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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대가 변해야 한국 대학 변한다"

카이스트 최초의 외국인 총장 러플린, 정문술 기금 빼앗으려다 실패

입력 2014-03-03 14:11 | 수정 2014-03-04 11:40

이광형 카이스트 교수 "대학 총장 임기 최소 10년 돼야"

세계 1류 대학 되려면

총장 임기 10년은 돼야

 

“현재와 같은 제도에서는 우리나라 대학이 세계 일류가 될 수 없다.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대학의 경우에는
최소한 총장 임기를 10년 이상으로 해야 한다.”

카이스트 이광형 교수가 총장임기 10년 제도를 주장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광형 교수는 IT, BT 및 뇌 인지과학 분야를 융합적으로 연구하는 ‘바이오 및 뇌공학과’를
카이스트 (KAIST 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에 설립한 사람이다.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은 이 교수를 보고 카이스트에 2차례에 걸쳐
515억원을 기부해 관심을 끌었다.

이 교수는 뉴데일리와 가진 장시간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 10위권에 올라 있으나,
대학은 50위권에 머물러 있다.
지식을 생산하는 대학이 이렇게 뒤쳐져 있으면
지식산업시대에서 경쟁에 밀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50위권 대학의 수준을 높이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제도적인 면에서 보면 대학 총장 임기가 짧아 무슨 일이든지 제대로 펼 수 없는 것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정문술 회장이 이광형 교수를 보고 2001년 카이스트에 300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올 초 또다시 이 교수를 보고 215억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한 것을 계기로
뉴데일리는 대학문제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또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문술 회장은 올해 215억원을 추가로 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이광형 교수는 전했다.

“13년 전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던 융합연구의 씨앗을 뿌렸는데,
이제 모든 사람들이 융합연구가 살 길이라고 참여하는 현상을 보고 있다. 
그 때 설립한 바이오 및 뇌공학과는 세계적인 융합연구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처럼 신학문을 개척한 것을 보니 무척 보람을 느끼고
그동안 헌신적인 노력을 해 준 카이스트와 이광형교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럼 이떤 과정을 거쳐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신개념의 학과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가?

2001년 300억원을 활용한 새로운 시도에 반대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유달리 고무된 분 중에 그 당시 김영환 과기부 장관(현 민주당 의원)이 있다.

김영환 장관은 카이스트가 먼저 말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나섰다.

 “민간에서 이와 같이 발 벗고 나서는데, 정부에서 그냥 말 수 없다.
 정부가 10년간 200억원의 매칭 예산을 배정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실무선으로 가자 장관의 말은 참고사항일 뿐이라는 것을 이때 알았다.
실무자들은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움직이질 않았다.
당시 장순흥 기획처장은 과천청사에 드나드느라 신발이 달아졌다.
(그 후에 신발 하나 사주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과기부를 거쳐서 기획예산처에 가니 더욱 험한 산이 버티고 있었다.
어느 날 가보니 엉뚱한 기관으로 예산이 배정되어 있기도 했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카이스트는 민간 기금으로 기금을 확보했으니,
이 돈은 다른 기관에 써야할 것 아니냐.”

우여곡절 끝에 장관의 약속은 대부분 지켜졌다. 
장관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어도 10년간 예산이 배정되었다.
물론 액수는 60% 선으로 줄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10년 약속이 지켜질 수 있게 한 것은 관계자들의  협조 덕분이다.
정문술 회장이 쓰라고 준 돈 300억원을 아껴서 140억원이나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런 정부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문술 회장이 기부금을 낸 뒤 2년이 지난 2003년에도
학교 내에서 학과의 나아갈 길에 대하여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해외에서 유명 교수진을 유치하여 교수진을 보강해야 하는데 진척이 안됐다.

답답한 교수들은 홍창선 총장과 함께  신임 교수 후보를 발굴하기 위한 미국 출장까지 다녀왔다.
가만히 있어도 교수 후보자들이 밀려드는 기존학과의 일부 비관론자들은
“그러면 그렇지” 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부자 정문술 회장은 이러한 비판을 전해 듣고 반대로 해석했다.

“그럼, 그렇지 내가 투자를 잘했어.
교수 후보자들이 많은 분야에는 내가 투자할 필요가 없어요.”

