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양극기생체제)에서 보수-리버럴(양극공영체제)로...共和가치를 위해!
  • 높게 나는 새가 멀리 보는 것이 아니라, 멀리 보는 새가 높게 난다. “멀리 보고 싶다”는 욕망에 온몸을 떨면서 창공 높이 치솟아 오른다.

    높은 곳에 오르면 뭐가 좋냐고?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숭고해지기 위해서 위를 쳐다보지?
    나는 밑을 내려다봐.
    나는 이미 숭고해졌으니까.

    자네 중에 웃으면서 동시에 숭고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산 중에서도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오른 사람은
    진짜 비극 혹은 상상 속의 비극,
    모두에 대해 웃을 수 있어.

    니체가 쓴 책은 그의 생전에는 1백 권 이상 팔린 적이 없다. 위에서 인용한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는 불과 수 십 권 나갔다. 그나마 팔린 게 아니라 ‘저자 기증본’으로 여기저기 보낸 것.

    그러나 그의 책은 천 년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 심리를 이해하고픈 사람, 또한 인생살이의 근본 기준—미덕(virtue)—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 또한 ‘진실’이라는 거북하고 불편하고 치명적인 물건의 쓸모를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소중한 교과서이기 때문.
     
    내가 왜 느닷없이 니체 이야기를 꺼냈을까?

    ‘높은 곳’ ‘멀리 보기’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니체 같은 큼직한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하면 좀 임팩트가 있을 지 몰라서, 잠시 그의 아우라를 빌려 왔다.

    자, 이제 본론으로.
     
    ‘새’누리는 좀 ‘새’ 다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새 중에서도 장수매 같이 높이 솟아올라야 한다. 멀리 보고픈 욕망에 몸을 떨면서 창공 위로 솟아 올라야 한다.

    요즘 새누리 사람들에게 우주는 ‘12월 19일에 마감되는 프로세스’에 지나지 않는다. 12월 20일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머리를 닫아 걸고 생각하지 않는다. 멀리 보기는커녕 초고난도 근시에 눈이 멀 지경이다.
     
    이는 사실상의 정치적 자살이다. 왜?
    상대방 진영이 멀리 보고 있기 때문.

    ‘상대방 진영’이 누구냐고?

    민통당과 문재인? 아니다.

    거기는 생명이 다한 좀비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친노종북과 전대협이 이끌고 있는 무덤굴이다.
    다수 당원과 의원들이 마음을 접은 지 오래.

    추석을 맞이해서 푸근한 메시지 대신에, 국민의 분노-증오를 부추기는 ‘국민 명령 제1호’를 보내겠다고 송곳니를 세우는 드라큘라들. 나꼼수, 백만민란, 전대협이 홍위병 완장을 차고 설치는 곳.

    대통령 후보란 자가, ‘회사 망할 때까지, 회사 망하고 나서도’ 자신들의 귀족적 포지션을 국가의 비용으로 유지하게 해 달라고 울부짖는, ‘망해버린 회사’의 귀족노조 운동—쌍용자동차 해직자 관련 운동—현장에 가서 눈물을 질질 짜는 집단.
     
     
    민통당-문재인이 아니라면 ‘상대방 진영’이 누구냐고?

  • 안철수 진영이다.

    잠깐, 거기는 진영이 아니라 안철수 개인이잖아?

    아니다.

    현재의 정치 집단 중에 가장 막강한 진영이다. 이제부터 잠시 그 비밀을 이야기하겠다.

     

    양극(兩極) 기생체제(寄生體制) vs. 양극 공영체제(共營體制)

     

    원래 야권 안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있었다. 흔히 선거판에서 “새누리당원 10명 보다 민주당원 1 명이 세고, 민주당원 10 명 보다 민노당원 1 명이 세다”란 이야기가 있었다. 에너지의 원천적 수준이 다른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우선 지난 20년 동안 정치권의 멘탈이 어떻게 규정당해 왔는지 살펴 보자.
    지금 벌어지는 일은 멘붕(멘탈붕괴)멘건(멘탈건설) 사이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가까이 야권 안의 이 에너지는 종북에 의해 발목 잡혀 억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종북 덕분에 이 에너지가 생겼거나 혹은 커졌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이 에너지는 ‘종북 때문에’ 아직껏 주류제도권의 거대한 한 흐름리버럴(liberal)—로 성숙하지 못하고 케케묵은 ‘진보(progressive)’타령에 머물렀던 것이다.
     
