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기량은 ‘확’ 낮추고 사양은 더 높여…실내는 중형 세단만큼 조용국산 경쟁차보다 월등…美‘익스플로러 에코부스트’ 생각나게 만드는 모델
  • 10년 전에 사고 싶었던 SUV가 있다. 그 차가 사양과 경제성을 월등히 높인 뒤 10년 전 가격으로 출시된다면 여러분은 사겠는가. 그런 차가 있다. 올해 출시된 ‘렉스턴 W’다.

    쌍용차는 2009년 평택 사태로 무급휴직 처리된 사람들을 재고용하기 위해 매출 신장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를 위한 작품 중 하나가 ‘렉스턴 W’다.

     

  • 고급 세단 같은 정통 SUV ‘렉스턴 W’

    지난 8월 13일 쌍용차로부터 ‘렉스턴 W’의 키를 넘겨받았다. 최근의 차량들처럼 스마트키였다. 서울 역삼동에서 만난 ‘렉스턴 W’의 인상은 신차 발표회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길이 4,755mm, 폭 1,900mm, 높이 1,840mm의 ‘렉스턴 W’는 거대했다. 도어를 열자 패들 라이트가 깜박였다. 이게 ‘웰컴 기능’이라던가.

  • 덩치만큼이나 운전석의 높이도 높았다. 기자처럼 키가 ‘짧은’ 사람에게는 사다리를 타는 기분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 버튼을 누르자 백색 라이트의 계기판이 켜졌다. 네비게이션은 아이나비 것을 달고 있었다. 계기판 메뉴는 최근에 출시된 차들과 큰 차이 없었다.

    센터페시아에는 네비게이션을 포함한 7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공조장치, 아이폰(또는 아이팟), USB, AUX 단자가 있었다. 블루투스 연결 기능은 ‘기본’이었다.

    앞좌석 도어에도 컵홀더가 만들어져 있어 운전석과 조수석을 합해 5개의 컵홀더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중간의 팔걸이 아래에 숨어 있다.

  • 가죽 시트는 버킷시트처럼 몸통을 잡아주도록 살짝 나와 있었다. 최고급 트림이라 조수석 또한 8방향 전동시트였다.

    다음 일정 때문에 차를 몰고 광진구 광장동의 쉐라톤 워커힐 호텔로 향했다. 강남의 정체구간에서 한 시간 가량을 허비한 뒤 영동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를 탔다. 강변북로에 합류하면서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았다. 2톤이 넘는 차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게 치고 나갔다. 강변북로를 지나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운전 스트레스’는 느낄 수 없었다.

    우리나라 디젤 SUV의 고질적 단점인 소음 문제도 느껴지지 않았다. 창문을 닫았을 때는 중형 세단 이상의 정숙함을 보여줬다. 워커힐 호텔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동승한 사진기자도 렉스턴 W의 정숙함에 놀랐다. 정차 시 기어 봉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용납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 대한민국 다운사이징의 대표 모델 ‘렉스턴 W’

    10년 전 ‘렉스턴 W’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내건 광고는 ‘대한민국 1%’였다. 그랬다. 당시 렉스턴은 뛰어난 성능, 안전성, 정숙성만큼이나 가격, 배기량, 연비 등에서도 ‘1% 모델’이라 불렸다. 차체가 튼튼한 만큼 무거워 배기량이 큰 엔진을 달았기 때문이다. 연비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렉스턴 W’는 다르다. 쌍용차가 ‘렉스턴 W’에 새로 심은 심장은 ‘e-XDi200 LET’ 디젤엔진이다. 쌍용차가 벤츠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한 ‘한국형 디젤엔진’이라고 한다.

    ‘e-XDi200 LET’의 최고출력은 155마력/4,000rpm이다. 수치로만 보면 다른 브랜드의 신형 SUV보다 못한 게 아니냐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e-XDi200 LET’에는 다른 점이 있다. 36.7kg.m의 최대 토크가 1,500~2,800rpm에서 고루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정차 했다가 다시 달릴 때는 처음부터 19.8kg.m의 토크가 뿜어져 나온다.

