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시장, 참여연대 시절부터 남북 민간교류 강조“북한인권은 대체로 극우보수들이 다루는 일..”
  • ▲ 박원순 서울시장(자료사진).ⓒ 연합뉴스
    ▲ 박원순 서울시장(자료사진).ⓒ 연합뉴스


    서울시가 신임 서울시향 대표를 내정하면서, [대북교류]에 대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각별한 애정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31일 시는 공석인 서울시향 대표에 박현정 전 삼성생명 전무를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새 시향 대표 내정 소식은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시향 대표 내정은 박 시장과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사이에 벌어진 냉전의 근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공연전문가를 원했던 박 시장과, 전문 경영인 출신을 선호한 정 감독은 대표 인선을 놓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이 ‘극적인’ 화해를 했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그런데 두 사람이 화해모드로 돌아선 배경에 ‘북한’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에 대한 두 사람의 남다른 관심이 상황을 되돌리는 촉매제가 됐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새 시향 대표를 내정하면서 서울시향에 두 가지 사항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 강화이고, 다른 하나는 [시향의 북한 공연 추진]이다.

    박 시장과 정 감독은 바로 [북한 공연]에서 접점을 찾았다는 것이 추론의 핵심이다.
    이런 관측은 박 시장과 정 감독의 과거 행적에 기인한다.

    박 시장은 참여연대 시절부터 줄곧 대북 민간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시장에 취임한 뒤에도 그는 틈만 있으면 자신의 뜻을 실현시키려 애썼다.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축구 경평전 부활] [서울시향의 평양 공연]을 정부와 북한 당국에 공식 제의했다.

    경색된 남북관계, 예측할 수 없는 북한 정세는 서울의 균형발전은 물론 서울시민의 삶과 직결돼 있다.
    작은 일이라도 긴장을 풀고 평화를 여는 데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서울시 차원에서 시도해보려 한다.

        - 2012년 박원순 시장 신년사


    박 시장은 이후 통일부 장관을 직접 만나 경평 축구 부활과 시 차원의 대북교류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이것은 정 감독도 비슷하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란 관점에서 보면 정 감독의 태도가 더 적극적이란 평가도 있다.

    정 감독은 평양에서 북측의 교향악단을 지휘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로 북한 교향악단을 초정해 합동공연을 추진하기도 했다.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자선음악회를 여는 등 음악을 통한 대북 민간교류를 앞장서 이끌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서울시향의 방북과 공연 추진이 두 사람의 화해를 매개했다는 분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 서울시향의 북한 방문 추진이 조명을 받으면서, 박 시장에 대한 아쉬움 섞인 불만과 비판도 함께 나오고 있다,

    대북 교류를 그렇게 강조하면서, 북한 인권엔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특히 박 시장이 그 동안 언론과 저서 등을 통해 밝힌 [대북관]과 [통일관]의 편협한 태도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크다.



    #1. ‘순진무구’ 혹은 ‘독선’..
    북한인권은 ‘극우보수파’의 전유물?

    박 시장은 과거 참여연대 시절 아래와 같은 칼럼을 썼다.

    미국 NED재단의 거쉬먼 회장에게 :
    북한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워낙 폐쇄적인 사회여서 북한의 민주화나 인권문제에 당장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며, 그 대신 점진적인 남북교류와 경제교역의 추진에 따라 신뢰와 화해를 쌓아가는 것만이 북한을 민주화시키는 길일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지난번 Ms. 코언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집요하게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운동을 한다면 재정지원을 할 용의가 있음을 이야기하여 좀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그동안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단체와 언론은 대체로 극우보수파들이었음을 설명했었다.

        - 1999년 8월 1일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올린 ‘극우 해리티지 재단에서 배운 시민운동 노하우’


    그가 올린 위 글은 북한과 대북교류, 그리고 북한인권에 대한 그의 기본적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북한의 민주화나 인권문제를 현안으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고, 남북교류와 경제협력이 북한을 민주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란 주장이다.


  • ▲ 2012년 2월 서울 종로구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북한인권단체들의 탈북자 강제북송중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탈북자가 발언하며 절규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12년 2월 서울 종로구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북한인권단체들의 탈북자 강제북송중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탈북자가 발언하며 절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에게 북한인권은 현안이 아니다.
    더구나 시급해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다.
    따라서 대북정책에 있어 우선순위는 교류와 협력이지, 북한인권이 아니다.