    원래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보수와 리버럴이 , 두 개의 흐름을 형성해야 한다.

    진보리버럴의 차이가 뭐냐고?

    서울대 교수 조국과 가수 싸이를 보면 안다.
    조국은 강남 ‘진보’이고 싸이는 강남 ‘리버럴’이다.
    조국은 근엄한 소리로 진보를 떠들고 싸이는 노골적 풍자로 욕망을 노래한다.
    강남은 욕망의 대명사 아닌가!

  • 싸이가 보낸 복음, 혹은 풍자는 조국을 한 순간에 생뚱 맞은 촌닭으로 만들었다.

    “우린 모두 욕망의 덩어리 아니야? 조금 큰 욕망, 조금 작은 욕망…오빤 ‘욕망 스타일’!”

    이게 리버럴이다.
    현대 문명 속에서 분열된 자아로 살아가는, 약간 빼딱해진 노골적인 사람들.
    풍자를 즐길 줄 아는 잡놈들.

    정치에서 리버럴이 나오기 전에 딴따라에서 먼저 나오는 법. 싸이는 리버럴 찬가를 부른 것이다.
     
    평양것들에 협조하고 평양것들 앞에서 빌빌 기는 대신에, 일찌감치, 온건하고 현실적인 리버럴로 전환되었더라면 야권에 깃들어 온 에너지는 훨씬 더 크고 품위 있는 상태에 도달했을 뻔 했다.
     
    평양것들에게 노비문서를 바친 사람들—종북성골—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야권 사람들이 온건 리버럴로 변할 수 있는 존재들—잠재적 리버럴이다. 이 잠재적 리버럴들이 종북성골에  뒷덜미가 잡혀 질질 끌려다니며 종북 질, 친북 질을 해왔다. 심지어 간첩단 사건만 터지면 팔 걷어 부치고 변호에 나서는 넋 빠진 변호사들조차 대부분 잠재적 리버럴들이다.

    이들의 사고 방식은 이런 식의 어깃장에 다름 아니었다.

    “아무개?
    응! 무시무시한 사람이지. 아마 평양과 연락하고 있는 사람일 걸? 종북성골이지.

    하지만 주류 제도권에 무릎 꿇고 복종한다고? 저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돼지들한테?
    차라리 종북하고 같이 지내는 편이 낫지.”

    종북의 전략은 ‘개혁 리버럴’의 성장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의롭고 선량한 패거리이고 ‘그들’은 탐욕스럽고 불의한 집단이라는 사고방식을 역사, 문화, 사상에 널리 퍼뜨림으로써. ‘우리-그들’ 편가르기를 집행하는 것. ‘종북과의 동거’는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 한쪽 날개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그들의 전략을 반영한 언어가 곳곳에 배어 들어가게 되었다.

    민통당의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이것 아닌가?

    “분노와 정의로 그들을 심판하자!”

    분노와 정의는 무슨 개뿔?
    분노, 정의, 시체를 앞세우는 인종들이야말로 분노의 화살, 정의의 칼날을 받아야 할 존재들이다.

    진실은 피(시체)로 증언되어 있다고?
    웃기는 소리. 피(시체)야 말로 사람을 흥분시키기 때문에, 최악의 증인이다.
     
    종북의 선동질에 의해 ‘우리-그들’ 편가르기가 일반화되면, 주류 제도권을 대변하는 정당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하나 밖에 남지 않는다.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수 밖에 없다.

    “저들은 대한민국을 불태워서 거덜내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막을 존재는 우리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밀어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종북이 목표 삼은 '우리-그들 편가르기'가 완성되었다.
    유식한 말로 '진보-보수 편가르기'이다.

