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선제]가 민주화세력 전유물? "절대 아냐, 우남 이승만이 최초 도입!"
  • ▲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 책의 키워드는 [나라만들기]이다.
    [나라만들기]에는 합리적인 계획과 건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들 두고 인간들은 갈등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지난 60년 역사가 그러하였다.

    필자는,
    이 나라가
    얼마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허둥지둥 만들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피했으면 좋은 큰 상처를 안게 되었는지를
    몇 차례나 강조했다.

    대한민국은 상처투성이의 나라로 출발했다.

       -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본인의 저서 <대한민국 역사>
          (부제 나라만들기 1945~1987, 도서출판 기파랑) 머리말 중에서


    군부독재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학교로부터 제적(除籍)을 당하면서도
    뜻을 꺾지 않았던,
    열혈 경제학도가 있었다.

    그는 한때,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쓴 <대중경제론>을 품에 안고,
    <노동자 경영참여론>에 심취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위장취업 1호,
    1980년대 정점을 찍은
    운동권 대학생들의 위장취업은
    그로부터 비롯됐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민주화운동 1세대로서,
    작고한 김근태 전 의원으로부터 직접 사상교육을 받으면서
    격렬하게 민주화운동을 벌인 젊은 경제학자는,
    한국의 국사학계를 비롯한 지식인 사회의 폐쇄적 세계관과
    그들의 무사 안일한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

    자신의 생애를 걸었던
    민주화세력의 독선과 오만은
    그에게 실망을 넘어 충격을 안겼다.

    무엇보다
    모든 인문학의 총합인
    [종합과학으로서의 역사]가
    민족·통일지상주의 사관에 매몰된 모습에
    그는 결단을 내렸다.


  • ▲ [대한민국 역사],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저서ⓒ정상윤
    ▲ [대한민국 역사],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저서ⓒ정상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역사학의 한 분야인 
    경제사를 전공한 그가, 
    대한민국의 정치사-경제사-사회사를 아우르는 [현대사]를 썼다.

    <대한민국 역사>

    이 책은 제목처럼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사학-역사교육-한국사-서양사-동양사..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사례를 찾기 어려운 
    희한한 대학의 교육구조 속에 있는 한국 역사학계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것은 일종의 사건이다.

    [민족주의-통일지상주의] 사관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 역사학계에서,
    정치사-경제사-사상사 등 이른바 분류사는
    [이너써클](inner circle)이 아니다.

    비주류인 탓에
    학계의 관심이 적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분류사 전공자들을
    같은 역사학자로 인정치 않으려는 인식마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역사>의 출간은,
    어지간한 각오가 없이는 시작도 못했을 파격적인 도전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역사>는
    기존 역사학계의 주류적 관점인
    [감상적 민족주의]와 [통일 지상주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족이 아닌 [사람],
    즉 [개인]을,
    역사의 주체로 보는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민족]과 [통일]에 가려

    개인으로서의 역사를 사실상 폄하해 온
    기존 역사학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역사의 주체를 [사람]으로 보는 시각은
    혁명이나 다름이 없다.

    <대한민국 역사>는
    한국 역사학계에 신선한 파문을 몰고 왔다.
    그리고 책의 저자인 이영훈 교수는 
    다시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 ▲ [대한민국 역사],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저서ⓒ정상윤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영훈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경제사학회> 회장,
    <한국고문서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사회경제사>,
    <한국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역사적 특질>,  
    <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재인식>(공저),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 후기>,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대한민국 이야기> 등이 있다.

    경제사를 바탕으로
    정치-사회사 관련 자료를 묶어,
    대한민국이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는 역사서를
    꾸준히 펴내고 있다.


  • ▲ [대한민국 역사],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저서ⓒ정상윤

    다음은 본지 인보길 대표와 이영훈 교수의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인>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
    <이>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



    <인>
    먼저 축하드린다.
    <대한민국 역사>를 펴내셨다.
    해방부터 1988년 올림픽 직전,
    정치사적으로는 6.29선언까지,
    (대통령)간선제로 시작한 나라가
    다시 직선제로 돌아올 때까지의 역사를 담았다.

    8월이면
    우리 5,000년 역사 최초의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 탄생한 지 65년이 된다.

    지금까지
    성공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세계사와 함께 종합적으로 조명한 책이 없었다.

    건국 65주년을 맞아 국민과 나라에 좋은 선물을 주셨다.

    <이> 감사하다. (말씀하신) 그런 마음으로 책을 썼다.


