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몸' 주제 별로 재편집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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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명저들은 흔히 너무 두껍고, 권위적이어서 우리를 기죽이고 억압하기 일쑤다.
    완본으로 읽어야 한다는 위선적인 아카데미즘은 독자의 죄의식을 이중으로 배가시킨다

    플라톤의 예술노트플라톤의 몸 이야기는 박정자 교수가 플라톤의 방대한 저작을 예술이라는 주제 별로 발췌하고 재편집했다.

     

    플라톤의 예술노트, 플라톤의 예술론을 한 권의 책으로 마스터


    플라톤의 예술론과 이데아 사상을 이 한 권의 책으로 마스터할 수 있다.

    플라톤의 예술 이론은 국가’ 10권에 수록돼 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침대가 있는데, 화가가 그린 침대는 실재에서 세 번째 단계에 떨어진 침대다. 그러므로 회화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왜 세 단계 떨어진 것인가?

     

    이데아 사상을 모르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플라톤에게서 실재(the real)의 세계는 이데아의 세계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계는 실재에서 떨어져 나온 모방(미메시스)의 세계이며, 현실 속의 침대를 그린 회화 작품은 그 모방을 또 한 번 모방함으로써 실재에서부터 세 단계 떨어진 모방이기 때문이다.

     

    이데아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 6권과 7권의 독서가 필수적이다. 6권은 좀 더 이론적인 설명이고, 7권은 동굴의 우화를 통해 좀 더 쉽게 접근한 설명 방식이다편저자는 예술이라는 주제의 하이라이트를 위해 국가10권에서부터 7, 6권으로 나아가는 역순서를 택한다.

     

    또한 국가’ 2권과 3권의 내러티브 이론을 잠시 소개한다. 연기(演技)와 서사(敍事)라 할 미메시스와 디에제시스의 설명이 들어 있어 내러티브 이론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국가’ 2권과 3권에 나오는 미메시스는 모방이라는 의미는 같지만 국가’ 10권에서의 논의와는 약간 편차가 있다. 2~3권에서의 미메시스는 디에제시스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각기 연기와 내레이션의 의미다.

     

    쉽게 예를 들자면 TV 역사 드라마에서 탤런트들이 연기하는 부분은 미메시스이고, 중간 중간 성우가 극중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은 디에제시스다.

     

    인간의 행동을 모방한다는 좁은 의미의 미메시스가 국가’ 10권에 이르러 예술 전반을 지칭하는 말이 됐고, 그것이 수천 년간의 서양 미학의 근간이 됐다.

     

    단순히 내레이션을 의미하던 디에제시스도 요즘에는 영화나 소설 등 작품의 내적 공간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슬라보예 지젝의 영화 비평에서 우리가 흔히 발견하는 디에제시스의 기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몸이야기, 사랑의 기술, 죽음의 기술, 그리고 동성애


    동성애자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플라톤의 파이돈향연에서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발췌해 엮었다.

     

    두 대화록의 주제는 사랑의 기술(ars amatoria)과 죽음의 기술(ars moriendi)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두 가지는 모두 몸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향연의 원제인 Sumposion은 헬라스(Hellas, 고대 그리스)어로 함께 마신다는 뜻이다. 특정 주제를 놓고 여러 사람들이 각기 자기 의견을 말하는 요즘의 토론회 또는 학술대회의 기원이다.

     

    향연은 아가톤의 연극 대회 우승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사랑(에로스)’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나눈 이야기의 기록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가 지식 사회에 만연했던 관행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향연을 통해 알 수 있다. 동성애는 고도로 지적인 남성들의 지적인 생활방식으로 여겨졌고, 지식이 많은 어른이 젊은이에게 지식과 덕성을 전해 준다는, 일종의 청소년 교육의 개념까지 담고 있다.

     

    즉 단순히 성적인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지적 수준이 높은 남성들 사이의 지성적인 교류로 간주됐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여 사제(司祭) 디오티마(priestess Diotima)와의 대화 형식을 통해 플라톤은 사랑의 최종적인 정의를 내린다.

     

    사랑이란 자신에게 좋은 것(the good)을 갖고 싶어 하는 것.”