    편가르기는 사회통합을 부수고 양극(兩極) 원심력을 작동시킨다. '온건 리버럴'의 성장을 원천 차단할 뿐 아니라 '개혁적 보수'의 등장을 원천 봉쇄한다.

    온건 리버럴이 존재할 수 없는 살벌한 지평은, 역으로, 주류제도권으로 하여금 ‘경쟁이 없는 상태’에 온존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에. 종북이 주도하는 야권과, 변화에 무심한 (따라서 독선과 오만에 취해 게을러진) 주류제도권으로 이루어진 기묘한 기생체제(寄生體制)가 완성된다.

    나는 이를 ‘양극(兩極) 기생체제’라고 부른다. 종북이 주도하는 비주류와, 나태(게으름, 懶怠)에 중독된 주류로 이루어진 정체상태(dead-lock).
    서로가 상대방을 위한 숙주 역할을 하면서도 서로가 상대방에게 빨대를 꼽은 상태.
     
    대한민국 시스템을 약화시키기 위해 평생 사악하기 짝이 없는 펜 대가리를 놀리다 죽은 리영희 같은 인물은 이 양극 기생체제에 대해 “새는 두 날개로 날아야 한다”라며 찬양했다. 지독한 거짓말이다.

    종북-비주류와, 나태-주류가 두 날개라고?

    차라리 길가를 헤매는 x개의 불알 두 쪽이 ‘두 날개’라고 찬양해라.
     
     
    대한민국 주요 정치세력은 모두 주류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게 운명이다.

    미국의 민주당은 비주류이고 공화당은 주류인가? 천만에.
    민주건 공화건 모두 주류 아닌가!

    주류는 리버럴과 보수, 두 흐름을 갖출 때 완성된다.
     
     
    리버럴의 존재이유는, 오늘의 비주류를 흡수해서 내일 주류의 한 부분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보수의 존재이유는, 오늘 주류의 근본정신을 가다듬어 내일 주류의 척추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자는 보수 정신을 온고(溫故, 과거에 정통함)라고 불렀고, 리버럴 정신을 지신(知新, 새로운 변화에 대해 감수성이 있음)이라고 말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한편으로는 과거에 정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변화를 이해함)—이게 두 날개이다.
     
    보수와 리버럴의 두 흐름이 존재하는 주류 시스템을 무엇이라 부를까?

    나는 이를 양극(兩極) 공영체제(共營體制)라고 부른다.
    대등한 경쟁 관계에서 밀고 당기는 양극.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파트너로 규정하는 체제. 그래서 서로의 번영과 발전을 자극하는 체제.
     
    양극 공영체제에서는, 보수리버럴대한민국의 근본가치—감히 다수결을 앞세워 흔들거나 도전할 수 없는 공화(共和) 가치—를 공통 분모를 삼는다.

    나는 이를 ‘대-북-자-세’(한민국, 한인권, 유민주, 계시장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라고 부른다.
     
    대북자세를 전파하는 대신에, 북한(당시 사회주의권)이 왼쪽 날개이고 미국(당시 서방)이 오른쪽 날개라고 떠든 리영희는 공자의 얼굴에 가래침을 뱉은 상스런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 이 흉측한 사기꾼의 구라빨이 대한민국 담론을 장악해 온지 40년이나 된다.
     

  • 몇 년 전,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한길사의 전시관-카페에 갔을 때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리영희 전집’이 자못 자랑스럽게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하마터면 건물에 불을 지를 뻔했다. 비싼 목재로 인테리어를 해 놓아서 불 지르면 잘 탈 것 같았다. 출판사가 부끄러움 모르는 덕에 책을 불지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나서서 전시관이라도 불질러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튼. 이 흉악한 양극 기생체제는 주류의 멘탈이 나태하고 독선적인 상태에 머물도록 타락시켰고, 비주류의 멘탈이 주류(온건 리버럴)로 진화하는 것을 가로 막았다.

