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서화 장편소설 '레드'-2
  • <84> 작은 포구

     
    “아마 지금쯤은 남조선 당국이 자신들의 앞마당이 뚫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오.”
    “그래도 남조선의 탐지능력으로는 어쩌지 못할 걸요.”
    “맞소. 허둥대다 흙탕물만 일으키고 물고기는 결국 놓치겠지.”
    “아! 바다가 마치 보석화 같지 않아요?”
    “맞소. 마치 태풍의 눈 속에 들어온 것처럼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군.”
    “그러게 말이에요. 푸른 바다를 보니까 오랜만에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요.”
    “때맞추어 바다까지 잠잠해진 걸 보니 우리의 영웅적인 귀환에 대한 암시 같소.”
    “그런데 이 비밀아지트는 어떻게 준비한 거죠. 해안가라 요새처럼 방어와 탈출도 용이하고, 더구나 주변에 민가까지 없어 비밀아지트로 사용하기엔 최적인데요.”
    “부사장이 알아봐 준 것이오. 그리고 현재 남조선 군·경의 주요 작전 지역과 포위범위, 그리고 차단 위치를 우회하는 방법까지도 알려주었소.”
    “예상은 했지만 우리의 혁명과업수행에 그 정도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니 왠지 미안한데요. 그런 사람을 의심했으니 말이에요.”
    “그렇소. 부사장에게는 정말 위험하면서도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오. 그러니까 우리는 반드시 살아서 남조선을 빠져나가야 하오.”
    “물론이에요.”
    새벽 3시가 넘자마자 어부들이 포구에 나와 조업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오전 7시 30분쯤이 되자 조업을 마친 배들이 하나둘씩 포구에 닻을 내렸다. 눈부신 영혼가루가 흩뿌려진 작은 포구는 출어를 다녀온 배가 토해낸 생선의 비린내로 흥건했다. 그때 한 사내가 포구의 절벽을 두리번거리며 기어오르더니 곧장 오두막으로 숨어들었다.
    “은혁 동무, 주변 정찰 결과는?”
    “우리가 움직일 동선엔 파출소 외에 군부대나 경찰서 등 특별히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갈 변수는 없었습니다. 마을의 분위기도 비교적 조용했습니다.”
    “좋소! 이젠 거의 끝난 것 같소. 적후의 미시리들이 제아무리 날뛰어도 여기서의 상황변화는 불가능하오. 적들이 짬수(눈치)를 챘을 때 우리는 이미 남조선의 영해를 벗어나 있을 것이오.”
    “훗! 적들의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 조금은 아쉬운데요.”
    “그럼 적후를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바다의 신에게 감사의 표시로 제물이라도 바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호! 제물이라. 하긴 조선 서해에 인당수가 있긴 하죠.”
    “인당수요? 홍화 동무, 그게 뭡니까?”
    “우리 민족의 고전소설 중에 『심청전』이라고 있어요. 어느 날 효녀 심청이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치면 눈먼 아바지가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들어요. 그래서 조선 서해의 용왕신에게 제물로 바칠 처녀를 사러 다니는 뱃사람에게 자기 몸을 팔아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는 내용이에요.”
    “아, 예.”
    “은혁 동무, 누가 좋을까요?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저 반역자는 어때요?”
    “!”
    “반역자의 말로는 항상 비극이라는 교훈도 얻을 수 있잖아요?”
    “홍화 동무, 벌써 잊었소. 저 반역자는 우리의 남조선 혁명과업을 증명할 전리품이오.”
    “아, 그렇지. 그럼 누가 좋을까? 가만! 그럼 배려심 많은 은혁 동무가 다른 조원들을 위해서 영웅적으로 희생하는 건 어때요?”
    “하하하, 홍화 동무 농담입니다. 다들 너무 긴장하시는 것 같아서.”
    “아니오, 은혁 동무. 동무의 말처럼 우리가 적후를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영웅적인 흔적은 반드시 필요하오. 그래야 당과 조국도 우리를 보다 확실히 인정할 것이오.”
    “또한 남조선의 적들에게는 회복할 수 없는 패배의 좌절감을 안겨주고요.”
    “맞소. 제물을 바다에 바침으로써 우리의 예언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오.”
    “…….”
    은혁은 피오기의 무심한 눈빛이 독침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사실 피오기는 비록 체구는 작지만 굉장히 잔인한 공격력을 갖춘 괴물이었다. 그래서 적후에 침투해 적의 방어작전을 교란하고 전술표적을 선별적으로 타격하는 혁명전사로서는 아주 실용적이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너무 사악하고 파괴적이라 한 공간에서 숨을 쉰다는 사실만으로도 섬뜩했다. 때문에 은혁은 이 살인기계의 감정상태를 늘 확인했다. 그리고 한순간도 긴장상태를 늦추지 않았다.