    무엇보다 북한인권을 문제 삼는 것은 극우보수파나 하는 행동이란 취지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2. “북한에서 고문, 폭압 있으리라 보지만..
    국제사회가 개입할 일”


    북한인권을 대북정책의 ‘종속변수’로 보는 시각은 다른 글에서도 볼 수 있다.
    더 직접적으로 그는 북한인권에 대해 외세 의존적인 태도를 보였다.

    북한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권이라든지, 고문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에 대해서는 정보가 제한돼 있어서 워낙 폐쇄적인 국가니까.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된 국가에서는 고문이 있을 가능성이 많죠.
    어떤 고문이나 권위주의적인 폭압적 통치는 분명히 저는 있을 것이라고 보고요, 그것은 국제사회가 일정하게 개입을 해야죠.

        - 2008년 2월4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


  • ▲ 2012년 5월 유럽의회가 개최한 북한인권 청문회.ⓒ 연합뉴스
    ▲ 2012년 5월 유럽의회가 개최한 북한인권 청문회.ⓒ 연합뉴스


    북한에서 고문과 폭압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문재의 해결은 국제사회에 맡기자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3.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그의 답변은..'침묵'


    이런 그의 태도는 분명한 모순이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제분쟁지역에서 발생한 인권유린을 신랄하게 질타해왔다.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성을 주장할 때도, 그는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는 ‘고문’을 가장 큰 해악으로 꼽았다.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사건이 다른 어떤 시국사건보다도 더욱 처절한 피울음을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참혹한 고문이 따른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중략)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국민생활 전반에 걸친 족쇄였으며, 국가의 진취적 발전을 가로막는 쇠사슬이었다.

        - <국가보안법연구1> 23p, 저자 박원순


    이 책에서 참혹한 [고문]이 뒤따르는 국가보안법은 국민을 사로잡는 족쇄이며, 쇠사슬이다.
    그리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고문]이 자행되는 국보법을 폐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 ▲ 2012년 2월 서울 종로구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북한인권단체들의 탈북자 강제북송중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탈북자들이 '고향의 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 2012년 2월 서울 종로구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북한인권단체들의 탈북자 강제북송중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탈북자들이 '고향의 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그의 주장은 북한과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그가 보여준 태도와 너무나 다르다.

    지론대로라면 그는 취임과 동시에, 아니 그 전부터 북한의 고문과 폭압의 실상을 밝히고, 사태의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섰어야 했다.

    시내 한 복판에서 100일 넘게 탈북자 강제북송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열릴 때, 누구보다도 먼저 나가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로서 자신의 지론을 역설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인권운동가로 자임해 온 그가 유독 북한의 인권실태 앞에서는 작아지는 모습을 납득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그도 이런 비판을 알고 있는 듯하다.

    북한인권을 보는 차이는 이념의 문제보다는 불신의 문제다.
    ‘왜 북한 인권에 침묵하느냐’ ‘그동안 인권탄압에 침묵하더니, 북한 정권의 붕괴를 위한 정치적 목적 아니냐’는 식으로 서로 공격의 수단으로 삼는다.
    사실 과거에 인권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북한인권에 관심 없을 리 없는데, 의심과 적대를 갖고 있는 것이다.

        - 2005년 9월 20일 서울신문


    ‘인권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북한인권에 관심이 없을 리 없는데도’, 그가 문제삼은 것은 한국사회 내부의 불신이었다.



    #4. 서울시향 방북 보다,
    ‘침묵’에 대한 해명이 먼저


    그러면서 그는 또 다시 북한문제의 해법으로 교류와 협력을 들고 나왔다.

    제재와 봉쇄와 같이 북한을 고립시켜서 출구 없는 궁지로 모는 강경한 방법보다는 북한이 국제사회와 대화와 나설 수 있는 실질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중략)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민간교류]는 남북 간에 신뢰와 이해를 깊게 해주는 소중한 통로이므로, 어떤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 2006년 10월17일, 북한의 1차 핵실험 강행 직후 발표한  성명 ‘북한 핵실험 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의 입장’


    결국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북한인권은 민간교류의 확대와 경제협력, 인도적 대북지원의 틀 안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런 논리라면 그는 산업화과정에서 불거진 열악한 근로조건과 도시빈민 문제에 대해 비판할 자격이 없다.

    성장을 경제정책의 우선목표로 설정한 이상, 분배의 불균형으로 인한 취약계층의 고통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북한의 인권유린이나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가 남북교류와 협력에 방해가 되는 경우, ‘대승적 차원’에서 무시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라면, 산업화 세력에 대한 비판은 논리적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논리적 일관성’은 지식인으로서 지녀야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미 그는 이것을 오래전에 내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서울시향의 방북 추진에 앞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침묵’의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