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전략의 한-일 모순을 넘어서아베, 독도와 센카쿠를 포기하라!
  • 평화 다짐하고 야스쿠니(靖国)에 머리 숙인 아베(安倍)여,
    독도-센카쿠 포기가 지름길이다

    허문도 /전통일부 장관 /전 조선일보 주일특파원

    아베 신조 수상이 주변의 만류도 뿌리치고 야스쿠니 신사 문턱을 넘었다.
    그래놓고 던진 말이 더욱 부아를 끓게 한다. 
    “한국, 중국인 기분에 상처를 줄 마음은 전혀 없다”고.

    한 재일인사가 이는 [상대를 바보 취급하는 언사]라 했다.
    아베가 작심한 것을 두고서 일본TV에서 한 대학교수는,
    요새 와서 더욱 번져나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의 [애국] 기분에 고무된 것 같다고 했다.

    도쿄 거리에 등장한지 몇 해나 되는,
    [헤이트 스피치]
    *
    는 다름아닌 애국 기분의 표출로 확인되고 있다.
       * 떼지어 백주대로에서 라우드 스피커로 끓어붓는 증오의 욕지거리, 일본식 영어.

    그동안 아베 수상이 도쿄 거리에 [헤이트 스피치]를 두고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자 한 것은 경우가 없는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한일 양국 정상의 만남이,
    미국을 축으로 한 삼각동맹의 우의와 계산은 두고라도,
    그동안 발전되어온 긴밀했던 양국 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서로가 선린의 도리를 펼쳐가자는 다짐의 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로 깡그리 사라졌다.


  • ▲ 허문도 전 통일부 장관 (c)뉴데일리 정상윤
    ▲ 허문도 전 통일부 장관 (c)뉴데일리 정상윤



편집자 주: 이하는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 전에 썼던 글이다.

지금 한국-일본 두 나라 사이가 많아 안좋다고 걱정들인데,
양국관계니까 그 이유는 피장파장으로 서로가 들이 댈 수는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하나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토쿄에는 [한국인 죽여라]라는 [헤이트 스피치]가 있지만,
한국의 서울에는 그 맞장으로 [일본인 죽여라]는 백주의 외침은 없다는 사실이다.

사세가 이와 같은데,
만남을 위한 마당은 닦지 않고,
만나자고 말만 앞세워 상대를 몰아 부친다면,
거기에 프로파간다는 있을지 몰라도,
정상회담에 전제되어야 할 최소한도의 성실성과 진지성은 없는 것이다.

일본이 2020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아베 수상까지 브라질 현지에 갔던 여름 두달동안,
누가 어떤 손을 썼는지 알 수 없으나,
동경거리에서 [헤이트 스피치]는 사라졌던 것이다.

헤이트 스피치란?

사람이 속한 민족이나 종교를 두고서,
그 속성을 모멸하고 차별의식을 부채질하여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을 [헤이트 스피치]라 하고 있다.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의 대상은 절대적으로 한국인이다.

[헤이트 스피치] 전문인 <재특회>(在特會-재일특권을 허용않는 시민의 모임)는
아베 수상 1차 집권 다음해인 2007년에 결성되었고,
주로 인터넷 등으로 회원이 1만명 이상으로 늘어나
지금은 일본 최대의 [시민 극우단체]가 되었다 한다.

이들의 길바닥의 외침이 몰상식하고 저열한 품격이라고,
일본의 일반 매스 메디아들은,
무시하면 그만이라며 한동안 외면했다.
그러다가 지난봄 일반시민 수백명이 [헤이트 스피치] 반대시위를 하게 되자,
더 이상 무시 할수 없게 된 것 같다.

지난 5월 공영방송 NHK가 [헤이트 스피치] 특집을 하였다.
이들은,
“재일 사회를 공격하거나, 한국인에게 욕을 퍼붓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우한 인생을 채워주고 있다”
는 것이다.
방송은,
차별표현을 사회중심에서 밀려난 자들의 스트레스의 배출 행위 정도로
파악했다.