     

    &&&&&&&&&&&&& 안철수는 진영이다 &&&&&&&&&&&&&&&

     

    그런데 김정일 죽음에서 통진당 분열에 이르는 과정에서 종북성골사악한 장악력이 해체되어 버렸다. 그 최대의 수혜자는 바로 그 동안 친노종북 전대협에 치여서 기를 펴지 못 했던 야권의 인적 자원들이다.

    그 성정이 여리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핵심 당료로 성장할 햇볕을 보지 못 한 사람들. 그 심리가 점잖기 때문에 지난 4.11 총선에서 한명숙-이해찬 체제에 의해 공천학살 당했던 사람들. 야권에는 이런 인적 자원이 많다.

    80년대 초 학 번을 기준으로, 이 같은 성향의  프로급 정당 활동가들이 못 잡아도 수 천 명. 이들이 대부분 안철수를 적극 지지하면서 뛰고 있다. 그래서 안철수는 개인이 아니라 진영이다.
     
    나는 이들을 결코 미화할 생각이 없다. 이들 중 드러나지 않은 핵심(아직은 발표되지 않아서 이름을 언급할 수 없다)은 종북, 친북 성향이 없었지만 상당수는 (흉악한 양극 기생체제에서) 종북질, 친북질을 진하게 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심리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중적이다. 정체되어 있는 (따라서 독선, 탐욕, 나태에 찌들어 있는) 주류제도권에 굴복하기 싫은 심보에서, 어깃장 놓는답시고 종북질, 친북질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안철수의 비서실장 조광희.
    성격 검사를 하면 무지하게 합리적이고 온건한 사람으로 나올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한 짓은?

    박원순이 주도한 ‘해외민주화 인사 안전귀국과 명예회복’ 운동에 깊게 관계했다. ‘해외민주화 인사’란 송두율, 윤이상 같은 해외 종북거물을 가리키는 멋진 이름이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똥을 “호모사피엔스의 신체 중앙부 후면의 통로로 주기적으로 배출되는 악취 물질”이라고 불러야 한다. 조광희 같은 사람이 이런 짓을 한 것은 ‘주체사상’에 심취해서가 아니라 앞서 말한 ‘어깃장 심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평양에 노비문서를 제출한 적 없기 때문에 노선을 바꾸기 자유롭다는 것. 이들이 무의식 중에 원하는 것—숨겨진 욕망은 무엇일까?

    ‘리버럴 주류’가 되는 것이다. 특히 평양 붕괴가 급가속 되고 국내의 종북성골들이 박살났기 때문에 이들의 숨겨진 욕망이 맹렬하게 꿈틀거리고 있다.   
     
    한마디로 안철수 전력의 핵심은,
    첫째, 종북/친북 성향이 없었던 합리적 야권 인재들로서 좀비 민통당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려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
    둘째, ‘어깃장’ 심보에서 종북과 어울렸지만 ‘리버럴 주류’가 되고픈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성분’의 사람들 중 프로 정당활동가들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80년대 초 학번을 기준으로 전국에 수 천 명이 존재한다.

    나아가 낮에는 문재인 밤에는 안철수 편에 서는 주문야안(晝文夜安) 민통당 의원들이 수 십 명.

    게다가 안철수 측은 “재정 건전성과 시장 중시”를 목표로 삼은 건전재정포럼(회장 강봉균. 이헌재 뿐 아니라 강경식, 진념 등 경제기획원 및 재무부 핵심 거물 테크노크랫 포함)과 연결되어 있다.

    나아가 외교안보에 있어서는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윤영관(노무현 정부 때 초대 외교부장관. ‘동맹파’ 제거 작업 때 사임)과 연결되어 있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안철수 측은, ‘개인’이 아니라 '진영'이다. 지금의 정당, 정파 중에서, 가장 지능적인 전략, 정치행보,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진영이다. 또한 양극 기생체제에 염증을 내는 중원(中原) 유권자들의 지지 규모가 이제 새누리에 대한 지지 규모에 육박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가장 주목할 것은, 이 진영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 중에, ‘높은 곳’에서 ‘멀리 보기’를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새누리 사람들은 대부분 12.19 이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장기(長期, long-term)는 90일(2012 대선까지)이다.

