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법 순천지원, 상식 밖 판결·결정으로 여론 뭇매1천억대 교비 횡령, 서남대 설립자 및 공범에 ‘무더기’ 보석 허가14살 여중생 강간범은 구속영장 기각
  • ▲ 광주지법 순천지원(자료사진).ⓒ 연합뉴스
    ▲ 광주지법 순천지원(자료사진).ⓒ 연합뉴스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부실대학을 설립한 뒤 1천억원이 넘는 교비를 횡령하고, 의대졸업생들을 졸지에 무면허의사로 내 몰고 있는 사학비리 주범에겐 보석 허가.

    한밤중 14살 여중생을 유인해 성폭행한 50대 남성에겐 구속영장 기각.

    20대 지적장애 여성을 성추행한 60대 남성에겐 집행유예.

    최근 한 달 사시에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나온 이상야릇한 판결들이다.

    전북 남원 서남대 사태의 주범인 학교 설립자 이홍하씨가 낸 보석신청을 허가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전남 순천지원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과 결정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물의를 빚고있다.

    일각에서는 광주 전남지역 향판(향토법관)들의 폐해를 지적하는가 하면, 정의를 구현해야 할 마지막 보루인 법원이 오히려 비리를 키우는 온상이 되고 있다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지역 사상 최대 규모 사학비리,
    이해할 수 없는 보석 허가


    지난 7일 순천지원 형사1부(최영남 부장판사)는 자신이 설립한 대학에서 1,000억원이 넘는 학교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기소된 서남대(전북 남원 소재) 설립자 이모(74)씨에 대해 보석을 허가했다.

    피고인이 관상동맥협착증을 앓고 있고, 건강 악화로 심혈관 확장술인 스탠스 삽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나아가 재판부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고, 주거도 일정하다는 점을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씨와 함께 구속기소된 법인기획실 한모(52)씨를 비롯해 김모(58) 서남대 총장, 송모(58) 신경대 총장 등 3명이 낸 보석신청도 모두 허가했다.

    검찰이 밝힌 이씨의 교비 횡령액은 1,000억원이 넘는다.
    전남 지역 사학비리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사건.

    특히 이씨는 과거에도 수 차례 동일한 사학비리와 교비횡령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대학을 만들 수 있는 ‘대학설립준칙주의’를 악용해 전국 곳곳에 부실대학을 만든 뒤, 교비를 자기 돈처럼 꺼내 쓴 거대 사학비리 주범과 그 공범들에게 재판부가 ‘무더기’ 보석 허가를 내 주면서 여론은 들끓었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물론이고 법조계 안팎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이모씨에 비해 횡령액이 훨씬 작은 수십억대 사학비리 연루자에게도 법원이 보석을 허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상식 밖의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무더기 보석 허가의 이면에 학연과 혈연으로 얽힌 복잡한 내부관계가 있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보석을 허가한 부장판사가 서울고법 판사인 이씨의 큰 사위와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지역의 민심도 예사롭지 않다.

    특히 이씨의 학교 돈 횡령과 부실운영으로 폐교위기에 처한 서남대 교수들의 분노는 상상 그 이상이다.

    서남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은 이씨와 그 공범에 대한 보석 허가 사실을 전해 듣고 순천지원을 항의 방문했다.

    대학교수들이 집단으로 재판부의 결정에 반발해 법원을 항의 방문한 것은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이례적인 현상이다.

    보석 허가는 사학비리의 대부(代父)를 감싸는 행위.
    이홍하씨의 사학비리 때문에 서남대가 부실대학으로 낙인찍혀 퇴출위기를 맞고 있다.

        - 서남대 교수협의회 성명 중 일부


    이씨의 부실경영으로 학위를 취소당할 위기에 처한 서남대 의대생들도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보석 허가는 공정하게 적용해야 할 정의를 법원이 스스로 훼손한 것.
        - 서남대 피해자 비상대책위


    지역시민단체들도 법원의 보석허가를 ‘중대한 범죄행위’로 규정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씨 등을 구속기소한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법원의 보석 허가 취소를 구하는 이의신청을 냈다.
    검찰은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광주고법에 항고를 제기할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검찰은 법원이 밝힌 보석 허가 사유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재판부는 치료가 우선이라며 이씨의 지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관상동맥 협착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치소내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등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
       
    - 광주지검 순천지청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면회를 온 관계자들에게 증거 조작을 지시한 각종 자료를 제출했는데도 보석이 허가됐다.


    이씨의 공범들을 보석으로 풀어준 점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이씨의 경우 심장시술 때문에 보석을 허가했다고 쳐도, 나머지 공범을 풀어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심지어 일부 법조계 인사들은 ‘사실상 말을 맞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순천지원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파문이 확산되고 있지만 법원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씨의 보석 허가에 대해선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그나마 다른 공범 3명에게 보석을 허가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14살 여중생 강간범, 영장 기각..
    성범죄 엄히 다루는 사법부 분위기와 전혀 달라


    거대 사학비리의 몸통에게 특혜에 가까운 보석을 허가한 순천지원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는 여중생 강간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순천지원은 11일 14살 여중생을 유인해 자신의 사무실에서 성폭행한 피의자 이모(53)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번에도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기각의 이유로 들었다.

    영장을 신청한 경찰에 따르면, 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이던 이씨는 버스운행이 끊겨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병원 대기실에 있던 여중생 A(14)양에게 접근, ‘잘 곳을 마련해 주겠다’며 인근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경찰은 법원의 기각 결정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죄질이 나빠 당연히 구속영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기각사유를 쉽게 이해할 수 없다.

        - 경찰 관계자


    결국 경찰은 피의자 이씨를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순천지원의 이처럼 이상하게 '관대한' 판결은 이밖에도 더 있다.

    지난 6일에는 같은 마을에 사는 20대 지적장애 여성을 강제 추행한 60대 남성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해 7월 피고인 김모(64)씨는 같은 마을에 사는 지인의 집을 갔다가 어머니와 함께 놀러 온 지적장애 여성 B씨(22)를 강제로 추행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신상정보공개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사자인 여성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이 초범이고 추행의 정도가 약하다며 감형이유를 밝혔다.

    당시 재판은 서남대 설립자 이씨와 그 공범에게 무더기 보석을 허가해 준 최영남 부장판사가 맡았다.


     

    향판(鄕判)이 불러온
    예견된 폐단?


    순천지원이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을 연이어 내리면서 그 배경에 ‘향판(鄕判)’의 폐해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몇 십년간 같은 지역 안에서만 근무를 하는 향판들의 경우, 특성상 지역 법조인은 물론 유력인사들과의 유대관계가 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향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서남대 설립자 이씨의 보석을 허가한 재판장과 이씨의 변호인이 모두 ‘향판’으로, 같은 법원에서 근무한 인연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향판’을 중심으로 한 지역 법조계의 오래된 유대관계가 재판의 공정성을 헤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