    <인> 지금까지 우리 국사학계는
    우물안 개구리와 같은 모습을 보여 왔다.
    성공한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조명을 고의적으로 기피했다.
    그런 한계를 과감히 넘어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국사학자만이 국사를 쓸 수 있다는
    고루한 인식을 깨트렸다는 측면에서 인문-사회과학계의 큰 발전이다.

    다 알면서도 쓰지 않았던,
    써야 하지만 쓰지 않았던,
    일부로 덮어놨던,
    진짜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을 밝혀주셔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감사드린다.

    <이> 민주화세력은
    1986년 있었던 6.10 민주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역사에서 [대통령직선제]를 만든 사람은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당시
    정부체제를 놓고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내각책임제를 하자는 <한민당>과
    처음부터 [대통령직선제]를 역설한 이승만 대통령 사이에
    심각한 대립이 있었다.

    결국
    건국 당시 정부형태는

    부통령에 총리까지 있는,
    게다가 대통령과 부통령을 국회가 따로 따로 뽑는 
    기이한 모습을 갖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어중간한 정치형태는
    4년 뒤 대통령 선출방식을
    [직선제]로 바꾸면서 안정을 찾게 된다.

    6.10 항쟁에서 국민들이 요구한 [대통령직선제]를
    우리 역사상 처음 제안했고,
    이것을 제도화한 사람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직선제]는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처음 도입된 뒤,
    내각책임제-간선제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1987년 민주화세력에 의해 다시 돌아왔고,

    이로써 [나라만들기]는 일단락됐다.

    바로 이런 부분을 성찰하려는 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다.



    <인>
    이승만 대통령을 부정하는 세력은
    교수님이 말씀하신 그런 부분을 철저하게 무시한다.
    [대통령직선제]도 자기네들의 업적이라고 말한다.

    <이> 처음 정부형태를 만들면서
    유진오 박사가 부통령제를 제안한 것은 국가의 원로를 대우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정파간 갈등을 겪으면서

    부통령을 국민 직선제로 뽑는 유래 없는 형태를 띠게 됐다.

    그것도 모자라 당시 여야는
    아무런 권한도 없는 부통령 자리를 두고 극심하게 대립했다.

    그만큼 1950년대까지 나라의 기본 틀이 정해지지 않았다.


    <인> <대한민국 역사>를 쓰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이>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가 공유하는 역사가 없다.
    [나라만들기] 역사가 무려 65년이 되도록,
    자유민주주의 역사인식이 확립돼 있지 않다.

    학교에서도 이런 역사인식을 교육시키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고교 역사교과서의 편향성이 논란이 됐는데,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문제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동안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가르치지 않고 있다.

    이 나라가 자유의 나라이고,
    국민은 어떤 권리와 의무를 가진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역사에 대한 인식체계가 없다보니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매우 박약하다.

    이런 현실을 빨리 고치지 않으면
    선진국 진입은 어렵다.

    이런 위기의식이 책을 쓰게 이끌었다.



    <인> 구체적인 집필 계기가 있다고 들었다.

    <이> 국방부의 부탁을 받고
    병사들을 위한 교육을 했다.

    진중문고도 둘러봤는데
    이순신-김유신 장군에 대한 책은 있어도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장병들만 대한민국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교육을 받은 장교들도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병사들부터 바로 교육하자는 뜻에서
    집필을 하게 됐다.

    다른 하나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부탁 때문이었다.

    사실 이 책은
    처음 <경기문화재단>의 연구용역을 받아 만들어졌다.

    김문수 지사는
    대한민국을 누가 세웠는가라는 질문에

    [이승만 대통령이다]라고 답변을 하는 경기도 공무원이
    10%도 되지 않는다며,  

    내부 교육용 교재를 만들어 줄 것을 의뢰했다.  

    그래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인> 우리나라는 사학과 말고도
    동양서-서양사-국사학과 등으로 역사를 분리해서 가르친다.
    대학 전공과정도 그렇다.

    [세계사 속의 대한민국사]를 가르치지 않고
    여러 갈래로 나눴다.

    잘못된 관행이라고 보는데 혹시 일본의 영향 때문인가?

    <이> 그렇지 않다.
    동경대도 사학과 하나만 있다.

    우리나라만 분리해놨다.

    60년대 말,
    정부가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처음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때부터 (학자들까지) 서로 장벽을 쌓고 교류도 잘 하지 않았다.



