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신이 보낸 사람' 포스터ⓒ네이버 이미지
    ▲ 영화 '신이 보낸 사람' 포스터ⓒ네이버 이미지



먼저 이 글을 읽으실 분들께 사과말씀을 드리고 싶다. 
영화를 본지 3일이 지났건만 아직 영화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원고 마감시간에 맞춰 키보드 앞에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필자에겐 지금 이 시간이 지옥이다. 

결국 필자는 그냥 길라잡이 형식으로서의 평을 쓸수 밖에 없었다. 

관객 분들이 스스로 판단하길 바라는 
매우 무책임한 글을 전개하게 된 것에
읽으실 많은 분들께 미리 사과를 드린다.

신이 보낸 사람은 좋은 영화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간단하게 말씀 드리면, 
필자가 만약 크리스천이었다면
이 영화에 분명 열광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운명은 크리스천이 아닌 대중적 시선을 기준으로 삼는 
현장 영화인일 뿐이고, 그것도 지독히 밑바닥을 긁어내어 만드는 개털 영화인인 관계로
이 영화에 대한 평가에 대해 묻지마 식의 관대함을 가질 수가 없다.

왜? 이 영화는 종교영화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색체가 짙은 영화가 아니라 분명 이 영화는 종교영화다.
그 소재가 <북한인권>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종교영화다.
이걸 인정하지 않고는 일반 대중들에게 이 영화를 감히 보시라고 권할 수 없다. 
세상엔 다양한 종교가 있고, 관객의 반 이상은 영화 속 종교와는 무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영화로서 과연 이 영화는 좋은 영화인가? 라는 질문에도 
필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는 또한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북한인권의 참혹한 잔상들이 
분명 뇌리 깊숙이 각인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종교적 색체와 북한인권의 조합을 적절히 배치하고
대중적으로 풀어내려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고,
그런 이유로 필자는 이 영화가 <좋은 영화>보다는 <착한 영화>라는 데 동의한다.

특히나 기존의 기독교적인, 너무도 기독교적인 영화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날 것 그대로의 북한인권 영화들 사이에서 그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시선으로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나들며 대중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여타 다른 북한인권이나 
종교영화처럼 관객에게 가르치거나
의도적으로 감정을 격화시키려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어떠한 사견이나 정치적 의도를 철저히 버린 듯한 
이 감독의 태도에 필자는 박수를 보낸다.

문제는 이 감독의 스탠스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데에 대한 답이 
필자에겐 있지 않다는 것이 내가 이 영화를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북한인권을 다룬 영화로는 
가장 대중적인 흥행을 할 것이란 의견에는 동의하게 된다.

거기에는 감독이 <좋은 영화>를 만들려는 것이 아닌 
<착한 영화>를 만들려는 노력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관객은 분명 그런 감독의 의도를 충분히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인권의 대표적 영화로 각인되던 [크로싱]의 악몽을
이제는 이 영화로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첫 번째 미덕이 되겠다.


신이 보낸 사람은 약속하지 않았다.


이 영화의 가장 크면서 매력적인 장면은 오프닝에서 보여지는 미쟝센이다.
하얀 설원 위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한 남자가 나타나고 그 평화롭게 보이던 곳이
총살로 이어지면서 끔찍한 공개처형장으로 변하는 오프닝 장면은
근래 필자가 본 한국영화 중에서 최고의 오프닝 장면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가 전개되면 의외로 화면은 덤덤해진다.
감독은 철저하게 자신의 감정을 배제시킨 채
이 영화의 인물들에 매우 사실적인 모습만을 씌워 놓는다.

듬성듬성 놓인 듯한 캐릭터들의 배치는
그저 답답하고 소통이 불가능한 주민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으며,
튀는듯한 이야기 전개는 매끄럽지 못하다기보다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게 되는 북한 주민들의 붕괴된 의식을 보여주는 듯 하다.

