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서화 장편소설 '레드'-2
  • <57> 나노폭탄

    “내부의 적들이 갈수록 교활해지고 있어.”
    “그러게요. 주변 사람들도 아직 그가 고정간첩이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분위기라니.”
    “하지만 압수물 분석결과를 보면 그들이 알고 있던 남운영이 공작활동을 할 때는 180도 달랐잖아.”
    “전문직 종사자일수록 북한의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 편협한 철학을 가진 확신범이 많잖아요. 스스로가 충분히 연구하고 내린 결론이란 오만과 착각에 사로잡혀서 말이죠.”
    “우리 사회의 최대 약점은 친북·종북세력이 공채시험을 통해 얼마든지 국가기관에 침투할 수 있다는 거야. 심지어 경찰과 국정원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지.”
    “그러게 말이에요. 하긴 친북좌파세력들이 거리에서 쇠막대를 들고 데모하던 건 이미 오래전 이야기잖아요. 그중 한 명만 고시에 합격해도 국헌(國憲)이 문란해지는데도 그걸 철저히 무시했으니.”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일부 교사들의 무책임한 친북·종북행위야. 그들이 부정한 현 체제와 과거 역사, 그리고 잘못된 역사인식은 단순히 개인적인 불법행위에 그치지 않거든. 학생들의 국가관과 안보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게 자명하잖아.”
    “그러게요. 이제 우리도 국가의 존립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들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을 대대적으로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과연 우리 내부의 적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럼요?”
    “우선 국정원과 경찰 등 공안기관부터 냉정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해. 그리고 국가의 정보수사능력을 총동원해 좌파세력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하고. 사실 과거에는 좌파세력들을 단순히 불온사상을 가지고 현 체제를 부정하는 투정쟁이나 한때 좌경이념에 노출된 젊은 객기(客氣)쯤으로 치부했잖아. 그리고 사법기관 역시 죄질의 심각성에 비해 안일한 대처를 했고. 물론 그 판단의 근저(根)에는 남북 대치가 좌파세력의 팽창을 견제하는 안보장치로 작동할 것이라는 오판도 자리했어. 하지만 그건 분명히 착각이고 몽상이야. 체계적으로 조직화되고 이념적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좌파세력을 너무 과소평가한 거야. 결국 종북노선(從北路線·북한추종노선)에 따라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하지 않는 종북주사파(從北主思派)가 국회에 입성하는 일까지 벌어졌잖아.”
    “갑자기 탈북자 출신 첫 국회의원 당선자인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의 말이 생각나네요. 종북세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순진했다, 그들은 단순히 의견이 다른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본을 뒤집으려는 싸움을 하고 있다, 이런 정도라면 종북세력은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설득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다 뭐, 그랬던 것 같은데요.”
    “기가 막히는 건 사이버세계에서 노골적인 용공활동(容共活動)과 위법행위를 저질러도 인권과 표현의 자유가 오히려 종북세력의 보호막이 된다는 거야. 이거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 아니고 뭐냔 말이지.”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사실을 왜곡해 북한을 비호하는 행동이나 분열을 조장하는 이념적인 말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북한을 답습하는 행위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요.”
    “그래, 맞아. 국헌을 사수하기 위한 대반격이 필요해.”
    “하긴 일류국가의 절대적 조건은 반역자와 악당에 대한 철저하고도 무자비한 응징력과 법치력이라고 하잖아요. 더욱이 간첩행위를 한 친북좌파세력을 국가유공자로 만들어주는 황당한 일도 더 이상 없어야 하고요.”
    “그런데 유진아, 너 들고 있는 게 뭐야?”
    “아, 이거요. 특수기밀기록보관소의 데이터베이스에서 혹시나 하고 과거자료들을 검색하던 중 우편물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진이에요.”
    “누구?”
    “윤일현과 리재경이 함께 찍은 사진이에요.”
    “아니, 그런 게 있었단 말이야?”
    “예. 하지만 원본은 아니고 복사본이에요.”
    “하긴 특수기밀기록보관소에 그런 게 남아 있었다면 벌써 과학분석팀의 손을 거친 상태겠군. 그래 사진을 찍은 시간과 장소는?”
    “사진에 기록된 촬영날짜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뒤로 황포(黃浦) 강변의 동방명주 TV탑과 상해 세계금융센터가 찍힌 것으로 보아 촬영장소는 상해의 외탄(外灘)으로 추측됩니다.”
    “좀 더 범위를 좁히면?”
