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서화 장편소설 '레드'-2
  • <68> 이면


    “아무리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라지만 조장 동무와 닮기는 정말 많이 닮았소. 조장 동무가 아니라면 누가 누군지 구분도 못할 정도야.”
    “난 정말 몰라요.”
    “조용히 해!”
    “짝!”
    “지수 동무, 아니지. 조국의 반역자 윤지수는 동무가 아니지. 그건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오.”
    “그럼 이제 나를 그만 풀어주세요.”
    “조용히 하라니까! 닥쳐! 닥쳐!”
    “으으으.”
    “그건 이야기가 다르지. 왜냐? 내가 인정하는 건 동무의 직접적인 연관성뿐이오. 즉 확인할 게 아직도 더 남았다는 소리야. 그나저나 내가 듣기로는 동무가 금성 제1중학교에서 리듬체조선수였던 것으로 아는데, 맞소?”
    “예.”
    “그래서 그런지 동무의 몸매가 아주 훌륭하군. 그 몸매로 리듬체조를 하면 아주 우아하고 아름다웠겠소.”
    “…….”
    “그런데 동무 그거 아오? 지금 내 눈엔 동무가 나를 혐오스럽게 쳐다보는 조장 동무로 보인다는 사실. 그래서 동무가 말을 할 때마다 나에게 점점 또렷한 목표의식을 갖게 만들고 있다는 거.”
    “그게 무슨……?”
    “뭐, 별거 아니오. 비록 대상은 바뀌었지만 내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한지 제대로 알려줄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 크크크. 물론 아름다운 몸에 한 번 새겨지면 누구처럼 평생 그 수치심을 씻어낼 수 없을 것이오.”
    “그럼 설마?”
    “아! 그렇다고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소. 그리고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고. 동무의 목숨과 맞바꾸는 합리적인 거래거든.”
    “당신들은 심장과 영혼이 저주받은 인간들이야!”
    “뭐라고! 이 종간나에미나이가.”
    “퍽!”
    “윽! 으으으.”
    평소에도 피오기와 홍화는 지수가 갇힌 지하감옥을 불시에 들이닥쳤다. 마치 죄수의 방을 수색하는 교도관 같았다. 그리고 폭행과 고문을 일삼았다. 그 강도도 세고 집요했다. 그런데 오늘은 두 사람의 눈빛이 더 날카롭고 위험해 보였다. 사람의 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 뱀파이어처럼 보였다. 지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홍화가 풀어헤쳐진 지수의 머리채를 거칠게 휘어잡아 움켜들었다. 그러자 지수의 목이 뒤로 힘없이 꺾였다.
    “종간나, 지금 네 모가지는 내 손안에 있어. 나 역시 네 언니한테 감정이 아주 많거든.”
    “…….”
    “간나야, 이게 뭔 줄 알아? 바로 볼펜형 독침이야. 이렇게 뚜껑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독침이 튀어나오지, 보여?”
    “!”
    “이 독침에는 일반인들이 청산가리로 알고 있는 시안화칼륨에 비해 독성이 5배나 강한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이라는 독극물이 묻어 있지. 어때, 지금 숨통을 끊어줄까?”
    “제발 살려주세요.”
    “그럼 어서 말해!”
    “으으으, 전 정말 몰라요.”
    “동무에겐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어.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가 두렵지 않소?”
    “두려워요.”
    “그럼 다음 대답은 좀 더 신중하게 하시오. 편지 속 천사가 의미하는 게 뭔지.”
    “나도 노력했어요. 하지만 도저히 모르겠어요. 단지 아주 어렸을 때 아바지 친구가 집에 온 적이 있는데 혹시 그 아저씨가 리재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뿐이에요.”
    “지금 동무를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동무 자신뿐이오. 그러니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한 번 편지를 읽어보시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으면 그 즉시 말하시오. 어떤 것이든 상관없소. 글자, 숫자, 그림. 그것도 아니라면 지역이나 건물도 괜찮소. 자, 어서 읽어보시오.”
    “나는 천사를 믿는다. 천사가 나오는 이야기는 결말도 언제나 행복하지. 그런데 천사는 숨어 있다. 비-이-밀의 방에. 너도 천사를 믿어라. 꼭! 아바지의 대학동무 리재경.”
    “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뭐요. 대체 편지 속의 천사가 의미하는 게 무엇이오? 혹시 사람이오? 만약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 같소. 혹시 동무 자신이오?”
