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저술가 폴 존슨(Paul Johnson)은
    ‘지식인들’(Intellectuals. Harper Perennial)이란 책에서
    버트란드 러셀, 폴 사르트르, 노엄 촘스키 등의
    僞善(위선)을 가차 없이 폭로하였다.

    실존주의 철학을 설파하여
    한국에서도 한때 인기가 높았던
    사르트르에 대하여는 이렇게 썼다.

  
<사르트르의 글들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이 퍼졌고,
그는 1960년 후반 이후엔 사회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 운동의 학문적인 代父(대부)가 되었다.

그가 예측하지 못하였던 것은,
그가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예측했어야 했던 것은,
그가 선동한 폭력의 희생자는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었고,
그것도 흑인에 의한 흑인에 대한 폭력이었다는 점이다.

1975년 4월 이후 캄보디아에서 자행된 끔찍한 범죄로
인구의 4분의 1에서 5분의 1이 죽었다.

이 범죄는 ‘더 높은 조직’이라 불리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중산층 지식인 그룹에 의하여 자행되었다.

8명의 지도자중 5명은 교사,
한 명은 대학 교수,
한 명은 공무원,
한 명은 경제학자였다.
모두가 1950년대에 프랑스에서 공부하였다.

거기서 공산당에 들어갔고,
사르트르의 철학적 행동주의와
‘폭력의 필요성’이란 敎理(교리)를 흡수하였다.
이 집단 살인자들은 사르트르의 이념적 아들들이었다.>
  
존슨은,
사르트르가 1960년대의 드골을
나치 같은 사람이라고 비방한 데 대하여 이렇게 썼다.

<드골이 나치와 싸울 때
사르트르는 파리에서 연극을 쓰고 있었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는 작년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세계적 명성으로 얻은 부(富)와 영향력을 즐긴 사르트르는
6·25전쟁을 미국의 사주에 의한 한국의 북침(北侵)이라고 강변했다.

소련의 조직적 인권침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소련에는 완벽하게 비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했고,
소련의 강제수용소를 고발한 망명작가 솔제니친을
"시대착오적 인물"로 폄하했다.

"혁명의 완성을 위해서는
반(反)혁명적인 인물을 죽여 없애야 한다"고 한
사르트르와
온건개혁론을 편 소설가 카뮈(A. Camus, 1913~1960)의
절교(絶交)는 불가피했던 것이다.>
  
언어학자에서 정치평론가로 변신한
미국의 촘스키는
캄보디아의 집단 학살을 부인하다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되자 그 책임을 미국에 넘겼다.
폴 존슨은 한국의 좌파들도 숭배하는
촘스키의 변명이 네 단계를 거쳤다고 분석했다.
  
<蠻行(만행)에 대한 촘스키의 반응은
복잡하고 왜곡된 모습이었다.

마르크스가
(영국 수상) 그레드스톤의 예산관련 연설 내용을
고의적으로 조작 인용한 사실이 드러난 뒤
마르크스, 엥겔스, 그리고 추종자들이 보인 반응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촘스키의 定義(정의)에 의하면
미국은 인도차이나의 악당이다.
따라서 캄보디아 학살은
미국이 직, 간접으로 학살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기 전에는 일어났다고 인정할 수 없다.
촘스키와 친한 사람들의 반응은 네 단계를 거쳤다.
  
1. 학살이 없었다. 서구 선전기관이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2. 작은 규모의 살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월남 신드롬’을 극복하기 위하여
시니컬한 서구의 인도주의자들이
캄보디아의 고통을 이용한 것이다.
3. 살인은 처음 생각하였던 것보다 대규모이다.
이는 미국의 전쟁범죄 행위가
캄보디아 농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한 결과이다.
4. 권위 있는 캄보디아 전문가들 중 한 사람에 의하면
최악의 학살은 1975년이 아니라 1978년 중반에 일어났고
마르크시스트 때문이 아니라
보수주의자, 인종주의자, 그리고 反월남 요인들 때문이다.
요컨대 폴 포트의 범죄는 사실상 미국의 범죄이다.>
  
폴 존슨은 ‘지식인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배운 무식자들’에게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요즘 우리를 향하여
설교를 하려고 드는 지식인들에 대하여
대중적 懷疑(회의)가 생기는 機微(기미)가 보인다.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행동하라, 이렇게 일을 처리하라’고 말하는
학자들, 著者(저자)들, 그리고 철학자들에 대하여
보통사람들조차도
‘그들이 아무리 著名(저명)하다고 하더라도
그럴 권리가 있는가’라고 의심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지식인들은 멘토로서, 또는 모범사례로서는,
옛날의 신부들이나 마술을 쓰는 의사들에 비하여
더 현명하지도, 고귀하지도 않다는 믿음도 확산되고 있다.

