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1시 효창공원 의사 묘전에서 추모식 열려
  • ▲ 이봉창 의사 동상. 이봉창 의사는 1930년대 의열투쟁의 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이봉창 의사 동상. 이봉창 의사는 1930년대 의열투쟁의 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일제 시절 도쿄에서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던
    <이봉창> 의사 추모식을
    오는 10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의사 묘전에서 연다고 밝혔다.

    (사)이봉창 의사 기념사업회(회장 문국진) 주관으로 여는
    [이봉창 의사 순국 81주기 추모식에는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과
    독립운동 단체 대표,
    광복회원 등 120여명이 참석한다.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봉창> 의사는
    1931년 1월, 항일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김 구 단장을 만난다.

    <이봉창> 의사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김 구> 단장과 만나
    일본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일왕 폭살계획을 세운다.

    <이봉창> 의사는
    1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1931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에 정식가입한 뒤
    거사를 도모한다.

    같은 해 12월말 일본 도쿄에 도착한
    <이봉창> 의사는
    일왕 히로히토가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기(代代木) 연병장에서 열리는
    신년 관병식(觀兵式)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 날을 거사일로 결정한다.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도쿄 경시청 앞에서
    일왕 행렬이 나타나길 기다렸다가
    행렬이 나타나자 수류탄을 던졌다.

    하지만 수류탄은
    일본 궁내대신(宮內大臣)이 탄 마차 옆에서 폭발,
    일장기 기수(旗手)와 근위병이 탄
    말만 거꾸러뜨리고 거사에는 실패했다.

    현장에서 붙잡힌 <이봉창> 의사는
    같은 해 9월 30일
    도쿄 대심원(大審院)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32년 10월 10일 오전 9시 2분
    이치가야 형무소(市谷刑務所)에서 순국했다.

    <이봉창> 의사는
    일왕 사살에는 실패했지만,
    1930년대 [의열 투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봉창>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국내로 봉환돼
    서울 용산에 있는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