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 대통령이여!
    5천만 한국인을 북핵인질서 구출하라!

    -박근혜 대통령 방미에 부쳐-

                                             허문도 /전 통일부장관


  • 핵무력은 존재의 과시 자체가 공격이다.
    이는 종(種)의 절멸이 두려운 인류가 오늘에 도달한 핵전쟁의 방식이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벌거 벗은채 북 김정은의 핵공격 속에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인가.
    한 대에 동그라미가 13개 붙는 21조원인 B2 핵 스텔스 중폭격기를 한반도에 띄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알고 있는 것이다.

    핵전쟁을 각오하지 않고는 핵을 제거할 수 없다

    인류가 체험했던 유일한 핵전쟁인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교훈을 찾는다.
    쿠바 사태는 발화없이 끝난 핵전쟁이었다.
    최대의 교훈은 위협을 느끼는 상대의 핵무력은 이쪽이 핵전쟁을 각오하지 않고는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은 소련 최고회의 의장 흐루시쵸프와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의지의 대결이었다.
    먼저 도발한 것은 흐루시쵸프쪽이었다. 흐루시쵸프가 미국측과의 약속을 어기고 쿠바에 핵미사일을 갖다 놓은 것이 미국의 U2기에 발각됨으로써 위기는 발발한 것이다.

    흐루시쵸프가 핵전력에서 우위인 미국의 코앞 쿠바에 왜 핵미사일을 갖다 놓으려 했던가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세한 중론은 흐루시쵸프가 젊은 미국 대통령 케네디를 전쟁결단 같은 것을 하기 어려운 애송이로 본 것 같다는 것이다.

    흐루시쵸프의 평소의 미국관은 시인 로버트 프루스트와의 대화속에 이미 드러나 있었다.
    “아메리카인은 너무 리버럴해서 전쟁하기는 어렵다.”였다.
    위기의 전해 흐루시쵸프를 비엔나에서 만났을 때, 케네디는 흐루시쵸프에게 그해 봄(1961년 4월)에 있었던 피그만사건(망명쿠바인이 CIA 조종하에 카스트로정권에 쳐들어갔으나 실패)이 실책이었다고 실토했다. 이를 본 흐루시쵸프는 전쟁 앞에서 우유부단할 것 같은 케네디를 읽었다는 것이다.



  • 케네디 대통령의 미-소 전쟁 결단

    케네디 자신은 위기가 지나고 나서, 흐루시쵸프가 쿠바에 핵무력을 둠으로써 케네디의 용기와 미국이 행한 동맹에 대한 약속의 무게를 테스트하려 들었다고 믿었음을 케네디의 분신 같았던 스피치 라이터 시오도어 소렌슨은 썼다.

    실제로 전쟁 결단은 어려웠다.
    위기가 닥치고서도 해상봉쇄를 선언하기까지 1주일, 봉쇄선언하고 최후통첩하기까지가 1주일이었다. 신문과 의회의 여론이 세상이 뒤집어 진 듯 난리 친 공간의 시간은 압축된 시간이었다.

    길고긴 일주일, 케네디는 핵전쟁 결단을 앞두고 오뇌(懊惱)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다.
    국면에 뛰어들어 형의 결단을 도우면서 형을 윗가는 영재라는 평을 들었던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회고록에 적고 있다.

    10년전 앨리슨의 '북핵 외교실패' 예언

    지금부터 10년전에 이미 ‘북핵 문제는 230년 미국 외교역사의 최대의 실패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던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학 교수는 쿠바 미사일 위기 분석의 혁혁한 완결판 ‘Essence of Decision’의 저자로 유명하다.
    케네디 형제가 암살되어 쿠바사태 관련자료가 조기에 회고록 등으로 입수가 가능했던데다 하버드의 사회과학쪽의 학제적 축적을 종합적으로 딛고 설 수 있어서 앨리슨의 쿠바사태 분석은 완벽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 저서속에서 앨리슨 교수는 한 주(注)에서 흐루시쵸프 회고록의 아주 특수한 내용을 인용해 놓았다. 세계 으뜸의 문민우위 사회인 아메리카에, 케네디의 전쟁 결심지연으로 군부에 의한 쿠테타 발발의 가능성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핵전쟁의 각오는 어려웠음을 알려준다.

    이번에 만나는 박근혜, 오바마 두 대통령이 한번 읽어 보았으면 해서 좀 길지만 관계부분을 여기에 옮겨보겠다. 회고록의 그 부분은 주미 소련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이 대통령의 편지 사본을 들고 최후통첩하러 온 동생 케네디와 만나고서, 흐루시쵸프 앞으로 직접 보낸 보고서 그대로이다.