  • 덕분에 공차중량 2,015㎏인 차를 2.0리터 엔진으로 이끌 수 있을까 싶었지만 ‘터보차저’를 단 차처럼 가속이나 추월 등에서 전혀 무리가 없었다.

    연비도 좋아졌다. 10년 전 렉스턴의 공인 연비는 10.9km/l. 배기량이 900cc 작아진 ‘렉스턴 W’의 연비는 13.1km/l(2WD는 13.7km/l)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유로-5 기준을 만족하는 196g/km로 크게 좋아졌다.

    이는 엔진 크기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줄이고 출력과 연비는 높이는 ‘다운사이징 트렌드’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렉스턴 W’의 변속기는 벤츠의 5단 ‘E-Tronic’ 자동 변속기다. E-Tronic 벤츠 5단 자동변속기는 모든 전자제어 장치의 신호를 CAN(Controller Area Network)을 이용해 TCU(변속기 제어유닛)에서 변속하도록 설계, 개발된 전진 5단 후진 2단의 전자식 자동변속기다.

  • ‘렉스턴 W’는 여기다 수동 변속을 원하는 사람을 위해 스티어링 휠과 기어 봉 왼쪽에 변속이 가능한 단추를 달았다. 볼보, 사브 등 북유럽 차량들에서나 볼 수 있던 ‘윈터(겨울철 눈길) 모드’ 버튼과 ‘스포츠 모드 버튼’도 변속기 옆에 있다.

    쌍용차는 렉스턴 W를 내놓으면서 과거 불만이 제기됐던 AS, 내구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혹한기, 혹서기, 고지대 주행을 통과해야 하는 ‘벤츠 내구시험’을 거쳤다고 했다.

    주행 중의 안정감은 ‘프레임 섀시’ 때문일까 서스펜션 때문일까

    ‘렉스턴 W’의 또 다른 특징은 과속방지턱 등을 넘어갈 때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독일차’ 같았다. 국도나 고속화 도로, 이면도로에서 요철이나 도로가 패인 부분,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단단하면서도 충격이 별로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렉스턴 W’의 서스펜션은 앞쪽 더블 위시본, 뒷쪽 독립현가 멀티링크 서스펜션이다. 쌍용차 측은 앞쪽에 적용한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이 주행 감각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앞바퀴에 연결된 두 개의 암(Arm)이 노면 상태에 따라 최적의 구동을 할 수 있도록 충격을 대부분 흡수해준다는 설명이었다.

    뒤쪽의 독립현가 멀티링크 서스펜션은 좌우 바퀴가 따로 상하로 움직일 수 있게 돼 있고, 5개의 링크 코일 스프링까지 더해져 노면 상태가 나빠도 그 충격을 웬만큼 흡수하기 때문에 조향성능이나 안전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여기다 ‘렉스턴 W’가 자랑하는 ‘프레임 섀시’ 차체까지 합쳐져 승차감은 상당히 좋다.

  • ‘렉스턴 W’는 우리나라에서 시판되는 몇 안 되는 ‘오프로드 주행 가능 차량’이다. 이는 3중 강철구조 프레임 섀시 덕분이다. 이 프레임이 차 전체를 단단히 붙잡으면서 노면이 나쁜 도로를 달려도 ‘찌그덕’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렇게 차가 구조적으로 단단하고 묵직한 덕분인지 스티어링 휠 느낌은 매우 가벼워도 차가 휙휙 돌아가지 않았다.

    ‘대한민국 1%’를 위한 안전장치들

    ‘렉스턴 W’의 안전장치는 동급 최고라고 할만 했다. 이제는 국산차도 프론트와 사이드 에어백이 기본 장착되기에 에어백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 ‘렉스턴 W’의 안전장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갔다.

    차체 대부분에 고장력 강판을 적용했고, 도어 안에는 ‘임팩트 바(Bar)’를 내장해 측면 충돌에도 대비했다. 스티어링 휠은 속도가 올라갈수록 무거워지는 속도감응형 스티어링(SSPS. Speed Sensitive Power Steering)을 적용했다.

    여성처럼 다리에 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EBD ABS 브레이크 시스템, TPMS(타이어 공기압 관리) 시스템,  주차 브레이크 경고 시스템, 소화기, 유아용 시트 고정 장치 등이 기본으로 달려 있다.

