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행복 아니라 국민 멘붕 챙겨라!...'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경제자유민주화'다!
  • 새누리는 국민행복위원회를 만들고 김종인을 위원장에 앉혔다.
    제발 부탁한다. 그 ‘국민’에서 나는 빼주길.
    나는 이미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더라도 빼주길.

    정부는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주체가 아니다. 행복은 온전히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비즈니스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이 마음놓고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뿐.
    개인의 행복은 정부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다.
    제발 정부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해라.

    게다가 김종인이 누구인가?
    아무런 사상적 천착 없이 '불쑥’ '경제 민주화'라는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사람 아닌가?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 안에는 온갖 사상의 흔적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경제 민주화는, 예를 들어, 죽을 때까지 스탈린주의를 찬양하고 스탈린에 의한 대량 학살에 눈을 감았던 시드니 웹(Sydney Webb, 영국의 급진 사회주의자) 같은 사람이 즐겨 사용했던 용어이기도 하다.


  • ‘경제민주화’란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진영들을 잠시 살펴 보자.
    기본소득보장(BIG)을 주장하는 복지론자, 노동자에 의한 자율 경영을 주장하는 산업민주주의자, 정부에 의한 투자재원 분배를 주장하는 국가주의자, 급진 무정부주의에 뿌리를 둔 시장사회주의자, ‘포괄적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전면적 배급제를 주장하는 몽상가들, 조합에 의한 생산과 소비를 추구하는 협동조합운동가들, 무정부 상태의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급진자유주의자 등등 손가락 발가락을 모두 사용해도 차고 넘친다.

    어찌 보면 김종인이 ‘경제 민주화’라는 섹시한 단어만 이야기했을 뿐 아무런 사상을 표방하지 않았다는 점은 새누리에게는 커다란 다행이다. 새누리 버전의 경제민주화를 정하면 되니까.

    새누리의 경제민주화는 경제 [자유]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번영한 것은 여섯 번에 걸친 경제 [자유] 민주화 덕분이다.

    첫째, 이승만은 한편으로는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을 [자유 시장의 주체]로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적산 불하를 통해 [자유 시장의 기업가]들을 창출했다.

    둘째,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기업가와 근로자를 [글로벌 자유 시장에서 맹렬하게 활동하는 전사(戰士)]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가 사용한 명칭은 [산업 군인(산업 역군)]이었다.

    셋째, 전두환 정부 때의 김종인-강경식-박유광 트리오는 ‘안정화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주도형 경제를 시장 주도형 경제로 체질 개선했다.

    넷째, 김염삼은 OECD 및 WTO에 가입함으로써 한국 경제를, 글로벌 시장과 합일체로 만든 한편,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를 도입하여 시장의 투명성을 높였다.

    다섯째, 김대중은 IMF 위기 때에 ‘서민을 위한 대중경제’를 포기하고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는 한편, 초고속 인터넷을 대대적으로 보급하여 정보 인프라를 깔았다. (정보 인프라는 시장을 크게 강화한다. 시장은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의 정보 네트워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여섯째, 노무현은 칠레FTA를 시작으로 여러나라와 FTA의 물고를 텄고 마침내 한미FTA의 기틀을 잡았다.

    이 여섯 번의 경제’자유’민주화가 대한민국의 번영을 만들었다.


  • 그래서 우리는 2008년 이후 4년째 계속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살만한 나라 중에)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단 두 개의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독일이다.)
    최근 무디스가 우리 경제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해서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만든 것은 우리의 성공을 단적으로 증명한 일이었다.
    또한 글로벌 경제의 경기변동에 대한 적응력에 있어서도 우리는 일본을 앞질러, 독일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

    우리의 성공코드는 무엇인가?
    시장을 중시하고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국민의 근면-자조 정신을 유지하고 기업의 역동적 경영 리더십이 꽃피우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이제껏 다른 나라의 좌파 지식인들이 사용해온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시장을 혐오하고 재정 건전성을 경멸하는 입장이다. 국민의 근면-자조 정신을 타락시키고, 기업의 경영 리더십을 부패시키는 담론이다.

    우리 방식의 ‘한국적 경제민주주의’를 정립하지 못 한 채, 선진국 좌파 지식인들을 흉내내는 행위는,  우리 자신의 성공코드를 버리고, 망조가 들린 퇴락코드를 선택하는 우스꽝스러운 작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경제민주화는 경제’자유’민주화를 그 핵심 개념으로 삼아야 한다.

    시장을 중시하고 재정건전성을 지키고 국민의 근면-자조 정신을 복돋우고, 기업의 역동적 리더십을 보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복지의 확대는 경제‘자유’민주화라는 큰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새누리의 경제민주화가 김종인의 엉터리 용어 속에 갇힌다면 대한민국 경제는 3류 경제학의 실험용 모르모트로 전락하고 만다.

    김종인 용어의 최면을 깨라!
    선진국 좌파 지식인들의 몽상을 깨라!
    한국을 위한, 한국에 의한, 한국 버전의 경제민주화를 개척하라!

    그것이 새누리가 스스로 걸머진 운명이다.

    이번 대선에서 표 달아나는 것이 겁난다고?
    천만에! 상대가 괴멸해서 패주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

    이 괴멸과 패주가 너무 비참해서 오히려 더 문제이다.
    왜 괴멸과 패주가 오고 있을까?

