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서화 장편소설 '레드'-1
  • <33> 정치범수용소


    “으으으.”
    어디선가 삭은 천조각이 힘없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원은 무의식적으로 그 신음소리를 따라갔다. 딱친구(단짝친구) 조은혜였다. 은혜는 풍막(움막)의 반대편 구석에서 양미간을 찡그린 채 아랫배를 움켜잡고 있었다. 은혜의 입술은 손끝만 닿아도 부서지는 낙엽처럼 물기 하나 없이 바싹거렸다. 지원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은혜의 파르르 떠는 속눈썹을 쳐다보았다. 은혜는 고통을 나무판자와 진흙으로 대충 얼버무려 겨우 비바람만 막는 풍막의 흙벽에 깊숙이 새겨놓았다.
    “은혜야, 너 어디 아프니?”
    “몸이 으슬으슬 추워. 최근 몇 달간 안 했던 달거리아픔이 시작되려나 봐.”
    고통이 뜯어먹은 손가락 끝에서 피가 흘렀다. 흐른 피는 손목줄기를 타고 내려와 누빈 동복 속으로 파고들었다. 지원은 옷소매를 걷고는 들고 있던 걸레로 피를 닦아 내려갔다. 은혜는 정말 고왔다.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그림 속 주인공처럼 오목샘(보조개)도 예쁘고 맑았다. 하지만 지원이 정작 부러운 건 은혜가 입고 있는 누빈 동복이었다. 지원은 수감 당시 입고 갔던 봄옷을 천조각으로 여러 번 기워 입으며 한겨울의 칼바람을 막아냈다. 사정이 그러니 가슴띠(브래지어)나 생리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은혜야, 많이 아프면 내가 작업반장 동무에게 말할까? 풍막청소는 나 혼자해도 충분해.”
    “일없어. 5인 조장인 내가 빠지면 작업장에서 너희들의 할당량이 너무 많아. 잘못하면 나 때문에 조원들 모두 두 끼가 잘릴 수도 있어.”
    “그래도…….”
    “아참! 보위부 과장 선생님 사무실의 청소담당이던 도주분자 고영실이 어제 처형됐잖아. 그래서 청소당번 한 명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얼핏 들었는데, 내가 한번 통계원 부반장에게 부탁해볼까?”
    “나를?”
    “응.”
    “말은 고맙지만 나는 일없어.”
    “쾅!”
    “야! 이 종간나 에미나이들, 너희들 지금 무슨 개소리를 나불대고 있는 거야. 풍막청소 다 끝났으면 날래 나오라우!”
    “분조장 동무, 은혜가 몸이 좀 아파서 아무래도 간이치료(응급치료)를…….”
    “몸이 아파?”
    “예.”
    “어디, 여기?”
    “헉! 으으으.”
    “은혜 동무, 아직도 아픈가?”
    “아, 아닙니다. 분조장 동무. 이제 일없습니다.”
    “지원 동무, 들었지? 은혜 동무 자신이 일 없다잖아!”
    “…….”
    “가만. 아니, 이 에미나이들이 머리가 좀 컸다고 벌써부터 건병(꾀병)질 떠는 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분조장 동무.”
    “그럼 날래 안 나가고 여태 뭐하고 있어! 밭뜰까지 담가(들것)에 실려 가고 싶어!”
    “나, 나갑니다. 분조장 동무.”
    “잠깐!”
    “!”
    “너네 둘, 오늘 아침은 자른다. 나니까 한 끼만 자르는 거야. 작업반장 같으면 두 끼야.”
    “알겠습니다, 분조장 동무. 고맙습니다.”

    매일 진새벽 다섯 시면 풍막의 주변 청소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그리고 저녁 8시가 돼야 겨우 끝났다. 저녁식사를 마치면 다시 2시간 동안 꼿꼿한 자세로 앉아 정치학습과 일일총화(一日總和)를 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죽도록 노동을 하고도 배급받는 건 겨우 강냉이 300g이 전부였다. 그래서 정치범들은 죄다 몸에 살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저 뼈에 가죽만 씌워놓은 허수아비 같았다. 물론 탈출은 불가능했다. 마을 형태의 수용소를 온통 험준한 산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AK-47 자동보총(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인민경비대가 군견을 데리고 삼엄한 경비까지 섰다. 심지어 외부경계선 부근에는 3,300V(볼트)의 고압전기 철조망과 비밀함정까지도 파놓았다.
    지원이 쪽잠을 자는 독신자 풍막은 돼지우리였다. 주워온 판자와 진흙으로 대충 마무리하고 볏짚 지붕을 올린 것이 전부다. 실제로 관리자들은 정치범을 돼지라고 불렀다. 지원은 은혜를 부축하고 풍막을 빠져나와 정치범들 무리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함께 주변을 청소했다. 청소가 끝나자 다른 정치범들은 비록 멀건 소금국과 강냉이밥일망정 걸탐스럽게(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지원과 은혜는 그것도 없었다.