역시 거꾸로 경영의 달인다운 말이었다.
이광형 교수는 여러 분야의 교수를 채용했다.
생물 전자 컴퓨터 기계 의학 약학 등의 분야를 전공한 교수를 채용했다. 

학생들을 설득하여 신설학과로 모이게 하는 것도 큰 과제였다.
학생들에게 전공을 정하는 일은 인생을 거는 결정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배우는 내용은 무엇이고, 선배들은 어떻게 진출하는가....
그런데 신설 학과에는 배우는 내용도 생물을 배우는지 전자를 배우는지 뒤죽박죽처럼 보인다. 
선배도 없다. 불안하다. 

교수들은 여러 차례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세상의 모든 학과는 초기에는 신생학과였다.
전자과도 신설학과였고, 컴퓨터학과도 초기에는 푸대접 받았다.
지나간 과거를 보지 말고, 미래를 봐라.
이 학과에는 남의 뒤를 따라가려는 사람은 오지 말라.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여 선두에 서기를 원하는 사람만 도전하라.”

이때 미국 전자공학회인 IEEE가 앞으로 10년간 가장 중요한 기술 10개를 선정했는데,
바이오응용공학이 첫 번째로 올랐다. 응답자의 72%가 바이오응용공학을 꼽았다.

이광형 교수는 이것을 복사해서 수 없이 뿌렸다.
다행히 카이스트에는 도전정신이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한 학년에 30명 정도가 모였다. 선방이다. 학생들이 한 없이 고마웠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그 때 도전의 길을 택한 그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보상을 받고 있다.
융합연구의 선구자가 되었고, 대학과 연구소, 기업에서 다른 분야 보다 좋은 대우로 진출하고 있다.
지금도 질문하는 학생들이 있다.

“바이오 및 뇌공학과는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맞습니다.

바이오 및 뇌공학과는 우리 인간이 아직 잘 모르는 인체와 뇌에 대하여 연구합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전공을 정하는 것은 인생의 진로를 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뿐인 나의 인생을 남들이 밝혀 놓은 분야에 던질 것인지,
미지의 세계에 투신할 것인지, 선택의 문제입니다.
남의 뒤를 따라 갈 것인지, 남을 이끌어 갈 것인지 선택의 문제입니다.”

내부에서 진을 빼는 있는 사이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신설 바이오및뇌공학과가 IBM SUR 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것은 IBM이 전세계 대학 중에서 바이오정보를 연구하는 대학들의 연구제안서를 받아 심사하여
6개 대학을 선정하는 상이다. 부상은 수퍼컴퓨터 p690 이다.
이상엽 이수영 이도헌 교수 등이 노력하여 이루어진 쾌거이다.
바람 앞의 촛불같은 신생 학과가 외국에서 인정받은 것이 무척 큰 힘이 되었다.

시행 착오도 많았다. 가장 큰 것이 교수 연구실에 관한 것이다.
11층 건물을 완공한 교수진은 건물에 입주했다.
건물은 큰데 교수는 대여섯 밖에 되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왕국을 꿈꾸며, 한 층에 교수 1인씩 입주했다.
교수가 지도하는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방식이다.

몇 달이 지났다. 학생들과 교류는 원활하여 좋았다.
그러나 융합을 하겠다고 모인 교수들이 서로 얼굴보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료교수를 만나려면 엘리베이터를 타든지 층계를 올라야 했다.
거리가 융합의 장애임을 깨달았다.

대천해수욕장으로 겨울 교수워크숍을 갔다. 이심전심으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한 층으로 모여야 한다. 10층과 11층의 구조를 조정하여 모든 교수들이 모여서 근무하기로 했다.  

교과과정도 여러 차례 바꾸었다.
융합 교육의 경험이 없는 우리는 머릿속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가르쳤다.
가르치다 보니 시행착오도 노출되었다. 학생들의 불만도 나왔다.
매년 교과목을 수정하며 개선해 나갔다.
처음에 들어온 학생들이 4년을 마치고 졸업한 후에야 교과목이 안정되었다.


정문술 기금 빼앗으려 한 로버트 러플린 총장


그렇지만 두번째 인터뷰의 주요 관심사항은 카이스트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총장이었던
로버트 러플린 박사에 모아졌다.