그러나 일본 사회내의 관찰자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헤이트 스피치]는,
지금 일본 국민들 속에 있는 어떤 종류의 [기분]을 비춰내는 것으로서,
대학에서도 <재특회>에 공감하는 학생은 쉽게 만나진다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한 국제 정치학자는
일본이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역사의 빚과 무관하지 않다고 꿰뚫어 보았다.
[과거의 역사와 마주 대하기를 게을리한 결과로서,
아직까지도 전전(戰前)으로부터의 (남아있는) 차별의식이,
2000년대 후반의 일한관계의 악화와 만나],
[헤이트 스피치]로 범람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역사]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는 유관하다는 것이다.

동북아의 질서재편기를 맞아
한일관계의 더한층의 강화를 위해서는,
한국측의 역사인식-역사청산 문제제기가 얼마나 상황의 문맥에 합당한 것인지를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는 반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하루 이틀이 아닌 한일 두나라 사이의 문제는,
그 해법을 역사속에서 구하려 들지 않는다면,
문제풀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베 수상은 2006년 1차집권에 임해 스스로의 정치노선과 자세를 밝히는
<美しい国へ>(‘아름다운 나라로’ 文春新書, 2006)를 국민앞에 내 놓았다.

이속에서 아베는 백여년 전인 1905년 러-일전쟁의 강화조약 때의
히비야 방화 폭동사건에 가담했던 군중의 행동을 변호,
긍정하는 자세를 취해 보이고 있다.

일본 국민들이,
러시아와의 교섭에서 정부가 배상금을 한푼도 못 받는다고
궁성 앞의 히비야 공원에서 반대 집회를 열고는 폭도화 하여,
신문사와 기독교회, 경찰서 등을 공격하고,
토쿄시내 전파출소의 7할을 불태워 버린 사건이다.

다음날 계엄령을 펴야 했고, 사망 11인에 부상자는 500인에 달했다.
이 사건은 근대사에서 일본 국민들이 처음으로 국수주의적인 주제로,
즉 국가에고(ego)를 두고서 국민이 뭉치고 열광한 사례로 꼽히고 있다.
1931년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을 거쳐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나기 까지,
일본 국민들과 신문은 모두 하나되어 열열하게 전쟁을 밀었다.
일제의 군국주의는 군벌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같은 역사의 시발점에 히비야 폭동의 국민대중은 있었던 것이다.

아베수상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러.일전쟁의 강화(講和)에 반대하여 폭도화한)
국민의 반응을,

아무리 봐도 바보스럽다고 한칼에 베어버려서 좋다는 말인가.
민중 쪽에서 본다면,
당시 나라의 실태가 알려지지 않고 있었으므로,
분개해서 당연했다.”


아베가,
역사속에서 정치에네르기를 끌어내는 수법은 주목할 만하다.
그가 일본을 어디로 끌고가고자 하는지를 동시에 알려주고 있다.

앞에서 보았던 [헤이트 스피치] 전문의 <재특회>(在特會)를
몇 년이고 따라다니며 르포한 것이 책으로 나왔다.
安田浩一 <넷트와 愛國>, 講談社, 2012.
日本의 네티즌들의 평가가 높다.

귀기울여야 할 몇가지 지적이 있다.

첫째로는,
[헤이트 스피치]
참가자들이 우익 전력이 있는 것도 아닌
극히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라는 것,
둘째로,
<재특회>는,
연전에 한류(韓流)드라마 방영이 유달리 많아서 싫다고 벌어졌던
[반 후지TV 데모]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것,
셋째로,
그동안 일본에 밀려든 한류를
어느쪽이냐 하면 재미보다는 싫고 배아픈 대상으로 여기는 등으로
[내셔날한 (애국적인) 기분]이
[헤이트 스피치]
집단의 주조라는 것 등이다.

수상 아베가 <美しい国へ>에서 애써 강조했던 내셔날리즘은,
[젊은 보통사람들]을 건드리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히비야 폭동의 국수주의적 대중에 대한 긍정포즈가 일으킨 반향의 하나는
오늘날 토쿄와 오사카의 한국인 밀집지의 [헤이트 스피치]에서
울려나고 있다고 봐서 틀리지 않을 것이다.

국가전략의 한/일 모순

작년만해도 대일무역적자는 256억달러에 달했다.
그 전 세 해는 평균 300억달러였다.

이 같은 일본의 경제우세에,
우리는 오래 반일(反日)을 갖고서도 적응해 살아왔다.
일본이 은연중에 주도하여 만들어진 관계틀과 이해논리에 우리는 익숙해 있다.
동아시아 규모로 전환기가 와서 양국의 상호 의존 구조가 심화되어도,
그 같은 변화에 의식은 쉬 따라가지 못한다.

