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저널리스트 안치용 씨 ‘시크릿 오브 코리아’ 블로그에 원문 공개JACK, 백호부대 등 언급…6.25 전쟁 전후의 제해권 덕분에 작전 가능
  • 지난 3일 부산 영도구 태종사 입구에 있는 ‘영도유격부대 유적지’ 비석 앞에 6.25참전용사, 재향군인회 관계자 등이 모였다. 1953년 군번도 없이 북파됐던 900여 명의 ‘영도유격부대원’을 기리기 위한 자리였다.

    ‘영도유격부대’는 美CIA가 운영했던 북파부대여서 이들의 신분은 군인도, 민간인도 아니었다. 때문에 북파공작을 했음에도 법적 보상은커녕 불이익까지 받았다. 당시 북파된 900여 명 중 살아 돌아온 사람은 40여 명에 불과했다. 이들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美CIA의 비밀문건이 일부 공개됐다.

  • ▲ 2007년 비밀해제됐다는 CIA 문건.
    ▲ 2007년 비밀해제됐다는 CIA 문건.

    재미 저널리스트 안치용 씨는 자신의 블로그 ‘시크릿 오브 코리아’를 통해 비밀해제된 CIA 문건 일부를 공개했다. 내용은 CIA가 우리나라에서 운영했던 비밀공작부대(Clendestine Operation Unit)의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안 씨는 ‘숨겨진 화살촉’이라는 특수작전 전문 연구 사이트에 수록된 CIA 직속 영도유격부대의 간략한 역사도 소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CIA 문건은 1964년 3월 극동지부에 파견된 CIA 관계자가 작성한 것으로 일부는 삭제돼있지만 6.25전쟁을 전후해 美CIA 소속으로 활동했던 비밀공작부대들에 대해 일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문건에 따르면 CIA의 비밀공작 관련 부서는 6.25전쟁 당시 영도를 거점으로 활약했던 JACK 부대를 직접 운영했다고 한다.

    JACK부대는 ‘아주 잘 훈련된 게릴라 부대’로 더치 크래머(Dutch Kramer), 톰 커티스(Tom Curtis), 조지 애치슨(George Atcheson), 조 파그넬라(Joe Pagnella)라는 CIA의 선임 CO(Case Officer. 담당관)들이 훈련과 작전수립, 지휘 등을 맡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JACK부대의 위장 명칭은 ‘주한 합동 고문단(Joint Advisory Commission, Korea)’. 그래서 JACK 부대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북파요원들의 거점은 부산 영도, 본부는 부산 동래에 있던 베이커 캠프였다.

    요원들은 M-1소총, 30구경 기관총, ‘토미건’이라고도 불렀던 M1921 톰슨 기관단총, 바주카포 등으로 무장한 채 북한의 동․서해안을 넘나들며 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JACK부대는 6.25전쟁 중에는 美극동공군(FEAF)의 도움을 얻어 민간 경비행기인 세스나 또는 비치크래프트 C-45 등을 활용해 북한으로 공중침투를 하기도 했고, 북한 해안으로 상륙해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고 문건은 설명하고 있다.

    JACK 부대의 육상작전팀은 美8군 소속이었던 북파부대 ‘백호(White Tiger)’와도 연합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JACK부대는 해상기습과 매복 등을 통해 북한군을 기습공격에 상당한 전과를 올렸으며, 적진에 떨어진 조종사와 포로를 구출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고 한다.

    CIA는 JACK부대를 운영하면서 얻은 노하우와 경험을 활용해 베트남전에서 미군과 함께 '베트남 연구관찰 군사지원사령부(Military Assistance Command, Vietnam-Studies and Observations Group. MACV-SOG. 일명 리인액트 그룹)'를 운영했다고 한다(베트남전 당시 MACV-SOG에는 한국군 특전사 요원들도 파견돼 베트남 사람으로 위장해 작전을 펼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문건에 따르면 JACK부대가 1951년부터 2년 동안 수백 차례 비행기를 통한 야간침투를 실시했으며, 한 조종사는 108회의 침투에 성공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쟁이 점차 교착상태가 되던 1951년 CIA는 JACK 또는 OPC(정책조정사무소)라는 위장명칭을 쓰며 북한 북동쪽에서, 美8군 정보처는 북한 서쪽을 맡아 침투작전을 벌였다고 한다. 특히 美8군은 6.25전쟁 기간 동은 8천여 명의 북파공작원을 침투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문건에서 밝힌 부대는 6.25전쟁 전후 미국이 운영했던 비밀공작부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중후반까지 한반도 주변 해역과 섬, 공중은 모두 한국군과 유엔군이 관리하고 있었다. 전쟁 직후 북한군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거의 상실하다시피 해 한국군은 물론 미군, CIA가 다양한 북파부대를 운영했다고 한다.

  • ▲ 우리 군이 창설해 운영한 HID의 조별 기념사진. 한국군 소속 북파부대원의 명예회복은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미군과 CIA소속으로 활약했던 북파공작원의 명예회복은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 우리 군이 창설해 운영한 HID의 조별 기념사진. 한국군 소속 북파부대원의 명예회복은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미군과 CIA소속으로 활약했던 북파공작원의 명예회복은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그 중에는 美공군 6004정보대가 관리했던 NICK부대, 美육군 24군단 정보처가 창설했던 442방첩대(442Counter-Intelligence Corps)와 이를 기반으로 만든 KLO(한국연락소), 유사한 성격으로 美국무성이 창설했던 SOU(Special Operation Unit), 동키 부대, 월백 부대 등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6.25전쟁을 치른 뒤 병적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유공자 지정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심지어 재입대한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최근 한국군과 미군이 6.25전쟁 60년을 맞아 함께 미군 또는 CIA 소속으로 활약했던 북파 공작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조차 이들의 국가유공자 지정에 미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