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 용감한 민주투사…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 후대들에게도 전하겠다


  • 1997년 4월 20일 오전 11시 40분.

    공군전투기의 엄호를 받으며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하시어 트랩 위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힘차게 외치시던 친애하는 황장엽 선생님의 영용한 모습이 눈앞에 선합니다. 전 세계인이 시청하는 자유진영의 텔레비전에 용감한 영웅으로 소개된 그날의 장엄한 모습에서 저는 통일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이신 황장엽 선생님!

    인민의 독재자 김정일과 잔악무도한 노동당을 무시하고 민족의 안녕과 조국의 평화를 위해 평양에서 서울로 오신 선생님께서는 저의 우상이고 통일의 등대였습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문헌 집필과 민주철학 강의에 열중하시는 당신의 정열적인 모습에서 저는 한없이 부끄러웠고 미안했습니다.

    2005년 봄, 생애 첫 작품을 쓰고 선릉역 사무실로 인사차 방문했을 때 평양에서 온 저를 아들마냥 따뜻이 맞아준 선생님! 제가 평양에서 살던 곳이 ‘중구역 외성동’이라고 하자 “정말이오? 그러면 나와 림 일 작가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소. 거기서 생면부지의 남남이었는데 서울에 와서 우린 동지가 되었구려.” 하시던 당신의 음성이 아직도 귓전에 맴돕니다.

    선생님께서 민주강좌에서 또렷한 발음으로 “우리 탈북문인들이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김정일 독재정권을 좌시하면 역사는 우리를 버릴 것입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고 문이 무를 이깁니다.”라고 하신 말씀은 저에게 통일문학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그 고귀한 지침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2010년 10월 10일 오전 9시 30분.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속보 ‘황장엽 사망’이라는 자막을 보면서 제 눈을 의심했고 방송사 오보로 믿었습니다. 몇 시간이나 멍하니 굳어졌고 오후 3시, 관계기관의 공식발표가 나오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을 확인했을 때, 하늘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습니다. 커다란 무쇠덩어리가 어깨를 누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황장엽 선생님!

    왜 그렇게 가셨습니까? 조금 앓으시다 가셨어도 그리 놀라지 않았을 테고, 10년만 더 계시다 가셨어도 이렇게 제 가슴 칼로 오려지듯 아프지 않을까 합니다. 새벽빛에 사라지는 아침이슬처럼, 바람에 없어지는 하늘의 구름처럼 왜 그리 갑자기 가셨습니까? 뭐가 그리 급하셨습니까? 무슨 마음의 짐이라도 있었습니까?

    여기까지 짊어지고 온 무거운 보따리 우리에게 맡기고 아무 말씀 없이 훌쩍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평양에 남겨진 사랑하는 가족과 불쌍한 인민의 고통은 어떻게 하고... 그토록 염원하시던 조국의 평화통일도 못보고 가시면 어찌합니까? 아무 일 못해도 대소변 받아내는 식물인간이 되셨을지라도 선생님의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용기와 힘이 되었는데 왜 가셨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눈물로 반성합니다. 생전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고, 맛있는 음식 많이 사드리지 못했고, 건강하시라는 말씀은 했어도 김정일 보다 꼭 오래 사셔야, 아니 하루만 더 사셔야 한다는 간곡한 부탁은 못 드렸습니다.


    영원한 스승이신 황장엽 선생님!

    철학자이고 문인이셨던 당신의 고결한 인품은 제 삶의 모델이었습니다. “림 일 작가! 부모형제와 맞바꾼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향유하되 책임감을 갖고 사세요. 헐벗고 굶주리는 인민을 한시도 잊지 말고, 김정일의 발굽 밑에 신음하는 그들의 억울한 심정을 꼭 대변하세요.”라고 하신 소중한 당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탈북문인이라면 사명감을 갖고 북한주민들의 비참한 인권유린과 노동당의 독재와 허구성을 묵시하면 안 된다는 선생님의 고귀한 조언이 있었기에 작년 9월 14일에는 대한민국 경주에서 열린 제78차 국제펜대회에서 우리 탈북문인들로 조직된 <망명북한펜센터>가 국제펜클럽 14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쾌거도 이뤄냈습니다.


    선생님 보내고 세 번째 10월이 왔습니다.

    당신의 영전을 찾아뵈며 무력감과 슬픔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왜 이리 몸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지는지 모르겠습니다. 통일이 되면 선생님을 모시고 꼭 내 고향 평양에 가고 싶었는데... 우리를 그렇게 증오하던 그들을 조금이라도 용서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내일의 약속으로 간직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희망의 꿈을 꿉니다.

    통일의 그날, 김일성·김정일 동상이 사라진 평양만수대언덕에 당신의 작은 동상을 세워 후손들에게 ‘주체사상의 창시자’ 황장엽 선생님의 불멸의 업적을 말하겠습니다. 개인의 생명보다 민족의 생명, 민족의 생명보다 인류의 생명을 더 귀중하게 여기신 겨레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 용감한 민주투사로 후대들에게 오래도록 전하겠습니다.

    분단의 한반도 평양과 서울에서 선생님께서는 일편단심 인민들을 아끼고 사랑하셨기에 그들도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고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황장엽 선생님! 인민의 마음속에 영생하십시오.


    故 황장엽 선생 3주기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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