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內戰的 구도(1) 建國 부정 세력 
     
     趙甲濟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建國되었다. 국민이 主權者가 된 최초의 국민국가였다. 선거와 헌법이라는 국민적 결단으로 봉건적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를 연 날이다. 그 60주년이었던 2008년 8월15일 정부가 주관한 建國 60주년 행사장에 불참한 세력이 있었다. 반란군이 아니라 민주당, 민노당, 창조한국당이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으로서 建國이란 말 자체를 싫어하였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김구 선생 묘소였다. 그들이 기념한 것은 대한민국 建國이 아니라 미군이 선물한 해방이었다. 우리 국민의 의지로 만들어낸 建國은 부정하고 타율적인 해방은 기린 것이다. 
     
  •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선포 및 정부수립 식전에서  초대대통령 이승만의 취임선서.
    ▲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선포 및 정부수립 식전에서 초대대통령 이승만의 취임선서.

     종북좌파 세력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정하므로 '건국'이라는 말에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더욱 악랄한 건 평화통일시민연대 등 56개 단체와 민주당-민노당-창조한국당 국회의원 74명이 建國 60주년 직전에 李明博 정부가 추진 중인 「건국60주년 기념사업」이 위헌(違憲)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점이다.
     
      민주당-민노당-창조당의 행위는 反여당, 反정부가 아니라 反대한민국이다. 국민들은 헌법질서에 대한 존중심과 역사관을 공유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민주당과 민노당은 촛불난동 때 국회를 포기하고 불법폭력집회 현장을 지켰다. 의회민주주의의 원칙과 법치주의를 반대한 셈이다. 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憲政질서 문란행위였다.
     
      이들은 反헌법적 자세의 연장선상에서 대한민국 建國을 국가가 기념하는 일도 반대한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은 국민된 의무이다. 이를 거부하는 이는 국회의원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국민의 자격도 없다. 헌법질서와 역사관을 다 같이 부정하는 행위는 反국가적 행위이다. 이런 행위가 反자유민주적 이념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다른 정책으로까지 확산된다면 위헌정당이 된다.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위헌 정당은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해산을 제소해야 할 대상이 된다.
     
  •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 총선부터 보이코트한 임정주석 김구(오른쪽)가 1948년 4월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따라 들어가고 있다.
    ▲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 총선부터 보이코트한 임정주석 김구(오른쪽)가 1948년 4월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따라 들어가고 있다.

      조국의 생일인 建國기념일을 부정하는 행위는 아버지의 생일을 부정하는 불효자의 행패와 같다. 국가와 선열들에 대한 不孝, 不忠이다.
     
      통용되는 화폐 다섯 종에도 대한민국을 만든 위인들은 한 사람도 없고 모두 조선조 사람들이다. 이퇴계, 이순신, 새종대왕, 이율곡, 신사임당. 광화문엔 建國 대통령이 없고, 교과서에도 '대한민국 建國'이란 용어는 금기어가 되었다.
     
      아무리 잘 살아도 정치인들이 앞장 서서 조국의 생일을 지우고, 이 나라는 태어나선 안될 나라였다고 自虐하는 국민들이 많아지면 정신이 병든 사람처럼 자살충동을 느끼게 된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축하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은 내전적 구도를 품고 있다. 建國을 긍정하는 사람들과 부정하는 사람들 사이엔 內戰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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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민국은 1948년 8월15일 세워졌고, 올해로 건국(建國) 60주년이다. 이 단순한 사실(史實)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이 건국일이라는 주장이다.
     
      평화통일시민연대 등 56개 시민단체(?)와 국회의원 74명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건국60주년 기념사업」이 위헌(違憲)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위헌 여부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정지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서도 함께 제출했다.
     
      이들은 『광복절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反역사적, 위헌적(違憲的) 「건국60주년기념사업」을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에서 건국60주년 기념을 『일부 친일(親日)보수세력과 그에 편승하는 이명박 정부』의 반역사적 행태로 매도했다.
     
      이들의 주장 요지는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기념할 경우, 『「임시정부 법통의 계승」을 부정하고, 항일독립운동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며 심지어 『일본의 독도침탈에 대해서 대응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3.1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건국헌법과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현행헌법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주장도 폈다.
     
      2.
      황당한 주장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 대신 「임시(臨時)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기념하자는 것은 「출생일」대신 「잉태(孕胎)일」을 생일로 정하자는 주장이다. 「결혼날짜」 대신 「연애시작 날짜」를 결혼기념일로 정하는 억지이다.
     
