억을 잊을 수 있으리오.

    내 땅을 버리던 날 가슴이 무너지는 현실 앞에서 고향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보자 내 고향을 절규하며 손을 흔들었다. 수많은 영혼들을 북한의 산과 들, 황해의 푸른 물결 속에 버려둔 채 후퇴하는 우리의 심정은 뼈가 부서지는 아픔을 가눌길이 없었다.

    정부의 노력으로 서해 5도만은 NLL 설정으로 영해인정과 영토보전을 하게 됐으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 서해 5도야말로 피, 땀과 목숨으로 지켜낸 땅인데 이제와서 북방한계선 포기 운운함은 참으로 통탄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NLL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인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이 선은 우리나라 영해 경계선으로서 적의 침략을 방어하는 최전방 방어선이며 무릇 대한민국의 영토이자 생명선이다.

    국토는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야도 할 수 있는 성격의 땅이 아니며 신겅불가침의 영원 무궁한 민족의 보금 자리이며, 또한 내나라 내 땅이다.

  • "1967년 납치돼 생사도 모른채

    이곳 현충원에 시신없이 안장되는 선박대장 최원모님

    애타게 기다리다 돌아가신 고 김애란님 부부 안장을 기리며

    조속한 납북자, 국군포로 생사 확인과 유해 송환을 빕니다."

       - KLO 8240 유격백마부대 선박대장 최원모-김애란 부부봉안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