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포커스 제105호
    북한의 개혁개방은 ‘광무개혁’의 재판(再版)?

    배 진 영   월간조선 차장대우
     

  • ▲ 김정은의 이같은 스킨십이 개혁의 상징? 김정은의 개혁개방은 조선조말 광무개혁의 재판이 될 것이다.ⓒ
    ▲ 김정은의 이같은 스킨십이 개혁의 상징? 김정은의 개혁개방은 조선조말 광무개혁의 재판이 될 것이다.ⓒ

      북한에서 개혁개방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가족농(家族農)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6·28조치’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노동당 정치국 상임위원을 겸하던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의 갑작스런 실각도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다. 대북지원과 유화책을 강조하는 남한 언론에선 이러한 상황을 대서특필하며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우선 북한 스스로가 개혁개방 가능성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7월 29일 북한 조평통은 “괴뢰패당은 우리의 현실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서 ‘정책변화의 조짐’이니 ‘개혁개방 시도’니 떠들고 있다. 우리에게서 정책변화나 개혁개방을 기대하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개꿈이다”라고 주장했다.

      북한 체제의 본질적 특성에 주목하는 정치학자들 중에도 개혁개방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오경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근본적 개혁개방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체사상에 대한 재(再)해석을 실행하면서 개혁개방을 선언해야 한다”고 말한다. 탈북자들도 대부분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 광무개혁의 허구성

      북한이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나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처럼 의미 있는 개혁개방 정책을 취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개혁개방 정책 논란을 보면서 문득 구한말(舊韓末) 고종황제가 추진했던 ‘광무개혁(光武改革)’을 떠올리게 된다.

      ‘광무개혁’이란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부터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 사이에 고종이 추진했던 일련의 근대화 작업을 말한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고종을 ‘계몽 전제군주’로 평가하면서 ‘광무개혁’을 자주적 근대화 노력으로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광무개혁이라는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나 국리민복(國利民福)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이다. ‘광무개혁’의 내용을 보면, 내장원(內藏院)을 설치해 황실재정을 채우거나, 원수부(元帥府)를 설치해 황제의 통수권을 강화한 것 같은 것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예컨대 고종은 약간의 돈을 받고 운산금광(미국), 경원·종성탄광(러시아) 등 광산개발권이나 철도부설권을 열강에게 넘겼다. 하지만 고종은 그 수익금을 탁지부가 관할하는 국고(國庫)에 넣어 근대화 자금으로 사용하지 않고, 황제의 사금고(私金庫)라고 할 수 있는 내장원의 수입으로 잡았다.

      매관매직(賣官賣職)으로 얻은 수입들도 고종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을 보면 고종이 얼마나 축재(蓄財)에 혈안이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얼마나 허랑방탕하게 사용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고종이 추진했던 군부개혁이라는 것 역시 국가를 방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국군을 양성한 게 아니라, 황권(皇權)을 보위하고 국내 치안에 투입할 수 있는 정도의 소규모 군대를 만든 데 불과했다. 원수부 창설도 실질적인 군비 확충이 아니라 황제가 군통수권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일 뿐이었다.

      ‘광무개혁’이 얼마나 내실이 없었는지는 ‘광무개혁’을 추진한 지 불과 10여년 만에 나라가 망한 데서도 입증된다.

    ● 진정한 개혁개방은 어려울 듯

      근래 중국 기업들이 북한 광산 채굴권을 취득하고 있다, 북-중(北-中) 교역이 증가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의 SOC에 투자하고 있다는 등의 뉴스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은 과거에는 김정일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지금은 김정은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지, 북한 주민들을 위해 쓰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대북(對北)지원이나 남북교역의 수익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총참모장 이영호의 실각과 관련해, 이영호가 군부 관할의 외화벌이 기관 내각 이전 추진에 반대한 것이 원인이라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고 한들, 외화벌이 기관들을 내각으로 이전하는 것이 인민경제를 되살리기 위함인지, 아니면 선군정치 아래서 비대화한 군부의 경제적 토대를 약화시키고 김정은, 혹은 김경희·장성택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기 위함인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더라도, 그것은 아마 고종의 ‘광무개혁’과 유사한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즉 개혁개방이 망가진 경제를 되살려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리고 더 나아가 그들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되기보다는, 고작해야 김정은을 비롯한 김 씨 왕실과 거기에 기생(寄生)하는 북한 통치배들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조평통 성명이 “모든 정책은 절세위인들(김일성과 김정일-필자 주)의 사상과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 완성하기 위한 것이며 추호의 변화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