    그런데 안철수 진영에는 단기를 90일, 중기를 1,800일(2016년 대선)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마디로 “지금의 비주류를 오롯이 안아 주류로 승화시킬 수 있는 리버럴 정당을 새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고 안철수는 이 목표를 위한 말(馬)이며 상징 아이콘으로 보는 사람들. 이런 소리를 여러 차례 보고 들었다.

    “저희는 최소 6년을 보고 갑니다.”
     
    “대한민국 정당정치의 판 자체를 바꿀 뜻이 없다면 내가 왜 안철수와 함께 합니까?”
     
    “친노종북들을 털어내고 새 판이 짜이고 있다. 아, 정말 기쁘다. 편안한 밤, 달게 자자.”(트윗)


    손발들 중에 이 같이 높고 명확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디글디글하다는 것—이것이 안철수 진영 최대의 힘이다.

    그래서 나는 이 진영을 ‘건설파’라고 부른다.

    무엇을 건설하자는 것인가?

    작게는 ‘리버럴 진영’의 건설.
    크게는 주류 제도권을 자극하여, 보수-리버럴 두 날개를 가진 대한민국 주류의 건설.
     
     
    물론 안철수 진영에 “민통당과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 (안철수가 민통당에 입당해서 야권 단일후보가 되어야 한다)”라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마디로 안철수를 친노종북을 위한 바람잡이로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이런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엄청나게 침투했을 것이다.
     
    이들을 제압하는 방법?

    간단하다. 안철수가 이미 사용하고 있다.

    아무 형식적 당 조직을 만들지 않고 12월 19일까지 후보 개인의 선거조직으로 가는 것. 이심전심(以心傳心) 버추얼 조직. 버추얼 정당이다.

    공식적 ‘유사 정당 혹은 정당’ 없이 그냥 개인 후보의 선거조직일 뿐이니까, 노선에 대해 반란과 헛소리가 나올 건덕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후보의 뜻과 다르면 후보를 공격하지 못 하고 그냥 나가야 하니까.

    안철수는 한가지만 유심히 살피면 된다.

    안철수에게 “당을 서둘러 만들어야 합니다”라는 소리를 속삭이는 자는 “당신을, 좀비 조직인 민통당에 팔아먹고 싶다”라고 욕망하는 가롯 유다이다.  

     

    &&&&&&&&&&&& 새누리는 높이 날아 멀리 봐야 한다 &&&&&&&&&&&&&&&&&

     

    안철수 진영—건설파 “비주류의 정당정치”를, 종북이 주도하는 양극 기생체제에서, 주류 리버럴이 한 축을 감당하는 양극 공영체제로 승화시키는 것을 존재이유(raison d’etre)로 삼았다.

    그 진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 중에 이 같은 존재이유의 수명을 단기 90일, 중기 1,800일, 장기 무한(無限)으로 삼는 사람들이 디글디글하다. 젊은 시절 운동권 학생에서 나이 마흔 후반의 정당정치인이 되도록, 이제껏 살아 온 자신의 인생을 총정리 한다는 심정을 가진 사람들.
     
    나는 한 때 안철수에 대해 ‘단기 사업 모델에 강한 투기꾼’으로 보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안철수는 개인이 아니라 진영이다.

    건설파 진영. 건설파의 마인드는 단기 투기와는 전혀 다르다. 20년 묵은 종북의 장악력을 벗어나, 양극 기생체제에서 양극 공영체제로 나아가겠다는 열정 혹은 욕망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비주류의 정치종북의 인질에서, 주류 리버럴로 승화시키겠다는 비전이 매 순간 강화되고 있다.
     
     그에 반해 새누리는?

    “장기가 90일. 12월 19일 이후 생각하지 않음. 생각하기 싫음.”

    이 마인드로는 백전백패 한다.

