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유치위원장 신용석의 愛鄕心
  • 신용석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대외협력위원장ⓒ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신용석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대외협력위원장ⓒ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신용석 인천 아시안게임 대외협력위원장에게 '4월17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2007년 4월17일은 제1회 아시안게임 개최지 인도 뉴델리를 상대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날이기 때문이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한지 딱 7년이 되던 17일 신용석 위원장을 만났다.

    신용석 現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대외협력위원장은 2005년 '유치위원장'으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가 지난 7년간 극복한 어려움들 중에서 인도 뉴델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적은 내부에 있다"



    2010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나선 강원도 평창군은 2003년 캐나다 벤쿠버에게 패했다. 신용석이 인천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하겠다고 나서던 그해 평창은 2014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재도전하고 있었다.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평창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뜨거웠고 정부도 평창의 2014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함께 노력했다. 

    인천 아시아게임과 평창 동계올림픽이 모두 2014년에 열릴 가능성은 희박했다. 국제체육행사를 한 국가에서 같은 해 2개 개최한 역사도 없을 뿐더러 올림픽위원회와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등이 이를 허락할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 국제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측에서는 은근히 인천보다는 평창이 2014년의 승자가 되기를 희망했다. 정부의 이런 판단에는 국내 스포츠팬들이 올림픽을 아시안게임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도 작용했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개최된 제1회 대회로 시작된 동계올림픽을 단 한 번도 개최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국민들을 평창의 편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종목이나 선수단 인원은
    아시안게임이 올림픽에 비해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스포츠팬들은 대부분 올림픽이
    아시안게임 보다 규모가 크다고 인식하고 있다"

       - 신용석 


    1974년 아시안게임 개최에 성공했던 대한민국이 준비 부족으로 이란 테헤란에 양보했던 과거를 극복하고 1986년 서울, 2002년 부산 등에서 2번이나 아시안게임을 개최했다.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대한민국 대표팀의 활약으로 국민들이 스포츠를 바라보는 눈도 덩달아 높아졌다. 이런 조건에서 아시안게임을 올림픽에 비해 시시하게 느끼는 국민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더 많은 금액을 들였다. 

    중국이 왜 아시안게임에 더 많은 투자를 했을까? 

    전세계 인구의 60%가 아시아人이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중국의 전략이었다. 

    무역국가인 대한민국이 아시안게임에 중점을 둬야 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대한민국과 거래하는 국가들이 대부분 아시아 국가이기 때문이다"

       - 신용석


    2007년 결정된 2014년의 주인공은 평창이 아니라 인천이었다. 평창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지난 2011년 선정됐고 2007년 4월17일 인천이 2014년 제17회 아시아경기대회 개최지로 선정됐다. 



    '쩐'의 전쟁…그리고 협력


    2007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유치를 확정하고 조직위원회를 구성했다. 신용석 유치위원장은 문화체육부 장관, 프로농구연맹 총재를 거친 김영수씨를 조직위원장으로 추천했다. 송도 신도시 개발과 아시안게임 유치로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인천시는 세수(稅收)도 좋았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문학경기장을 보수해 아시안게임 주 경기장으로 사용하라는 정부의 권고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충분한 세수를 믿고 주 경기장을 새롭게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금융위기와 부동산시장 침체를 겪으며 위기가 찾아왔다. 

    "주 경기장 신축 문제로 중앙정부와의 불협화음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정부의 예산지원 삭감으로 이어졌다. 

    유치 확정 직후 터진 금융위기와 부동산시장 침체는
    개최도시 인천의 재정을 계속 압박하고 있었다"

       - 신용석


    신용석 대외협력위원장의 실력은 위기에서 발휘됐다. 주 경기장 공사는 강행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을 위해 필요한 경기장 몇 개를 포기했다. 대신 경기도 인근 도시들이 소유하고 있는 경기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협력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열리는 경기 중 25%는 인천이 아닌 인근 경기도 지역 도시에서 열린다. 경기도가 모두 함께 아시안게임을 치르게 된 것이다. 주 경기장(6만명 수용 가능)은 내달 10일 완공식을 가진다. 


  • 뉴데일리 미디어그룹 인보길 회장과 신용석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대외협력위원장ⓒ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뉴데일리 미디어그룹 인보길 회장과 신용석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대외협력위원장ⓒ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인천사랑 내리사랑"


    1941년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화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조선일보에 기자로 입사했다. 88서울올림픽 유치에 힘썼고 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 서울올림픽기념사업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고향 인천으로 돌아왔다. 정치에 몸 담았다. 민주당 인천시지부 지부장, 민주당 당무위원을 거쳐 인천시장에도 도전했다. 최근에는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겸 대외협력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인천개항박물관 명예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신용석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故 신순성(1878∼1944) 함장은 대한제국 개화파의 거두였던 박영효의 추천으로 일본 동경상선학교에 입학해 국비유학생으로 학업을 마친 뒤 1903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군함 광제호의 초대 함장이었다. 신순성 함장은 후배양성과 해양발전을 위해 군함의 모항이 있는 인천으로 1917년 이사했다. 

    신용석 위원장의 아버지인 故 신태범(1912~2001) 박사는 인천에서 의사이면서 저술가, 식문화 탐험가, 향토사가로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경성제국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후 인천에서 외과의원을 개원하며 평생을 의료활동에 매진했고 '반사경', '인천 한세기', '개항후의 인천풍경', '먹는재미 사는재미', '맛탐험' 등을 집필,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쳤다.

    신용석 위원장이 인천에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하며 또 준비하며 겪었던 많은 고난을 이겨낸 힘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인천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었다. 2005년 시작해 유치에 성공하고 2007년 조직위원회에 들어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7년을 일한 원동력은 고향, 인천에 대한 사랑이었다. 9월19일부터 10월4일까지 열리는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155일 앞으로 다가왔다. 

    [인터뷰=인보길 뉴데일리 미디어그룹 회장 ceo@newdaily.co.kr]
    [사진=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jsy@newdaily.co.kr]
    [글=윤희성 뉴데일리 기자 ndy@new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