마지막에 죽은 시체들 사이에서 일어나 살아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막연한 희망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덤덤하다.
마치 가장 소프트한 김기덕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영화는 투박한 건조함을 제공한다.
그리고, 감독은 뒤로 빠지며 그 앞에 관객을 앉혀 놓는다.
당신이 보고 판단하시라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섬]의 시사회장에서 장항선이 대변을 보는 장면을 보면서
경악하는 관객들을 바라보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던
김기덕 감독의 얼굴이 생각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영화는 관객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영화의 첫 번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전혀 친절함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이 이야기는 사실입니다>라는 그만의 고집을 피울 뿐인데,
그 고집이 미워 보이질 않는다.

거기에는 분명 관객들이 스스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기존 북한인권을 다룬 영화들이 트라우마에 빠져
지독한 현실감만을 제공해주며
감정적으로 작품을 망치는 것을 철저히 이해해 감독은 그걸 넘어서려는 노력을 했고,
그 시도는 성공했다.

<끔찍한 현실>이 아니라 <사실>을 보여줌으로 해서
관객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첫 통로를 만들었고,
관객은 종교와 정치색을 떠나 그 사실을 인지하고 같은 아픔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이 보낸 사람은 약속하지 않았다.
이 영화를 통해 교회를 알리거나, 북한인권을 알려 보겠다는 뻔한 약속을 말이다.

다행이다.
그런 약속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일반 대중들은 이 영화에 편하게 다가올 수 있었고,
북한인권 영화로는 처음으로 와이드 릴리즈 상영이 되며
개봉 4일만에 10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눈물을 흘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영화는 종교영화지만 기독교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가 종교영화라고 못박은 필자의 첫 의견 때문에 기독교에 알러지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이 영화를 보지 않겠다는 생각에는 감히 그건 아니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필자도 기독교를 떠나 아예 종교 자체에 대한 거부론자이지만,
이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끊임없는 종교적 색체는 인간이 누구나 제시할 수 있는 의문점들을
제시하며 종교의 필요성에 국한되어 이야기를 펼치고 있으니 말이다.

기독교 교리를 알리기 보다는 종교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시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근본적인 이유로 북한의 인권유린을 대비시킨다.
그럼으로 인해서 기독교가 주제가 되었을 뿐
어떤 종교라도 기본적으로 인간이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역할에 대해 던져놓을 뿐이다.
북한주민이 이렇게 되어가고 있을 때 과연 종교가 할 일은 무엇인가? 라고 말이다.
그건 주인공인 [주철호(김인권)]가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아내의 죽음 이후 스스로
<메시아>가 되려는 움직임을 가지는 모습과 그런 자신의 모습을 견디기 위해
알 수 없는 약을 먹어대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기도를 하는 대신 약을 먹는다.
우리가 몸이 너무 아플 때 어떤 약이라도 일단 보이면 먹고 싶은 것과 같은 모습이다.
그럼으로 해서 감독은 어떤 종교라도 좋으니 이 문제를 말하자고 한다.
감독은 종교와 북한인권을 별개로 놓으면서도 동질화시키는
매우 훌륭한 방식을 통해 기존 특정영화들이 범했던 실수를 벗어났다.

종교 거부론자인 필자가 이 영화를 보면서 최소한 북한주민들에게
종교는 큰 위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기독교가 아니라
어떤 종교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감독은 일단 그거면 된다고 흔쾌히 동의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영화를 보실 때는 기독교 관련 영화가 아닌 북한인권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을 막아주는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보게 된다면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라 본다.

또한, 종교의 자유가 말살 당한 북한의 모습을 통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종교에 대한 선택적 권리도 자연스레 전달한다.

감독은 분명 영악하다. 
보여지는 모습은 그러하지만 분명
이 영화는 기독교 교리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선택도 분명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기독교라면 알러지 반응을 일단 일으키고 보는 관객이 아니라면
오히려 이 영화는 인간에게 <종교>의 의미에 대해 던지는 상당히 무덤덤한 질문이 될 것이다.


신이 보낸 사람이 하지 않은 또 하나의 약속!


신이 보낸 사람이 개봉할 즈음에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했었다.
그 영화는 자신들의 영화보다는 극장이 자신들의 영화를 더 많이 걸어주지 않았다면
홍보물이 아닌 협박성 메일을 돌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국회의원까지 끌어들이며 <제2의 변호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노골적인 정치영화임을 스스로 인정하며 나타났다.