    “난 도대체 무슨 말인지. 그리고 왜 나한테 이런 편지를 보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뭬야! 이 종간나에미나이가 아주 모진 독을 품었군!”
    “부조장 동무, 이 반동의 열물(담즙)을 모두 게워 내게 할까요?”
    “하긴 어리석음을 깨달을 때까지 가보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야.”
    “전 정말 몰라요. 절 믿어주세요. 전 교회에 가본 적도 없어요. 그런 제가 천사가 뭔지 그 상징적 의미가 뭔지 어떻게 알겠어요. 제발…….”
    “이 종간나에미나이, 주둥아리 닥치지 못하겠어!”
    “윽! 악! 헉!”
    피오기의 분노는 언제나 과잉살상을 불렀다. 더구나 미친개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지수를 물어 죽일 듯 노려보았다. 광기로 꽉 찬 살벌한 눈빛이었다. 그런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표출한 사람은 홍화였다. 지수는 이를 악물고 모질음을 썼지만 점점 더 떨려서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했다. 홍화는 그런 지수를 거칠게 끌고 가 쇠창살의 중간에 수갑으로 채웠다.
    “쏴아아!”
    “헉!”
    이미 여름의 중턱을 넘어선 무렵이었다. 하지만 지하의 한기와 찬물은 지수의 체온을 급속히 빼앗았다. 지수는 생니를 뽑은 것처럼 오들오들 떨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지수는 본능적으로 쇠창살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이번엔 어디선가 나무토막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흥분한 홍화가 생각보다 빨리 고문도구를 선택했다. 나무몽둥이가 지수의 등줄기에 휘감기고 젖은 옷의 물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으윽!”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내가 처음 했던 살인은 생존을 위한 방어였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사람의 고통은 내 안의 악마가 빠져나가는 탈출구가 되더군. 그래서 그 쾌락의 늪에 점점 빠져들었고. 결국엔 고문과 살인에서 쾌락을 찾는 사디스트가 됐지. 어때 악마를 가까이서 보는 느낌이? 무덤에서 방금 나온 것 같지 않아?”
    “으으으.”
    “난 네 고통을 보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해. 네 피가 내 삶을 풍요롭게 하거든.”
    “으으으. 살려…….”
    “그런데 어쩌지. 이제 막 들뜨기 시작한 흥분을 멈추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
    “퍽!”
    “악! 헉!”
    “에잇!”
    마침내 그 단단하던 몽둥이가 부러졌다. 하지만 홍화의 냉소적인 반응은 두 동강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홍화는 지수를 쇠창살에 바짝 붙여 세웠다. 그리고는 지수의 손가락 중 하나를 쇠창살 사이에 끼웠다. 아니나 다를까. 홍화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회초리를 집어 들었다. 순간 지수의 얼굴에 경련이 일더니 뇌 속의 피가 굳은 듯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홍화는 지수의 그런 고통을 보면서 쾌락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에게 굴종하게 만들겠다는 승부욕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으으으.”
    “에잇!”
    홍화가 또다시 부러진 회초리를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지수의 낡은 티셔츠를 단번에 찢었다. 지수도 다 끝나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어떻게 끝나느냐가 문제였지 어쨌든 끝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절망의 끝이었다. 하지만 손을 잡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지수는 죽음을 각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수는 자신을 내려놓고 말았다. 자신의 운명이 손에서 미끄러져 폭발하는 전구 같았다. 지수의 몸은 물먹은 솜처럼 아래로 축 늘어졌다.
    “…….”
    “!”
    그런데 언제부턴가 지하감옥의 출입문 밖에 암살자처럼 조용히 다가와 있는 불청객이 있었다. 지원이었다.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지수의 절규는 무력한 아기새의 비명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 소리는 지원의 잃어버린 세계와 지워버린 세계를 함께 깨웠다. 지원은 지수의 목소리만 듣고도 현재의 상황을 충분히 짐작했다. 하지만 쉽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지원이 섣불리 나서면 그것은 맹수가 무리를 옮기는 것처럼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지원은 최악의 상황이 아니길 바라며 패배를 인정하는 패자처럼 발걸음을 돌렸다.
    “홍화 동무, 이거 어케 된 거요?”
    “뭐가 말입니까?”
    “이 간나 혹시 죽은 거 아니오?”
    “!”
    “보시오. 피를 너무 많이 쏟고 있소.”
    “젠장할! 타이밍이 최악이네요. 달거리(생리)가 터졌어요. 이번엔 곤죽을 먹이려고 했는데, 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