로버트 러플린은 노벨상 수상자였다. 1998년에 이론물리로 노벨상을 받았다.
노벨상 수상자 유치에 공을 들이던 포항공대 아태이론물리연구센터 소장을 맡아
일년에 몇 주 동안 한국에 와 있었다.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환상이 컸던 시절이었다.
홍창선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후임 정할 때 외부에서 노벨상 수상자 초빙하자는 여론이 있었다.
당시 이런 여론이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 카이스트가 우리나라 과학기술 선도기관으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새로운 도전을 너무 안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기관으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내외의 비판이 생겨났다.

외부 사람이 와서 충격을 주고 변화를 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타당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면서 내부나 외부에서 반대가 없었다.

그랬는데, 그 때 하필이면 왜 꼭 러플린이었어야 했을까. 
 



러플린은 학문간 융합은 안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러플린이 교수로 있는 스탠포드대학에서도 융합학과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정문술 회장이 카이스트에 기부했던 것 같이 스탠포드 대학 출신의 제임스 클라크가 거액을 기부해서는 바이오-의료-전기-전자를 융합하자면서 2002년에 바이오엔지니어링과를 만들었다.

러플린은 스탠포드 대학에서 2000~2004년에 나타났던 학문 융합 움직임이
어떤 장애에 부딪히는지를 잘 봤다.
스탠포드에서는 전공별로 헤게모니 싸움이 벌어졌다.

러플린이 2004년 카이스트 총장으로 부임하면서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러플린은 융합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자꾸 흘리면서 [정문술 이론]은 틀렸다고 말했다.
이광형 교수에게도 “컴퓨터 전산학은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생물은 실험중심이니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누누히 강조했다.

동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꾸 흘리면서 뜸을 들이더니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사항으로 떠오르자
하루는 러플린이 이광형 교수, 다른 학과장, 교무처장을 불러댔다.

그리고는 황우석은 저렇게 잘 하는데
스템 셀(줄기세포)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해보라고 묻는 것이었다.
학과장은 우리는 그 연구를 안 해 왔고 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답변했다.
이때 러플린은 이상하게 말했다.

"돈은 걱정마라. 내가 마련해보겠으니 연구인력을 리쿠루트 하라."

리쿠루트 할 사람이 없다는 말에는 “황우석 팀이 있지 않느냐. 두 배로 주던지 나한테 이야기하라”고 답변했다..

결국 러플린은 황우석 박사팀 멤버들을  더 많은 연구비를 줘서 카이스트로 유치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서 러플린은 이광형 교수를 보고 한 마디 던졌는데,
상식적으로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

“융합은 성립할 수 없으니 너희들은 해산하고,
정문술 기금은 내가 줄기세포에 쓸 테니 그렇게 알아라.”

회의는 그렇게 마쳤다. 그래서 이광형 교수는 ‘이 일을 어떻게 하나’ 하면서도
‘그렇게 쉽게 러플린이 가져갈 수 있을까’ 싶어서 계약서도 다시 들여다보았다.
계약서를 보면 결국 소송으로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대응을 하지 않고 러플린의 태도를 관망하기로 했다.

하루는 부총장이 “러플린이 정문술을 만나려 한다”고 흘려줬다.
총장이 바이오시스템학과를 해산하고 정문술 기부금을 다른데 쓰려고 한다고 알려줬다.

2005년 한해 동안에는 러플린이 핍박을 가하고 주변에서는 냉랭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더욱 섭섭한 것은 러플린 총장이 불법적으로 정문술 기금을 빼앗으려 하는데,
일부 보직자들이 이에 동조 또는 방관하고 있었다. 

고립무원 사면초가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이 때 러플린의 계획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간접적으로 도와준 사람들은 당시 신성철 부총장과 장순흥 기획처장이었다.

러플린 총장은 어느 연구팀에 정문술 기금을 빼앗아 돈을 줄테니 줄기세포 연구를 해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그 팀에서는 줄기세포 연구계획서를 제출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빼앗은 물건을 “장물”이라 하는 것 같다.
그 연구팀은 장물임을 뻔히 알면서, 그것을 이용해 연구하겠다고 계획서를 제출했다.

완전히 포위된 느낌이었다.
냉정하게 따져보니 사람들이 총장의 행동에 굳이 반대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공연히 나서서 총장과 싸울 필요도 없거니와 돈을 빼앗아 연구비를 나누어 주면 좋아할 사람들이 많다. 기부금을 받아온 사람만 고립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학과의 위기 상황을 절대 학생들이 알게 하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바뀌고 있는데, 학생들이 일부 내용을 알면 오해하고 상상하면 동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든지 조용히 해결해 나가야 한다. 