그리고, 필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기독교와 북한인권을 앞세운
<신이 보낸 사람>은 그 영화와 정치적으로 전혀 다른 위치에 존재한 영화가 되고
그 대립구도가 서로의 영화 흥행에 영향을 주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 보낸 사람>은
전혀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색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그리고는 철저히 영화적인 홍보만을 앞세워 대중들에게 파고 들었다.
기존 북한인권을 다룬 영화들이 끔찍하게 밀어붙였던 되지도 않을 감성팔이 전략이 아닌
철저하게 영화적인 행보만을 취하면서 일반 관객들에게 오히려 <또 하나의 약속>보다
더 인지도를 쌓아가면서 북한인권 관련 영화 사상 초유의 개봉관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 영화 이후, 분명 한국 영화계는 미세하나마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분명히 다른 성향의 위치에 선 두 영화가 있었지만
정치적인 시선을 가지고 국민들을 희롱했던 영화가 패하고,
오롯이 영화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가 이기게 된다면
영화계부터 시작해 관객들, 좀 더 거창하게 나아가면 문화산업에 문외한이었던
우파진영의 새로운 문화산업 시장을 개척할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필자는 솔직히 위의 이유로 이 영화가 제발 성공하길 바랬다.

정치적인 힘과 떼거리로 뭉쳐 영화가 관객에 의해 판단되어지지 않는 것이 화가 났고,
이 대결(?)을 통해 관객들의 현명한 선택으로 영화는 관객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 모든 것은 관객의 판단으로 결정된다는 겁나게 멋들어진 결과를 만들어주길 바랬다.

또한, 자기 아집에 휩싸여 서세원 같은 부류에게
이승만 대통령의 관뚜껑을 열게 하는 만행을 일삼는 멍청한 우파진영의 문화인식이
이 영화를 통해 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랬다.

<또 하나의 약속>이 연예인들을 대동하고 정치인들을 대동해 단체관람을 시키고,
100회나 많이 상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등한 관객 유입을 보이는 걸 보면서
필자는 이제 관객은 옳다라는 필자의 생각이 맞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창작자들이 새로운 소재로서의 북한인권을 다루게 될 것이란
확신마저 들게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우파진영의 변화뿐이다.

필자같이 현장에서 죽을 각오로 뛰고 있는 영화인들 힘 빠지게 만드는
<서세원, 이승만 대통령 영화화!> 따위의 멍청한 짓이 아니라
이 영화를 본 받아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고 지들끼리만이 아닌
대중들을 향한 영화를 만들길 바란다.

그 따위로 하면서 <변호인>과 <노빠>들 욕할 것 못 된다.
<신이 보낸 사람>은 몰랐을 것이다.
이 영화가 얼마나 영화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그걸 자랑스럽게 해내고 있는지 말이다.
신이 보낸 사람은 약속하지 않았지만 분명 대한민국의 관객들과 영화인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공했고, 
우파영화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물론 그렇다고 하기엔 많은 부분이 부족하지만……)
이런 의미로서도 필자는 나중에 극장에서 영화가 내려지고
최종스코어에서 <또 하나의 약속>을 가뿐히 제치고 올라가 있길 간절히 기원한다.



  • ▲ 영화감독 최공재ⓒ뉴데일리
    ▲ 영화감독 최공재ⓒ뉴데일리



    뱀발: 
    이 영화를 관람할 때의 매너는……?
    영화의 특성상 이 영화는 특정종교의 단체관람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필자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분들이 단체관람을 하면서 거기에 속해 있을지도 모를 
    다른 관객들의 관람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영화관람 하던 도중 기도를 올리시는 분을 봤다.
    분명 그 기도는 처절하고 애탈 것임을 알지만 필자를 포함해 일반 관객들은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다.
    그런 행위는 오히려 영화를 보는 것도 방해하면서,
    종교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당연히 극장에서 매너 없는 인간들로 치부될 것이다.
    기도를 하시려거든 조용히 하시라.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진심을 다한 눈물 한 방울을 필자 같은 관객들에게 보여달라.
    그 눈물 한 방울이 어떠한 종교의 교리나 영화보다도 더 감동적일 것이다.
    부탁 드린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