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행태는 강직한 성품탓 아냐!...에고의 발작일뿐, 제대로 알고나 써라!"
  • 우리는 "권력"에 굶주려 있다



    1. 윤석열 일당과 대법원장 양승태를 고발해야 한다

  • ▲ 윤석열ⓒ
    ▲ 윤석열ⓒ

    지난 17일,
    윤석열 일당은
    국정원 직원을 [엉터리 체포영장]으로 불법 체포했다가
    어쩔 수 없이 풀어줬다. 

    [엉터리 체포영장]인가?
    검사가 판사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할 때에는,
    미리 국정원장에게 통보한 다음에 체포영장을 청구하도록
    [국정원직원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을 지키지 않고 청구한 체포영장]이기 때문에,
    그 체포영장은 엉터리이다. 

    검사가 판사를 사기친 사건이다.
    엄격히 말하면,
    윤석열 일당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범죄를 저리른 사건이다.

  • ▲ 양승태ⓒ
    ▲ 양승태ⓒ

    이 사악한 짓에 대해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는
    법원 조직은
    호구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법원 조직이 이런 바보 등신들의 집합체로 전락한 데 대해서는
    대법원장 양승태가
    책임져야 한다.

    양승태는 호구에 지나지 않는다.  
    검사가
    법원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엉터리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는 대법원장 양승태는,
    [직무유기]로 고발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윤석열 일당은 곧 이어
    "우리 검찰은
    트윗 계정 400여 개에서 5만5천여건의 트윗이 생성되었음을 확인했고,
    그 중 2,233 건은 [국정원 직원의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라고,
    문법에 맞지 않는 개소리를 떠들며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적법 결재 절차를 밟지 않고
    법원에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들이 밀었기 때문에
    이는 [공문서 위조] 범죄에 해당한다.

    윤석열 일당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 [공문서 위조죄]
    몽땅 감옥에 처넣어야 마땅한
    [양아치]들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조만간,
    시민들에 의한 고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국정원 직원의 트윗 활동이닷!"이라는 윤석열 일당의 주장은
    정말 개무식한 소리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수사 결론이 되려면, 해당 트윗 계정의 IP 주소가 나와야 한다.

    ■ 그래야 [그 계정 사용자]가 밝혀질 수 있다.

    ■ 그래야 [그 사용자]가 국정원 직원인지 밝혀질 수 있다.

    ■ 그 [다음에야] 그 직원의 트위터 활동이
       국정원장 혹은 간부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여부
       (즉, 선거법 위반 여부)가 밝혀진다.


    한마디로,
    우선 그 계정의 접속기록을
    트위터 본사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트위터 본사는
    "행여라도 사용 고객의 개인 정보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일"에 관해서는, 
    테러활동-아동성착취와 같은 극악무도한 반인류적 범죄가 아니면
    협조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정원 직원의 트위터 활동이닷!"이라는 주장은
    영원히 추정 가설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윤석열 일당이
    "이건 국정원 직원들이 한 트윗임을 확신하고 또 확신한닷!"이라 주장한
    2,233 건이 전체 트윗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자. 
    94%는 리트윗이고 139건이 작성글이다.
    선거법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대충 2억~3억 건의 한글 트윗 글이 작성되었다.
    이 중 139건은  0.00005% (작성글을 기준으로 한 비중)이다.

    리트윗을 기준으로 한 비중은?

    더 낮아진다.
    왜냐면,
    만약 국정원 직원이 트윗을 했다면
    팔로워 수가 평균 천 명도 되지 않는
    익명 [달걀]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윗에서는,
    프로필 사진에 [달걀]이 나타나는 익명존재를
    흔히 [달걀]이라 부른다.)
    팔로워 5백명 짜리 달걀이 한 번 리트윗 해봐야
    "나는,
    150만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트윗 대통령이닷!"
    이라고 큰소리 치는 
    이외수가 한 번 리트윗한 것에 비해
    3천분의 1 효과 밖에 되지 않는다.

    즉 윤석열 일당이 말하는 2천여 번 리트윗의 효과는
    이외수의 리트윗 한 번의 효과에도 미치지 못 한다.