    <인>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오히려
    자승자박이 된 것 같다.
    정치사-사상사-경제사-문화사 이런 부분을 무시하면서
    [세계사 없는 국사]를 만들었다.

    <이> 역사는,
    정치-경제-사상-문화 이 모든 것을 아우른

    [종합과학]으로 학제간 교류의 장이다.

    이런 바탕 학문을 무시하고
    대학 학부 과정에
    역사학과를,
    그것도 한국사-동양서-서양사 식으로 갈라
    학과를 두는 것은 정말 잘못된 발상이다.

    학부에서
    다양한 학문을 접한 뒤
    역사학 전공은 대학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



  • ▲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정상윤
    ▲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정상윤




    <인>
    이승만은 일찍이 국제정세에 눈을 떴다.
    약소국 조선이 강대국들을 활용해 국가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강대국의 힘으로
    또 다른 강대국인 일본을 제압하는 전략전술을 펴기 위해 노력했다.

    세계를 움직여
    한국의 독립을 추구한 선각자였다.
    대한민국을 만든 [국가의 시조]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시조가 누구인지 모른다.

    국가를 만든
    [국부(國父)]로서 이승만을 평가해 달라.

    <이>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병합은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일본의 강제병합을 국제사회가 승인했기 때문이다.

    즉, 일제의 강제병합과 조선왕조의 멸망은
    아시아에서 국제정치체계가 확립된 [국제적 사건]이다.

    이승만은
    조선을 둘러싼 국제질서를 꿰뚫어봤다.

    일제의 조선 강제병합을 승인한 국제공조가 무너지지 않는 한
    한국의 독립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승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국제정세를 모르는
    닫힌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승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승만은
    이 땅에 이상적 국가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던
    [초월적 지성인]이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적 사회진화론을 정확히 깨우친 사람은
    이승만뿐이었다.

    청년 이승만이 옥중에서 지은 <독립정신>
    그의 탁월한 식견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정치학자 중에서도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원문으로 읽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지금도 이승만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제는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 ▲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1904년 옥중에서 집필한 저서 [독립정신] 1910년 해외에서 먼저 발간됐다ⓒ정상윤
    ▲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1904년 옥중에서 집필한 저서 [독립정신] 1910년 해외에서 먼저 발간됐다ⓒ정상윤




    <인>
    학자들이 <독립정신>의 의미와 가치를 연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이> 대한민국이 우리 민족 전체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통의 지식인들에게는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체질화돼 있다.
     



    <인> 지식인들에게서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체질화돼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 김구는
    이승만을 비롯한 건국세력을
    일신의 안위를 위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대한민국 건국세력에 대한
    김구의 도덕적 비판이
    국민들 마음에 고스란히 남은 것이다.  

    김구 선생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공이 큰 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 분단의 위기상황을 겪으면서, 
    또 이승만과의 정치적 경쟁에서 패하면서 

    [감상적 민족주의]로
    노선을 변경했다.

    김구에 대한 해설서는
    무수히 많다.

    그런데,
    이승만에 대한 해설서는
    하나도 없다.



    <인> 역사적 사료를 근거로 당시 정치상황을 종합 정리해
    김구가 누구인지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지금까지 김구에 대한 평가는
    <백범일지>라는 책 한권이 좌지우지했다.

    그런데 <백범일지>는
    해방 후 춘원 이광수가 교정했다.
    그러면서 이광수는
    <백범일지>에 자신의 생각을 집어 넣었다.

    <백범일지> 중 문화와 관련된 부분은
    김구의 발언이 아니라 이광수의 생각이다.

    그런데 좌파운동권들은
    이것을 김구의 발언이라며
    적극 활용한다.

    김구의 <백범일지>를 전파하는데 앞장선 것은
    다름 아닌 김대중-노무현 정부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정부는 육해공 3군에 <백범일지>를 보급하고,
    매년 독후감 대회까지 열었다.

    그렇게 역사적 사료와 거리가 먼 책 한권으로,
    김구는 사람들에게 각인됐다.

    이제는 사료를 바탕으로
    김구와 이승만에 대한 지극히 냉정하고
    객관적인 조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역사학계가
    이런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한다. 



    <인> 우리 역사학계는
    아직도 식민사관에 매몰돼 있는 것 같다.
    일본 역사학계는
    한국 고대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한국 고대사 중
    백제 근초고왕 이전 역사를 신화로 치부한다.