좋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에, 퍼지면 퍼질수록 학과에 손해다.
신설학과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는 상황이다.

이광형교수는 정문술 회장과 홍창선 총장이 사인한 협약서를 읽고 또 읽었다.
이제 의지할 곳은 협약서 종이장 뿐이었다.
법적으로 다투면 어떠한 하자가 있는가, 학과는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는가 따지고 따져 봤다.

2005년 가을이 됐을 때 대학본부의 한 보직자가 넌지시 알려줬다.
외부에서 모함이 들어왔다고, 조사가 시작될 것 같으니 준비하라고…

이광형 교수는 속으로 참 잘 됐다고 생각했다. 300억원을 주무르니까
‘이광형 교수가 기부금을 유용한다’는 모함을 넣어 조사하면
반드시 잘 못 된 부분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 핑계를 대서 해임시키려는 것이었다.

모함이 대학 사회에도 있구나 하고 놀랐다.
이 교수의 뒷조사를 하여 불법이 드러나면 손 쉽게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계산처럼 보였다.
뒷조사가 한국 사회의 전유물인줄 알았더니 미국인도 이용하는 방법임을 알았다.

러플린 총장이 정문술 기부금을 가로채려 했을 때,
마음대로 되지 않자 타협안이 나오기도 했다.
러플린은 바이오및뇌공학과에 와서 흘리는 말이,
여기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안 해 본 것이라 갑자기 할 수 없다고 했다.
러플린은 미국식으로 돈만 많이 주면  황우석 팀을 데려 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간절한 마음인지, 외로움이었는지 대강 알던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이광형 교수는 성경을 찾았다. 요한복음 8장 32절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돈을 집행하고 교수를 채용할 때 실수를 한 것이 있는가, 이 교수는 스스로 물어 봤다.
마음이 평온해 짐을 느꼈다. 진실되게 행하여 왔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역시 진실이 자유롭게 해주고 있음을 알았다.

성경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되고 의지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어려운 일에 닥치면, 이 성경 말씀에 의지하게 되었다.

어느 목사님에게 학과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기도해 달라고 했다.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마태복음 10장 16절을 인용해주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하라.”

사방에서 밀려오는 반대자들의 행동에 순진하게만 굴지 말고
뱀처럼 지혜롭게 대응하라고 조언해주었다. 

이광형 교수는 하는 수 없이 정문술 회장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정문술 회장은 이렇게 용기를 북돋워 줬다.

“고약한 사람이다. 이럴 때일수록 내부 단결에 주력해라.
내부에서 단결하면 이긴다. 이럴 땐 내부와 외부가 손을 잡고 포위하는 수가 있다.”

총장의 지시에 의하여 신성철 부총장이 정문술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러플린 총장이 만나고 싶어한다’고 했다.
정문술 회장은 단호하게 세가지를 말했다.

첫 번째, 이 돈을 다른 용도로 쓰면 계약위반이다.
            단 1원이라도 계약내용 이외의 용도에 쓰면 전액 회수한다.
두 번째, 그 작업에 동조하는 보직자는 배임죄로 고발하겠다.
세 번째, 계약서 이외의 용도로 쓴다면 반환 소송하겠다.

학교가 손해나는 일 하면 배임이 된다.
이광형 교수도 회수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봤지만 배임으로 연결되는지는 몰랐다.
기부금을 회수하면 결과적으로 학교에 손해를 끼치게 된다.
오랫동안 기업경영을 해 온 노련한 정문술 회장은 학교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
결국 배임이 된다는 사실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에 협조하여 실무 처리를 하는 보직자도 배임에 해당된다고 했다.
이 이야기가 러플린 총장에게 전달되면서 러플린은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몇 달을 기다렸지만 조사는 시작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었고 아무도 물어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내부에서 한 교수가 학과에서 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유능하지만, 다소 성격이 특이한 사람이었다.
이 교수는 사무실에서 자면서 연구에 몰두했고,
그를 위해서 그가 있는 건물 6층에 샤워실을 별도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생명공학연구원에 파트타임으로 근무하겠다고 요청해왔다.
학과에서는 이것을 허락해줬다. 1년 뒤에는 다시 휴직하고 생명공학연구원 일에 전념하겠다고 요청해왔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허락하려 했으나,
학과 인사위원회에 참여하는 타 학과의 원로교수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만류했다.
그렇게 자꾸 움직이면, 정착을 하지 못해 실패한다는 조언이었다.
오후에 이 문제를 논의하는 인사위원회를 열다가 결론이 나지 않아,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또 논란을 계속했다.