     

  • ▲ 이외수와 안철수. 둘 다 뭔가 칙칙한 분위기라는게 공통점이다.ⓒ
    ▲ 이외수와 안철수. 둘 다 뭔가 칙칙한 분위기라는게 공통점이다.ⓒ


    트윗의 기본적 특성을 감춘 채
    "수만 건, 수천 건의 트윗이 있었다!"라고 떠드는 게
    윤석열 일당 수십명이
    몇달동안 끙끙대며 만들어낸 선동인가?

    당신들의 선동질은 그것 밖에 되지 않는가?

    뱀발:
    내게 오라.
    [거짓으로 선동하기] 혹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는 것을 대단한 것인양 부풀려 선동하기]에 대해
    특강해 줄 수 있다.
    당신들의 [영웅]인 채동욱의 첩으로 지목된 임모여인의 술집에서
    발렌타인 17년 한 병 사주면
    여러 차례 특강해 줄 수 있다.
    그 술집 새끼 마담을 붙여주면,
    정신이 황홀해 져서,
    내가 모르는 것도 영감을 받아 주절주절 특강해 줄 수 있다.
    조니워커-블루나 로얄-살루트를 사 주면,
    아예 당신들의 충실한 따까리가 되어 줄 수도 있다.
    선전 선동의 기본도 모르는 당신들 같은 종자들이,
    검사 신분증을 이마빡에 붙이고 설치는 행위는
    선전 선동을 모욕하는 짓이다!



    윤석열 일당의 추정가설을 내세워서
    "지난 대선은 불법이었다",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라고
    주장하는 종친떼(종북=친북+떼촛불 혼합체) 및 야권 정치인들은
    그래서 더 가련한 존재들이다.

    지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가련하고,
    기백과 자존심이 없다는 점에서
    더 가련하다.

    종친떼 및 야권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은 전교조를 핵심 이슈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일당의 [빤스 자락]을 붙잡고 늘어진 것이다.
    [빤스 고무줄]이 다 흘러내려
    윤석열 일당의 OO과 XX,
    즉 밑천이 다 드러났다.

    그래서 이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공문서 위조]
    처벌받아야 마땅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덤으로 대법원장 호구 양승태는 [직무유기]!

     



    2. 에고(ego)의 오기, 고집, 발작이 그들의 생존전략이다

    윤석열의 행태는
    [에고(ego)의 발작]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 ▲ 조선일보의 [윤비어천가] 보도ⓒ조선일보 인터넷 화면 캡쳐
    ▲ 조선일보의 [윤비어천가] 보도ⓒ조선일보 인터넷 화면 캡쳐

    <조선일보>는 10월 25일,
    윤석열이 
    "강직(剛直--곧고 바름)한 성품이어서 무리수를 두었다"
    [윤씨어천가]를 불렀다.
    <조선일보>는,
    윤석열이 [강직한 성격이다]라는 주장에 관한 근거로서,
    윤석열이 30년 전 서울법대 생이었을 때,
    현직 대통령 전두환에 대한 모의재판 이벤트에서
    검사직을 맡아 사형을 구형하고 잠적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조선일보>가 스스로 생각해도 쪽팔리는 [윤씨어천가]였는지,
    25일에는 인터넷 조선 톱에 올려져 있던 기사가
    26일에는 제대로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강직은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인가! 

    [곧고 바름](剛直)에는 오직 한 종류 밖에 없다.
    생명과 진실을 위한 [곧고 바름] 외에는
    다른 어떤 [곧고 바름]도 존재하지 않는다.

    법원 판사를 사기쳐서 엉터리 체포영장을 받는 행위가,
    "생명과 진실을 위한 곧고 바름"인가?
    상급자의 결재를 받지 않고
    지 맘대로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위조해서 법원에 들이미는 행위가,
    "생명과 진실을 위한 곧고 바름"인가?

    이 기사를 쓴
    <조선일보> 기자의 상식과 판단력은
    죄다 똥통 속에 빠진 것인가!

    윤석열이
    서울법대생이었던 80년대 초에,
    학생 모의재판에서 검사역을 맡아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던 것은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 세대(윤석열은 나보다 2년 아래이다)는
    80년대 초에 이렇게 믿었기 때문이다. 

    ■ 광주에서 최소 5천명이 학살됐다.

    ■ 마약에 취한 공수부대원이
       처녀의 유방을 칼로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에 대검을 박아 학살했다.