의식의 관계틀이 어느 정도로 일본쪽으로 경사되었느냐 하면,
공식 왕래가 뜸해지니까 전환기의 발상 전환에는 눈이 가지않고,
알만한 사람들도 오히려
우리 정부보고 감정적 아니냐고 불평을 쏟아놓는 지경이다.

의식의 독립은 어렵다.
역사 청산은 한국인들 한테도 쉽지 않다.

훌쩍 시좌(視座)를 바꿔본다.
한-일이 아닌 제3의 눈이 오늘의 동북아에
한-미-중(中)-일(日) 이 4나라가 얽혀 있는 모양을
요령 좋게 스케치 한 것이 있다.
<뉴욕타임즈> 토쿄지국장 마틴 퍼클러가,
일본의 한 잡지의 좌담에서 한 얘기이다.

“흥미있는 것은,
일본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은 중국일 터입니다.

그러나 [헤이트 스피치]는 주로 한국을 향하고 있어요.
한편, 중국이 세력을 확대함에 있어서
최대의 장애는 아메리카 일 터이지만,

오로지 일본을 배외적 데모나 군사적 긴장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이처럼 뒤틀린 구조로 되어 있어요.”

한일관계가 좋지 않지만,
토쿄에서 보기에
한국 쪽 대중의 감정이 특별히 어떻다고 말이 없는 것은
하나의 주목거리다.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G2가 되면서,
질서재편기를 맞이한 동북아에서,
문제되는 것은 미-중 양국관계의 질이다.
중국이 말하는 신형 대국관계(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면서도 서로 협력하는 관계)는
정착될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미국이
동맹인 일본편에 서서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무릅 쓸것인가.
이 문제를 두고서 한국과 일본은 모순관계에 있다.

2011년 김정일의 사망 이후 섭정같던 장성택이 갑자기 사라지는 등으로
민족통일을 역사적 가시권에 두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중국의 화해협력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전략적 요청사항이라 할 것이다.
반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섬에서
중국과 군사적 긴장을 높여가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동맹 미국이
중국과 충돌을 각오한 대결을 마다하지 말기를 절망(切望)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중관계를 두고서
한국과 일본의 국가전략은 모순관계에 있다 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한일관계가 껄끄러운 진정한 이유가 아닐 것인가.
전환기에는 발상을 바꿔야지
만나자고 보챈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질서 재편기를 맞아,
동아시아 새시대에도 평화주의를 버리지 않겠다면
일본 앞에 세가지의 길이 있어 보인다.

첫째는,
오랜 숙제인 한일강제합방의 원천무효를 선언하여
한국과의 역사청산을 완결짓고,
프랑스-독일 합동군처럼,
한-일 합동군의 기초를 놓아 동맹 미국과 함께
동아시아 평화의 지주 내지 세계평화의 지주역할을 맡는 일이다.

둘째는,
독일이
2차대전후에 전국토의 1/4이나 되는 오델-나이쎄 이동 지역을 포기하고,
유럽 국제사회에 복귀하여,
유럽 공동체 형성에 앞장 섰던 것을 참고 할 수 없을 것인가.
아시아 침략전쟁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유물이자 제국주의의 유산인
센카쿠열도와 독도의 포기를
일본 스스로 세계앞에 선언하고,
한국-중국과 함께 미국과 더불어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 형성을 주도할 자격과 영광을 차지하고,
전쟁없는 세계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것이다.

셋째로는,
이도 저도 엄두를 내기 어렵다면,
처세를 시대에 맞출 일이다.
제2차세계 대전이 끝나고서,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나라중에서
최초로 민주화와 선진경제를 달성한
미들 파워 한국의 coming of age(성년화)를 직시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성년기의 선린관계에 상응한 국민의식을 계발하는 일이다.
한류(韓流)를 혐한(嫌韓)으로 받는다 함은,
일본이
70년 가까이 지난 오늘도
스스로의 의식을 스스로가 만든 식민지의 굴레에서
해방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노대국(老大國) 일본이
한국의 coming of age에 적응할 때 까지는
정경분리의 원칙이 양국관계를 건강하게 지켜 줄 것 같기도 하다.
(2013.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