이광형 교수는 어떻게든 인재를 붙잡고 싶었다.
정문술 회장이 기증할 때, 뛰어난 인재는 성격이 독특하여 대하기 힘드니,
잘 모셔야 한다고 말했던 점이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광형 교수가 양보했다.
학과에서는 휴직을 허용하지 않으니, 학과의 일에 전념하라는 결론을 냈다.
결국 그 교수는 학과를 사직하고 생명공학연구원으로 옮겨갔다.

 

임기 도중에 사퇴한 러플린 총장


러플린 총장의 근무 계약은 2006년 7월까지였다.
스탠포드 대학 휴직기간이 2년이었기에
러플린이 카이스트 총장 임기 4년(2008년 7월까지)을 다 채우려면 스탠포드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래서 계약조건이 2년을 해보고 안되면 돌아가고,
임기를 다 채우고 싶으면 스탠포드를 사임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러플린이 돌아갈 것인지 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시점은 2006년 3월 이었다.

러플린총장은 리더십이 너무나 부족했다.
리더십이란 경험을 통하여 길러지는데, 러플린은 대학애서 학과장을 해본 경험도 없었다.
노벨상을 받았다는 점 외에는 대학 책임자의 조건을 전혀 갖추지 않았다.
자기 뜻을 펴기 위해서는 사람을 잘 다뤄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또한 카이스트는 사립대학이 아니고 국가투자기관이라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한국사람에 대한 우월감이 매우 강하게 깔려있었다.
간간이 한국인을 무시하는 듯한 말을 했다. 러플린은 너희 나라, 너희 학교라고 말하곤 했다.
몇몇 사람이 그 같은 말투를 지적하면 '좋은 지적'이라고 하면서도 고치지 않았다.

국제 컨퍼런스에 가서는 공개장소에서 미개하고 후진적인 카이스트 조직에 대해서 험담을 늘어놓았는데, 그 장소에 있던 한국학자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전해줘서 교수들의 비판을 자초했다.

결국 카이스트 교수협의회는 러플린 총장 연임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보직자들이 사표를 내면서 반대가 커지자 결국 이사회와 정부는 안되겠다 싶었던 것 같다.
러플린은 2년만에 스탠포드대로 돌아가야 했다.

이사회에서 참패를 겪고 나서 러플린 총장과 측근 보직자들은 모여 패인을 분석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패인 중 하나는 정문술 기금을 건드린 것을 꼽았다고 한다.
사실 바이오및뇌공학과가  반대를 많이 했다.

러플린은 한국을 떠날 때 책을 하나 썼는데,
그 책의 제목이 ‘한국인 다음 영웅을 기다려라’이다.

러플린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이 한국의 과학기술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고 했으나,
이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은 결국 자신이 첫 번째 영웅으로 나타났으니
다음 영웅을 기다리라는 암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러플린이 환상을 갖게 된 데에는 한국인들의 책임도 있다.
처음에 하도 극진히 환대를 하니,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왕이 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스탠포드 대학과 카이스트에서 동시에 그러나 별개로 바이오공학과 설립이 논의되고 있었다. 이 시점에 카이스트 자문교수로 있는 MIT 서남표 교수가 왔다.
서남표 자문교수와 함께 바이오 융합학과 설립에 대한 자문회의가 열렸다.
서남표 교수가 물었다. 왜 그런 학과를 만들려는지 설명을 부탁했다.
학과 설립의 목적을 길게 설명하려 하니, 서남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길게 설명하면 정리가 안 된 것이다.
명확한 사람은 한 마디로 정의한다.”

 
“학과를 만들지 말고 연구소를 만들어라.
연구소를 만들면 당신들이 추구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연구진들이 프로젝트에 따라서 들락날락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서남표 교수의 조언은 우리나라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연구소는 교수도 학생도 뽑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소는 학생과 교수의 선발권이 없다.