    마지막 경고 "미국 군부가 쿠데타 일으킬 것"


  • 『...로버트 케네디는 지쳐 빠진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의 상태로 보아 몇일간이나 수면을 취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자신도 여섯날 여섯밤 집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로버트 케네디는 대통령이 중대한 상황에 놓여있고, 어떻게해서 거기로부터 빠져 나오면 좋을지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필자 주:케네디형제 주변 지칭)는 비상하게 긴박한 상황하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군부로부터 쿠바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도록 강한 압력을 받고 있어요.
    도브리닌씨, 비공식 루트를 통해 대통령의 메시지를 흐루시쵸프의장에게 전해 주시오.
    케네디 대통령은 흐루시쵸프 의장이 그의 신청을 수락하여, 아메리카 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해 주도록 간청하고 있소. 케네디 대통령 자신은 쿠바를 두고서 전쟁을 시작하는 것에 대단히 반대이지만, 그의 의지에 반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분쟁의 해결을 위해 흐루시쵸프의장에게 직접 손수 부탁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만일 이같은 상황이 오래 끌면, 군부가 대통령을 타도하고 권력을 탈취 안 한다고 보증 못합니다.」...』(‘Essence of Decision'제6장 3절에서)

    '핵 상황'에서는 모든 문제를 핵이 좌우한다
  • 쿠바 미사일 위기의 두 번째 교훈은 핵위기속에서는 핵상황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핵상황이 벌어지면, 핵상황 중심으로 세상은 돌아가고 여타의 세상 모든 일은 핵상황의 연장에서 풀어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동생 케네디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1962년 12월16일 전화받고 대통령의 ‘집무실에 불려간 그 순간부터 10월28일까지 그것이 내생활의 모든 것이었다. 미국인한테도, 소련인 한테도, 또 전세계에게도, 그것이 그들의 생활의 모든 것을 점했다.』(13일간 -쿠바위기 회고록)

    핵상황이 벌어지면, 핵문제가 따로 있고 통일문제가 따로 있고,
    남북경협문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핵문제 해결을 남의 손에만 오래 맡겨놓고 있으면 핵문제와는 떨어져서 통일문제와 이런 저런 [프로세스]문제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착각이고 과욕이다.
    핵문제 해결의 연장선상에서 통일문제든 무슨 문제든 풀어낼 수 있을 뿐일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전진한다.

    박근혜-오바마는 5천만 한국인질을 구할 각오 있나?

    북의 3차 핵실험으로 한국의 북핵문제는 내용과 위상이 달라졌다.
    핵폐기 자체는 기약도 없이, 깨고 말 중간단계의 합의를 온갖 것 주어가며 이끌어 내느라 어정쩡한 포즈로 6자회담에 참석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한국의 북핵대응일 수는 없다.

    북의 3차 핵실험으로 5천만 한국인의 생명은 북핵의 인질구조 속에 들어가 버렸다.
    오늘의 북핵문제는 한국 국민의 생명을 핵인질상태에서 구출하는 일이 제일의 과제라는데에
    한-미 양정상의 눈은 가야 할 것이다.
    핵확산을 막고 북핵의 소형화, 탄두화를 막는 일은, 5천만의 핵인질부터 구출해 놓고 할 일이다.

    여기서 앞에서 보았던 쿠바미사일 위기극복의 교훈을 곱씹어본다.
    교훈이 알려주는 것은, 인질구조를 깨트리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핵병기를 제거하는 것인데, 그것은 전쟁각오로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인 5천만을 핵인질에서 구출하기 위해, 쿠바사태때의 케네디 대통령처럼,
    한-미 양 대통령들이 전쟁을 각오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아니라서, 그동안은 약발이 별로였던 중국의 외교수단에 기대를 걸면,
    지금부터는 효력을 발휘한다해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5천만의 생명을 핵인질 구조의 기약없는 시간속에 방치하는 것은
    책임감있는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전쟁각오가 어려우니까 인질구조를 타파하자면 핵억지 밖에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얘기가 아닌가.



  • 중국-베트남을 버린 미국, 이제 정신 차렸나?

    가장 확실한 핵억지력은 자체개발의 핵무력이다.
    무슨 얘기를 길게 할까만, 핵개발하느라 한-미동맹을 흔들 수는 없기에 차선책으로 가본다.

    미국의 전술핵 도입으로 반도 남북의 핵균형(패리티)이 기능적으로는 달성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남는다.
    한나라가 자국의 사활적 방어수단을 쉬 타국에 오래 기대고 보면,
    그 사회는 정신적 붕괴에 봉착하고 만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미국식의 기능주의 사고는 이런 측면을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있다.

    2차 대전이 끝나고서 중국대륙을 공산주의에 넘기게 된 것이나,
    베트남에서의 쓰라린 경험은 모두 미국이 한 사회의 정신적 붕괴요인을 통찰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임을, 지금쯤은 짚어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핵억지력으로서의 전술핵의 모자라는 점을 보완하는 방법은 무력이 아니고 자체생산한 핵력의 전략적 리저브를 보유하는 것일 것이다. 억지력으로서의 핵무력에 관해 다음의 등식이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핵무력의 억지력 = 도입전술핵 + 핵의 전략적 리저브(자체생산)

    핵의 전략적 리저브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에서 얻어질 뿐이다.

    한국인 5천만의 생명을 북핵인질에서 구출하고 북핵을 극복한 오바마, 박근혜 양 대통령의 인간동맹은 아시아, 태평양의 평화, 나아가서는 세계평화의 건설자로서 역사위에 우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