    새누리의 패배 자체는 아까울 것 없다. 그러나 이 마인드로는 주류 제도권의 정치 자산 자체가 멘붕한다. 지금은 멘붕의 시대…이를 극복하는 길은 멘건(멘탈 건설)을 하는 것 뿐.

    “주류 제도권의 보수 가치가 무엇인가? 즉 과거로부터 어떤 가치를 이어받아 현재와 미래에 적용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자기 성찰부터 강화해야 한다. 공자가 말하는 온고(溫故).
     
    그리하여 새누리는 ‘주류 보수 정당’ ‘가치 정당’으로 변신하는 긴 장정(長征)을 시작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주류 리버럴 정당’을 노리는 안철수 진영—건설파와 승부를 펼칠 수 있다.

    상대가 정당정치 판 자체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에, 새누리 역시 그에 걸맞는 멘탈 수준, 대응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 후보 박근혜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류 보수 정당’ 건설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담하고 지능적인 행보가 되어야 한다. 안철수의 일거수, 일투족은 ‘주류 리버럴 정당’ 건설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상대와 같은 차원에서 놀아야 힘겨루기가 될 것 아닌가!
    같은 수준의 ‘높은 곳’, 같은 거리의 ‘멀리 보기’.
     
     
    새누리와 박근혜가 지향해야 하는 ‘주류 보수의 가치’란 무엇인가?

    안철수 진영—건설파보다 백배 유리한 지위에 있다.

    안철수 진영은, 사나운 편가르기 식의 비주류 정치에 공감해 온 사람들을 대-북-자-세(공화가치)로 이끌어야 한다.

    반면에 새누리와 박근혜에게는 대-북-자-세(공화가치) 자체가 바로 주류 제도권이 이끌고 건설해 온 가치이다.

    공화가치에 대한 오리지널 오너십(original ownership)을 주장하는 것, 그리하여 그 품을 넓혀 이제 안철수 진영—건설파를 이 가치 지평으로 당당하게 초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새누리와 박근혜가 해야 할 일이다.
     
     
    지금 새누리와 박근혜는 이 같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 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주류 제도권에서 나오는 보수의 흐름이 반듯이 서야, 비주류가 승화되어 만들어지는 리버럴과 어울려 양극 공영체제가 생길 것 아닌가!

    두 날개를 가진 새가 날아오를 것 아닌가!
     
     
    안철수 진영—건설파에게 나는 이렇게 사납게 충고했었다.

    “당신들에겐 지금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절반을 감당할 수 있는 건강한 리버럴 정당정치 프로세스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좀비가 된 민통당에 굴복하지 말고 끝까지, 끝까지 무소의 뿔처럼 가라!”

    안철수 진영—건설파가 이 길로 들어설 조짐을 보이는 지금 나는 새누리와 박근혜에게 이렇게 사납게 충고한다.

    “당신들에겐 지금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절반을 감당할 수 있는 개혁적 보수 정당정치 프로세스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안철수 진영의 존재이유를 통찰하고, 그에 대응하는 새누리의 존재이유를 창출하라!”

    아, 이 뜻이 새누리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그래서 차라리 정치 컨설턴트 흉내를 내어 추석을 앞두고 벌어질 일에 대해 컨설팅을 자청해서 하게 된다.
    아, 물론 무료. (세금계산서 용지 살 돈이 없어서 청구서를 만들지 못 하기 때문에.)

     

    &&&&&&&&&&&&&&&&& 박근혜의 역사 정리? &&&&&&&&&&&&&&&&&

     

    우선 명확히 할 것이 있다. 이 때 ‘역사’란 무엇인가? 60, 70년대의 역사를 뜻한다.

    그렇다면 박근혜는 무슨 자격으로 역사를 ‘정리’하나?

    우스꽝스런 이야기이다. 박근혜는 60년에 여덟 살짜리 코흘리개였고, 70년에 열 여덟 살짜리 푸릇한 청소년이었다. 60년대, 70년대에 관해서 박근혜는 역사의 주체도 아니고 역사 ‘정리’의 주체도 아니다. 박근혜의 ‘역사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 박근혜의 역사 이야기란 원래는,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한 명의 어린이, 청소년, 아가씨로서 그 시대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그저 그런 이야기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국민들이 이 그저 그럴 뻔 한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 집 딸은 자기 아버지의 사람됨과 행적을 어떻게 보고 있나?”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다.
     