이 말을 들은 서남표 교수는 규정을 고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온통 반대 속에 숨 죽이고 있는데, 학교규정을 고쳐서 일하라는 말은 너무나도 환상적인 말이었다.

2006년에 서남표 교수는 러플린을 이어 카이스트 총장으로 왔다.
자신이 하지 말라는 것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런 언급은 하지 않았다. 신설학과를 적극 도와주었다. 

서남표 총장은 부임하자 마자 자신이 추천했던 연구소 개념의 사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KI (Kaist Institute)다. 현재 이 연구소 소장은 이상엽 교수가 맡고 있다.
거기는 학과에 상관없이 연구하고 프로젝트 끝나면 다시 학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연구소에서 프로젝트를 마치고 학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것이 익숙하지 않다.
미국식 연구소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한국에서는 한번 자리 잡으면 눌러 앉으려는 경향이 있고,
인심 잃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굳이 내보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총장이 오랫동안 강력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집행해야 성공할 수 있는 제도다.


변화 위해 3번째 외국인 총장 영입


카이스트 교수란 무엇인가?
교수 1명이면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대략 10명 정도 함께 연구팀을 꾸린다.
이들 팀이 연구비는 적게는 4억원에서 100억원 정도 까지 따 온다.
이 중 4분의 1은 학교에 공동비용으로 내고 나머지 금액으로 연구실을 운영하게 된다.

카이스트 교수들은 연구결과를 내고 논문을 쓰고 산학협력 연구를 한다.
여기까지만 한다면 보통 공과대학에서 하는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카이스트는 국가에서 미래를 위하여 특별히 육성하는 이공계 대학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선수라 할 수 있다.

처음 카이스트가 생겼을 때 카이스트에 쏟아지는 기대와 관심은 매우 높았다. 
예전같지는 않다고 해도 지금도 카이스트에 쏟아지는 기대와 관심은 적지 않게 높다.

이 같은 기대를 카이스트 교수들도 알기 때문에
교수들은 외국인 총장 러플린에게 크게 시달리고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개혁과 변화를 줘야 한다는 방향은 공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카이스트는 첫번째 외국인 총장이 실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외국인 총장을 영입했다.
러플린을 이어 들어온 서남표 총장은 얼굴은 한국인이지만,
50년을 미국에서 살아온 미국 국적이고,
서남표를 이어 총장을 맡고 있는 강성모 현 총장 역시
50년을 미국에서 보낸 미국 국적의 한국인이다.

한국의 일반대학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없고,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모든 교수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일반대학은 모두가 평화롭고 근무하기 좋은 교수들의 천국이다.

러플린에게 시달린 경험은 서남표 총장이 처음에는 덕을 봤다.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서남표 총장이 개혁을 할 때 많은 구성원들이 힘을 실어줬다.
미국에서 많은 행정 경험을 가진 서남표 총장은 러플린과는 비교할 수 없이 노련했다.
그러나 러플린 총장에게서 배운 것은 저러면 안 되는구나 하는 반면교사이다.
아무리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라고 해도,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

결과로 서남표 총장이 들어와서 개혁을 할 때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종신교수직(테뉴어) 심사를 강화해서 심사에 떨어지면
재임용이 안 되는 개혁을 할 때도 받아들여졌다.
이 제도가 생기고 나서 매년 2,3명씩 대략 10여명의 젊은 교수들이
재임용을 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반대로 서남표 총장이 있을 때 교수인력은 400명에서 600명수준으로 대폭 늘었다.
미국 MIT대학 교수가 1000명 수준이므로,
카이스트의 400명 수준 가지고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교수 인원을 늘릴 때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서남표 총장은 좋은 사람 뽑으면 자기 월급은 벌어온다고 말하며 밀어붙였다.

그가 있을 때 교수인력을 무려 50%나 늘렸지만, 카이스트 는 부도나지 않았고 수입은 늘었다. 
서남표 총장은 4년의 임기를 마치고 연임하였으나,
교수들과 소통문제로 인하여 연임된 기간 중에 중도 하차하였다.

2007년 서남표 총장이 들어오면서 학과 이름이 바뀌었다.
초기에 붙은 바이오시스템학과라는 명칭은 농과대학교에서 많이 붙이곤 했다.
외국 사람에게 바이오시스템학과라고 하면 농대로 오해를 받았다.
그래서 이름을 개칭하는 문제가 논의됐다.