     

    “‘자신에게 좋은 것이란 결국 자신에게 유용한 것혹은 자신에게 쓸모 있는 것이라는 의미다.”

     

    -‘국가’ 2379 b~c


     

    향연사랑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라면 파이돈죽음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먹고 죽기 직전 제자, 친구들과 나눈 대화록이다. 이 대화록에는 육체에 대한 영혼의 우위가 구구절절 제시되고 있다.

     

    우선 순수하고 영원하고 불멸하며 불변하는 신적인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영혼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영혼이 제 자신에 돌아가기만 하면 언제나 이 세계와 함께 있을 수 있다.

     

    영혼은 불변하는 것과 사귐으로써 그 자신은 불변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부르고 함께 모인다는 것이 나중에 친화력(affinity) 이론이 됐다.

     

    플라톤은 영혼의 이러한 상태를 지혜라 한다.

     

    그러나 육체의 여러 가지 욕망과 쾌락에 정신이 팔린 영혼은 마침내 육체적인 것이 그 본성에 스며들어 결국 육체적인 것에 매이게 된다.

     

    플라톤은 쾌락과 고통을 에 비유한다.

     

    쾌락과 고통은 영혼을 육체에 못박아 결부시켜 영혼을 육체에 못박아 결부시켜 영혼을 육체와 닮게 하고, 육체가 옳다 하는 것을 같이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신들의 세계에 들어가 신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철학을 하고 육체를 완전히 해탈해 깨끗하게 된 사람에게만 허락된다.

     

    그래서 철학은 다름 아닌 죽음의 연습이다. 육체에서 해탈할 것을 일생 동안 연구하며 항상 죽음을 연습하는 영혼은 죽음에 이르러 온갖 과오와 우매, 공포와 야욕에서 해방돼 마침내 신적이고 불멸하며 예지적인 세계에 다다르게 된다. 이후 영원토록 신들과 함께 있게 된다.

     

    플라톤은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한다.

     

    결국 인간의 행복은 죽음에 이르러 드디어 얻어지는 것이고, 육체란 악의 덩어리일 뿐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다.

     

    향연에서 전개된 아름다운 에로스 예찬이라든가, 소년애(少年愛) 찬미, 그리고 우화적 사랑의 기원이 인간의 감각적 육체에 대한 강렬한 긍정이었다면, 육체를 극도로 경멸하는 파이돈의 담론은 육체에 대한 극도의 경멸이다.

     

    편저자가 플라톤의 몸 이야기라는 도발적인 제목 아래 파이돈향연을 한데 묶어 엮은 이유다.

     

    플라톤의 몸 이야기, 플라톤의 현대성


     플라톤에는 현대 사회의 관심사인 동성애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포스트모던 철학의 거의 모든 모티프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플라톤의 이론을 기초로 하고 있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는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우화 중의 하나다.

     

    평생을 목과 발이 묶인 채 앞만 바라보고 있는 동굴 속 죄수들이 있다. 그들은 동굴 밖의 실제 세계는 알지 못하고 벽면에 지나가는 그림자를 실재(實在)로 알고 있다.

     

    이 우화는 이데아 사상을 아주 쉽게 설명하는 효율적인 이미지다. 동굴 안은 가시적인 현상의 세계들, 동굴 밖은 지성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실재(實在)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를 비유하고 있다.

     

    영화 메트릭스는 이 동굴 우화의 디지털 버전이다. 인간을 하나의 거대한 건전지로 만들어 놓은 로봇들은 더욱 많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얻기 위해 모든 인간들의 정신을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 속에서 일뿐 실제로 그들은 기계에 코드가 꽂힌 채 꼼짝 못하고 앞만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실은 허깨비의 그림자 세계에 불과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실은 이와 같은 가상의 세계가 아닐까?

     

    이 메트릭스적 사유가 오늘날 무수한 영화와 소설의 주제로 변주되면서 현대인의 불안한 감수성을 사로잡고 있다.

     

    제조자, 예술가, 사용자(user) 중 사용자가 으뜸이라는 플라톤의 말도 요즘 유저의 중요성과 관련해 흥미로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