    남의 집안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한 관심은, 관음증(觀淫症) 류의,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추악한 심리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 속의 아버지, 어머니를 어떻게 해석하고 보듬어 안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최대의 화두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박근혜가 보는 박정희’에 대해 관심이 깊은 것이다. 박근혜가 그 화두를 어떻게 푸는지 봄으로써, 자신 역시 자기 마음속의 아버지. 어머니를 이해하고 보듬어 안는 지혜를 구하고 싶은 것이다.
     
    공자가 3년 시묘(侍墓)를 이야기했던 것은 부모 묘 옆을 지키고 앉아 3년 동안 청승맞게 울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과 왕래를 끊고 오직 책과 자기 자신 속에 침잠해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명상하란 이야기이다.

    이 화두는 원래 나이가 40, 50 넘어서야 사무치는 화두이다. 그런데 만약 젊은 시절에 미리 앞당겨서 이 화두를 들고 판다면? 지극한 통찰과 지혜에 이를 수 있다. 
     

  • 심리학에서는 이를 아버지상(father figure), 어머니상(mother figure)이라고 부른다. 특히 박정희 같이 복합적이고 미묘하고 예민하고 지적(知的)이고 카리스마 강한, 시대를 뒤바꾼 강력한 지도자의 자녀라면 이 화두의 무게는 무지막지하다.

    더욱이 온화하고 차분한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한 암살 시도에서 애꿎게 희생당했다면…. 더욱이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그 날 본능적으로 연단 아래로 몸을 굽혀 숨었지만, 평생 단아하게 살아왔던 어머니는 연단 바로 옆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다가 총알 오가는 중에 숨졌다면….

    1974년 8월 15일 현장에는 케빈 코스트너 같은 자기희생적 보디가드는 존재하지 않았다.
     


  • 마음 속에 이런 정도로 무겁고 비극적인 아버지상, 어머지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숨쉬기조차 어렵다. 만성적 천식이나 무호흡증을 겪기 십상이다. 혹은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자신의 영혼을 대면하는 일을 원천 차단해 버리든가.

    그러나 박근혜는 이를 극복했다.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정치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마어마한 인간 승리이다.
     
    국민은 어눌하지만 이 승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박근혜가 이 심리적 중압감을 어떻게 소화하고 극복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박근혜의 역사정리가 아니라 박근혜의 심리정리(심리 형성 노하우)—인격정리(인격 형성 노하우)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이 말더듬이 백성은 ‘역사정리’라고 부르는 게다. 박정희를 시시콜콜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박근혜의 영혼 한 가운데를 슬쩍 엿보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의 역사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들을만한 가치가 있으려면 “딸—코흘리개, 청소년, 아가씨”의 레이어 위에, “완숙한 성인/정치인”의 레이어가 겹쳐야 한다.

    이것에 실패하면 지겹기 짝이 없는 ‘자기 아빠 변명’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오랜만에 동창모임에 나가 아련한 옛 기억 속의 친구를 만났던 자리를 기억해 보자. 아무 재미가 없어도 그냥 입가에 벙긋벙긋 미소가 지어진다. 왜? 친구의 늙은 얼굴 레이어 아래에 어린 시절 앳된 얼굴 레이어가 겹쳐져 있기 때문이다.

    오직 시간만이 빚어낼 수 있는 오버레이(overlay) —그 자체가 흥겹고 오묘하다.

    “우리는 모두 죽는 존재(mortal being)… 죽음에 이르는 길—인생이 이같은 오버레이라면 그 자체가 축복 아닌가!”—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편안한 미소가 절로 피어나는 것이다. 
     
    (이왕 공짜 컨설팅 하는 김에 왕창 하자. 오직 대한민국의 건강한 양당 체제를 위함이다. 이대로 가다간 주류 제도권은 자신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을 모두 털어먹고 정신적 파산 상태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오버레이는 어떤 구조로 제시되나?