    지난 20년간 상대는 종북과 동거해 왔다. 종북이야말로 이른바 ‘진보 빅텐트’의 기둥이요 리더요 군기반장이었다. 그런데 그만 지난 4.11 총선에서 (평양의 붕괴가 가속화되자) 종북성골이 앞다투어 배지를 차겠다고 설치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무도한 짓이다. 배나 비행기가 가라앉으면 함장, 갑판사, 항해사, 기장, 스튜어드, 스튜어디스는 맨 마지막까지 승객을 대피시켜야 한다. 마찬가지로, 평양이 가라앉으면 종북성골은 맨 마지막까지 커튼 뒤 혹은 음지에서 헌신했어야 한다. 그게 정치 지도 세력의 도리요 의무이다. 그런데 오히려 종북 성골이 먼저 배지를 차지햐겠다고 설쳤다.

    사태가 이런 양아치판이 되자, 대중조직과 자금을 장악하고 있는 일선의 종-친북 잡골들이 심한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돈과 조직만을 대는 호구냐? 니들만 배지 차고 인생 본전 찾겠다고?”

    이런 배신감이 팽배했다. 그래서 종-친북 잡골이 종북성골을 제거해 버렸다. 이것이 바로 통진당 혁신파와 민노총의 반란이다.

  • 민주당에서 통진당 구당권파까지 2013체제를 떠들던 ‘진보 빅텐트’는 이제 그 기둥이 부러진 것이다. 야권의 절체절명의 과제는 대선이 아니다. 20년 동안 종북과 함께 뒹굴었던 과거를 철저히 반성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 바로 야권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야권은 이 고통스런 작업을 철저히 외면했다. 대신 안철수 스타덤에 눈독을 들이는 황당한 꼼수를 저질렀다. 그래서 야권은 리더도, 정치담론도, 군기반장도 없는 오합지졸 무더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박근혜 지지율이 조금만 더 올라가면 괴멸과 패주가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모든 정파 각각이, 공동의 이익을 희생하여 자기 자신의 이익을 찾는 것에 급급한 상태가 된다.
    8월 28일 서울대의 조국이 “안철수와 단일화해도 박근혜를 이기기 어렵다”고 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사정을 고백한 소리에 다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가 산토끼, 집토끼 토끼타령을 부르며 ‘국민행복’과 ‘무제한 획일 복지’를 내세운다면 이는 자던 개가 웃을 일이다.

    야권이 왜 괴멸하고 패주하는가?
    진실을 외면하고 원칙과 가치를 내팽겨쳤기 때문 아닌가?
    아무 원칙과 가치 없이 토끼타령을 부르는 행위는 민주당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작태가 된다.

    새누리가 해야 할 일은 진실, 원칙, 가치를 중시하는 진정한 정당 정치, 사회통합 정치를 뚜벅뚜벅 만들어가는 과업이다. 그때 비로소 새누리는 위대한 정당이 될 수 있고 박근혜는 빛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김종인 용어의 최면을 깨라!
    선진국 좌파 지식인들의 몽상을 깨라!
    정부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하게 식별해서 그에 집중해라!

    그것이 지금 새누리에 요구되는 운명적 과제이다.

    국민행복은 정부가 책임 주체가 될 수 없다. 그 전에 열우당이 스스로를 ‘행복주식회사’라고 불렀던 웃기는 선례가 있지 않은가? 새누리가 열우당의 짝퉁이란 말인가?

    새누리는 자신의 존엄과 기개를 확립해야 한다. 정부의 사명은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나의 행복이 [감히] 정부 [따위]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나는 당당한 시민, 존엄한 개인이 아니라 한낱 ‘사회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소리가 된다.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겠다는 정부에 대해 오히려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정부의 행복, 정치인의 행복을 만들어 주겠다!"

    정부의 핵심 사명은, 국민과 기업이 마음 놓고 노력할 수 있는 투명한 규칙을 만들고 공정하게 운영하는 것에 있다. 정부의 과제는, 생명이 스스로 벋어갈 수 있도록 물고를 트는 것이지, 생명의 흐름 자체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새누리는 국민행복이 아니라 '국민멘붕'을 챙겨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는 압승할 것이다.
    그때 국민의 20% 안팎은 일종의 멘붕 상태에 빠질 것이다.
    특히 평양것들의 붕괴가 가속화되어 북한 수령전체주의의 실상이 낱낱이 알려지게 되면 골수 야권 성향의 국민들은 하늘과 땅, 거짓과 진실이 완전히 뒤바뀌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이 같은 청천벽력과 같은 뒤집힘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아노미(anomie, 모든 가치 기준의 붕괴)와 멘붕이 온다.

    약 20% 안팎의 국민이 그런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도 우리의 소중한 이웃이다.
    이들의 멘붕을 어떻게 챙겨서 다시 곧추 세울 것인가?

  • 이것이 2102년 12월 19일 이후 새누리의 절체절명의 과제가 된다.

    돌이켜 보라!
    2008년 광우뻥 촛불의 뿌리에는, 골수 야권 성향 국민이 “권력을 빼앗겼다”라고 느꼈던 박탈감이 있다.
    박탈감만으로도 백일 동안 나라를 마비시킨 난동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닥치는 것은 박탈감이 아니라 멘붕이다.
    집단 행동이든 개인의 단말마 행동이든,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시민을 고통스럽게 몰아세울 증상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

    차기 새누리 정부가 국민멘붕을 슬기롭게 관리한다면, 주류제도권이 진정으로 사회통합을 이루는 전통을 세우는 케이스가 된다.

    이 역사적 과제가 차기 새누리 정부를 기다리고 있다.

    그에 대비하든, 그를 무시하든 선택은 자유다.
    그러나 선택할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12월 19일이 데드라인이다.

    그저 그런 정권/정당이 될 것인가, 혹은 한국 정치사의 획을 긋는 정권/정당이 될 것인가, 선택하라.



  • 박성현 저 술가/뉴데일리 논설위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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