    이런 황당한 소리를
    믿음으로 만들어 주었던,
    조직적인 유언비어가 있었고,
    이를 읊은 수많은 노래가 있었다.

    예를 들어 <오월가>라는 노래 (샹송의 개사곡)에는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이란 구절이 나온다.

    그래서 70년대, 80년대 학번은 모두
    "청춘의 뜨거운 분노"의 세례를 받은 세대이다.
    윤석열은
    "뜨거운 분노"를 정제-승화시키지 못 한 채
    권력자가 되었다고 보인다.

     
    "뜨거운 분노를 정제-순화시킨다"는 게 무엇인가?

    첫째, 사실과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세대가 광주에 대해 가졌던
    분노와 죄책감의 99%가,
    유언비어와 돼먹지 못한 삼류 운동권 가요에 의해
    조작된 감정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의에 관한 분노 자체는 고귀하고 숭고하다.
    그러나 모든 고귀하고 숭고한 것이 그렇듯,
    이런 종류의 분노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조작질-선동질에 취약하다는 약점이다.

    그래서 니체(Nietzsche)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이 피에 의해 증명되었다고?
    웃기지 마!
    피야말로
    증인 중에 최악의 저질 증인이야.

    피로서 증명되는 것,
    피로서 만들어 지는 것은,

    세상에 대한 복수심 밖에 없어!" 



    둘째, 설혹 정말로 억울하고 애달픈 일을 당하더라도,
    뜨거운 분노를 가라앉혀 삭여야 한다.

    이를 판소리에서는
    [시김]이라 부른다.
    김지하가 말하는 시김이다.
    위로 방방 떠서 올라오는 분노에
    강력한 중력장을 걸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혀 삭여야 한다.

    이 중력장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다.
    생명이 벋어가는 길에 대한 존중이다.
    생명을 존중하기에
    분노를 삭이는 것이다. 

    생명 존중을
    김지하는
    [모심]이라 부른다.

    언젠가 김지하 시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 ▲ 김지하 시인.ⓒ뉴데일리
    ▲ 김지하 시인.ⓒ뉴데일리



    나: 선배님.
          그런데 시김이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어떻게 시김이 가능해 지는 거지요?

          (한 5초 정적이 이어졌다)

    김지하 시인: 시김의 심리적 기초는 모심이야.
                       이거, [김지하의 말]이라고 꼬리표 달아 줘.


    나는
    김지하의 [말]을 우습게 여긴다.
    그러나 삶에 대한 그의 [태도]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의 말 중에서
    [태도]에 관한 말은 이미 [말]이 아니다.
    그것은
    말을 넘어선 말이며,
    영혼의 바다가 만들어내는
    메아리이며 그림자이다.

     

    우리 내부에는 중력장이 있다.
    우리를
    비관적-염세적으로 만들고,
    심각하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드는
    중력장이 있다.

    니체는
    이 중력장을 [중력 귀신](The Spirit of Gravity)이라 불렀다.
    삶을 비웃고 파괴하도록 충동질하는 귀신이다.
    평생동안 니체를 괴롭힌 귀신이다.
    니체는
    중년에 이르러
    마침내 이 중력귀신을 참아내고 무시하는 데에 성공한다.
    삶에 대한 총체적 긍정--모심의 정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렇게 부르짖는다.

    "아! 그곳에도!
    신(神)들이 춤추는 무도장에도!
    한쪽 구석에
    그 놈, 중력귀신이 있더군.

    하지만 어때!
    신(神)들이 춤추는 무도장에도
    생뚱맞은 놈이 하나쯤 웅크리고 있어야
    더 흥겨운 법이잖아!"


    니체는
    중력귀신을 굴복시키는 법,
    무시하는 법에
    도달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들은 다르다.
    우리는
    중력귀신을 [부려먹는 법]을 오래 전부터 알았다.
    중력귀신의 힘은 [비웃기, 파괴하기]에 있다.
    그 힘이 공격하는 타겟을,
    [삶]이 아니라
    [분노, 억울함, 원한]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중력귀신을 [부려먹는 법]이다. 

