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서화 장편소설 '레드'-1


  • <8> 악몽

    북한의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의 천리마 고층살림집(아파트).
    어둠의 여과지(濾過紙)를 통과한 맑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이른 아침이었다.
    윤지원은 아바지(아버지) 윤일현, 오마니(어머니) 성혜경과 함께 북한에서 불멸(不滅)의 꽃이라 불리는 ‘김정일화(花)’가 새겨진 원형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시끌벅적할 아침이지만 오늘은 왠지 숨소리조차 내기가 조심스러웠다.
    침묵의 무게는 실로 엄청나 단숨에 살림집을 찌그러지게 할 정도였다.
    그런데 똑바로 쳐다보는 성혜경과 달리 윤일현의 시선은 식탁 위에서 이리저리 허둥댔다.
    심지어 나무젓가락 같은 손가락으로 베고니아과의 다년생 식물인 김정일화의 잎사귀 하나를 뜯기까지 했다.

    “여보, 당신도 한번 잘 생각해봐요. 누가 더 나은지.”
    “…….”
    “지원이의 장래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
    “당에서 버림받은 당신보다야 아무래도 제가 맡아서 키우는 편이 훨씬 더 낫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지원이도 없으면 난 어떻게 하라고.”
    “지금 당신이 문제예요? 아이의 장래가 문제지!”
    “…….”
    “오마니가 어떻게 아바지한테…….”
    “넌 잠자코 있어. 이건 어른들 이야기야.”
    “오마니. 미워! 아바지가 싫다고 하잖아! 나 안 보낸다고 하잖아!”
    “지원아, 그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도 다 알아. 오마니는 출신성분 때문에 아바지를 버렸잖아.”
    “버리긴 누가 버려.”
    “버린 게 아니면 뭐야. 아바지는 매일 이렇게 빼빼 말라가는데. 오마니는 돼지처럼 살만 찌잖아. 아바지가 불쌍하지도 않아?”
    “여보, 당신이 말 좀 해봐요. 그게 아니라고.”
    “오마니 보기 싫어!”
    “지원아!”
    “다신 우리 집에 오지 마!”
    “너 어디 가니?”
    “쾅!”

    지원은 아바지의 앙상한 손을 배추벌레처럼 툭툭 털어내고 무작정 밖으로 내달렸다.
    평소엔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편안하고 아늑한 집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 일 초도 머물고 싶지 않았다.

    지원이네 집은 천리마 고층살림집의 5층이었다. 그런데 현관문을 여는 순간 당연히 있어야 할 아파트의 복도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눈을 멀게 할 만큼 아주 강렬한 빛이 복도에서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잠시 후, 차츰 시력을 회복한 지원의 발아래로 이번엔 나지막한 동산이 드넓게 펼쳐졌다. 지원은 마치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이방인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헐벗은 동산엔 지원에게 그늘이 되어줄 만한 아름드리나무가 없었다. 그래도 그 헐벗은 산이 숨 막히는 집보단 훨씬 좋았다.

    “아바지는 바보. 오마니한테 지원이는 나랑 산다고 말하면 되는데 그게 뭐 어렵다고.”
    손가락 굵기의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왼쪽엔 아바지를 오른쪽엔 오마니를 그렸다. 그리고 작년 국제아동절날 특별배급으로 받은 하얀 블라우스를 곱게 차려입은 자신도 그렸다. 머리까지 양쪽으로 정확히 갈라 묶으니 한결 예뻤다. 곧이어 세 사람 주위로 만경대 유희장(놀이공원)의 풍경이 그려졌다. 만경대 유희장은 50여 종의 놀이시설과 옥외수영장, 작은 동물원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놀이기구마다 잔뜩 녹이 슬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희장은 무덤가에 서 있는 것처럼 음산했다. 더구나 직원의 망치소리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놀이기구를 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세 사람은 관성열차(롤러코스터)를 타고, 국숫집에도 들렀다. 오후가 되어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소나무숲 속의 물놀이장(옥외수영장)이었다. 지원은 갖고 간 수영복이 없었다. 그런데 오마니는 자꾸만 물에 들어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결국 오마니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오마니는 갑자기 뿔 달린 괴물이 되어 아바지와 지원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지원은 무서워 얼른 오마니의 얼굴을 지웠다.

    “오마니 싫어! 으앙~.”
    한참을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그러다 지쳐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맑은 새소리가 들렸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라 하늘은 높았고 새소리는 어제보다 더 가까이 들렸다. 마치 다 울었으면 이제 자기와 놀아달라는 몸짓 같았다. 귀가 너무 간지러워 지원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너무 흔들었는지 순간 어지럼증이 밀려와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생각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지원의 얼굴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그림자는 오른손을 지원에게 내밀고 있었는데 너무 습하고 어두워 흡사 만수대언덕의 김일성동상 같았다.

