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살았던 미지의 땅,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인 수령은 곧 인민의 운명이며 국가이고, 당이며 혁명이고, 이 세상 전부다. 그래서 김일성에게 ‘위대한 수령’, 김정일에게 ‘친애하는 지도자’라는 존칭을 1970년대부터 공식 사용하였다. 김정은에게는 ‘경애하는 원수님’이란 대표적인 호칭을 현재 쓰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게만 허용되는 존칭수사는 수없이 많다. ‘민족의 시조’, ‘어린이들의 아버지’, ‘참다운 스승’, ‘주체사상의 창시자’, ‘예술의 천재’,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 ‘건축의 영재’, ‘국제공산주의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인류의 태양’, ‘세계혁명의 걸출한 위인’, ‘전설의 영웅’, ‘통일조선의 대통령’ 등 100개도 넘는다.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존칭어는 전부 수령에게만 붙인다. 필자는 28년간 모범적인 평양시민으로 살면서 수령의 이름을 존칭수사 없이 부른 사람은 듣도 보도 못했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남한에 와서 정치범수용소 출신의 후배 탈북자들의 증언을 듣고서야 수령의 이름을 그냥 부르면 수감된다는 것을 알았다.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에서 주민들의 생활은 남한의 1960년대 마냥 비참하고 세계경제순위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수준이다. 오늘도 굶주린 인민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외국으로 탈출하며 세계 유례가 없는 잔인한 3대 독재사회를 저주하며 많은 사람들이 자살의 길을 택하고 있다.

    그렇게 ‘고상하고 친근한’ 김정은이 총괄하는 북한의 공영언론에서 나오는 남한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노동당 직속의 대남기관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최근 있은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맹비난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X’이라고 지칭하는 원색적인 표현을 마구 썼다.

    “박근혜가 오바마 앞에서 놀아댄 몰골을 보면 흡사 주먹깡패를 불러다 누구를 혼내달라고 떼질 쓰는 못돼먹은 철부지계집애 같기도 하고, 기둥서방에게 몸을 바치면서 남을 모해하는 간특하고도 요사스러운 기생화냥X”이라며 “X이 청와대에 둥지를 틀고 있는 한”, “추태를 다 부린 박근혜X”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하기야 별로 놀랄 말도 아니다. 과거 특정시기마다 남한의 대통령을 지칭하며 “개XX를 죽탕쳐 없애 버리겠다,”, “역적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 등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온갖 욕설과 비난을 마구 해온 북한당국이니 말이다.

    인류가 사는 지구촌에서 어느 깡패집단의 언행도 이토록 폭력적이지 않다. 언어 예절도, 문화도 없는 북한의 공영언론이 뭐가 크게 잘못되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아무리 화나도 어떻게 인내하고 표현해야 하는지, 더구나 표준어는 왜 쓰는지 등 기본적인 국어표현의 상식조차 모르는 추잡한 괴물집단이다.

    말하는 사람의 표현은 자신의 언어문화수준을 고스란히 나타내며 저질스러운 악담을 발설하는 그 입 자체가 더러워진다. 북한당국이 남한 대통령에게 악의에 찬 살인적인 폭언을 쓰면 그게 곧 김정은의 식견을 표방한다는 것은 모를까? 아무리 격한 분노도 품위가 있어야 보고 듣는 사람이 두려워한다.

    일국의 공영매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형편없는 북한의 언론은 최악이다. 자기네 지도자가 귀하면 상대측 지도자도 귀한 법인이다. ‘박근혜 X’이라고 지칭하는 도를 넘은 북한의 표현대로면 지난 2002년 5월, 당시 박근혜 국회의원을 평양에서 만나 회담을 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김정일 개XX’ 라는 소리다.

    그나저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외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이렇게 막말로라도 푸는 것은 아닐까? 그에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아닌가? 여하튼 세계 최고 언론자유를 누리는 김정은이다. 이런 잔인한 독재자와 한민족이라는 우리가 창피하다.


  • ※ 탈북작가 림일 = 1968년 평양에서 태어나 '사회안전부'와 '대외경제위원회'에서 근무했다. 이어 1996년 쿠웨이트 주재 '조선광복건설회사'에서 노동자로 파견돼 일하던 중 탈출해 1997년 3월 한국에 왔다.

    대표작 ‘소설 김정일 1,2’ 는 김정일을 독재자의 잔인한 면모를 극대화한 소설이다. 또한 평양의 거리와 건물, 가정집 내부와 국영상점, 시장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북한의 현 주소를 알리고 있다.

    '평양으로 다시 갈까?' 는 그가 서울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엮은 책이다. 평양 출신으로서 전혀 다른 세상인 서울에서 살면서 북쪽 사람 입장에서 다르게 보이는 세상사를 모았다.

    2013년에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파란만장한 삶을 소설로 재구성한 '소설 황장엽'을 출간했다. 그는 "남한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 나라에서 사는지 망각하고 사는 것 같다. 그들에게 한 노 혁명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들려주며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싶다"고 배경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