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文-安연합은 '좀비'와 '투기꾼'의 결합! 독거미 기다리는 무덤될 것"
  • 춤판이다. 코스닥에서 초대형 호재 '안철수 후보'가 등장해서 안랩 주가가 춤춘다. 그 춤에 맞추어 정치판도 춤춘다. 타란튤라(독거미)의 춤. 대한민국 시스템 자체에 대한 앙심과 원한의 춤.

    한반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 김지하.  1991년, 극렬 주체사상파 청년들의 분신자살이 이어지자 그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란 칼럼을 썼다. “시체 장사를 걷어치워라”라고 일갈했다. 심지어 “시체 섹스를 즐기는 행태”(necrophilia)라고 꾸짖었다. 이 칼럼 덕분에 김지하는 지금까지도 그들에 의해 배신자, 변절자, 수꼴로 매도당한다. 이제 나도 김지하를 흉내내어 외친다.

    “독거미 춤판을 걷어 치워라!”

    나를 매도할 때에는 좀도 화끈한 단어로 매도해 주기를! 이왕이면 “반동분자” 정도면 감사하겠다. “순악질 반동분자 새끼”가 되면 감격적으로 감사! 이제 나도 춤판으로 들어간다. 독거미 춤판의 음탕한 스텝을 밟아 빙빙 따라돈다. 타란튤라(독거미)의 춤을! 오빤, 독거미 스타일!

     

    개미들의 무덤..안철수


  • 나는 ‘AhnLab’(안랩)이란 로고를 볼 때마다 ‘AntTrap’(안트랩, 개미 무덤)이 연상된다.

    안랩은 적정 주가 1만 5천원 대에서 11만원 안팎으로 7~8배 튀었다. 평창동의 큰 손 원모씨는 1만5천원에 1백만 주를 사들여 이 중 절반쯤 팔아서 540억을 벌고도 아직 주식 50만주를 손에 들고 있다. 이미 팔았을지도 모른다. 보유주식이 50만 주가 되는 순간 더 이상  ‘대주주’가 아니기 때문에 주식을 팔아도 실시간으로 신고해야 할 의무가 없어졌다. 십중팔구 이미 팔고 손 털었을 게다. 150억 동원해서 몇 달 만에 천 억 횡재.


    코스닥 시장에서 주식가격을 띄워주는 호재를 ‘펄’(pearl, 진주)이라 부른다. 사업의 실체성이 없어도 된다. ‘꿈’을 부추길 수만 있으면 오케이. 고백하자면 실체성이 없을수록 좋다. 실체성이 있으면 괜히 나중에 ‘실적’으로 증명해야 하니까.

    안랩은 ‘안철수 대통령’이라는 엄청난 펄을 운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코스닥의 ‘펄’로 타락했고, 대통령 후보가 ‘걸어다니는 펄’이 되었다. 빙글 빙글 춤판이 돈다. 안랩 주가가 춤추고 대한민국 대선판이 춤춘다. 

    이 같은 주식놀음 최대의 수혜자는 큰 손들이다. 최대의 큰 손은 안철수. 앞에서 말한 원모씨도 안철수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 밖에 안 된다. 코스닥 주식시장은 제로섬 게임이다. 수혜자가 있으면 희생자도 있기 마련.

    최대의 희생자는? 개미 투자자들이다. 안랩은 이미 거대한 ‘개미들의 무덤’이 된 지 오래다. 코스닥 역사상 가장 살벌한 무덤.

    안철수의 출마를 계기로 이 흉측한 무덤이 완성된다. 지지고 볶고 자살하고 도망가고…개미들의 필사적 몸부림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주식시장의 개미 뿐인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60년 정통 야당이 죽어나간다.
    반(反)새누리 성향의 중간층 시민들의 꿈이 죽어나간다.
    마지막으로 안철수의 인격과 영혼이 죽어나간다.

    모두들 가련한 개미로 변해 이 무덤 속에 묻힌다. 안랩이 아닌 안트랩(AntTrap)이 완성되었다. 

