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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새누리가 각오 해야할 3가지 이야기

입력 2013-12-26 14:07 | 수정 2013-12-28 13:09
정부-여당은
철도노조 사태 해결에

세 가지 고사(故事)를 참고해야 한다

李東馥   
 
철도노조 파업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경찰이 전개한 체포 작전에서 도피하여
법원의 체포영장 집행을 일시 모면하는 데 성공한
철도노조 집행부 일부가 서울 안국동의 조계사 경내로 잠입하여 그곳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의 공안 당국은 이들의 체포 강행을 위하여
이 나라에서 성역화(聖域化)되어 공권력의 치외법권지대로 변해 있는
불교 사원에 강제 진입을 할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고민을 해결하는 방안을 결심하기에 앞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다음과 같은 고사(故事)들을 참고할 것을 권고하고 싶다.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알제리아 주둔 외인부대 무장 반란 진압>

전임 정부인 망데스 프랑스 정권으로부터 샤를 드골 정권이 계승한 알제리아 독립 허용 정책에
반대하는 알제리아 프랑스 교민들과 일부 외인부대원들이 1960년1월24일 무장반란을 일으켜
알지에 시 안팎에 바리케이드를 쌓아 올리고 프랑스 군과 군사적 대치를 벌이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드골 정부는 프랑스 본토로부터 증파된 프랑스 군으로
현지 진압 병력을 강화하여 알지에 시 일원을 넓게 포위했지만
직접적인 군사작전은 전개함이 없이 알지에 시민을 위한 생필품 보급로는 열어 둔 가운데
매일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가면서 반란군의 항복을 권유하는 선무공작을 집요하게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총격전으로 20명의 시위자들이 목숨을 잃고 8명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지만 무장반란 세력은 2월1일 무기를 버리고 프랑스 정부군에 항복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로써 이 무장반란은 발생한지 1주일 만에 평화적으로 진압되었다.

<로날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항공관제사 파업 진압>

1981년8월3일 미국연방항공국(FAA)과의 단체교섭이 결렬되자
미국 전역의 13,000여명의 항공관제사들이 일제히 파업에 돌입하여
 여름 성수기(盛需期)인 그날 하루 동안 전국적으로 7천여 개의 항공편이 취소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들 항공관제사들이 소속해 있던 ‘미국직업항공관제사조합(PATCO)’은
항공관제사들이 이미 수령하고 있는 최저 20,462달러, 최고 49,229달러의 연봉을 1만달러씩 인상하고, “1주, 5일, 40시간”의 근로시간을 “1주, 4일, 32시간”으로 줄일 것을 요구했었다.
 이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은 7억7천만달러에 달했다.
 PATCO는 이에 대해 FAA가 제시한 총액 4천만달러에 해당하는 대안을 거부하고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취임한 지 7개월이 경과한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은
즉각 이들 항공관제사들의 파업을 ‘불법 파업’으로 단정하고
“48시간 안에 직장에 복귀하지 않는 항공관제사들은 즉각 파면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연방법원도 이들 항공관제사들의 파업이 지속되는 동안
 매일 1백만달러의 벌금을 PATCO에 부과하는 판결을 언도함으로써
레이건 대통령의 강경책을 뒷받침했다.
 [미국 의회는 1955년 이와 같은 파업에 대해서는 벌금이나 아니면 1년 징역형을 언도하는 법을 제정했었고 연방법원은 1971년 이 법에 대해 합헌(合憲) 판정을 했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그가 제시한 48시간이 경과한 8월5일까지
직장에 복귀하지 않은 11,000명 이상의 항공관제사들을 일시에 파면 조치했다.

항공관제사들의 이 같은 대량 해고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참가했던 관제사들이 위협했던 것처럼 항공관제 업무는 마비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FAA가 취한 긴급 대책이 주효(奏效)했다.
3천여명의 항공관제감독관들이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2천여명의 항공관제사들 및 9백명의 공군관제사들과 함께 공항의 관제탑을 맡아서 관제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항의 항공기 발착은 80% 이상 정상화되었다.
항공화물 운송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 같은 조치를 시행하면서 레이건 대통령은 파업에 참가하여 해고된 항공관제사들에 대해서는 영원히 재취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고 1981년10월 연방노동관계조정당국은 PATCO에 대한 승인을 취소했다. 

