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賣國奴와 愛國者를 가른 李承晩의 위대한 연설

    李承晩의 공산주의자 배격 연설은
    한반도 정세를 賣國者와 愛國者, 파괴자와 건설자, 敵과 동지, 善과 惡으로 가른
    역사의 分水嶺(분수령)이었다.
  • 趙甲濟    

            1945년 12월19일 저녁 7시30분 李承晩은 서울중앙방송국(KBS)를 통하여
    ‘공산당에 대한 나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였다.
    그때 李 박사는 모든 정당과 政派(정파)를 통합한 汎國民 조직으로서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李 박사는 이 일을 방해하는, 朴憲永이 이끄는 공산당을 지목, 결별 선언을 한 것이다.

    당시 공산당은 대중 조직이 가장 강하였다. 30여년 만에 귀국한 李承晩은 카리스마는 있었으나 直系(직계) 조직은 없었다. 하지 사령관의 美軍政 당국도 공산당을 建國과정에 참여시키려고 하였다. 트루먼 행정부도 아직은 對蘇(대소) 봉쇄정책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이런 가운데 李承晩은 이 역사적 연설을 통하여
    공산당 극렬분자들을 반역자, 매국노, 사대주의자, 거짓선동가, 분열주의자, 소련 간첩단, 私利私慾(사리자욕)주의자, 文明파괴자라고 정확히 규정하였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자들이므로 국가 건설과정에서 함께 갈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 연설은 아마도 2차 대전 이후 공산당에 대한 세계 최초의 정면 대결 선언일 것이다.

  •    “(공산당 극렬분자들은) 제 나라를 파괴시키고 他國의 권리범위 내에 두어서 독립권을 영영 말살시키기로 爲主(위주)하는 자”

       “양의 무리에 이리가 섞여서 공산명목을 빙자하고 國權을 없이하야 나라와 동족을 팔아 私利와 영광을 위하여 부언낭설로 인민을 속이며, 徒黨(도당)을 지어 동족을 위협하며 軍器(군기)를 사용하야 재산을 약탈하며, 소위 공화국이라는 名詞(명사)를 조작하야 국민 전체의 분열상태를 世人에게 선전하기에 이르렀더니,
    요즈음은 민중이 차차 깨어나서 공산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매 奸計(간계)를 써서 각처에 선전하기를 저희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요 민주주의자라 하야 민심을 현혹시키나니, 이 극렬분자들의 목적은 우리 독립국을 없이해서 남의 노예를 만들고 저희 私慾(사욕)을 채우려는 것을 누구나 볼 수 있을 것이다.”


       李承晩은 선전 선동 부분에서 공산당에 결코 지지 않는 戰略과 기술을 가진 분이었다.
    그는 공산당이 소련을 ‘프롤레타리아의 조국’이라고 찬양하는 것을 약점으로 잡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분자들이 러시아를 저희 조국이라 부른다니, 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요구하는 바는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떠나서 저희 조국에 들어가서 저희 나라를 충성스럽게 섬기라고 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찾아서 완전히 우리 것을 만들어 가지고 잘하나 못하나 우리의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지고 살려는 것을 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의 形容(형용)을 하고 와서 우리 것을 빼앗아가 저희 조국에 갖다 붙이려는 것은 우리가 결코 허락지 않는 것이니, 우리 삼천만 남녀가 다 목숨을 내어놓고 싸울 결심이다.”

       李 박사는 박헌영 김일성이 이끌던 남북한 공산주의 세력의 본질을 정확히 간파,
    이를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이다. 이 자들이 스탈린의 졸개로서 소련을 위하여 봉사하는 賣國奴(매국노)들이란 점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폭로한 정치인은 해방공간에서 오로지 李承晩 한 분뿐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한국사람의 形容을 하고 와서 우리 것을 빼앗아 가” 소련에 갖다 바치려는 반역자로 묘사하였다. 한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소련을 위하여 복무하는 간첩들이란 지적이었다.

       공산주의가 세계적으로 得勢(득세)하던 시절에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표현인데, 적중한 예언이기도 하다. 68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한 분석이다.

    남한의 공산주의자들, 즉 從北(종북)세력은 민주투사나 한국인의 形容을 하고 있으나 賣國奴 김정은을 위하여 복무하는 간첩세력인 것이다.

       李承晩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공산주의와 싸우는 원리와 방법도 제시하였다.

       “먼저 그 사람들을 誨諭(회유)해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용을 모르고 따라 다니는 무리를 권유하여 돌아서게만 되면 함께 나아갈 것이오…”


       거짓선동엔 진실의 햇볕을 비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변할 수 없는 공산주의 골수분자들이 아니라 附和雷同(부화뇌동)하는 무리들을 설득의 대상으로 보았다.