    마르크스는 명작 <부르메르 18일>(Brumaire 18th)에서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엔 비극, 나중엔 생쇼(farce)”라고 말했다. 원래는 헤겔의 말이다. 하지만 이 멋 있는 말조차 이제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다. 시대가 바뀌어서 시간의 흐름이 빨라졌다. 그래서 반복이 여러 번 일어난다.

    “역사는 세 번 반복된다. 처음엔 비극, 두 번 째는 생쇼, 세 번 째는 무덤



  • 1997년 DJP 연합비극이었다.

    호남과 충남이 손을 잡고 반(反)박정희친(親)박정희가 통합하하는 것은 위대한 통합이어야 했다. 그런 식의 권력 야합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위대한 통합이 물건너 갔다.

    위대한 통합이 뭐냐고?

    개발에서 소외된 세력이 개발을 보듬어 안고, 박통 체제에서 소외된 집단이 박통 체제의 가치와 한계를 오롯이 품는 ‘가치의 대통합’(the great integration of values)이 되었어야 했다.

    DJP 연합은, 가치의 대통합 대신에 야바위꾼의 권력야합을 구현함으로써, 가치의 대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소중한 가능성을 망치고 죽여버린 것이다. 그래서 비극이다.


  • 2002년 노무현-정몽준 연합생쇼였다.

    아무런 가치와 원칙을 공유하지 않는 두 사람이 후보단일화를 했다. 그리고 투표 전날 정몽준이 일방적으로 단일화를 깼다. 열성 노무현 지지자들은 인터넷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우리 노후보께서 비열한 꼼수에 당하셨습니다. 마지막에 배신당하셨습니다”라고. 배신은 무슨 배신? 원래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단일화했으니까 깨진 거지. 그러나 인심은 그렇지 않았다. 정몽준에 대한 경멸이 노무현 지지로 이어졌다. 원래 노무현을 찍을 마음이 전혀 없던 사람들조차 투표소로 갔다. 이런 생각에 분기탱천해서…

    “이 잡것이, 대통령 선거를 뭘로 보는 거여? 대통령 선거판이 니 꼴리는 대로 붙였다가 깼다가 하는, 니 집 개밥그릇이냐?”

    돌이켜 보자. 노무현은 노사모라는 막강한 민초 파워 DJ의 마패를 챙겼던 사람이다. 그 인물됨(character) 역시 그릇이 남달랐다. 무개념 좌충우돌돌발적 상스러움을 오히려 정치 자산으로 사용할 줄 아는 타고난 정치인이었다. 게다가 2002년을 뒤흔들었던 효순-미선 시위를 통해 다져진 대중 에너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노무현은 실체였다.

    한편, 정몽준 역시 실체였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감격—붉은악마의 대~~한민국이 담고 있던  에너지의 오너였다. 노무현과 정몽준, 실체와 실체의 단일화였음에도 깨졌다.

    왜?

    체질(chemistry)이 워낙 달랐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친가와 처가가 모두 남노당에 관련된 태생적 반(反)제도권이었고 정몽준은 금 숟가락을 입에 물고 있는, 초특급 제도권이었다.

    그래서 생쇼가 되고 말았다.


  • 그런데 2012 문-안 연합비극은 물론, 생쇼도 못 된다.
    민통당은 유권자들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좀비'이고, 안철수는 실체가 될 의지도 상상력도 철학도 원칙도 없는 ‘단기 투기꾼’이기 때문이다.

    '좀비'와 '투기꾼'의 결합무덤으로 귀결된다. 그 속에서 민통당도, 반(反)새누리 성향 유권자의 꿈도, 안철수의 인격과 영혼도 모두 사로잡혀 파멸되는 개미 무덤—안트랩(AntTrap).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안철수의 존재이유(raison d’etre)는 무엇인가?

    좀비가 되어 버린 민통당을 대신할 수 있는 야권 정당의 건설이다.
    안철수에 대한 지지의 밑바닥에는 그런 정당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불타오르고 있다.

    야권에게는 이번 대선이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을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을 재건해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야권의 정치 전략은 종북과의 동거였다.

    진보빅텐트. 야권연대.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북인사들을 대거 국회에 진출시킨 주범은 바로 야권의 맹주 민통당 아닌가? 그러고도 문재인은 “대한민국에 종북은 없다”라고 말했고, 지난 8월엔 김일성의 ‘고려연방제’에 대해 찬성한다고 밝히지 않았나?