      어떤 회사나 단체가「창립총회 날짜」 대신 「발기인(發起人)대회 날짜」나 「준비(準備)위원회 설립 날짜」에 생일잔치를 한단 말인가?
     
      의도는 뻔하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李承晩)을 뭉개고,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김구(金九)를 세우자는 것이다.
     
      실제 1948년 1월 이후 정부수립이 결정적 단계에 접어들자, 김구 등 임시정부 세력은 이를 정면에서 방해했다. 김일성의 꼬임에 빠져 남북협상을 벌이고 1948년 5·10선거를 저지했다. 김구는 이후에도 대한민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1919년 임시정부를 세우고 1948년 대한민국을 부정하면, 자연스럽게 김구가 올라가고 이승만이 부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직후 국민들은 임시정부를 국가로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임시정부 구성원들도 자신들이 국가를 건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임시정부가 1941년 11월에 선포한 「대한민국건국강령」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건국강령 제3장 1항은 임시정부가 활동하던 시기를 복국기(復國期)로 규정했고, 건국기(建國期)는 『적의 통치기구를 국내에서 완전히 박멸하고 국가의 수도를 전정(奠定)하고 중앙정부 및 중앙의회의 정식발동으로 주권을 행사하며 선거와 입법과 임관과 군사와 외교와 경제 등에 관한 국가의 정령이 자유로 행사되며 삼균제도의 강령 및 정책을 국내에 추행(推行)하기 시작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고 규정했다.
     
      일제를 몰아낸 후 건국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임시정부를 건국일로 만들면, 1948년 세워진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은 모호해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反국가단체라는 헌법적 결단도 희미해진다. 이런 해괴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74명의 국회의원 대표는 강창일, 이종걸 의원이 맡았고, 강기갑, 강기정, 강성종, 강창일, 곽정숙, 권영길, 김동철, 김부겸, 김상희, 김성순, 김영록, 김영진, 김우남, 김유정, 김재윤, 김재균, 김진표, 김종률, 김춘진, 김충조, 김희철, 노영민, 문국현, 문학진, 박병석, 박영선, 박주선, 백재현, 변재일, 서갑원, 송민순, 송영길, 송훈석, 신낙균, 신학용, 안규백, 양승조, 오제세, 우윤근, 우제창, 원혜영, 유선호, 이강래, 이광재, 이낙연, 이미경, 이상민, 이성남, 이용경, 이용삼, 이용섭, 이윤석, 이정희, 이종걸, 이춘석, 장세환, 전병헌, 전혜숙, 정장선, 조경태, 조배숙, 조영택, 조정식, 주승용, 천정배, 최규식, 최문순, 최영희, 최인기, 최재성, 최철국, 추미애, 홍재형, 홍희덕 의원 등이 참여했다.
     
      대표를 맡은 강창일 의원은 △2007년 10월13일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열린 소위「제1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라는 이름의 간첩·빨치산 출신 추모 행사에 이름을 올렸었다.
     
      그는 △2004년 8월4일 「국보법 폐지를 위한 입법추진위원회」, △2004년 12월17일 「국보법 등 개혁·민생입법 연내처리촉구 결의문」, △2004년 12월23일 「국보법 연내폐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대표·국회의원 공동기자회견」등 국보법폐지에도 앞장서왔다.
     
      2007년 5월31일에는 「6·15선언 국가기념일제정촉구결의안」에 서명, 『「6·15 남북공동선언」은 통일의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소중한 합의』라며 『6월15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하자』고 결의했다.
     
      74명의 국회의원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인가 아니면 상해 임시정부 국회의원인가? 당신들은 대한민국에 충성하는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에 충성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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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성명서) 광복절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반역사적, 위헌적 ‘건국60주년기념사업’을 즉각 중단하라!
     
      다가오는 8월 15일은 광복절 63주년이자 정부수립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일부 친일보수세력과 그에 편승하는 이명박 정부는 이 날을 ‘건국60주년’으로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 건국60년 기념사업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279억원의 예산을 들여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을 벌이고 있다.
     
      1948년의 정부수립을 건국일로 지정한다면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단절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반만년동안 이어져온 한민족의 역사가 순식간에 60년 신생국 역사로 움츠러들고, 1910년에서 1948년까지 38년에 걸친 민족역사가 단절되며, 이 시기에 전개된 항일독립운동도 통째로 부정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는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건국 60년’ 주장은 국가의 근본을 뿌리째 뒤흔드는 일이며,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대한독립을 위해 국내외에서 일본제국주의와 싸워 목숨을 바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반역사적 행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법통’ 계승의 참된 의미를 짓밟는 반헌법적 행태이다.
     