만약 거리의 행인들을 무작위로 12명을 뽑아서
도덕적, 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물어본다면
적어도 지식인 집단만큼
분별력이 있는 견해를 제시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나는 지식인들을 감시하라고 말하고 싶다.

비극적인 우리의 세기가 주는 큰 교훈 중 하나는
수백, 수천만 명의 죄 없는 생명이 희생된 것은
인간성을 발전시키겠다는
(지식인들의) 계획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지식인들을
권력의 조종간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아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이 ‘집단적인 조언’을 하려고 할 때는
특별히 감시를 잘 해야 한다.
지식인들이 만드는 위원회, 회의, 연대 조직 등을 조심하라.
  
똘똘 뭉친 지식인 단체가 내는 성명은 믿지 말라.
정치 지도자나 중요한 사안에 대한
그들의 단정적 평가를 디스카운트하라.

지식인들은 매우 개인주의적이고,
남의 말을 무조건 따라가지 않는다는
先入感(선입감)과는 달리
어떤 패턴의 상투적 행위를 잘 추종하는 이들이다.

어떤 집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들고자 하고
그런 것을 귀하게 여기는 이들이 만든 집단 속에서
지식인들은 극단적으로 추종적이다.

이것이 집단으로서의 지식인을 매우 위험하게 만든다.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인 행동 방향을 유발할 수 있는
‘권위 있는 견해’나 여론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지식인들이 습관적으로 까먹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개념보다도 더 중요하므로
늘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을.
모든 독재 중 최악은
심장이 없는 사상의 暴君(폭군)이다.>
  
지식인들,
특히 교수들을 우대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겸손을 모르는,
세상만사에 참견하려 드는 ‘배운 무식자들’을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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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블랙리스트 38명
  
죽기 1년 전에 38명의 親蘇 지식인 명단을 적어서 정부측에 넘겨주었다.
  
2003년에 명단 공개. 스탈린과 히틀러를 동시에 옹호한 E.H.카도 포함.

趙甲濟
  
1949년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1984년’을 출판한 뒤 병원에서 폐결핵 치료를 받고 있었다.

‘白晝(백주)의 암흑’이란 소설로
소련 공산주의자들의 무자비한 숙청을 폭로하였던
아서 케스틀러의 妻弟(처제)인 셀리아 커원이 찾아왔다.

커원은 영국 노동당 정부에서 설립한
정보조사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 부서는 對공산권 선전을 맡았는데
커원은 국장의 보좌관이었다.
  
오웰은 비밀 공산주의자이거나 동조자로 의심되는
38명의 이름을 적어 커원에게 건네주었다.
對공산권 선전을 할 때 이 사람들을 쓰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 명단은 ‘오웰의 리스트’로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 정부가 명단을 공개한 것은
오웰이 죽은 53년 뒤인 2003년이었다.
  
사회주의자로서
스페인 內戰 때 좌파 편에서 참전하였던 오웰은
좌익 인맥에 밝았다.

신문사의 書評(서평) 담당 기자로 일한 적도 있어
지식인 사회의 動向(동향)에 대하여도 정보가 많았다.
그는 1940년대 중반부터
‘비밀 공산당원’ ‘동조자’ 등으로 분류된 명단을
공책에 정리해두고 있었다.