    생명의 길을 바라는 한가지 마음으로,
    중력귀신을 부려먹어야 한다.
    분노-원한-억울함에 강력한 중력장을 걸어서
    아래로 가라 앉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이 분노-억울함-원한은 시간이 흐르면서
    발효된다.
    삭여진다.
    시김이 일어난다.

    이것이 [분노와 원한을 정제-순화하는 노하우의 완성판]이다.

     

    윤석열 뿐 아니라,
    수많은 70년대말~ 80년대말 학번 세대들이,
    거짓 선동에 의해 만들어진 분노와 원한을 정제-순화하지 못 한채
    나이가 들어 40대를 넘기고 있다.
    겉으로는 정제-순화한 듯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분노-원한을 뿌리째 뽑으면
    공포스런 심연,
    까마득한 절벽을
    내려다 보게 되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비웃음이 지배하는 심연이요,
    삶의 의미없음(meaninglessness)이 지배하는 절벽이다.


  • ▲ 방부재 속에 누워 영생을 꿈꾸는 김일성. 수백만명의 동족을 학살한 그가 좌파이고 진보라고? 흉칙한 전체주의 사교집단의 교주에 불과할 뿐이다.ⓒ
    ▲ 방부재 속에 누워 영생을 꿈꾸는 김일성. 수백만명의 동족을 학살한 그가 좌파이고 진보라고? 흉칙한 전체주의 사교집단의 교주에 불과할 뿐이다.ⓒ

방부제 속에 누워 영생을 꿈꾸는 [귀태 중의 귀태] 김일성.
수백만명의 동족을 학살한
흉측한 [전체주의 사교] 집단의 정교일치 교주.

  • ▲ 지 애비처럼 방부처리 되어 영생을 꿈꾸는 잔인한 도살자 김정일. 그가 진보? 전체주의 사교집단 계승자에 불과하다.
    ▲ 지 애비처럼 방부처리 되어 영생을 꿈꾸는 잔인한 도살자 김정일. 그가 진보? 전체주의 사교집단 계승자에 불과하다.
              
                  ▲
    지 애비처럼 방부처리 되어 영생을 꿈꾸는 잔인한 도살자 김정일.
                  지 애비를 능가하는 요사스런 [귀태 중의 귀태]요.   
                  [전체주의 사교] 집단의 교주 계승자.
                  두 부자가 한반도 남쪽 운동권에 남겨놓은 영향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운동권적 사고방식은
    (반독재든, 마르크스-레닌주의든, 김일성 전체주의든) 
    이미 이념으로서의 설득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그 사고방식의 웃가지만 없어질 뿐
    뿌리는 계속 남아서 굵어지는 이유는,
    그 사고방식이
    중력귀신이 만든 심연을 덮어주는
    뚜껑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늘에 하늘뚜껑(천개)이 있고,
    나무에 나무뚜껑(우듬지)이 있듯,
    중력귀신이 만든 심연 역시
    뚜껑이 있다.

    세상에 대한 원한 혹은 분노에서 나오는,
    에고(ego)의 고집과 발작이
    바로  중력-심연의 뚜껑이다.

     

    운동권적 사고방식에 깊게 물들지 않았던 사람들은,
    사춘기 이후 일관되게
    "삶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화두를
    노상 옆에 느끼며 살아왔다.
    이 화두에 대해
    답이 있든, 없든,
    혹은 이 화두를 직시하든 하지 않든,
    이들은 이 끔직한 질문이 만들어내는 중력을 익숙하게 견뎌낸다.

    그러나
    "인생의 원초적 의미를,
    반독재-반파쇼 투쟁,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해방 투쟁,
    반미 민족해방 투쟁에
    걸어야 한다"
    라는 사고방식이
    20대 전체를 지배했던 사람들에겐,
    이 [투쟁적 조건]이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가 공포이다.
    그래서 그들은 노상 [투쟁의 대상]을 만들어낸다.

    채동욱 호위무사를 자처했던 검찰 고위 간부가
    "적들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기록"을 운운했던 것은
    그냥 단순한 말(修辭, rhetoric)이 아니다.
    에고(ego)의 오기, 고집, 발작--이것이 그들의 생존전략이다.
    그들의 생존은
    "중력귀신이 만들어낸 심연을 보지 않고 살아가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에고가 무시당하고 위협받고 있다"--
    그들은 여기까지는 잘 참는다.