    “지원아 미안해. 배 많이 고프지?”
    “쪼끔. 하지만 참을 만해. 나도 벌써 여기에 온 지 일 년이 훌쩍 넘었잖아.”
    “너도 벌써 그렇게 됐구나! 난 올봄이 벌써 다섯 번째야.”
    “참지 못하면 죽는다는 걸 배 속도 이제 아는 거지. 처음 와서 3개월간은 정말 힘들었어. 강냉이밥이 소화가 안 돼 계속 설사만 했거든.”
    “정치범들에게는 그 3개월의 적응기간이 바로 죽느냐 사느냐의 경계선이지. 나도 그때 죽은 사람 엄청 봤어.”
    “그러면서 많은 걸 배웠지. 관리소에 들어온 횟수를 남은 손가락과 발가락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이와 벼룩조차도 떠나고…….”
    “우리 하내비(할아비)는 평양시 용성구역에 있는 제125호공장(평양 돼지공장) 지배인이었어. 그리고 아바지는 인민무력부 정찰국 산하의 비로봉무역회사 신의주 지사장이었어. 그런데 강계화학공장 책임자였던 작은 하내비의 집난이(시집간 딸)가 남조선으로 도주를 했어. 그래서 하내비와 아바지도 내리먹고(좌천되어) 관리소로 오게 된 거야. 누가 소식이라도 전해주면 정말 좋겠는데.”
    “넌 연좌제로 끌려왔구나. 우리 아바지는 외화벌이 일꾼이었어. 주로 중국에 나가 있었지. 그런데…….”
    “알아. 국가전복죄로 끌려온 거. 사무실에서 보위부 과장과 담당보위부 지도원(보위지도원)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들었어.”
    “그랬구나. 하지만 난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왜?”
    “우리 아바지는 당과 조국에 충성스런 일꾼이었거든. 분명히 뭔가 잘못 되었을 거야! 아무튼 난 꼭 살아서 여길 나가야 해. 그래서 아바지와 나를 사지로 몰아넣은 배신자들에게 꼭 복수할 거야.”
    “누구나 그러고 싶지. 하지만 난 지금까지 여기서 살아 나간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아니야, 너도 희망을 가져. 그래야 지금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지. 운이 아주 정말 좋으면 희망이 현실이 될 수도 있고.”
    “그럴까?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응. 우리는 꼭 할 수 있어.”
    “동무들! 잡담하지 말고 밥 먹었으면 날래 모이라우! 지금부터 인원점검을 하갔어.”

    속전속결로 꾸역꾸역 밀어넣은 강냉이밥이 위에서 채 물러지지도 않았다. 정치범들은 기계처럼 분조별로 모여 수용소가 정한 정자세를 취했다. 정자세란 정치범들이 모자와 수건을 벗고 묵념을 하듯 머리를 숙이는 굴욕적인 자세였다. 이어 쑥색 군복에 권총까지 찬 4반 담당보위원과 작업반장이 인원점검을 했다. 정치범들을 노려보는 보위원의 눈빛은 흡사 승냥이 같았다. 관리소에서 보위원의 명령과 지시는 그의 왼쪽 가슴에서 빛나는 김정일 배지만큼이나 신성불가침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항하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 절대적인 권위에 대한 공포심으로 보위원을 부를 땐 꼭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였다.
    “보위원 선생님, 이제 말씀하시지요.”
    “흠! 동무들. 오늘은 우리 작업반에서 사상성이 의심되는 독초가 과연 누군지,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살펴볼 것이오. 만약 독초라고 판단되면 그 인민의 철천지원수를 가차 없이 뽑아버릴 것이오. 죽기 싫으면 피가 타는 노력으로 어제날보다 생산사업에 더욱 열성적으로 임하시오. 알겠소?”
    “예! 보위원 선생님.”
    “작업반장이 나대신 구호를 힘차게 외치시오.”
    “21세기 태양이신 위대한 장군님을 목숨으로 사수하자!”
    “21세기 태양이신 위대한 장군님을 목숨으로 사수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쌀로써 결사옹위하는 농민영웅이 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쌀로써 결사옹위하는 농민영웅이 되자!”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 투쟁하자!”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 투쟁하자!”
    “자, 이제 분조장의 지휘 아래 분조별로 지정된 작업장으로 가 오늘도 증산사업에 박차를 가합시다.”
    “와! 와! 와!”
    정치범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거지꼴이었다. 수십 번 기워 입은 옷조차 너덜너덜 해지고 머리는 도깨비가 나올 것처럼 덤불을 하고 있었다. 그때 지원은 정치범들을 헤집고 자신에게 일직선으로 날아와 꽂히는 낯선 시선의 따가움을 느꼈다. 하지만 고개를 들 수 없기에 그가 누군지 정확히 확인하지는 못했다. 아무튼 지원과 은혜는 보위원이 내뿜는 역한 담배연기가 머리카락에서 해거름의 굴뚝연기처럼 피어올라도 모르는 척 그 앞을 그냥 지나쳤다. 계급 타파를 부르짖는 프롤레타리아국가에서도 서열화는 엄연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 서열화는 부르주아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보다 더욱 포악하고 잔인했다.