135명에 대한 자료가 정리되어 있었는데,
38명을 추려서 커원에게 준 것이다.
주요인사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작가와 기자
  
J.B.프리스틀리: 소설가 및 극작가
킹슬리 마틴: ‘뉴스테이츠맨’의 편집장
알라릭 제이콥: 2차 대전중 모스크바 주재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특파원
아이리스 모레이: 옵저버紙의 모스크바 특파원
E.H.카: 역사학자
아이작 도이처: 전 트로츠키주의자, ‘트로츠기’ 3부작의 著者
월터 두란티: 뉴욕타임스의 모스크바 특파원
나오미 미치슨: 소설가
노먼 맥켄지: 역사학자 및 사회민주당의 창립멤버
마가렛 스투어트: 트리뷴의 산업노동 담당 기자
랜덜 스윙글러
피터 스몰렛: 데일리 익스프레스 기자
  
*과학자
  
골든 칠드: 고고학자
존 맥머레이: 철학자
패트릭 블랙킷: 물리학자
J.G.클로우더: 가디안의 과학 담당 기자
A.J.P.테일러: 역사학자
  
*배우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찰리 채플린
  
*노동당 국회의원
  
베시 브라독
톰 드리버그
존 프라츠-밀즈
스티븐 스윙글러
  
*기타
  
해군 중령 에드가 영
  
스페인 내전을 통하여
스탈린주의자들의 행태를 속속들이 알게 된 오웰은
공산전체주의는
파시즘과 같은 인류의 敵(적)이라고 보았다.

그가 작성한 명단에 오른 지식인들은
거의가 親蘇的(친소적) 인사들이다.
이 명단은 搜査用(수사용)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원고를 청탁한다든지
방송에 출연시켜선 안 된다는 정도의 정보였다.

이 명단이 작성된 이후
이들의 행태를 보면
오웰이 사람을 잘 보았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피터 스몰릿 기자는
그 뒤 소련 KGB에 포섭된 간첩으로 밝혀졌다.
그를 포섭한 사람은
영국 정보기관의 요직에서 근무중이던 킴 필비였다.

필비는
캠브리지 대학 재학 때부터 KGB에 포섭된 간첩이었다.
스몰릿은 2차 대전중엔
영국 戰時(전시) 정부의 정보부에서 소련과 과장으로 일했다.
  
뉴욕 타임스 모스크바 특파원 월터 두란티는
1930년대 소련에 대하여 보도하면서
스탈린의 숙청을 비호하고,
大飢僅(대기근)에 대하여는 축소 왜곡하였다.
그는 1932년 소련 보도로 퓰리처 상을 받았다.

동료 기자들은
소련 선전을 받아 기사를 쓰는 그를 경멸하였다.

2003년 뉴욕 타임스는
미국 콜롬비아 대학 교수 마크 폰 하겐에게 의뢰하여
두란티의 퓰리처 상 기사를 검증하도록 하였다.

하겐 교수는,
두린티 기자가 편파적이고 비판의식이 결여되어 있으며
스탈린의 선전에 너무 의존하였다면서
뉴욕 타임스의 명예를 위하여
스스로 이 상을 반납해야 할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뉴욕 타임스는 하겐 교수의 보고서를
퓰리처상 위원회에 보냈으나
위원회는 상 회수까지 가진 않았다.
  
스탈린과 소련의 전체주의를
가장 오랫동안, 가장 심하게 왜곡한 사람은
역사학자 E.H.카였다.

그는 2차 대전 직전까지
스탈린과 히틀러를 동시에 옹호하였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반발로 생긴 것이라면서
챔벌린 영국 정부의 對히틀러 유화정책도 지지하였다.

2차 대전의 문을 연
獨蘇(독소) 불가침 조약까지도 옹호하였다.

그는 14권짜리 소련 역사를 썼는데, 왜곡의 결정판이다.
지금은 웃음꺼리가 되고 있다.

카는
마르크시즘이 가장 성공적인 전체주의라면서
소련의 사회복지 정책은
유럽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격찬하였다.

그는 소련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눈먼 사람, 치유가 불가능한 사람’이란 악담도 쏟아 부었다.

1970년대 말 鄧小平이
毛澤東 노선을 버리고 개방과 개혁으로 나아가자
‘퇴보적’이라고 비방하였다.

노르만 앙겔은
카를 ‘도덕적 허무주의’라고 혹평하였다.
미국의 리처드 파이프스는
카의 소련 옹호는
유태인 학살 옹호와 같다고 경멸하였다.

영국의 송두율 같은
E.H.카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많은 것은
知的 천박성의 한 증거일 것이다.

조지 오웰의 리스트에 오른 親蘇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동성연애자와 변태성욕자들이 었다.
이들은 변태장면이 KGB에 약점으로 잡혀
소련을 위한 위선적 言動(언동)을 하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 2010-08-08, 2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