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길
이승만·박정희 죽이기 <백년전쟁>, <생명의 길>로 새빨간 거짓 들통나
논픽션을 실제인 양 가르친 80년대…가장 [反대한민국]적인 세대 양산
말과 행위의 左右 따지기 앞서 참·거짓 가리는 양식(良識) 살아있기를류근일
-
대한민국 현대사를 둘러싼 역사관(歷史觀) 전쟁이
2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다.
싸움을 일으킨 쪽은 <백년전쟁>이라는 동영상을 만든 사람들이다.
이 동영상에 따르면 이승만 박정희는 [친일파]라는 것이었다.
이게 클릭 수 200만을 넘어서면서,
"말도 안 된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반론이 일어났다.
그래서 나온 것이 <생명의 길>이란 동영상이다.
각계의 이승만 연구자들이 만들어 지난 4월 25일 유튜브에 올렸다.
왜 제목이 <생명의 길>인가?
이승만이 만든 길은 사람 살린 길, 김일성이 만든 길은 사람 죽인 길이란 설명이다. -
-
<생명의 길>은 <백년전쟁>이 12가지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문을 연다.
싸움의 대치선(對峙線)을 "사실이냐 날조냐, 진실이냐 허위냐?"로 긋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분별법이 아닐 수 없다.
좌(左)니 우(右)니 따지는 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그 말과 행위가 참이냐 거짓이냐를 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별은 인간 세상, 지식인 세상의 가장 일차적인 요건이다.
<생명의 길>이 꼽은 <백년전쟁>의 [새빨간 거짓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인 이승만과 젊은 김 노디 여인이 불륜 행각을 벌였다는 대목이다.
이걸 [증명]하겠다면서 <백년전쟁>은
이승만과 김 노디 여인이 당국에 붙잡혔을 때 찍힌 것 같은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 포토샵으로 조작한 가짜라고 <생명의 길>은 들춰냈다.
당시 미국의 사직 당국도 이 무고(誣告)를 [무혐의]로 끝냈다는 것이다. -
이승만의 프린스턴 대학 박사 학위논문이 엉터리라고 주장한 대목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게 정말 그렇게 허접스러운 논문이었다면,
미국의 유수한 대학출판사가 미쳤다고 그것을 상업출판까지 했겠느냐는 반박이다.
이에 대해 <백년전쟁> 쪽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재반박을 아직 내놓지 않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영 못하고 있어서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승만이 하와이 법정에 동포의 항일운동을 밀고했다"
"일본과 잘 지내자는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
"일본 감옥에 들어갔었다고 말했다"
"하와이 동포들의 성금을 가로챘다"
"백인 미녀들에게 돈을 뿌렸다" 운운에 대해서도,
<생명의 길>은
"그런 적도 없지만, 사실이라면 왜 박헌영이 이승만을 [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추대했겠느냐?"는 말로 반박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진보적인 주요 학자들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백년전쟁> 식(式) 이승만 박정희 죽이기를 비판하고 나선 점이다."압도적 농업 국가였고 민주주의를 해본 적도 없는 데다 거의 전쟁 상태였던 시기에 서구 민주주의를 왜 못하느냐고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아니다. (중략) 박정희 모델은 완전히 부정돼야 할 모델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최장집 전 고려대교수"공(功)은 보지 않고 일부 과(過)만 집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균형 감각을 잃은 것이다. 시아누크 같은 동남아 건국 1세대들을 여러 차례 만났는데, 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기여를 입을 모아 얘기했다."
-안경환 서울대교수/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생명의 길>과 두 학자의 견해는,
역사 서술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위조(僞造)와 편향(偏向)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효과를 낼 수 있는가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1912년, 영국의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지질학자 찰스 도슨은,
자신이 인류와 원숭이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발굴했다며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그 두개골을 [필트다운인(人)]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1953년, 케네스 오클리라는 학자는 그것이 날조임을 밝혀냈다.
문제는 거짓이 들통 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필트다운인]은 생물학 교과서에서 숱한 젊은 학도들을 감쪽같이 속여먹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순전한 픽션,
논픽션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픽션,
픽션으로 각색된 논픽션을,
마치 실제(實際)인 양
학교에서, 영화관에서, 출판물에서, 미디어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집요하게 쏟아부을 경우,
그 착시(錯視) 효과는 여러 세대를 갈 것이다.
80년대 편향된 이념 출판물들이 [가장 반(反)대한민국적인] 386, 486세대를 양산해냈듯이.
중요한 것은 그래서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닌 것은 아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말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필트다운인]은 정설(定說)이 돼버린다."한국 현대사의 뿌리는 친일"이라는 찰스 도슨 식 [창작 사극(史劇)]도 내버려 두면,
정사(正史)인 듯 돼버린다.<생명의 길>이 할 말을 다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케네스 오클리 같은 말하기의 작은 시작은 되었으리라 믿는다.
우리 사회에 그 정도 양식(良識)은 살아있다고 믿고 싶다.2013. 5. 7 <조선일보> 특별기고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