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공동체 위해 시민이 지불하는 희생! 다행히 충분히 감내 가능 작은 희생!

  • 가치 있는 승리’를 만들어야 한다



    투표 시간을 늘이자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튀어나오고 있다.

    논리는 이렇다.

    “이른 아침에 투표할 수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일부가 투표를 하는 경우, 일을 하지 못 해서 손해 보기 때문에, 이들의 [신성한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투표시간을 연장해야 한다.”

    투표할 기회를 많이 마련해 주어야 한다라는 소리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투표에 따른 약간의 손해를 없애주기 위해 투표 제도를 수시로 이리저리 바꿔서는 안 된다.

    도대체 얼마나 손해보는데?

    우리는 1년 평균 대통령 선거 0.2회, 총선 0.25회, 지방선거 0.25회…모두 0.7회의 투표를 한다. 1회당 평균 3시간 일을 하지 못한다고 가정하고, 시간당 임률을 6천원으로 계산하면 6,000*3*0.7=12,600원이다. 시민으로서 투표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가 지불해야 하는 희생은 연간 12,600원. 하루 34.5원.  하루 담배 0.27 개피. 하루 소주 0.23잔.   

    이보다는 공휴일이 되는 바람에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된 밥집, 찻집, 술집, 기업의 경영자가 지불하는 비용이 훨씬 크다.

    또한 학부모가 지불하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중고등 학생 한 명당 들어가는 정부 지출액평균 4백 만 원쯤 될 텐데, 실제 수업일수는 200일 남짓하다. 투표일이 공휴일이 되는 바람에 학부모는 자녀 1인당 하루 2만원 정도의 공교육 서비스를 포기해야 한다. 

    투표를 둘러싸고 각계각층의 사람들 모두 이런 저런 희생을 조금씩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12,600원만 희생이고 나머지는 희생이 아닌가? 

    왜 “투표에 따른 손해와 희생을 없애야 한다”라고 주장하는가?


    투표는 희생이다!


    투표에는 낮은 수준이나마, 일정한 진입장벽이 있어야 한다. 그 장벽을 뛰어넘는 과정에서 시민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존재]로 성숙한다.

    반듯하게 우레탄으로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적당하게 꼬불꼬불 오르락 내리락 올레길과 같은, 약간의 불편함과 희생이야말로 우리 삶을 활기차게 만든다. 너무 편안한 잇속, 너무 얌체 같은 잇속은 시민을 불어터진 라면처럼 만들 뿐이다.

    인간은 장벽을 넘어서고 도전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자긍심을 느끼고 강해지는 존재이다. 딱딱한 잠자리가 디스크를 막아주고 거친 음식이 위장을 보호하는 법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투표제도는 이미 지나칠 정도로 편하게 되어 있다.

    OECD 가입국 34개 멤버만 놓고 보자.

    25개 나라가 일요일 아니면 토요일, 아니면 [주말 하루 + 주중 근무일 하루 = 이틀] 투표한다.

    당연히 원래는 놀게 되어 있던 황금 같은 주말을 놀지 못 하고 투표장에 나와야 한다.

    나머지 9 개 나라 중에 6개 (미국, 영국, 캐나다, 덴마크, 아일랜드, 네덜란드, 노르웨이)는 근무일 중에 투표해야 한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공휴일로 운영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주에서는 근무일이다.

    오직 한국과 이스라엘만 투표일이 국가 차원의 공휴일이다.

    두 나라 모두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만들어진 국가들이다. 시민성의 전통이 약했기 때문에 투표일을 공휴일로 지정했을 것이다.



  • 투표 과정에서 시민의 자발성이 가장 뜨겁게 발휘되는 나라는 미국이다.

    (대부분의 주에서) 근무일에 투표할 뿐 아니라, 투표일 이전에 미리 “나, 투표합니다”라고 선거인 등록(voter registration)을 해야 한다.

    20세기 후반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은 바로 ‘선거인 등록 캠페인’을 통해 거대한 에너지로 뿜어져 나왔다.

    흑인들은 정부에 대해 복지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백인 폭력집단의 린치를 무릅쓰고 선거인 등록을 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미시시피 주에서 펼쳐진 ‘프리덤 써머’(Freedom Summer) 캠페인.
    인권운동가 네 명과 최소한 세 명 이상의 흑인 주민이 잔혹하게 살해 당했다.

