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신화포럼 /선진화포커스 제129호>
    대한민국의 정통성(正統性)

    김 상 덕   /동국대학교 산학협력 글로비즈 원장

     
    대한제국의 선포

      1883년 대원군의 집권 10년이 되던 해, 고종에게 권력이 이양되면서 고종은 ‘구본신참(舊本新參: 전통문화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자는 이론)’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문호개방과 개화사상에 입각한 외교통상을 확대해 나갔다. 또한, 1897년에는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선포하고 대·내외에 한반도를 정통성 있는 독립국가로서 천명했다.

      그러나 1910년, 한일 강제병합으로 국명을 일본에 빼앗기고 정통성을 상실하게 된 대한제국은 ‘일제강점기’라는 거칠고도 굴곡진 역사를 맞게 된다. 35년이 지난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된 조선은 미국과 소련의 이해 관계에 의해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고, 국왕도 대통령도 없는 무정부의 상태로 남겨진다.

    대한민국의 건국


      1948년 8월 15일, 국민의 열망으로 일궈낸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은 어쩌면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부터 정통성을 이어받은 건국이 아니었을까. 당시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이승만은 이어 국회의장으로 피선되고 대통령중심제의 헌법을 제정·공포하며 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건국 후, 미국의 원조에 대부분을 의존하던 한국경제는 1950년 6월 25일, 새벽을 기한 북한의 기습 침략으로 완전 파탄은 물론이며 자립의 기능마저 상실하게 된다.

      다행히 우리는 맥아더가 이끄는 유엔군의 힘으로 빼앗긴 국토를 다시 찾을 수 있었고 세계 역사상 유례 없는 60년의 긴 휴전 속에서도 오늘날의 눈부신 번영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통성의 시비는 있을 수 없는 논리임에 불구하고, 믿어야 할 역사적 진실이 종북·좌파의 선동에 퇴색되고 있다.

    4월 19일 학생의거와 이승만 대통령


      필자는 1960년 4월 19일,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비록 고등학생이었지만, 국가의 미래를 걱정했고 3·15 부정선거의 무효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다.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운명, 권력과 폭력 앞에서 국민은 힘이 없습니다. 우리 학생은 맨 주먹 밖에 없습니다. 정의를 위하여 싸우는 우리 학생에게 용기를 주십시오’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며, “독재정권 물러나라, 공명선거 다시 하라, 부정선거 무효, 정의를 위해 싸우는 학생을 잡아가지 마라, 민주주의가 사라졌다”라고 외쳤다. 당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고등학생들의 노력은 마치 ‘구국의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고등학생들의 정의로운 투쟁과 희생으로 결국 자유당정권은 무너졌고, 이승만 대통령은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민이 원한다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담화와 함께 하야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불의를 못 참는 애국청년들아 장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하와이로 망명하면서 의전차를 제공한 청와대에 “이 차는 공적으로 대통령 전용이지, 나는 이제 이 차를 이용할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다”라고 거절하면서 일반차를 타고 공항으로 떠났다고 한다. 나는 올바른 국가관과 정의로 불의에 앞장섰지만 냉정하게 그 분을 평가하게 되었다.

      1945년 해방 직후, 러시아 사회주의 물결과 남북 간 이념대립이 격렬한 상황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세계 최빈국의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기틀을 갖추어 대한민국의 국가체제를 만들어간 업적은 참으로 높이 평가해야 하며, 대한민국 건국 자체만으로도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이제 우리 박근혜 정부는 틀어진 국가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바로 잡아 젊은 세대가 올바른 국가관과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한 존엄성과 긍지를 심어줄 수 있는 교육으로 우리의 젊은 세대가 세계 속에서 자부심을 갖고 한국 사회의 선진화에 다양하게 이바지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