카이스트와 비슷한 시기에 MIT 스탠포드에 바이오 융합학과가 만들어졌다.
그 사람들이 신설 학과 이름을 바이오공학과라 정했다.
미국 명문대가 그렇게 부르자, IT+BT 융합학과 명칭으로 정리되어 갔다.
카이스트 내에서는 이 이름에 대하여 반대가 많았다. 이미 생물공정을 연구하는 분야를 영어로 바이오공학이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서남표 총장은 뇌 인지과학을 연구하는 학과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미래에 과학자들이 할 일을 찾아보면 뇌과학분야가 중요한 분야로 떠올랐다.
그래서 뇌인지과학과 설립위원회까지 만들면서 바이오시스템학과 명칭 변경과 함께
뇌인지과학분야 연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함께 논의됐다. 

결국 바이오시스템학과에서 뇌 인지과학 연구도 함께 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바이오 및 뇌공학과로 변경됐다.

IT, BT와 뇌공학 연구는 이상적인 결합으로 뭉쳐진 것이다.
바이오는 인체에 관한 것이므로 이를 신경 공학적으로 융합하자는 것이다.
신경은 인체 내의 통신을 담당하기 때문에 인체를 연구할 때 반드시 함께 연구해야 한다.

신경은 신체 부위 사이를 연결해 준다. 즉 신경은 신체 사이의 네트워크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것을 사물 인터넷이라 부른다. 이제 기계 사이의 연결은 필수가 되고 있다.

네트워크가 되지 않는 기계는 바보 취급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연결되지 않는 인체 연구는 반쪽 짜리가 될 것이다.
바이오센서를 만들 때도 결국은 신경과 연결되어야 고부가가치를 발휘할 것이고,
인공 신체(손, 발 등)도 신경과 연결되어야 뇌의 의지대로 움직일 것이다.

이렇게 하여 몸에 부착하여 자동으로 측정하는 바이오센서를 만들고,
치매에 걸려 수족을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움직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정문술 회장도 초기부터 뇌를 많이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인지과학 프로그램을 별도로 만들어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도 아닌데 미리 보고 얘기하는게 놀라웠다.

그렇지만 뇌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우수한 교수를 선발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해 본 사람도 적고 새 분야이다 보니 업적이 적었다.
교수선발은 교수에게 일임하는데 학과에서 다수결을 통해 선발을 한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스스로 개혁하고 변화하는 것이 어렵다.
대과 없이 하던 대로 하면 편하니까…
개혁과 변화는 비전과 열정을 가진 소수가 이끌어간다.
가끔은 비전을 가진 사람이 조직을 이끌도록 해줘야 한다.

미국 대학이 일류대학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것이 잘 나타난다.
비전을 가진 총장이 20년 이상을 하며 도약한다.
장기 집권하니 당연히 독재 요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나가니 세계 일류에 설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이 세계일류가 못 되는 첫 번째 이유는 교수가 노력하지 않고 안주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은 최고 세계 50위권에 머물고 있다.
아마 올림픽 경기에 나가서 50등하고 오면, 국민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한국 대학의 세계적인 위상에 대하여는 질타하는 사람도 없다.
인간의 본능은 변화를 싫어한다. 당연히 현실안주하기 쉽다.


서울대가 변해야 한국대학 변한다


한국의 대학 사회는 서울대가 이끌어 간다. 서울대는 천하태평이다.
한국 내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이 스스로 변하기는 어렵다. 경쟁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서울대와 모든 분야에서 경쟁하는 대학이 없다.
경쟁자가 없으니, 외부 자극이 없다. 
이공계만 카이스트가 있어서 경쟁하고 자극을 받지만,
다른 분야는 서울대 입장에서 보면 무사태평이다.

한국사회에서 카이스트가 직접 대학 사회를 바꾸기는 어렵다.
카이스트의 역할은 서울대를 자극하여 변하게 하는 것이다.
서울대를 변화시키는데 성공하면, 한국 대학을 바꿀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카이스트도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당연히 서울대에 전해지는 자극이 없을 것이고, 전국 모든 대학도 편안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카이스트에 외국인 총장을 데려와 개혁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맞는 전략이다.