    “지원아, 오마니랑 같이 가자. 응?”
    “오마니는 싫다고 했잖아!”
    “오마니랑 살면 네가 하고 싶은 거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래도 싫어.”
    “아참! 너 색털레비죤(컬러텔레비전) 아직 못 봤지? 오마니 집에 가면 고급 당간부 집에만 있는 색털레비죤 있다. 네가 보고 싶어 하는 그림영화(만화영화) 실컷 보게 해줄게. 응?”
    “안 가.”
    “바삭과자(비스킷) 먹고 싶지 않아? 가락지빵(도넛)은 어떠니?”
    “다 싫어!”
    “그럼 얼음보숭이(아이스크림)는 어떠니? 오마니가 얼음보숭이도 매일 사줄 수 있는데.”
    “오마니 자꾸 왜 이래. 난 안 가!”
    “너 정말 자꾸 고집부릴 거야! 그럼 정말 오마니 화낸다!”

    달리 방도가 없음을 깨달은 오마니가 지원의 여린 손목을 빼앗아 무자비하게 끌고 가기 시작했다.
    지원은 손목이 아프다고, 놓아달라고 목 놓아 울부짖었다. 그래도 그건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오마니의 화만 더욱 돋울 뿐이었다.
    높고 푸르던 하늘도 금방 먹구름이 밀려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지원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저 멀리 헐벗은 아바지가 보인다. 아바지는 지원이의 울부짖음에도 그냥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심지어 아바지는 푸석푸석한 미소까지 지으며 힘없이 잘 가라고 손까지 흔든다.
    지원이는 자신이 없는 집에서 밤마다 부엉이처럼 슬피 울 아바지가 걱정됐다.

    “아바지 미워! 아바지는 오마니보다 더 미워!”
    “윤지원! 너 가만히 있지 못해!”
    “아바지 제발. 오마니가 나 데려가지 못하게 내 손 좀 잡아줘.”
    “잘 살아야 돼. 지원아, 행복해.”

    아바지는 분명 눈물을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이제 몇 걸음만 더 걸어가면 아바지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아바지가 바람 없는 날의 허수아비처럼 힘없이 발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아바지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 같았다. 아바지는 나뭇가지에 스치는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렸다. 아니, 그 바람처럼 걸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아바지의 발걸음이 뚝 하고 멈췄다.
    아바지는 마지막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원을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바지의 눈에선 이미 삶의 목표가, 그 길이 사라지고 없었다. 완벽한 체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바지의 얼굴에 환한 진달래가 한 움큼 피었다. 정말 곱고 아름다웠다. 그 진달래의 붉은빛이 하늘 한 귀퉁이를 물들이는가 싶더니 이내 아바지가 불덩이로 변했다.

    “으악!”
    “아바지, 안 돼! 아바지!”
    꿈이었다. 그것도 비명을 질러야 겨우 벗어날 수 있는 지독히 아픈 꿈이었다.
    얼마나 아팠으면 베게가 다 퉁퉁 부었다. 이렇게 특정 사건이 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걸 가리켜 흔히들 정신적 트라우마(Mental trauma·마음의 상처)라고 한다. 지원은 이 정신적 트라우마에 밤마다 시달렸다. 그런데 마음의 상처는 눈에 괴물이 보이게도 하지만 자신을 괴물로 만들기도 한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운 지원은 온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다. 마치 시속 200km로 달리다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곧장 중앙분리대와 정면으로 충돌한 것 같았다. 지원은 이렇게 십여 년을 살았다.

    “헉! 헉! 헉!”
    “이제 괜찮아. 너도 놀랬구나?”
    그나마 지원이 고통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새벽이면 늘 침대로 뛰어올라 손을 핥아주는 고마운 친구가 있었다. 생김새가 진돗개와 비슷하지만 크기가 크고 털이 많은 풍산개였다. 지난겨울 둘은 행인과 유기견으로 만났다. 그날은 유난히 안개가 자욱했다. 하지만 오전부터 지원은 근처 사무실에 꽃배달을 다녀오는 중이었다. 마침 횡단보도 앞에 이르렀을 때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지원은 자전거에서 뛰어내려 곧바로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멍! 멍! 멍!”
     지원이 횡단보도를 두 칸 정도 건넜을 때 어디선가 사납게 짖어대는 개가 있었다.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개는 초등학교 담벼락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짖기만 할 뿐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한쪽 다리가 불편했던 것이다.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지원은 가던 발걸음을 돌렸다. 바로 그때 지원이 서 있던 자리로 급회전을 한 승용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였다. 몸을 되돌리지 않았다면 정말로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정말 괜찮아. 달래야.”
    바로 그 개가 달래였다. 그때부터 인연이 돼 지원과 달래는 서로 위안이 되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됐다.
    달래는 몸은 불편했지만 핥고, 부비고, 거기다 언제나 맑고 투명한 눈빛으로 이야기하며 자신의 밥벌이를 했다.
    “힘이 들수록 살아야 하는 이유가 더 빛을 발한다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