    왜냐하면,
    자기들 역사가 바로 그때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의 황국사관을 
    우리 역사학계가 그대로 이어받았다.
    일본 역사학자의 견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고대사가
    일본 식민사관에 매몰돼 있는 것처럼,
    한국 근현대사는
    좌파의 유물사관에 완전히 갇혀있다.

    그런 점에서
    이 교수님의 <대한민국 역사>는 의미가 있다.
    식민사관과 유물사관에서 탈피한 책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는
    지금과 같은 편협한 칸막이를 두른 국사학계가 아니라,
    정치사-경제사-사상사-문화사를 이른바 [통섭적 치원]에서 전공하신 분들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기존 국사학계는
    역사를 민족사관으로만 파악하려고 한다.
    기본적인 시각에 한계가 있다보니
    대한민국 건국이
    문명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근대문명은
    사권(私權)의 주체로서의 개인을 중시한다. 

    개인을
    정치-경제-사회의 근본으로 본다는 것이다.

    정치사-경제사-사상사 등 분류사를 전공한 학자들은
    이런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사상과 명분을 앞세웠던 성리학이 장악한 국가였던 조선에서
    개인이 중심이 된 대한민국의 성립은
    [문명사의 대전환]이다. 

    불행하게도
    아직 국사학계는
    이런 개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인> 사학(史學)이 아니라 사학(邪學)이란 생각이 든다.
    환골탈태를 해야 하는데
    계기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 사학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치학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번에 쓴 책의 절반은 정치사다.

    그런데
    1950년대에 부통령직선제가 생긴 이유를 설명하는
    논문이 거의 없다.

    정치학자에게 물어봤으나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것이 한국 인문학-사회과학의 현실이다.

    건국이
    곧 정부수립과 독립을 뜻하는데도
    이런 인식이 없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지은 <독립정신>은,  
    개인이 쓴
    한국 최초의 근대적 [정치철학-정치사상] 서적이다.

    그런데도 정치학자 중
    <독립정신>을 제대로 일고 연구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고,
    그러니 제대로 된 연구 논문-저서조차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인> 이승만은
    젊어서부터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인간철학을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국제정세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그런데 <전교조>와 일부 국사교사들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이 나라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가르친다.

    이들은 김구와 북한이
    함께 만들려고 했던 좌우합작 국가만을
    진정한 국가라고 본다.
    이런 인식에 매몰돼 있는 것 같다.

    <이> 국민들의 지적 수준이
    개방적이거나 국제적이지 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인> 이승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이> 한반도에서 태어난 사람 중 최초로
    근대문명의 본질을 배우고 이해한 사람이다.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데 절대적 공헌을 한 사람이다.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적으로는
    기독교적 사회진화론을 근간으로 
    [이상 사회] 건설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사람이다.

    무엇보다
    좌우합작의 유혹을 물리친 것은
    그의 가장 큰 업적이다.

    모든 사람과 국가가,
    심지어 미국조차
    공산주의자들의 좌우합작 논리에 넘어갈 때
    그만이 숨겨진 실체를 간파했다.

    [감상적 민족주의] 아래서
    공산주의의 독소가 국민들을 분열시킬 때,
    그것이 갖는 위험을 정확하게 인식-직시하고
    그것을 끝까지 막아낸 선각자가
    바로 우남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다.



    <인> 좌우합작론과 공산사상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이 끝났다.
    생명이 다했다.
    그런데도 학자들은 그것에 왜 그리 집착을 할까?


    <이> 역사를 바라보는 기본인식이 다르다.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은 [감상적 민족통일]이 지상과제다.



    <인> 자신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자처하는 학자들조차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건국을 부정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친북-종북에 가깝게 보인다. 

    <이> [감상적 민족주의자]들이다.
    민족주의를 지상과제로 여기기 때문에
    남북한이 선의로 협력하면
    NLL도 휴전선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故 노무현 前 대통령도 그런 인식을 가진 것 같다.



    <인> 5.16은 쿠테타,
    유신은 또 한 번의 쿠테타,
    쉽게 이렇게들 이야기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 건국 당시 이승만과 <한민당>은
    정치체제를 놓고 대립했다.
    직선제와 내각책임제가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
    이런 정정불안은
    우남 이승만이 떠안은 불행이었다.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야당과 근본적인 대립을 피할 수 없었다.

    박정희는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확신했다.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
    모든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를 만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위주의 고도경제성장과 수출에
    모든 힘을 쏟았다면
    야당이 강조한 것은 근검절약이었다.

