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시장, 한강 수중보가 녹조현상 심화...“보 철거 검토”환경단체, 보 철거→유속 증가→수질개선...박 시장 철거 주장과 일치학계 “강수량 많은 풍수기에만 해당, 갈수기엔 되레 수질 악화”
  • 지난 5월 29일 잠실수중보를 둘러보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 연합뉴스
    ▲ 지난 5월 29일 잠실수중보를 둘러보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 연합뉴스


    학계 “녹조와 수중보는 무관”

    25년 전 만들어진 한강의 수중보(洑)가 또 다시 철거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한강을 뒤엎은 녹조가 원인을 제공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3일 SBS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과 가진 전화인터뷰를 통해 한강 수중보가 물길을 막아 오염을 심화시킬 수 있다면서 보 철거 검토 방침을 밝혔다.

    “한강 자체가 보에 갇혀 있어 강이라기보다는 호수와 같은 성격이 있다”

    “댐이라든지 보라든지 이런 것으로 가둬두면 이번과 같은 녹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4년 만에 서울시 한강구간에 녹조주의보를 발령케 한 남조류 확산에 대한 나름의 원인도 설명하면서 그 대안으로서 보 철거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

    “이번 녹조현상의 주된 원인은 북한강의 여러 댐 때문이다. 이미 댐이 만들어져 있는 상황에서 강의 연안에 생기는 오염물질을 최대한 막는 것이 중요하다”


    #1. 박 시장 보 철거 검토의견, 환경운동단체 주장과 거의 같아

    박 시장의 이같은 발언은 물길의 흐름을 막는 댐이나 보가 오염물질 증가의 주범이란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한강 보 철거를 강하게 주장해온 일부 환경운동단체의 입장과 거의 같다.

    특히 박 시장은 한강의 흐름을 강조하면서 ‘생태하천 복원’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서울의 경우 보의 문제도 있고 자연의 흐름이 되지 않아 한강에서 수영을 한다든지 한강을 즐길 수 있는 활동이 쉽지 않다”

    “청계천시민위원회나 한강시민위원회가 구성돼 보다 생태적인 하천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에도 한강 수중보 철거 의사를 밝혔다.

    올 5월말에도 다시 한 번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이때도 박 시장은 ‘생태하천 복원’을 근거로 내세웠다.

    한강의 흐름을 막는 수중보를 철거해 물이 흐르는 생태하천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따르면 수중보 철거는 한강의 생태하천 복원을 위한 첫 걸음이나 마찬가지다.


    #2. 학계 “보 철거 ‘정치적’ 결정 안 돼”...“대재앙 올 수도 있어”

    박 시장이 보 철거 의사를 다시 밝히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일부 환경단체가 녹조 확산을 이유로 수중보 철거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반발도 상당하다.

    보 철거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학계와 전문가들에게서 주로 나오고 있다. 수중보 철거를 ‘몰상식한 발상’이라며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보 철거 여부를 정치적으로 결정해선 안 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시민단체 출신인 박 시장이 보 철거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일부 환경운동가들의 입김에 ‘정치적’인 판단을 내릴 경우, 회복할 수 없는 대재앙이 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3. 보 새로 만든 남한강엔 녹조 없어...환경단체 주장 근거 빈약

    한강의 녹조가 댐이나 보 때문이란 환경단체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반박도 이어지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보가 새로 만들어진 남한강에선 녹조가 일어나지 않았다. 녹조는 폭염과 가뭄 때문에 일어난 현상으로 보(洑)와는 무관하다”

    환경단체의 주장이 맞는다면 보가 새로 만들어진 남한강의 녹조는 북한강 보다 더 심각해야 하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라는 것이다.

    남한강 수계의 수질상황을 보면 댐이나 보 때문에 녹조가 심화된다는 박 시장과 환경단체의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특히 박 시장은 휴가 중 남한강 수계를 둘러보면서 녹조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져, 보 설치와 녹조발생이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환경단체의 주장에 편승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4. 보 건설 후 한강 생물종 다양성 풍부...학계 실측 데이터로 반박

    한강 보 설치 이후의 실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 철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들도 있다.

    인하대 김계현 교수(지리정보공학) 등 전문가들은 보 철거를 주장하는 환경단체들이 단편적 사실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풍수기라면 보 철거로 유속이 증가하고 수심이 낮아져 수질개선 효과가 있다. 그러나 갈수기에는 수질이 매우 크게 악화될 수 있다”

    “보가 수질을 악화시킨다고 하지만 온도와 수심, 햇빛 등 다양한 인자가 작용하는 만큼 수질악화의 원인을 단정 지을 수 없다. 보에서 물이 월류(越流, 보를 넘어 흐르는 것)되기 때문에 물 흐름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도 아니다”


    #5. 환경단체 주장은 풍수기에만 해당, 갈수기 수질 되레 악화

    학계 전문가들은 보를 철거할 경우, 유속이 빨라져 수심이 낮아지고 그 결과 수질이 개선된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은 장마철 등 물이 많은 ‘풍수기’에만 해당된다고 강조한다.

    보 설치 전과 후의 수질 데이터, 생물종의 변화, 습지 규모의 변동, 모래 퇴적 현상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없이 눈에 보이는 단편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풀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오히려 인하대 김 교수 등은 보 건설 후 한강 생물종의 다양성이 풍부해졌고 밤섬과 장항습지가 커졌다면서 보 건설 후 생태계가 안정화 됐다고 반박한다.

    보 철거로 인한 안전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보 철거가 유속 증가를 초래해 침식이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일어나면 한강 교량에 ‘쇄굴’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해수 유입과 지하수위 저하로 인한 2차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강수위가 낮아지면 주변 지하수위도 함께 낮아져 강 주변에 있는 건축물, 지하구조물 등의 지반 침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닷물 유입으로 인한 지하수 수질악화 역시 우습게 볼 수 없는 문제다.


    #6. 수중보 철거, 광역상수원 용수공급 능력 크게 훼손

    그러나 학계와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보 철거로 인한 한강 용수공급 능력의 부족이다.

    현재 팔당댐 인근은 이른바 ‘광역 상수원’이다. 수도권 인구 전체가 이곳에서 먹는 물을 공급받고 있다. 이 지역에서 하루 취수되는 물의 양은 870만톤 남짓이다.

    이 중 절반이 넘는 470만톤이 팔당댐 하류와 잠실수중보 사이 25㎞ 구간에서 취수된다.

    “잠실수중보가 철거되면 수심이 2~3m 정도 낮아져 수도권 주민의 식수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다행히 서울은 취수장 대부분을 상류로 옮겨 보가 철거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웃하고 있는 경기도와 인천시는 문제가 심각하다.

    하루 64만톤의 물을 경기 김포시와 고양시에 공급하는 신곡수중보가 철거되면 당장 두 도시는 먹는 물 대란을 피할 수 없다.

    때문에 서울시민들로 구성된 한강시민위원회가 수중보 철거를 주장하는 것은 다른 지역의 피해를 고려치 않은 지역이기주의적 발상이란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강 수중보 철거에 대한 시 내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박 시장이 한강의 수중보를 마뜩지 않아 하는 것과 달리 시 관계 공무원 중에는 보 철거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