    퍼스날 스토리, 퍼스날 인터뷰가 되어야 한다. 이런 식이다.

    “아, 그 일이요? 그때 제가 열아홉이었죠. 정말 미팅도 하고 미니 스커트도 입고 싶었어요. 여름날이었어요. 날씨가 무더웠죠. 그런데 갑자기….@@@@%%@@@....그 때엔 그렇게 듣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게 과거 레이어.

    “그런데 이제 나이가 먹고 나니까…사물의 다른 측면이 보이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또 가슴 아픈 새로운 사실도 다시 조명되고…”

    이게 현재 레이어.

    “그런데 우리는 이제 거대한 통합을 이루어야 하는 시점이지요. 대한민국, 북한인권, 자유민주, 세계시장이라는 참으로 소중한 가치가 이미 든든하게 뿌리박아 가고 있지 않나요? 이제 열심히 미래를 향해 가야죠.”

    이게 본인의 메시지.
     
     
    60, 70년대에 관한 박근혜 식 역사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장르는 오직 하나 뿐. 자유스런 기자간담회. 혹은 인터뷰. 논문에도 담을 수 없고 성명에도 담을 수 없다. 논문이나 성명은 상스럽다.

    자신의 가장 소중하고 가장 비밀스런 심리적 경험—마음 속의 아버지상, 어머니상에 대한 이해와 보듬어 안기—을 논문과 정치성명을 통해 드러낸다는 것은 무식과 상스러움의 극치일 뿐.
     
     
    박근혜가 정리해야 할 역사는 따로 있다.
    지난 수년 동안의 정치적 선택과 행보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몇 개만 꼽아보자.
     
    ■ 6.15와 7.4에 나타난 북한정책에 대해 왜 찬성한다고 했는지. 왜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라고 하지 않았는지.

    ■ 작년 8월 서울시 주민투표 (전면적 정부 급식 반대 투표)에 박근혜와 새누리는 왜 그토록 부정적 혹은 소극적 입장을 취했는지. 그때 표무덤에 묻힌 270만 서울 시민에 대해 왜 단 한마디의 위로의 말이 없었는지.

    ■ 작년 10월 서울 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는 과연 결사적으로 움직였는지? 혹시 ‘나경원’이라는 친이(親李) 스타를 조기에 제거하려고 소극적이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지난 4.11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 공천을 주지 않은 것 아닌지? 

    ■ 학령층 인구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비정상적 환경에서 반값등록금이 과연 합리적인 정책인지? 오히려 군복무자에 대한 대우 혹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 하는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닌지?

    ■ 인구 구조(demography)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중장기 전망을 했을 때, 지금의 복지로도 재정이 개판으로 망가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지?
     
    이러한 뼈아픈 질문에 대한 ‘역사 정리’—이것이 후보 박근혜의 몫이다.
     
     
    60, 70년대에 대해서는  '역사 정리'가 아니라, 오직  ‘역사 이야기’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나야 한다. 인간 박근혜가 자기 마음 속의 어머니,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보듬어 안게 되었는지, 그 내밀한 프로세스가 민낯으로 보여져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박근혜에게 요구하는 가장 짖궂고 예민한 퍼포먼스이다.
     
    “박근혜가 ‘괴물 같은 위인’ 박정희를 아버지로서 이해하고 보듬어 안았던 노하우를 알 수 있다면 나의 지혜 또한 엄청 높아질 거야”

    이것이 국민의 욕심이다. 박근혜는 과연 이 욕심을 만족시킬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를 만족시킨다면, 박근혜의 ‘역사 이야기’는 ‘비장의 무기’, ‘궁극적 무기(the ultimate weapon)’가 된다. 박근혜는 아직 국민에게 ‘깊은 영혼을 가진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선 적 없다.

    침대는 과학일 지 몰라도 사람은 과학이 아니다. 영혼이다.
    그래서 정치는 공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논설위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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