    야당을 이끌었던 박순천 여사는
    시정연설에서
    절약-재정낭비 해소-부정부패 근절-농업과 중소기업 육성을 주장했다.

    나아가 외자를 들여와
    국영기업을 육성하고,
    한국에 들어와 있었던 평화봉사단을
    경제개발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야당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같은 야당의 주장을
    [잠꼬대 같은 소리]라며
    한 마디로 일축했다.

    유신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국정을 이끌 식견이나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야당이
    정권을 이어받으면
    대혼란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오직 공(公)에 순(
    )한다]는 말을 즐겨 썼다.

    내 한 몸을 [민족의 제단에 바친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유신은
    박정희 대통령의 공(公)적인 선택이었다.



  • ▲ 故박정희 대통령과 故박태준 포스코 회장ⓒ연합뉴스
    ▲ 故박정희 대통령과 故박태준 포스코 회장ⓒ연합뉴스



    <인> 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민족·통일 지상주의] 사관이 지배하는
    기존 학계의 주장과 상반되는 내용이 적지 않은데,
    민주화세력의 비판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 내가 민주화세력이다.
    군부독재 반대하다가
    71년도에 제적되고 위장취업도 했다.
    위장취업 1호다.

    김근태 전 의원이 내 선배다.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쓴
    <대중경제론>을 읽고,
    그를 따라다니며
    선거운동도 도왔다.  



    <인> 민주화세력도 반성할 건 해야 한다.

    <이> 이른바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중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흥분하던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도 반대했다. 

    민주화세력은
    [나라만들기]의 대안세력이 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인> 다시 정치체제 이야기로 돌아와서,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만든 사람이 우남 이승만이다.

    그런데 당시 야당은
    이승만 대통령을
    민주주의를 파괴한 독재자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주장하던 야당이,  
    국민의 뜻을 물어 대통령을 뽑자는 우남 이승만을
    독재자로 몰아세운 것은
    역사의 아니러니다.

    당시 야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대통령 간선제를 주장했다.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이> 기득권 세력의 권력 나눠먹기다.



    <인> 책에 쓰신 것처럼,
    [나라만들기] 40년의
    1단계는 일단락됐다.
    이승만이 건국한 국가의 토대 위에 박정희가 부국을 이뤄냈다.

    우남 이승만이
    건국과 호국을 위해 사용한 시스템과 국가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박정희이고,
    그래서 박정희는 이승만의 적자라고 말씀하시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역사발전의 흐름을 추적하신 안목으로 한 말씀 해 달라.

    <이> 이승만 대통령이 갖고 있던 관점,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론을 따르면 된다.

    주의할 것은 김구적인 관점,
    즉 [감상적 민족주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념을 달리하는
    두 국가가 대화를 통해서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은
    역사에 예가 없다.

    지금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감상과 환상의 정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너무 많다.



    <인> [나라만들기]에 앞서
    [새로운 국민만들기]가 필요할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통합을 위한 올바른 역사교과서 만들기도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이> 국민통합은
    A와 B를 합쳐 새로운 C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섞여 있을 때,
    이 둘을 합쳐 이상한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
    유]와 [민주]가 압도적으로
    나머지 세력보다 크게 만들어져야 한다. 

    좌파, 종북세력은 당연히 마이너리티가 되도록 하고,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적어도 국민의 4분의 3, 혹은 3분의 2가 되어야 한다.

    국가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강건하게 안
    정적 다수가 돼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통합의 길]이다. 
    제3의 국민통합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환상에 빠져들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화합하며 잘 지내자?
    되지도 않는 이야기다.

    국민통합의 첫 번째 길은
    우남 이승만의 복권과 명예회복이다.

    이승만 기념관도 지어야 한다.
    세종문화회관이
    원래는 <우남회관>이었다.

    박정희 대통령도
    정정당당하게 복권을 시켜야 한다.

    좌편향 교과서도 폐기하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완전한 국민통합을 이루게 되면
    이것이 통일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말하는
    <신북진통일론>이다.



    <인> 무력이 아닌 이데올로기,
    즉 정신으로 국민통합을 이루면 
    그 강한 힘이, 
    북한만이 아니라 인류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아주 이상적인 정신모델이 될 것 같다. 

    <이> 박근혜 대통령께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하셨는데,
    더 강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말한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
    국민통합을 원천으로 한 [신북진통일]을 이룰 수 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