    그러나
    "투쟁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진실에 부딪히면 발작한다.  

     

    "국정원 측의 조직적 선거개입이 없었다"...
    "이제까지 몇 달 동안 허무한 개삽질해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개삽질을 하도록 꼬드긴 채동욱이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
    "우리 검찰의 투쟁 대상이 사라졌다. 아니,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윤석열은 이 진실 앞에서 발작한 것이다.

    그래서 50대 중반의 지검장이
    판사에게 사기를 치고(엉터리 체포영장 발부) 
    공문서를 위조(적법한 결재를 받지 않고 공소내용 변경을 법원에 신청) 했다. 

     
    에고(ego)의 발작을 두고
    성품의 강직(剛直)이라 쓰는
    <조선일보> 기자에게 충고한다. 


    "인간 심리에 관해 무식하면,
    그냥 표피적인 사회-정치적 사실에 대해서만 써라.
    괜히 아는 척 나대면
    구역질날 뿐이다." 



    3. 그들은 권력금단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종친떼(종북+친북+떼촛불 혼합체)의 입장에서는
    지금 국정원에게 시비를 걸 때가 아니다.
    종친떼의 생사존망을 판가름 낼 거대한 결전이
    이미 시작되었다.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전락한 것이야말로
    지금 최대의 이슈이다.


  • ▲ 이수호는 전교조와 민노총 위원장 모두를 지냈다.ⓒ뉴데일리
    ▲ 이수호는 전교조와 민노총 위원장 모두를 지냈다.ⓒ뉴데일리

    전교조는
    민노총의 뇌수요 척추다.
    전교조가 분질러지면
    민노총의 황당한 정치편향성이 꺾인다.
    민노총이
    [이념 편향성이 없는, 순수한, 철밥통 귀족노조운동]
    으로
    순화(!)된다.

    철밥통 귀족노조는 있을 수 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까지 철밥통 귀족 노조의 기세가 막강했다.
    그 시절엔 GM 청소부의 임금이 의사 임금보다 높았었다.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에 의하면,
    철밥통 귀족노동자가 설치는 이유는
    문명이 "반(semi)숙련 노동자가 주축이 된 대규모 제조업 경제"이기 때문이란다.

    뱀발:
    드러커가 말하는 반숙련 노동자는,
    요즘 표현을 빌면 숙련노동자이다.
    왜냐면 드러커의 숙련노동은
    옛날에 활-바이올린-피아노를 만드는 것 같은,
    오랜 세월 동안 다져져야 하는
    [장인의 노동]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는, 
    6개월 직업훈련 받고 현장에서 2~3년 일하면
    [숙련 노동자]라 부른다.


     
    드러커는
    [반숙련노동자를 주축으로 삼은 대규모 제조업 경제]가
    미국에서는 1960년 경에 정점을 지났다고 말한다.
    정점을 지나고도 약 20년 가까이
    철밥통 귀족 노조는 기세등등했었다.

    우리의 경우,
    대충 10여년 전인 IMF를 전후 해서
    이 정점을 지났다.
    그러니 앞으로도 10년 가까이는,
    철밥통 귀족 노조가 힘을 쓸 게다.
    현대자동차 노조와 같은 철밥통 노조가,
    "조합원의 자녀를 우선 취직시킨다" 같은
    야만적 폭력을 행사하는 관행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없어진다.
    아, 물론, 그 과정에서
    지금 세계를 주름잡는 제조업체 중 상당수는
    국내 생산을 최소화하고
    해외로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
    제조업의 공동화(空洞化) 과정이 일어나게 될 게다.

     

    아무튼.
    지금 우리 사회는 철밥통 귀족 노조의 횡포에 더하여,
    그 노조들의 이념성 편향성이 극악무도하다는,
    이중의 족쇄에 시달리고 있다.
    연봉 1억 가까이 받는 석유화학 노동자들이
    알카에다 흉내를 내어 사람 목을 칼로 자르는 이벤트를 연출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철밥통 귀족이
    알카에다 따까리를 하고,
    김일성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정신병적 세태다.