    “과거 영국인들이 ‘구여화인불진입내(狗與華人不進入內·개와 중국인은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입간판을 세워놓고 중국인의 출입을 금지시켰던 황포공원입니다.”
    “흠! 중국 경제를 견인한다는 상해의 황포공원이라. 윤일현과 리재경 두 사람이 왜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을까?”
    “아마도 자신들이 직접 본 중국의 미래에 대한 부러움을 담은 것이 아닐까요?”
    “미래를 담았다.”
    “외탄의 뒤편이 상해의 어두운 과거라면 황포강의 건너편은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잖아요.”
    “가만! 어딘지 모르게 사진이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 얼굴의 음영을 만드는 빛의 각도가 미세하지만 약간 차이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재국 선배도 눈치챘군요?”
    “사진 속 리재경은 색바램이 덜 한데 윤일현은 햇볕이나 습기에 노출된 것 같고.”
    “확인 결과 초보자들도 쉽게 사용하는 이미지툴로 제작한 합성사진이랍니다.”
    “합성사진?”
    “예, 원래는 리재경 혼자 찍은 사진인데 그 옆에 윤일현 사진을 합성한 거예요.”
    “그렇군!”
    “그런데 이미지가 정교하게 합성된 정도를 나타내는 싱크로(Sync·동기화)율이 몇 퍼센트 되질 않아 여기저기 빈틈이 보여요.”
    “가만! 사진 뒤에 무슨 편지도 있는데?”
    “리재경이 윤지수에게 보낸 간단한 인사문구 같아요.”
    “‘어둠과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온 지수도 이젠 어엿한 숙녀가 됐겠구나. 숙녀는 자신을 아름답게 드러내는 나이지. 이 작은 선물은 아직도 어둠과 절망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나의 부탁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선물이 내가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선물?”
    “성스러운 힘을 상징하는 십자가에 사랑의 모티브 하트를 물방울 형태의 루비로 표현한 예쁜 이니셜 펜던트목걸이입니다. 십자가 뒷면에는 ‘Good-looker(미인)’라는 글자도 새겨져 있었고요. 그 다음도 읽어보세요.”
    “‘나는 천사를 믿는다. 천사가 나오는 이야기는 결말도 언제나 행복하지. 그런데 천사는 숨어 있다. 비-이-밀의 방에. 너도 천사를 믿어라. 꼭! 아바지의 대학 동무 리재경. 추신 : 혹시라도 아바지에 대해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전화해라. 단 이 전화번호는 며칠간만 유효하다. 1661-592-802-88398.’ 그것참! 어떻게 보면 일상적인 인사말 같기도 하고 또 달리 보면 아주 비밀스런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헛갈리게 하는군.”
    “분석팀에서도 펜던트목걸이와 메시지를 분석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답니다.”
    “흠, ‘나는 천사를 믿는다.’ 유진이는 이 사진에서 무엇을 봤는데?”
    “글쎄요. 제 느낌을 딱히 뭐라 단정내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왠지 38호실 소속이던 리재경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이……. 그렇지 않다면 간첩죄로 숙청된 윤일현의 사진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자신의 사진에 합성할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리재경의 죽음과 연관될 수도 있다. 하긴 합성사진을 만들었다는 건 처음부터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혹시 리재경이 관리하던 과거 김정일의 비밀자금과 관련된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건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겠죠.”
    “어쩌면 이 합성사진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중요한 단서일지도 모르겠군. 흠! 리재경이 상징과 기호로 만든 메시지라. 과연 이 사진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있는 걸까. 또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사진 속에 숨겨진 과거 김정일의 비밀자금과 연결된 비밀단서는 또 무엇일까?”
    “글쎄요. 현재로선 딱히 이거다 하고 단정내릴 수 있는 실마리를 찾지 못했어요.”
    “아무튼 리재경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 것만은 적어도 확실한 것 같군. 그럼 일단 네온사인의 광고문구와 전화번호, 그리고 선글라스에 초점을 맞춰서 사진을 다시 한 번 정밀 분석해봐. 아참! 혹시 모르니까 이번에 남운영을 검거하면서 획득한 난수표(亂數表·0에서 9까지의 숫자를 해석하는 표)와 음어표(陰語表·난수표를 해독하는 데 사용)를 이용해 해독해보던지.”
    “글쎄요. 과연 수확이 있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문제는 지수 씨의 경우 공작원 교육을 받은 전력이 전혀 없다는 거죠. 따라서 대남간첩들이 사용하는 지령문이나 보고문처럼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스테가노그래피기법을 이용한 암호화코드로 작성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지 않을까요?”
