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3년 7월 중순. 휴전을 열흘 남짓 앞두고 전사한,
    당시 19살의 국군용사가 유골이 되어 60년 만에 가족들을 찾아간다.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이하 국유단)>은
    지난 5월 21일 강원도 철원에서 발굴한 국군전사자,
    故<정철호> 이등상사의 신원을 확인해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됐다고 밝혔다.

    故정철호 이등상사는 6.25전쟁 당시 8사단 21연대 소속으로
    1953년 7월 16일, 강원 철원 별우지구 반격 전투에서 전사했다.

    故<정철호> 이등상사는 1950년 11월 27일 입대,
    강원 횡성 전투, 호남지구 공비토벌 등에 참가했다.
    <국유단>의 설명이다.

    “故<정철호> 이등상사의 기록을 보면, 1953년 4월 상이기장을 받았고,
    1954년 10월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된 걸로 보아 부상을 입고서도,
    <별우지구 반격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 故<정철호> 이등상사가 전사한 <별우지구 반격전투>는
    휴전협상이 벌어지는 와중에 1953년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국군 8사단과 중공군 60군 181사단이
    강원 철원 금성천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진 전투다.

    국군 8사단은 금성천 이남 철수 주파리부터 백암산까지 연결한
    방어선을 구축한 뒤 중공군 181사단에 반격을 가했다.

    이때 <흑운토령(851고지)>와 금성천 남쪽 <362고지>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우리 군은 이때 금성천을 거의 차지하는 듯 싶었으나,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는 바람에 금성천 남쪽으로 철수했다고 한다.

    이번에 <국유단>이 발굴한, 故<정철호> 이등상사의 유해는
    유골과 함께 철모, 야전삽 등 개인장구와 도장, 지갑 등 개인소지품까지 발견됐다.

    그 중 도장은 신원확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밀감식 결과 <鄭喆鎬(정철호)>라는 이름을 확인해
    동명이인 6명 중 발굴지역을 바탕으로
    故<정철호> 이등상사로 압축했다고 한다.



  • 故<정철호> 이등상사는 경북 문경 시골마을에서 2남 3녀 중 네 번째로 태어났다.
    현재 생존한 유가족으로는 누나 <정상남(87)>씨, 여동생 <정경분(68)>씨,
    조카 <정용수(55)>씨가 있다.

    여동생 정 씨는 <국유단>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고 한다.

    “1952년 6월에 휴가를 나와, 고구마를 심어놓고 가면서 조카에게
    [가을에 캐서 맛있게 먹어라]하고 다시 부대로 돌아간 게 마지막 기억이다.
    1953년, 어머니께서 전사통지서를 받고 크게 슬퍼하셨다.
    결국 1979년 81세로 돌아가실 때도 아들을 부르셨다.
    60년 만에 유해라도 찾아 기쁘다.”


    <국유단>은 故<정철호> 이등상사의 유해를 유가족에게 전달하기 위해
    단장과 지역 부대 지휘관, 행정관서 관계자가
    울산에 사는 대표 유가족 <정용수>씨의 자택을 방문할 예정이다.

    <국유단> 등은 국방장관 명의의 신원확인 통지서, 도장, 단추, 계급장 등 유품,
    관을 덮었던 태극기를 전달할 예정이다.
    유해는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2013년 후반 육군 주관으로
    <대전국립현충원>에 모실 예정이다.

    <국유단>은 2000년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이래
    국군 전사자를 7,400여 구를 발굴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83명만이 신원확인을 할 수 있었다.
    신원확인에 필요한 6.25전사자와 실종자 유가족들의 DNA 샘플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방부는 지금까지도 신원확인을 하지 못한,
    전사자 유해를 가족들의 품에 돌려 보내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유가족들이 가까운 보건소를 찾아 DNA 샘플 채취에 협조해 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