    유권자들은 이미 민통당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민통당 국회의원들 스스로 이 말을 하고 있다. 정당의 재건이야말로 야권 최대의 과제이다.

    어느 방향으로?
    다음과 같은 방향이 되어야 한다.

    ■  1. 대한민국의 역사와 성취를 소중히 아낀다

    ■  2. 자유민주주의를 강화한다

    ■  3. 글로벌 시장 경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  4. '평양것들'이 붕괴과정에 들어섰다는 진실을 직시하고 평양의 붕괴를 관리한다.

     

    문제는 민통당 안에 위와 같은 방향으로 정당을 재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내부 동력이 전혀 없다는 점에 있다. 지난 20년 동안 종북과 깊게 동거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정신의 순결성이 걸레가 된 지 오래다. 순결하지 못 한 정신은 썩은 정신이며 죽은 정신이다. 오직 “어떻게 하면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해서 권력을 잡을까?”라는 꼼수 발상뿐이다. 민통당 강령정책 첫 문장은 2008년 광우뻥 난동을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촛불민심이 표출한 시민주권의식 및 정의에 대한 열망을 계승한다”


    이런 정신머리로는 위에서 이야기한 방향으로 정당을 재건할 수 없다. 민통당은 임종 베드에 누운 말기 암 환자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내부에 아무런 바이탈리티(vitality)가 없다.

    이는 대한민국을 위해 불행한 일이다. 새누리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약 20~30% 국민을 통합해 낼 수 있는 정통 야당이 소멸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안철수의 사명, 안철수의 존재이유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5년이다. 까닥하면 부인, 아버지, 어머니, 형제에게 오욕만 씌울 수도 있다. 안철수의 존재이유는 대한민국 정당정치를 앞으로 반세기 동안 지탱할 수 있는 새로운 야당을 엔지니어링하고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아뿔싸!

    지금까지 안철수의 행태를 보면 그는 자신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트위터에서 안철수 사진을 걸고 ‘안사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자들은 거의 극렬 노사모 수준의 메시지를 던진다.

  • 안철수 재단 이사장에는 ‘해방신학의 아버지’ 고 안병무씨의 부인 박영숙이 앉았다. 안병무는, 통혁당과 관련하여 장기 복역하다 출소한 박성준(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남편)과 함께 한백교회를 만들어 이끈 사람이다. 십자가를 걸지 않는 교회이다. 다수 기독교인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종교생활이다.

    더욱이 안철수는 뻑하면 박원순을 만난다. 박원순의 남자들(송호찬, 조광희)이 이번에 “정준길 협박 폭로 회견”을 저질렀다. 위에서 제시된 방향으로 야당을 재건하려면 박원순이야말로 가장 먼저 내쳐야 할 인물이다.

    한마디로 안철수의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건전한 방향으로 야당을 재건할 뜻이 전혀,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냥 단기적 정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주구장창, 문재인과 통합 게임만 만지작거릴 위인이다. 문재인의 치어리더가 되든, 혹은 본인이 통합후보(=얼굴 마담)가 되든. 어느 경우든 안철수 본연의 존재이유—건전한 야당의 재건—와는 전혀 다른 길이다.

    그 길로 가면 안철수는 죽는다.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정치인은 이미 생명이 끝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 왜 죽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문재인과 가까이 지낼수록 안철수 지지세력이 떨어져 나간다. 민통당과 가까이 지낼수록 안철수 몸에선 좀비 냄새가 풀풀 나게 되기 때문.

    지지세력이 약화되면 안철수는 더욱 더 문재인과 민통당에 매달리게 된다. 몸값이 떨어진다. 몸값이 떨어진 정치인—특히 안철수 같이 뿌리가 약한 스타—의 쓰임새는 딱 하나 밖에 없다. 총알받이가 그 운명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 그 미래이다.

    안철수가 만들어낸 개미무덤—앤트랩(AntTrap)의 마지막 희생자는 안철수 본인이 된다. 정치인으로서의 생명과 함께 그의 영혼과 인격이 그 곳에 묻힐 것이다.