    “끼륵끼륵! 끼륵끼륵!”
    그때 갈매기가 높이 날며 울었다. 갈매기가 높이 난다는 건 미래가 희망적이라는 상징처럼 보였다. 피오기가 자리를 벗어나 영역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야수처럼 오두막의 서쪽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은혁은 사전답사한 해안가의 작은 포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침입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피오기는 재빨리 침입자의 접근사실을 두 사람에게 손가락말(수화)로 알렸다. 홍화가 먼저 잽싸게 화기부터 챙겼다. 그리고 요리를 하는 것처럼 싱크대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 사이 은혁은 지원을 간이침대로 옮겨 잠이 든 것처럼 이불로 덮어 위장했다.
    “똑! 똑! 똑!”
    “누구세요?”
    “저는 마을 이장입니다. 잠깐 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왜 그러시는데요?”
    “다름이 아니고……. 모두가 처음 뵙는 분들이신데 혹시 이 오두막을 별장으로 사셨다는 서울분이신가요?”
    “그런데요. 날씨가 좋아서 바다낚시나 하려고 새벽에 서울에서 내려왔어요.”
    “예, 그럼 북한에서 무장공비가 내려왔다는 뉴스도 보셨겠네요. 그래서 현재 이 지역을 포함한 서해안 일대가 해안 경계작전구역에 포함됐습니다.”
    “그래서요?”
    “그러니까 수시로 헬기가 지나다니고 군부대 병력과 장비의 기동으로 소음이 발생하더라도 놀라지 마시라고요. 그리고 군·경이 검문검색을 하고 있으니까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겉으로는 같은 민족으로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떠들면서 뒤로는 끊임없이 간첩들을 내려 보내고 도발을 일삼으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족속들이라니까요.”
    “!”
    “더구나 어떻게 북한 주민 1년치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을 로켓발사로 날려버리는지. 그렇게 주민들을 학대하면서 왜 나라이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하는 건지 전 당최 모르겠습니다.”
    “…….”
    “아무튼 가급적이면 위험 지역의 접근도 자제해주시고요. 아참! 혹시라도 수상한 사람을 보시면 바로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서, 국가정보원에 신고해 주십시오. 그러면 엄청난 포상금도 받습니다. 자그마치 5억이랍니다. 5억요.”
    “말씀 다 하신 건가요?”
    “왜요, 돈에는 관심이 없으세요? 하긴 서울 분들이니 돈이야 많겠죠.”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날백정(악독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백정)들이 우리의 눈에 띄겠습니까.”
    “하긴 그도 그러네요. 아무튼 즐거운 시간 보내시다 가십시오.”
    “아, 예.”
    “가만!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뭐가요?”
    “날백정이 혹시 북한말 아닌가요?”
    “!”
    “헉!”
    “동무, 동무는 지금 아주 큰 실수를 했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크크크.”
    “살려주세요. 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뭘 못 봐. 이 종간나 새끼야! 아가리 닥치고 조용히 들어오라.”
    “헉! 으으으.”
    “부조장 동무, 이 종간나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은혁 동무가 알아서 처단하시오.”
    “아까 북조선에 대해 잘도 떠벌이더군.”
    “잘 모르고 그랬습니다. 다음부턴 절대로, 헉! 살, 려…….”
    “동무, 그런데 어쩌지. 그러기엔 너무 늦은 것 같은데. 나머지 흥정은 저세상에 가서 해야겠어.”
    피오기가 다시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이장의 관자놀이에 겨누고 있던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이 홍화에게 건네졌다. 은혁은 가볍게 몸을 풀 듯 손가락의 관절을 꺾으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식자마자 3·4번 경추가 우두둑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이장은 입을 벌린 채로 낯빛이 검게 변했다. 동시에 이장은 물먹은 솜처럼 은혁의 품에서 축 늘어졌다.
    “동무는 자신의 운명과 무모한 도발이 죽음을 부른 거야, 알겠어? 남은 시간은 동무에게 허락하지. 크크크.”
    아침이 밝았다. 하지만 군·경은 아직도 무장간첩들의 흔적을 찾지 못해 깊은 수렁에 빠져 절치부심했다. 대간첩작전도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해군의 이 준장.”
    “예, 소장님.”
    “현재 북한의 상어급 신형잠수함 4척이 기지를 출항한 뒤 행방이 묘연하다던데…….”