    미리 가서 선거인 등록을 하는 것이 미국 투표의 특징이다.


    미국 시스템의 정신은 한마디로 이렇다.

    “네가 시민이라면, 네 권리는 네가 알아서 챙겨!”


    오스트레일리아와 벨기에의 경우에는, 주말을 희생해서 투표해야 한다.
    만약 하지 않으면 벌금을 두들겨 맞는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벨기에 시스템의 정신은 한마디로 이렇다.

    “네가 시민이라면, 투표는 권리임과 동시에 의무야.
    니 주말을 희생해서 투표해!
    안 하면 벌금이야!”


    어느 경우든 투표는 희생이다.

    다행히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작은 희생이다.

    공동체를 위해서 시민이 기꺼이 지불하는 희생이다.

    희생이 없는 것은 이미 삶이 아니다.

    더욱이 모두들 이런 저런 방식으로 희생하고 있는데, 유독, “이른 아침에 투표할 수 없는 일용직의 희생 12,600원”만을 부각시켜서 스스로 ‘민중의 벗’이라고 하는 것은 구역질나는 행태다.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투표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뿐 아니라,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는 정치 선동가에 지나지 않는다.


    엉터리 선동에 대한 어이없는 대응


  • 이 같은 선동에 대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이하 GH)는 어이없는 대응을 했다.

    첫째,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공휴일이 아니다’라는 엉터리 소리를 했다.

    둘째, “추가 비용으로 발생하는 백억원이 문제”라는 뉴앙스로 말했다.

    GH는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이다.

    이번 대응은 GH 혹은 그 진영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되어서 이 같은 실수를 하면 안 될 것 아닌가?

    (문재인, 안철수 진영은 투표시간 연장에 대해 엉터리 선동을 해 왔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그래서 오직 GH 및 그 진영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첫째, 투표일이 공휴일인 나라는 한국 뿐인가?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는 나라는 OECD 멤버 중에서도 이스라엘이 있다.
    주별로 공휴일 여부를 결정하는 나라는 미국이 있다.

    나는 이 자료를 뒤지는 데에 약 한 시간, 이를 JPG 이미지 파일로 정리하는 데에 추가로 2시간 걸렸다.

    GH는 이 정도의 자료를 뒤져서 정리하는 데에 세 시간을 쓸 수족을 갖추지 못 하고 있는가?

    그 상태에서 ‘최강의 대통령 후보’인가?

    그런 맨파워로 집권해서 어떻게 국가를 경영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진실(truth)을 가지고 거짓(falsity)과 싸워야 한다.

    우리가 북한인권을 지지하고, 강정해군기지를 옹호하고, FTA를 지켜내고자 하는 것은 그것들이 [생명이 벋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진실이야말로 [생명이 벋어가는 길]을 비추는 서치 라이트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진실을 위한 전사(warrior)가 되는 것 아닌가!

    사실(fact)진실을 구성하는 벽돌이다.

    GH 및 그 진영은 사실에 관해 태만하고 게으르다.

    이는 곧 진실에 관한 존중심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고? 


    몇 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인혁당에 대해 “두 가지 재판 결과가 있다”라는 엉터리를 이야기했다.

    과거에 대한 사과 때에는 인혁당민혁당이라고 말했다.

    (나는 GH가 무슨 자격으로 과거에 대해 사과하는지 영문이 어리둥절했다.
    5.16때 여덟살 짜리 코흘리개이고, 유신 때 스무살 짜리 푸릇푸릇한 대학생이었는데?
    왠 사과?
    그 시절을 책임지고 선택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기라성 천 만 명 있는데?)


    정수장학회에 관해서는 대법원 판결의 의미(“강압성이 있으나, 당시의 조치를 원인무효로 만들 정도의 사안은 아니다”)를 모른 채 구구절절 장학회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나는, 그것을 왜 GH가 이야기해야 하는지 어리둥절했다. 사단법인, 재단법인은 이사회가 왕이다. 이사장과 이사진이 버티면 별 도리가 없다. GH는 전직 이사장이었을 뿐, 정수장학회의 구구절절한 사정을 말해야 할 입장이 아니다. 그런 사정은 정수장학회의 최필립 이사장 혹은 그 대변인이 이야기하면 될 뿐이다.)


    이런 일련의 실수, 실언 하나하나는 대단한 게 아니다.