    이런 세상이 된 데에는
    전교조의 공(?)이 결정적이었다.
    또한 연봉 1억원을 넘나드는
    지상파, 포탈등 미디어 종사자들, '신의 직장'을 다니는 공무원들이
    극악무도한 이념 편향성을 보여 온 것 역시
    전교조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꺾인다는 것은,
    이석기-RO가 열 개쯤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종친떼는 전교조를 둘러싼 싸움에는 관심이 없다.

    왜?

    [나]의,
    [우리]의 권력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권력이 급격히 축소되어 가고 있는
    권력금단증상에 시달리고 있기에,
    전교조를 둘러싼 싸움에 나설
    용기도 힘도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미 지난해 4.11 총선 이후,
    자기들끼리 서로 견제하고 잡아먹는
    [내부 식인 풍습]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종친떼 내부는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민주당에서는,
    친노세력이 <혁신과 통합>(시민판에서 정치판으로 들어간 집단)과 손을 잡고
    전통적인 민주당 세력을 거세한 다음에는
    <혁신과 통합> 측의 지분을
    최소 수준으로 축소시켜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통진당에서는,
    종북성골(북한과 직간접적 커넥션을 가진 집단)과
    종북잡골(북한과의 커넥션은 약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민족해방혁명 노선을 따르거나 존중해온 집단) 사이에
    싸움박질이 벌어져서
    당이 깨졌다.
    이 두 고래싸움에 끼인 유시민 집단은
    납작 눌려서 오징어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 ▲ 오징포가 되어 버린 유시민, 정계은퇴를 선언해놓고서도 정치적 훈수 남발은 계속하고 있다. ⓒ
    ▲ 오징포가 되어 버린 유시민, 정계은퇴를 선언해놓고서도 정치적 훈수 남발은 계속하고 있다. ⓒ


    한편으로는 권력금단 증상에 시달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부가 갈갈이 분열됐다.
    따라서 종친떼가 선택할 수 있는 행태는
    딱 하나 밖에 없다.

    "그때 그때 가장 섹시하다고 보이는 이슈를 내세워,
    극한 투쟁을 일으킨다"
    --
    이것이 종친떼의 전략이다.

    전교조와 연대해서 싸우는 것은 섹시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전교조는 개허접 쓰레기 취급을 받아 버려지고 있다. 그들의 썩은 근시안 눈알에는
    지금 당장의 정치 권력에 관한 것만 섹시하다.
    양아치 눈에는 창녀가 성녀로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 그들은 [국정원 해체][대선 불복](혹은 대선 불공정) 이슈에 올인하고 있다.


  • ▲ 떼촛불 세력의 본 모습ⓒ뉴데일리
    ▲ 떼촛불 세력의 본 모습ⓒ뉴데일리



     


     4. 우리 역시 권력에 굶주려 있다.


    고백한다.
    우리 공화주의 시민들 역시
    권력에 굶주려 있다.
    권력에 환장해 있다.
    단, 우리가 갈망하는 권력은
    종친떼가 꿈꾸는 권력과는 완전히 다르다.

    권력에 관한 비밀을 가장 깊게 파헤쳐 들어간 사람은
    니체(Nietzsche)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니체의 대표작이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라고 착각한다.
    또한 흉악한 사기꾼들이
    그렇다고 선전했다.
    대표적인 사기꾼들은,
    독일 나치의 선전가들과,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자(예를 들어 들뢰즈)였다.

    이들은 노상 <권력에의 의지>라는 책을 인용한다.
    그런데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책을 출간한 바도 없으며,
    그  원고를 완성한 바도 없다.
    그냥 산만하게 흩어진
    육필 메모 (이를 [나할라스] Nachlass라 부른다)만 존재한다.
    니체의 정신이 붕괴한 이후,
    그 누이동생이
    이 육필 메모를 지 마음대로 변조-편집해서
    <권력에의 의지>라는 책을 냈다.
    니체 생전에 이미 출판된 책이 여러 권이다.
    사기꾼들은
    이미 출판된 책은 무시하고,
    보통 사람은 해독하기도 어려운 육필 메모를 위-변조 편집해서 만든 책을
    [대표작]이라 떠받든다.