    독거미 춤판


    이렇게 흉측한 개미무덤이 만들어지면, 그 앞에서 흥겨운 춤판이 벌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야 사람들이 무덤인 줄 눈치채지 못 하게 되니까. 그래야 스스로 최면에 걸려, 개미로 변신하여 줄줄이 무덤 속으로 기어들어가게 되니까. 무덤 속에는 무시무시한 독거미가 기다리고 있다. 그 놈의 학명은 타란튤라(Tarantula).

    독거미가 이 춤판에서 울리는 춤곡의 제목은 ‘역사 전쟁’.

    2012 대선판을 60,70년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난장판으로 바꾸는 춤곡이다. 골 아픈 평가가 아니다. 그림자들, 의심들, 루머들, 어두운 부분들만 찍은 스냅샷을 왕창 확대한 것—이것을 그들은 ‘역사 평가’라고 부른다.

    요란한 합창이 울려 퍼진다. 대한민국 시스템 전체에 대한 앙심과 복수심을 악에 받쳐 부르짖는 합창.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Nabucco)에 나오는 ‘노예들의 합창’과는 정반대되는 느낌의 노래. ‘폭도들의 합창’

    조까테요! 조까테요! 대한민국, 조까테요!

    암살 고문! 암살 고문! 음모 독재! 음모 독재!

    그네야 말해 봐! 어떻게 생각해? 말해 봐, 말해보렴!



    독거미 춤판이 하도 요란하니까 간이 콩알만한 새누리 의원들—제도권 웰빙들의 낯짝이 하얗게 질린다. 그래서 친박의 주요인사라는 유승민 같은 사람조차 울먹이며 이렇게 말한다.

    “저기요….박후보님 말이죠….저기요…역사인식을 바꾸셔야 해요.. 반성문 쓰셔야 해요…”


    국가기밀을 누설해 줄 테니까 귀 후벼 파고 듣도록. 역사인식을 바꾸는 게 아니라 역사인식을 버리면 된다.

    왜?

    박근혜가 60,70년대 대한민국 역사의 주인이었나? 박근혜가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오너인가?

    무슨 자격으로 박근혜가 반성문을 쓰는데? 박근혜에겐 반성할 자격이 없다.

    예를 들어 재건인혁당 8명을 사형시켰던 1975년, 박근혜는 꽃다운 푸릇푸릇한 스물세 살짜리 아가씨였을 뿐이다. 그 전후 문맥을 살펴 보자. 

  • 1심 판결이 있기 한달 전 오징어잡이를 지도하던 해경863호가 인민군의 습격에 의해 28명 전원이 순국했다.
    그 전 해인 1974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암살기도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그 전전해인 1973년에는 오일쇼크가 터져 대한민국 경제 시스템이 박살나기 시작했다.
    그 다음 해인 1976년에는 판문점 JSA에서 미루나무 절단작업을 하던 미군 장교 두 명이 북한군의 도끼에 찍혀 죽었다.

    이 모든 일에 대해 박근혜는 한 명의 나어린 아가씨로서 지켜보았을 뿐이다.

    “역사 평가 해 봐!”라고 윽박지름이 들어오는 경우, 박근혜는 다음과 같은 문맥에서 이야기하면 족하다.

    “대한민국은 빛과 어둠을 건너 오늘의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과거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시대에 피와 땀을 바친 수많은 어르신들이 아직도 정정히 살아계십니다.

    저는 역사 평가자가 아니라 21세기 정치인입니다.

    저의 부족한 식견으로는 이 기적 같은 드라마, 온갖 역설적 비극과 진실로 가득 찬 대한민국 현대사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역사 평가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입장과 해석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제가 감히 나서서 역사평가의 주체로서, 교통정리를 할 처지가 아닙니다.

    저는 오직 현재와 미래를 보며 묵묵히 가겠습니다.”



    역사인식을 바꾸라고?

    박근혜 뿐 아니라 모든 대한민국 주류제도권이 언제부터 역사인식을 가졌지?

    조금이라도 역사인식이 있었다면 지난 25년 동안, “대한민국은 수치스런 나라이다. 민족 정통성은 평양이 이었다”라는 친북 자학사관이 대한민국 국사학계를 지배해왔을 턱이 없다.