    그러나 사실(fact) 확인에 관한 게으름이 습관이 되면 치명적이다.

    ‘철의 여인’ 대처(Thatcher) 수상의 아버지는 구멍가게 주인이었다.
    이 별볼 일 없는 아버지가 대처에게 기막힌 좌우명을 물려 줬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인격이 된다”


    사실을 대충대충 넘기고 마는 습관은, 진실을 대충대충 무시하는 습관을 수반한다.

    이 패턴이 ‘최강 대통령 후보’ 나아가 ‘차기 대통령’의 습관이 될지 어떨지는 우리 모두의 관심사이어야 마땅하다.

    GH 및 그 진영은 국민에게, 사실에 대한 성실성, 진실에 대한 진지성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는 시민의 이름으로 이 증명을 요구한다.



    둘째, 투표시간 연장 여부가 백 억 원의 문제인가?

    상대방은 ‘이른 아침에 투표할 수 없는 일용직 근로자가 보게 될 손해’를 울부짖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천박하기 짝이 없는 선동질을 하고 있다.

    (그 금액이 연간 12,600 원이라는 소리는 쏙 빼고..또한 그런 사람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런저런 크고 작은 희생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쏙 빼고..)

    여기에 대한 대응이 “백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니까 어렵습니다”?

    이것은 시민됨에 대한 모독이다.

    상대방의 엉터리 선동이 우리를 “연간 12,600원을 사용할 수 없는 거지”라고 모욕했다면, GH의 백억원 스토리는 “거지에게 나눠줄 백억원이 없는 거지 정부”라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시민이 된다는 것, 투표를 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원척적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이런 저런 희생을 치르게 만드는 모멘트]라는, 정치적 통찰, 컨셉, 프레임이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진실에 대한 통찰, 사실에 대한 성실성만이 상대를 박살낼 수 있는 궁극의 힘, 궁극의 불길이다.

    상대는 거짓선동과 거짓 울부짖음과 거짓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썩은 걸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컨셉과 프레임에 바탕해서 사실을 성실하게 확인하는 것—이것이 지금 GH 및 그 진영에게 요구되는 전략이다.  나아가 이것이 유약하게 물러터진 웰빙 주류제도권 전체에게 요구되는 각성이다.

    “걸레에 의해 걸레 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라는 모멸감과 구역질을 씹고 또 씹어야 한다.

    이는 위대한 모멸감이요 위대한 구역질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실을 옹호하는 사람, 사실을 추구하는 인간을 향해 분발하게 된다.



    가치 있는 승리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 하든, 이번 대선은 [생명 번영의 길]에 관한 한판 승부가 되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생명 번영의 길]을 60년 동안 증명해 왔다.

    이제 이는, 감히 머릿수(다수결)을 앞세워 훼손하거나 흔들어서는 안 되는 근본 가치공화가치(Republican Values)로 굳어져 가고 있다. 


    다음 네 가지가 (지금 자리잡아 가고 있는) 공화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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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을 소중한 삶의 터전으로 보는 것.

    북한 전체주의의 붕괴를 예감하고 이에 대한 준비를 진행하는 것

    자유민주주의(사유재산-시장-개인의 선택과 책임)를 삶의 원리로 보는 것

    세계시장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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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이 네 항목의 앞 글자를 따서 이를 ‘대-북-자-세’라고 부른다.


    GH 및 새누리는 이 공화가치에 대한 친화성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상대가 엉뚱한 환상에 빠져 있는 덕분이다.

    상대가 온건하고 균형잡힌 리버럴(liberal)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했다면, 이번 대선의 양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공화가치를 존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GH 및 새누리는 ‘유일한’ 선택이 되었다.
    상대방의 패착 덕분에 독점 비즈니스가 성립했다.

    그래서 우리 시민은 GH 및 그 진영에게, ‘가치 있는 승리’(Victory with Values)를 주문한다.

    가치를 구현한, 가치를 지향한, 가치에 의한 승리!

    이를 위해 GH 및 그 진영은 더 잘하고 더 빠르게 업그레이드 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사실에 대한 성실성, 진실에 대한 진지성을 궁극의 무기로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화가치를 크게 떨치는 싸움!

    그것이 시민이 갈망하는 ‘감동의 정치’이다. 


  • 박성현 저 술가/뉴데일리 논설위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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