    게다가 더 웃기는 것은
    이 육필 원고가
    누이 엘리자베드에 의해 19세기 말에 봉인된 이후,
    나치와 동독을 거치면서 1백년 동안
    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사기꾼들이 사기쳐먹기 딱 좋은 대상물이었다.
    니체는 1백년 동안 강간당해 온 사상가였다.
    이 강간을 부분적으로 막아준 사람은,
    미국 철학자 카우프만과 같은 사람들이다.
    이 양심적 철학자들은
    <권력에의 의지>가 아니라,
    니체가 생전에 출간했던 책들을 중심으로
    니체를 해석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니체 책들에는
    아주 드물게 [권력에의 의지]가 언뜻 언뜻 언급된 부분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선과 악을 넘어서> 211장 (전체 분량은 불과 한 페이지)이
    그의 [권력에의 의지] 개념을 제대로 조명하는 유일한 글이다.
    211장 뿐 아니라,
    204장에서 213장까지 한 무더기의 글들이
    사실은 이 [권력에의 의지]를 다루고 있다.
    211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참된 철학자는
    명령자이고 [법도를 만드는 자]이다.
    그들은 당위를 설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인류의 존재이유와 지향점을 설정하는 사람들이다.
    이 엄청난 과업을 위해
    그들은,
    과거의 철학자들의 업적과,
    또한 현재의 철학-노동자들(성실하게 과거를 해석하는 사람들)의 지적 성과물에 대해
    달통하고 있어야 한다.
    참된 철학자들은
    이제껏 존재해 온 것들을 수단-도구-망치로 사용해서
    미래를 향해 손을 내미는 존재이다.
    이 참된 철학자들에게
    [안다]는 것은 곧 [창조한다]는 것을 뜻하며,
    [창조한다]는 것은 곧 [(인간이 따라야 할) 법도를 세운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에게는
    [진실에의 의지]
    는 곧 [권력에의 의지]이다.
    오늘 우리 시대에 이런 철학자가 있을까?
    과거에는 얼마나 있었을까?
    이제, 이런 철학자들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필자 뱅모 박성현이 번역함


    니체가 말하는 권력,
    그리고 우리 공화주의자들이 갈구하는 권력은
    정치권력이 아니다. 
    (반면, 종친떼는 정치권력에 환장해 있는 상태이다)
    우리에게는 계(戒) 도(道)가 권력이다.
    계(戒) 와 도(道)를 정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입맛(최상 가치, virtue, 흔히 [미덕]이라 번역됨)이
    권력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확립하는 것]이 계(戒)이다.

    [해야 할 것을 확립하는 것]이 도(道)이다.

     

    한마디로 우리 공화주의 시민이 갈망하는 권력은,
    "대한민국 사회를 하나의 고갱이로 꿰뚫는 가치(원칙과 기준)" 자체이다.

    그것은 우리의 입맛에서 나온다.
    우리는
    생명과 진실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죽음과 거짓을 [구역질난다]고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의 길] [머리의 정직성](intellectual integrity)
    최상의 가치로 삼는다.

    [생명의 길]과 [머리의 정직성]이 존중받는 상태--
    그것이 바로 우리 공화주의 시민이 갈망하는 권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스스로를 [공화주의 시민]이라 부를까? 

    생명을 존중하고 진실을 존중할 때,
    우리에게는
    세 개의 공화가치-
    선거 혹은 떼의 힘으로 뒤집으려 지랄 발광해서는 안 되는, 대한민국의 근본 가치-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
    자유통일,
    세계시장
    바로 공화가치이다.

    이를 공화가치로 선언하는 것,
    이를 공화가치로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권력이다. 

    니체 말대로,
    가치를 선언하고 이를 [삶의 원리]로 만들어내는 것이
    철학자의 사명이라면,
    우리 공화주의 시민들이야말로
    가장 철학적인 과업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다. 

    니체 말대로,
    가치를 선언하고 이를 [삶의 원리]로 만들어내는 것이
    (참된) [권력에의 의지]라면,
    우리 공화주의 시민들이야말로
    가장 심하게 [권력에 환장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 공화주의 시민들은
    너희,
    금배지와 정당권력을 떠받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너희를 보면
    경멸할 수 밖에 없다.
    너희는
    권력이라는 의자 위의 똥무더기에 슬은
    구더기들에 지나지 않는다.  





  • ▲ 떼촛불 세력의 본 모습ⓒ뉴데일리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주필.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bangmo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