<댓처 영국 수상의 탄광노동자 파업 진압>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은 노조 지도부가 파업행위를 통하여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가경제를 마비시키고 있다고 보고 이들 노조들의 권한을 약화시키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일부 노조들이 노조의 권한 약화를 내용으로 하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된 데 저항하여 파업을 전개했지만 대처 정부는 이들 파업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그 결과 1983년 총선거 때 노조 조합원의 39%만이 노동당에 표를 던지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BBC 방송은 “대처 수상은 앞으로 적어도 한 세대 동안은 노조가 힘을 쓰지 못하도록 약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대처 정부와 노조 사이의 힘의 대결의 정점은 탄광노동자들의 파업이었다. 1984년 영국의 ‘국영석탄공사(NCB)’는 174개의 국영탄광 중 20개를 폐광하고 18만7천명의 탄광노동자들 가운데 2만명을 감원할 것을 제안했다. 영국의 탄광노동자들의 2/3를 장악하고 있었던 ‘전국탄광노조(NUM)’가 이에 항의하여 파업에 돌입하였다. 이미 1982년1월, 1982년10월 그리고 1983년3월 등 세 차례에 걸친 조합원들의 투표에서 유사한 파업에 대한 동의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경력이 있는 아더 카길이 이끄는 NUM 지도부가 이번에는 조합원들의 투표 없이 파업에 돌입하자 대처 정부는 즉각 이 파업이 ‘불법 파업’이라고 선언했다. 

대처는 파업 수습을 위하여 탄광노조와 타협할 것을 거부하고 이 파업을 2년 전에 있었던 알젠틴과의 포클랜드 전쟁에 비유하여 “우리는 2년 전 외우(外憂)를 극복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외우보다 훨씬 싸우기 힘들고 더 위험한 내환(內患)도 극복하자”고 영국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탄광노조의 파업은 1년 이상 계속되었지만 1985년3월 NUM 지도부는 무조건 정부에 굴복했다. 탄광노조의 파업이 영국 경제에 끼친 손실은 15조 파운드로 추산되었고 미국 달러에 대한 영국 파운드 화 가치의 하락은 탄광노조 파업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었었다. 대처 정부는 1985년에 채산성이 없는 25개의 탄광을 폐광했고 1992년까지 모두 97개 탄광을 폐광했으며 나머지 탄광은 1994년까지 모두 민영화시켰다. 

영국의 경우 근로자 파업이 가장 많았던 해는 1979년으로 4,593회에 달했고 이로 인하여 2천9백만 근로일수가 유실(流失)되었다. 탄광노조 파업이 발생한 1984년의 파업 회수는 1,221회로 2천7백만 근로일수의 유실을 초래했다. 대처 수상의 남은 임기 중 파업 회수는 꾸준히 감소되어서 1990년에는 연간 640회로 이로 인한 유실 근무일수는 2백만 근로일수에 불과해졌으며 그 뒤로도 이 같은 감소는 계속되었다. 노조 회원 수도 1979년의 1천3백5십만명에서 대체 수상이 퇴진한 1990년에는 1천만명 미만으로 감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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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건의 고사가 남겨준 일관된 교훈이 있다.
그것은 이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데 정부는 원칙에 입각한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지만
수단을 채택하는 데 있어서는 눈앞의 성과를 탐내는 행정능률주의에 사로잡혀 본말(本末)을 전도(顚倒)하는 극단과 과격을 절대로 회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철도노조 사태의 본질은 이번 기회에 철도노조를 그들의 ‘철밥통’으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충족시키겠다는 노동 귀족들의 허리를 부러뜨려서 더 이상 그들이 노조를 수단화하여 국가와 국민 경제에 손실을 끼치는 일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함으로써 노사관계의 전반적 비정상 상태를 정상화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몇몇 주동자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데 급급함으로써 엉뚱하게 스스로를 ‘노동영웅’으로 조작함으로써 노사관계를 더욱 왜곡, 변질시키려 하는 그들의 기도에 오히려 정부가 이용되는 사태를 초래하는 데 급급할 일이 아니다.
궁구막추(窮寇莫追)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도 여기서 되새겨 볼 필요가 없지 않다. 

이번 철도노조 지도부가 조계사에 피신(避身)한 사건은 정부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공안당국은 차제에 철도노조 지도부 성원들이 피신한 조계사에 진입하는 것을 서두를 일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조계사 경내를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함으로써 문제의 철도노조 지도부 면면들을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들 철도노조 지도부가 ‘면피(面皮)’용으로 거론하는 ‘대화’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다.

 법원의 체포 영장이 발부되어 있는 그들은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없는 범법자들이기 때문에
 정부는 이들을 상대할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도노조원들에게 확실한 시한을 정하여 직장복귀를 명령하고 그 시한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1981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복귀 거부 철도노조원 전원을 단호하게 해고(解雇)하고 철도공사 경영에 필요한 인력을 시급하게 신규로 채용하여 철도 운영 정상화를 서둘러야 한다.

이 같이 할 경우, 시민사회에 일시적, 부분적 불편이 불가피하겠지만 정부는 이 같은 단호한 조치가 결국은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점을 부각시켜 국민적 이해와 지지를 호소하는 능률적인 홍보활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예산국회가 핑계로 이용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소위 여당이라는 새누리당도 이번에 대오 각성이 필요하다.
야당과 입씨름 하는 것이 그들의 능사는 아니다.
예산국회가 문을 닫는 대로 새누리당 의원들은 적극적으로 국민들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대중연설과 대화를 통해 각계각층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상황을 설명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이양하자”는 말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당원들에게 가장 먼저 해당되는 말임을
그들이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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