    “일어섯!”
    “퍽!”
    “야, 이 반혁명 종파 새끼야! 당의 배려로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으면 나처럼 당을 위해 눈을 흡뜨고(부릅뜨고) 보답할 생각을 해야지. 감히 통제관리사업을 방해해?”
    “작업반장 동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좋아! 내 오늘 니 새끼를 두고 보갔어?”
    “예, 고맙습니다. 오늘 목숨 걸고 사업전투에 임하겠습니다.”
    50대의 남자 정치범은 이가 부러졌는지 입안 가득 피거품을 물었다. 그리고 말이 끝나자마자 다리를 질질 끌며 앞장서 걸어갔다. 오늘 지원이 속한 4반에 내려진 사업은 달래채취 사업이었다. 작업장은 시체매장지와 탈곡장을 거쳐 돼지사육장 바로 앞의 제3반다리를 건넌 다음 나타나는 립석천 우측의 들과 논이었다. 대열을 지어 작업장으로 향하는 정치범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몸을 앞뒤로 흔들어 그 반동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간혹 무리에서 뒤처지는 사람이 나오면 작업반장은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된욕(욕설)을 쏟아내며 가혹한 매질을 가했다. 북한에서 정치범은 인간이 아닌 그저 인민의 피땀을 빨아먹는 계급적 원수였다. 그런데 작업반장도 정치범이었다.
    “동무들, 우리 반 농산분조와 남새(야채)분조가 오늘 완수할 사업은 각 분조별로 할당량을 나누어 시행할 것이오. 각 분조장 앞으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아홉, 스물. 번호 끝!”
    “오늘 우리 반이 책임지고 할 사업은 평양에 올려 보낼 달래를 캐는 것이오. 할당량은 각 분조당 1,000㎏씩이오. 모두들 알겠소?”
    “예.”
    “만약 사업을 완수하지 못하는 분조가 나올 경우는 사상검토를 위해 보위지도원 선생님에게 즉각 보고를 할 테니까 각자 알아서들 전투하시오.”
    “작업반장 동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총력투쟁으로 돌격하겠습니다.”
    “좋소! 그럼 지금부터 각자 분조를 이끌고 투쟁하시오.”
    분조장이 하나씩 나눠준 호미를 들고 지원은 다른 조원 세 명과 함께 5인 조장 은혜의 지시에 따라 강을 따라 펼쳐진 논둑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다시 개인별로 할당된 양은 40㎏이었다. 작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붉은빛이 감도는 흰색 꽃 여러 개가 각각의 잎 사이에서 솟아오른 꽃줄기 끝에 매달려 있었다. 지원은 말을 걸 듯 그 옆에 살며시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난처럼 곧게 뻗은 비늘줄기를 몇 차례 쓸어보았다.
    “너네들도 내 목소리 기억하니? 난 너희들 모두 기억하는데.”
    “지원아?”
    “응, 오마니.”
    “이게 바로 달래야. 달래는 이른 봄 산과 들에서 자라. 여러 개가 덩이를 이루며 자라지.”
    “그런데 왜?”
    “파와 같이 독특한 향과 맛을 지닌 달래는 3, 4월에 캐낸 것이 가장 맛이 좋아. 그리고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입맛을 돌게 하고.”
    “바삭과자와 얼음보숭이만큼?”
    “뭐! 글쎄, 그건 오마니도 잘 모르겠는 걸. 호호호.”
    언젠가 오마니가 말해준 이야기가 내리찍는 호미 끝에 걸렸다. 그리곤 악어처럼 호미를 꽉 물곤 좀처럼 놓아주질 않았다. 지원은 오마니와 지수를 떠올리는 것이 하루아침에 정치범이 된 자신과 아바지 윤일현의 죽음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흔든 지원이 달래의 뿌리에 엉킨 호미를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그런데 그 힘이 너무 셌는지 그만 뒤로 나동그라졌다. 지원이 논둑에 철퍼덕 엉덩방아를 찧자 다른 조원들이 낄낄거렸다. 그때 저 멀리 땔나무를 구하기 위해 벌거숭이산을 기어오르는 한 무리의 다른 반 정치범들이 보였다. 정치범들은 마치 진달래가 번져가듯 산허리를 물들여갔다. 지원도 무심코 그들을 따라 산등성이를 기어올랐다. 하지만 몇 걸음 떼지 못하고 이내 발걸음을 멈췄다. 윤일현의 죽음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바로 뒤에서 작업하던 은혜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분조장이 노려보고 있다는 위험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