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향판(鄕判)과

    광주-순천 향판의 차이

    마약 사범들, “잡혀도 대구서 잡히면 안 된다“


    오 윤 환

  •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의 양승태 대법원장 초청 토론회를 주시했었다.
    광주지법 순천지원의 사학비리 주범에 대한 석연치 않은 ‘보석’으로 [향판](鄕判)의 폐해가 하늘을 찌른다는 비난이 쏟아진 직후였기 때문이다.
    신문-방송 편집인들의 토론답게 정중하면서도 치열한 문제제기와, 속시원한 답변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토론회에서 양 대법원장에게 [향판]의 폐해를 추궁했다거나, 그에 대한 답변이 있었다는 뉴스를 접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3일 전 양 대법원장은 법원출입기자들과의 산행에서 순천지원 [향판]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언론에서 '향판'이라 지칭하는데 비하적인 측면이 있다"며 "지역법관이라는 용어가 맞다"고 [향판]을 옹호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 토호들과의 유착은 법원만의 문제가 아닌데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법원장회의를 통해 지역법관들에게 고마움과 신뢰를 전달해주길 당부했으며 지역법관들이 상처 받지 않기를 빈다”고 말했다.
    오히려 향판들을 위로-격려했다는 것이다.

    [향판]을 언급하긴 했으니, 출입기자들이 신문-방송편집인들보다 나은 편인가?


    양승태 대법원장이 [향판]을 감싸고 돈 며칠 후, <한국일보>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혈연·지연·학연 안 통하네"… 향판 많은 대구 '서릿발 판결' 유명 왜?


    대법원 최고 관계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기사에 소개되어 있다.

    "향판이 가장 많은 대구가 양형은 전국에서 가장 세다."

    "대구는 지역법관이 가장 많은 곳이지만 지역변호사와는 밥도 먹지 않는다."


    대구의 경우, 고등법원 17명 중 15명, 지원을 포함한 대구지법 부장판사 37명 중 31명이 향판으로 어느 지역보다 향판 비율이 높다고 한다.
    한마디로 혈연ㆍ학연ㆍ지연으로 법관들이 인간관계 유혹에 얽히기 쉬운 상황.
    그런데도 판결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기사는 대구에서 개업중인 변호사 A씨의 다음과 같은 발언도 소개했다.

    "마약 사범들 사이에 '잡혀도 절대 대구에서 잡히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다른 곳에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나올 것도 대구에서는 실형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20년 경력 변호사 B씨는 "동기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자 아예 형사사건 수임을 중단하는 변호사도 봤다“고도 했다.


  • [향판]의 문제는 순천지원 최영남 부장판사가 1,400억원의 학원비리로 구속된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씨와 대학 총장 등 공범 3명을 무더기로 풀어줌으로써 불거졌다.
    최 부장판사는 뇌물을 받아 구속된 장만채 잔남교육감도 풀어준 주인공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1년간(2011년 9월∼2012년 8월) 순천지원의 보석 청구 123건 가운데 68건이 허가돼 보석허가율이 무려 55.2%에 이른다.
    구속된 피의자 절반 이상이 보석만 신청하면 풀려났다는 얘기다.
    한때는 그 비율이 60%를 넘은 경우도 있다.

    같은 기간 광주지법 본원 47.3%(192건 중 91건)보다 높은 수치다.
    순천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광주지법의 보석율도 전국평균 39.3%보다 훨씬 높다.

    최영남 부장판사가 순천 [향판]의 상징이라면, 선재성 부장판사는 광주 [향판]의 표상이다.
    선 부장판사는 광주지법 파산부 재판장으로 있던 2011년 1월 26일, 자신이 맡은 법정관리 기업체 감사와 괸리인에 자기 [친형]과 [운전기사]를 밀어 넣었다.

    그걸로도 부족해 친구 변호사를 3개 기업 감사로 선임했고, 또 다른 친구에게는 4개 기업의 공동관리인과 감사를 맡겼다.
    고교 동창 강모 변호사와의 온갖 추잡한 거래도 적발돼 검찰에 기소됐다.
    그 과정에서 광주지법 판사들은 검찰이 낸 선 부장판사 수색영장을 [무시]하며 기각시켜 주었다.
    검찰이 선 판사를 기소하자 광주지법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 했다.
    [향판] 비리의 극치다.

    대법원이 그를 서울로 끌어올려 서울고법재판에 회부했다.
    하지만 그에게 선고된 형량은 [벌금 300만원]이다.
    그는 [법관직도 유지]했다.

  • [향판]의 극치는 김대중 정부시절의 박상천 법무장관이다.

    서남학원 이홍하씨는 1998년 12월 교비 409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당시 박상천 법무부장관은 그를 사면·복권에 포함시켰다.
    2심 선고 2개월 만이다.
    이씨는 2심 판결 직후 상고를 포기했다.
    박 장관으로부터 사면 복권을 귀띔 받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 장관과 이씨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짜고 친 고스톱]이다.

  • 왜  [광주-순천 향판]은 솜방망이고, [대구 향판]은 ‘포청천‘ 같을까?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향판]에 부정적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양 대법원장에게 향판의 폐해를 추궁하는 것은, 광주-순천의 최영남, 선재성 판사같은 [향판]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양 대법원장이 “지역 토호들과의 유착은 법원만의 문제가 아닌데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지역법관들에게 고마움과 신뢰를 전달해주길 당부했으며 지역법관들이 상처 받지 않기를 빈다”고 말한 대상에 [광주-순천]이 포함되지 않았기만 바란다.

    검찰-경찰-국세청 등 토착세력과 비리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권력기관 기관장의 경우, 연고지 배치를 배제하는 제도가 [향피](鄕避)다.
    우리나라처럼 [인맥]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향피]는 공정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바로 이런 공감대에서 검찰 등 이른바 힘있는 기관에서는 [향피]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향피] 취지를 외면하고 [향판]이라는 낡아빠진 제도를 고집하는 곳이 법원이다.
    법관들은 김능환 전 대법관이 임기를 마치고 부인이 하는 슈퍼마켓 알바로 일하는 모습에서 금도를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