    “내가 그만 그걸 깜박했군. 지수 씨가 암호화된 문건을 해독할 리 없지. 그럼 결국 단순한 안부인사라는 건가. 하긴 단어나 구절 또는 숫자와 문자, 그리고 행간에 특이점이 있었다면 이미 분석팀이 걸러냈겠지. 그런 걸 놓칠 리 없으니까.”
    “맞아요.”
    “그나저나 팀장님이 아까부터 안 보이시네.”
    “모르셨어요?”
    “뭘?”
    “모사드의 키돈부서 팀장으로부터 작전상황을 전해 듣고 곧바로 나가셨어요.”
    “그럼 마에다 유주루의 제거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거야?”
    “그건 아니고요. 예상대로 마에다 유주루가 환승을 해서 파타야의 은거지에 도착했답니다. 그리고 모사드의 암살전문 비밀요원들이 그의 신병을 확보했고요. 또한 효율적으로 타깃을 공격하기 위해 감시요원들이 현장상황을 파악 중이랍니다.”
    “히~유! 다행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십 년 감수했네.”
    “그래서 팀장님이 장동하 영사의 피살사건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움직이신 거예요. 지금쯤 류가흔은 마에다 유주루의 연락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그럼 팀장님이 중국으로 직접 날아가신 거야?”
    “아니요.”
    “그럼?”
    “아직도 북경의 리전트호텔에 투숙 중이었어요. 예약도 앞으로 3일이나 더 남았고요. 그래서 항공기의 수화물서비스를 이용해 선물을 탁송하러 가셨어요.”
    “선물?”
    “예. 물론 보낸 사람은 마에다 유주루고요. 아마 흔적도 남지 않을 걸요.”
    “흔적이 남지 않는다고! 그럼 혹시 최근에 개발됐다는 특수나노폭탄?”
    “딩, 동, 댕!”

    국정원 블랙요원들의 상상력이 총동원된 특수나노폭탄은 최첨단 나노기술이 집약된 혁신적인 첩보비밀무기였다. 때문에 재국과 유진이 갖고 있는 관련 정보도 지극히 단편적이었다. 하지만 그 제한적인 정보만으로도 재국을 당황스럽게 만들 만큼 특수나노폭탄은 재료에서 효과까지 그 존재가치가 컸다. 즉 특수나노폭탄은 나노분자를 활용한 3차원적인 나노구조물과 전자기장(EMF)을 활용한 무기였다. 사용은 주로 현장요원들이 작전개시 전 특수나노폭탄을 표적의 예상동선에 맞춰 살포해놓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러면 표적이 가전제품이나 모바일기기를 켬과 동시에 나노입자에 미리 기억시켜놓은 전자기장의 수치가 증폭되면서 자체적으로 폭발을 유도한다. 물론 특수나노폭탄은 무색무취로 어떠한 흔적과 증거도 남기지 않는다. 폭발과 동시에 발생한 열로 미세한 나노입자가 공기 중에서 모두 불타기 때문이었다. 설혹 운이 좋아 공격표적이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한계치를 초과한 전자기장에 노출된 뇌는 심각한 손상을 피할 수가 없다.

    “흠, 직접 살포방식이 아닌 탁송방법이라!”
    “그런 참신한 아이디어는 우리 팀장님이 아니면 쉽게 해낼 수 없을 거예요.”
    “왜 아니겠어. 아무튼 사용 후 효과 하나는 정말 확실하겠군. 그런데 류가흔이 과연 우리가 보낸 수화물을 마에다 유주루가 보낸 것으로 신뢰할까?”
    “물론 의심하겠죠. 그래서 의심을 풀어줄 중요한 물건을 함께 탁송했어요.”
    “의심을 풀어줄 물건! 그게 뭔데?”
    “닌자표창으로 알려진 십자형(十字型)의 슈리켄(手裏劍)이에요.”
    “슈리켄으로 어떻게 류가흔에게서 의심의 빗장을 풀 수 있다는 거지?”
    “그건 문제의 슈리켄에 우리를 위한 친필 사인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죠.”
    “설마 마에다 유주루의 친필사인?”
    “딩동댕! 거기다 뒤쪽에는 경단련(經團聯)의 영문표기인 게이다렌(KEI-DANREN)도 함께 적혀 있었어요.”
    “아니, 그런 걸 대체 팀장님은 어디서 또 입수한 거야?”
    “마에다 유주루와 협상 시 팀장님이 도청장치를 건넨 보답으로 받았대요.”
    “하여간 그저 존경스럽고 경이로울 뿐이다.”
    “훗! 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