       李承晩(이승만)은 교정이 되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은 ‘親父兄(친부형) 親子姪(친자질)이라도 원수로 대우해야 한다. 大義를 위해서는 愛憎(애증)과 親疎(친소)를 돌아볼 수 없는 것이다’고 못 박았다. 이른바 大義滅親(대의멸친)의 정신이다. 그는 이어서 공산주의자들을 파괴자, 민족주의자들을 건설자로 규정하였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건설자와 파괴자는 협동이 못되는 법이다.
    건설자가 변경되든지 파괴자가 회개하든지 해서 같은 목적을 가지기 전에는 완전한 합동은 못된다.”


       李 박사는 左右합작이 좌익득세-공산화로 가는 길이란 점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東歐의 공산화 과정을 연구한 사람들은 소련군의 압박보다는 左右합작이 공산화를 가능하게 한 더 큰 요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좌익은 합작정부에서 군대와 경찰을 장악, 반대세력을 침묵시키고 완전한 공산화 과정을 밟는다.

       李 박사는 끝으로 이렇게 호소하였다.

       “이 큰 문제를 우리 손으로 해결치 못하면 종시는 다른 해방국들과 같이 나라가 두 切分으로 나뉘어져서 동족상쟁의 禍(화)를 면치 못하고, 따라서 우리가 결국은 다시 남의 노예 노릇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경향 각처에 모든 애국애족하는 동포의 합심 합력으로 단순한 民主政體下에서 국가를 건설하야 만년무궁한 자유복락의 기초를 세우기로 결심하자.”


       이 연설은 70세 老鬪士(노투사)의 위대한 先制공격이었다.
    급소를 얻어맞은 조선공산당 박헌영은 중앙위원회 대표 명의로 ‘세계민주주의전선의 분열을 책동하는 파시스트 이승만 박사의 성명을 반박함’이라는 長文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표현은 극렬했지만 守勢的(수세적)일 수밖에 없었다. 박헌영 등 공산세력이 주도한 좌익의 통일전선체인 조선인민공화국은 李承晩이 귀국하기 전에 그를 主席으로 추대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래 놓고 그를 파시스트라고 공격하니 국민들에겐 잘 먹히지 않았다.
    대중의 李承晩에 대한 신뢰는 공산당의 선전 선동이 무너뜨릴 수 없을 정도로 국민들 가슴 속에 깊은 뿌리를 박고 있었다.

       李承晩이 공산당을 賣國세력으로 규정한 지 1주일이 지난 12월2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美, 英, 蘇 3國 外相 회담은 남북한에 대한 5년 기한의 신탁 통치안을 발표하였다.
    金九, 李承晩이 주도한 反託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朴憲永의 조선공산당은 熱火(열화)와 같은 민심에 동요하여 贊反(찬반)을 정하지 못했다. 지령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헌영은 서울 주재 소련영사관을 찾아가 지침을 받으려 했으나 영사관측은 본국으로부터 훈령을 받지 못하였다고 했다. 박헌영은 12월28일 밤 비밀리에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갔다.
    그는 김일성 등 조선공산당 북조선 分局 간부들에게 신탁통치에 대한 남한의 民心이 반대쪽이라고 설명하였다. 김일성도 어쩔 줄 몰라 하였다.

    모스크바에 갔던 북한주둔 소련군 民政사령관 로마넨코가 평양으로 돌아온 다음날 朴憲永에게 지침을 하달하였다. 신탁통치를 결의한 모스크바 협정을 지지하라는 것이었다.

    朴憲永은 1946년 1월1일 밤 평양을 출발, 2일 새벽 서울에 도착, 김일성과 보조를 맞추어 조선공산당 이름으로 모스크바 협정, 즉 신탁통치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李承晩의 1주일 전 예언대로 극렬공산주의자들은 民心을 거스르고, 소련의 지령에 충직하게 복무함으로써 회복이 불가능한 敗着(패착)을 두었다.

    좌익은 賣國세력, 우익은 民族진영이 된 것이다.
    右翼(우익) 주도의 反託, 좌익 주도의 贊託(찬탁)政局은 김구의 臨政(임정)세력을 오른쪽으로 몰았다. 그 뒤 한 동안 李承晩-金九 연합전선이 형성되면서 좌익은 더욱 고립된다.

       李承晩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先制공격으로 역사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가 2010년 한국 대통령이었다면 연평도 도발 직후 평양의 금수산 기념궁전을 폭격하도록 명령하여 김일성의 屍身(시신)을 날려버리고 김정일-김정은을 昏絶(혼절) 시켰을 것이다.

       李承晩의 공산주의자 배격 연설은 한반도 정세를 賣國者와 愛國者, 파괴자와 건설자, 敵과 동지, 善과 惡으로 가른 역사의 分水嶺(분수령)이었다.
    오늘의 한반도 정세는 그 연설의 결과물이다. 공산당엔 공세적으로 나가야 이긴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금명간 이런 연설을 한다면 從北세력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