    ‘급발진’처럼 기어가 중립인데도 엔진 rpm이 최대로 작동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점프 스타트(Jump Start)방지 기능도 탑재했다. 점프 스타트 방지 기능이 적용되면 rpm이 올라갈 때 기어가 자동으로 드라이브(D)로 작동되면서 동시에 엔진 회전수를 정상 수준까지 내려줘 차량 급발진을 막는다.

    다기능 전자제어 ESP(Electronic Stability Program. 차량자세 제어시스템)은 EBD ABS, TCS, ARP(전복방지 보조장치), BAS, HDC(경사로 자동 저속주행장치) 등의 안전장치를 모두 통합한 것이다. 이 장치는 눈길, 빗길, 빙판길에서 엔진 출력과 브레이크를 자동으로 제어한다.

    주차와 주행 중 안전을 위해 앞뒤 주변으로 접근하는 물체나 사람이 있을 때는 경보를 울려주는 주차 보조 경보장치도 장착돼 있다. 물론 후방카메라도 있다.

    ‘렉스턴 W 좋냐’고 물으신다면….

    만약 독자들께서 ‘SUV를 사려 하는데 렉스턴 W가 좋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레인지로버나 포르쉐 카이엔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렉스턴 W로 충분하다.”

    ‘렉스턴 W’를 타 본 사진기자는 ‘쌍용차가 드디어 미쳤다’며 감탄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에도 SUV만을 고집한다. 사진기자와 함께 작업을 하는 팀원들-모두 SUV매니아다-도 좋게 평가했다고 전했다.

    ‘렉스턴 W’를 타면서 가장 비슷하게 느껴지는 차는 포드의 대형 SUV ‘익스플로러 2.0 에코부스트’였다.

  • ‘무늬만 7인승’이 아닌 성인 남성 7명이 타도 넉넉한 실내공간, 2.0리터 급임에도 2톤이 넘는 차체를 가볍게 움직이는 고성능 엔진, 다양한 편의장치가 장착된 거주 공간, 운전 스트레스가 없는 퍼포먼스, 웬만한 사고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믿음을 주는 각종 안전장치, 동급의 차량에 비해 낮은 가격까지 상당히 비슷했다.

    10년 전 가격에 2012년 형을 산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렉스턴이 처음 출시된 게 2001년 9월이었다. 편의상 2002년 당시 렉스턴과 유사한 차종들, 그리고 ‘렉스턴 W’를 비교해 보자.  

    2002년 렉스턴 RX290 최고급형의 가격은 약 3,300만 원. 당시 A사의 최고급 SUV 모델 2.9리터급 가격은 약 2,740만 원, B사 최고급 SUV 모델 2.5리터급 가격은 약 2,700만 원이었다.

    2012년 ‘렉스턴 W’ 최고급형(노블레스)의 가격은 3,633만 원, 반면 A사의 중형 SUV 모델 최고급 트림 가격은 3,800만 원, B사의 중형 SUV 모델 최고 트림은 약 3,800만 원이다.

    지난 10년 사이 A사와 B사는 렉스턴보다 더 고급 모델을 출시했다. 그 사이 매년 가격인상을 해 왔다. 당시 비교했던 모델은 덩치도 커졌고 성능도 좋아졌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A사와 B사는 그동안 가격을 1천만 원 가량 올렸다. 반면 ‘렉스턴 W’는 가격이 300만 원 가량 오른 꼴이다. 각종 편의장치나 ‘프레임 섀시’, 벤츠의 E-Tronic 자동 변속기, 급발진 방지장치, 안전장치 등은 A사나 B사의 2.0리터 모델보다 월등한 수준이다. 포드가 야심차게 내놓은 ‘익스플로러’에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 이 정도 차라면, SUV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 있게 권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렉스턴 W’를 사고 싶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현재 쌍용차 공장의 라인이 대규모가 아닌 탓에 주문해도 한 달 가량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 전 가격으로 최신형 SUV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국산차 브랜드의 ‘옵션 선택 강요’에 지쳤다면, 가족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