    역사인식은 평가다. 대한민국 주류제도권은 이제까지 평가의 주체가 된 적이 없다.

    평가(evaluation)가치(value)를 정하는 일이다.

    주류제도권은 평가의 주체, 가치의 설정자가 된 적이 없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셋팅한 가치 기준을 성실하게 집행한 기능적 충직성—그것이 주류제도권의 미덕이었을 뿐이다.

    제류제도권이 주도하는 평가와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는 사회분열의 근본 원인이다.

    사회 곳곳에 이 증상이 존재한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번째 예. 청년을 좌절시키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창업투자기능의 실종이다. 창투사는 돈놀이만 하는 ‘새끼 저축은행’으로 타락한지 오래이다. 왜? 벤처를 평가하는 가치기준이 없으니까.

    두번째 예. 우리 교육은 철저히 망가져 있다. 전교조 같은 교사 철밥통교과부의 관료주의 아래 오직 평준화 일색일 뿐이다.

    공교육 중고등학교 학생 한 명당 연 평균 6백만원의 국고가 소진되고 있지만, 오직 학부모와 학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효과만 가져오고 있을 뿐이다.  철밥통관료주의를 깨뜨리고 교육을 철저히 자율화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학생, 교사, 교육성과를 평가하는 평가 기준이 확립되어야 한다. 그게 없으니까 자꾸 평준화만 찾게 되는 것이다. 

    평가측정은 인간의 행위 중에 가장 숭고한 행위이다. 측정 기술의 개발은 모든 첨단 기술을 통합한 종합 예술이다.

    마찬가지로, 가치평가 기준의 개발은 한 사회의 정신적 역량이 응축되어 작동하는, 궁극적 사회통합이다. 인간은 ‘가치평가 하는 동물’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사물의 의미를 창조했던 거야.
    가치는 사물에 대해 ‘사람이 만든 의미’야!
    그래서 자신을 ‘사람’이라 부른 거지.
    ‘사람’이란 말의 뜻은 ‘가치평가하는 자’란 뜻이거든.

    [가치평가]는 창조야.
    잘 들어! 자네, 창조적 인간!
    ‘가치평가 한다’는 행위 자체가

    가장 가치 높은 행위, 가장 가치 높은 보석이야.



    박근혜, 새누리, 나아가 주류제도권 전체에 주어진 사명은 바로 가치의 설정이며, 가치평가의 집행이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 사명이다.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5년, 10년 걸린다. 지금은 말을 아끼고 부지런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그러면 그 동안 입다물고 얻어 맞기만 하라고? 천만에!

    망자(亡者)의 혼령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위대한 판타지 작가 톨킨(Tolkin)의 <반지의 제왕>을 보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인데, 마지막 순간에 ‘죽음의 계곡’에서 ‘망자(亡者)의 부대’가 튀어나와 구원하지 않는가?

    잠깐. 누구의 혼령이라고? 죽은 자, 망자의 혼령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근사한 ‘역사 평가’로 다듬어진 무기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혼신의 힘을 다하여 ‘대한민국 과거’의 진실을 옹호하는 백기사들. 박근혜나 새누리를 위한 백기사가 아니라, ‘과거의 진실’을 위한 백기사들이다. 이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는 혼령에서 나온다.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청춘과 생명을 바친 수 백 만의 혼령이 이들에게 빙의되어 있다. 저들이 이번 대선을 ‘역사전쟁’으로 만든 것은 치명적 실수이다. 이 백기사들은 박근혜나 새누리를 위해서는 나서지 않지만 ‘과거의 진실’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결사적으로 나선다. 이제 이들이 무더기로 튀어 나오고 있다. ‘과거의 진실’을 옹호하는, 신들린 사람들.

    박근혜나 새누리가 이들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 교만해진다. 교만해지면 스스로 역사 평가의 주체랍시고 나대게 된다. 실력이 없으면서 나대면, 함정에 빠져 사냥 당하게 된다. 그게 세상 이치이다.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도록.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도록.

    어차피 역사 평가는 정치인의 몫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그 정도 이치는 알 정도로 충분히 다원화된 사회 아닌가!

     

  •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논설위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www.facebook.com/bangmo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