한국 대학이 세계 일류가 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정부가 만들어 주었다.
제도가 세계 일류가 될 수 없는 여건을 만들었다.

세계 일류가 되려면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 몇 개 있다.

(1) 총장의 임기를 5+5로 해야 한다.

5년 해보고 하자가 없으면 5년을 더하게 해야 한다.
총장 임기가 4년마다 바뀌고 연임 안되고 그러면 10~20년을 필요로 하는 일을 성취할 수 없다.
미국 MIT대학의 경우를 봐도 150여년 역사에서 총장이 10여명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바드 대학도 20년동안 총장을 한 인물도 여럿있다.

만약 이건희씨가 계속 삼성 회장을 맡지 않고, 삼성 회장이 4년마다 바뀐다면,
지금과 같은 삼성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중국 대학 총장도 5년을 하다가 잘 못 없으면 연임을 해서 10년을 한다.

(2) 자율권을 주어야 한다.

교육부 담당사무관 과장 국장이 교육정책을 마련해서 시행하는데
국과장들 역시 몇 년 되면 자리가 바뀌고 해서 전문성이 없다.
그런데도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면 대학들은 꼼짝 못한다.
대학 운영을 제 멋대로 하는 사례가 있어서 이 같은 규제가 나왔을 테지만,
최소한 세계무대에 나가서 싸워야 하는 대학은 규제를 풀어야 한다.

(3) 국제 경기에 나가 싸울 지원이 필요하다.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최소한 필요한 인력과 예산이 있다.
예를 들어서 돈이 없다고 하여, 축구팀의 인력을 줄여서 출전하면 승리할 수 없다.
세계와 경쟁하는 대학은 세계 수준의 지원과 인력이 있어야 싸울 수 있다.
미국 MIT의 교수 학생 비율이 1:7인데 비하여, 카이스트는 1: 17정도다.
이런 숫자만 봐도 MIT를 따라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최초로 민간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유치한 이광형 교수는
“기부금 유치는 혁명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혁명 전과 혁명 후의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는 점에서 기부금 유치도 비슷하다는 뜻이다.

프랑스혁명은 인류사의 대혁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혁명과정을 보면 시민혁명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간의 진면목을 직시하게 된다.
1789년에 시작된 혁명은 왕권을 대폭 약화시켜 입헌군주제로 자리 잡는 듯 했다. 
온건파인 당통을 처형하고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가 집권하며
왕을 없애고 공화제로 바꾼다.

그러나 다시 얼마가지 않아 로베스피에르도 처형되고 혁명의 열매를 먹기 위한 혈투는 계속 된다.

이러한 인간사는 러시아 혁명에서도 되풀이 된다.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혁명은 절대군주 차르를 몰아내고 케렌스키 임시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머지않아 케렌스키는 레닌으로부터 축출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의 김일성이 권력을 구축하는 과정과
한국에서 5.16후의 권력 다툼에서도 나타난다.


혁명 전야 같은 외부 기금 유치


이광형 교수는 카이스트에 근무하면서 3차례에 걸쳐서 총 615억원의 기금을 유치했다.
큰 기금을 유치하면서 ‘왕따’가 되어본 그는 대학에서 기금 유치는 혁명과 같다고 말한다.



초기에 기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찾으면, 설득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합심 노력한다.
그리고 기금을 유치해오기 위해 앞장 선 사람에 대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기부자가 서류에 사인하는 순간 상황은 변한다.
이제 새로운 전선이 형성된다. 
기부금을 어떻게 쓰느냐, 누가 쓰느냐, 왜 이리 돈 사용에 까다롭나,
누가 이런 조건을 붙여 왔느냐, 등 문제가 대두된다.

기부금은 여러 가지 형태로 들어온다.
아무런 조건 없이 학교가 알아서 쓰라고 주는 돈도 있다.
그러나 이런 예는 매우 드물다.
카이스트에 50억 이상 들어온 기부금에 조건이 없는 돈이 거의 없다.

대부분 기부자는 뜻하는 목표가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사용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그 목적 수행의 책임을 진 사람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갈등이 생기게 된다.

이 교수는 처음에는 이것이 무척 마음 아팠지만, 혁명의 역사를 공부하고 나서는 마음을 편히 먹었다. 과실이 생기면 다투는 특성은 DNA 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다. 

[사진 및 동영상 출처=카이스트,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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