    “사실입니다. 북한의 상어급 신형잠수함(K-300)의 행적과 구체적인 위치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해를 맡고 있는 해군 1함대는 사라진 잠수함의 침투가능성에 대비해 한국형 구축함과 호위함, 초계함 등 전력을 총동원해 대대적인 대잠경계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상어급 잠수함이 과거에도 여러 번 사라진 것으로 압니다. 대체 북한 잠수함이 번번이 우리 해군의 감시망에서 빠져나가는 이유가 뭡니까?”
    “무엇보다 스텔스기술의 발달을 들 수 있습니다. 현재 각국의 모든 잠수함이 실내의 소음과 소나(수중음파탐지기)로부터 송신된 음파에너지의 반사를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흠…….”
    “더욱이 동해는 수심이 얕은 서해에 비해 북한이 잠수함작전을 펼치기에 유리한 수중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건 육군이나 공군지휘부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오. 잠수함의 천국이라 불린다고.”
    “그렇습니다. 현재 북한은 로미오급(1,800t급) 잠수함을 비롯해 총 70여 척의 잠수함 및 잠수정을 보유·운영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해는 수심이 깊어 북한 잠수함의 은밀한 침투가 쉽고, 한류와 난류가 교차돼 수중에 자주 생기는 물덩어리인 수괴(水塊)가 레이더와 소나를 교란시킵니다. 또한 해수의 밀도가 해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해군의 탐지능력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때문에 북한은 잠수함 전력의 70~80%를 동해안 잠수함기지에 집중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 사라진 상어급 소형잠수함은 어디서 출항한 것입니까?”
    “함경남도의 신포시에 위치한 마양도해군기지입니다.”
    “마양도?”
    “예, 특이하게도 동해에 있는 북한의 잠수함 전력의 주요 배치기지는 모두 함경남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양도를 비롯해 차호(遮湖), 낙원(樂園), 원산(元山) 모두 그렇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해군기지가 차호와 마양도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민감한 시기에 북한의 상어급 신형잠수함들이 감시망에서 사라졌느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해군 측의 분석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현재로선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단지 조심스럽게 몇 가지로 추정해 볼 수는 있습니다. 첫째로는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우리 군이 새로 구축한 대잠작전능력과 대응태세를 시험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둘째로는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통상적인 훈련의 일환으로 특이사항이 아닐 경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장군님이 염려하시는 것처럼 남파된 무장간첩들을 이송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하하는 경우입니다.”
    “결국 어느 것이든 북한이 의도적으로 긴장을 조성하려는 목적이 숨어있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그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북한 잠수함이 곧장 남하했다면 지금쯤 어디에 이르렀을 것으로 예상합니까?”
    “아마도 현재는 강릉 지역까지 남하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건 무장간첩들의 예상 도주 지역이 강릉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거기다 확률은 희박하지만 최근 증강된 비대칭전력으로 기습공격의 가능성마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비대칭전력의 증강은 우리 육군에게도 위협입니다. 현재 북한 육군도 평양 이남에 전력의 70%를 전진배치해 놓은 상태입니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갱도진지에 숨겨놓은 170㎜ 자주포와 240㎜ 방사포의 경우 수도권에 집중포화를 퍼부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 유사시 언제든 기습공격이 가능한 20만 명의 특수전 부대가 있어 우리에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신형전차 ‘폭풍호’의 작전배치로 전차 전력의 기동력과 타격력도 보강됐습니다. 때문에 현재 북한군의 작전적 융통성이 매우 높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섣불리 군 병력을 이동시키는 것도 상당한 위험성이 따릅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범국가적으로 정교한 대응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됩니다만.”
    “그건 그렇습니다. 하긴 잠수함의 남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전략적으로 군 병력의 일부를 재배치하는 건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될 수밖에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지휘부는 무장간첩들이 포위망을 완전히 벗어났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합동조사반의 분위기도 긴장감을 넘어 점점 살얼음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현우는 상황실을 나와 커피를 뽑아들고 연병장의 나무 그늘로 갔다. 아침부터 햇살은 살가웠다. 거기다 바람도 티 없이 맑고 시원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지원의 웃음소리 같았다. 현우가 처음 지원의 집을 방문했을 때 돌로 만든 벽난로 위에서 프랑스 화가 드가의 <무대 위의 무희>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그림 속 발레리나가 왜 그리도 슬퍼보였는지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특별히 색채감이 떨어지거나 그림 속 배경이 간략하게 묘사되어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발레리나는 영화 <블랙 스완(Black Swan)>의 순수하고 나약한 백조 니나처럼 어딘지 모르게 답답했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꿈의 날개를 가졌지만 자유롭지 못한 영혼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