      또한 ‘건국 60년’이란 말은 “3.1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건국헌법과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현행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침탈된 주권국가를 되찾았다면 그 날은 광복절이지 건국절이 될 수는 없다. 독일로부터 독립한 프랑스가 레지스탕스의 활약으로 독립을 쟁취했지만 결코 건국이라고는 하지 않았듯이, 우리 대한민국의 광복도 마찬가지다.
     
      뉴라이트등 보수세력이 추앙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조차도 1948년 정부수립 당시에 공식연호를 ‘민국 30년’이라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국60년’을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터무니 없는 억지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건국60년’주장은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일본의 독도침탈에 대해서 대응할 수 없게 된다. 일본은 1905년에 독도를 자기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는데 ‘건국60년’을 인정한다면 1948년에 탄생한 신생독립국으로 전락하여 더 이상 독도를 우리 영토로 주장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발생한다.
     
      ‘건국60년기념사업’에 대해 역사학자들과 애국세력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정부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는 척하고 있다. 8.15 광복절 기념행사 명칭을 ‘광복63주년 및 대한민국 건국60주년 경축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태도는 조삼모사식의 기만책이다. 앞뒤 순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건국60년’이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건국이 1948년 8월 15일에 이루어졌다는 잘못된 역사인식에는 변화가 없다.
     
      이에 우리들은 ‘광복절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수호’하고자 다음과 같이 결의하는 바이다.
     
      첫째, 우리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려는 모든 애국세력들의 역량을 한데 모아서 정부와 뉴라이트를 비롯한 일부 보수세력의 ‘건국60주년기념사업’을 반드시 막아내기 위해 공동대처한다.
     
      둘째, 우리는 ‘건국60주년기념사업위원회’의 설립과 운영이 위헌임을 알리고, 헌법소원과 가처분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건국60주년기념사업’중단을 위해 공동대처한다.
     
      셋째, 우리는 헌법전문의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민족적, 민주적 가치가 실현되도록 노력한다.
     
      2008년 8월 7 일
     
      ‘건국60년기념사업’추진을 반대하는 애국시민과 국회의원 74인
     
      김자동(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이이화(前 역사문제연구소장 現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한시준(단국대학교인문과학대학장)
      국회<아시아평화와번영>포럼준비모임(대표의원:이종걸,강창일)
      강기갑, 강기정, 강성종, 강창일, 곽정숙, 권영길, 김동철, 김부겸, 김상희, 김성순, 김영록, 김영진, 김우남, 김유정, 김재윤, 김재균, 김진표, 김종률, 김춘진, 김충조, 김희철, 노영민, 문국현, 문학진, 박병석, 박영선, 박주선, 백재현, 변재일, 서갑원, 송민순, 송영길, 송훈석, 신낙균, 신학용, 안규백, 양승조, 오제세, 우윤근, 우제창, 원혜영, 유선호, 이강래, 이광재, 이낙연, 이미경, 이상민, 이성남, 이용경,이용삼, 이용섭, 이윤석, 이정희, 이종걸, 이춘석, 장세환, 전병헌, 전혜숙, 정장선, 조경태, 조배숙, 조영택, 조정식, 주승용, 천정배, 최규식, 최문순, 최영희, 최인기, 최재성, 최철국, 추미애, 홍재형, 홍희덕 등 국회의원 74인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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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되었다.
     
      [황당무계한 임시정부 건국 주장을 반박함]
     
      梁東安(양동안) /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이 글의 제목을 본 독자들은 이상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된 것은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생뚱맞게 이런 제목의 글을 왜 쓸까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여서 이런 당연한 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등은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점을 무시하고, 건국을 기념해야 할 날에 정부수립을 기념해왔으며(정부수립 50주년 등으로),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일부 역사학자들은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되지 않고, 1919년에 건국되었다고 우기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저러한 단체들에서 건국6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 등 기념사업들을 전개하자 이들은 올해는 건국 60주년이 아니라 건국 89주년이라고 해야 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건국 60주년기념행사들의 김을 뽑고 있다.
     
  • 1948년 8월15일 중앙청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 선포식.
    ▲ 1948년 8월15일 중앙청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 선포식.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에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서 중국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한 것이 대한민국 건국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인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간주하는 것은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한다. 그런 비판을 하는 인사들에게 필자는 ‘귀하들이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1948년에 이루어진 대한민국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야 하고,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건국을 귀중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이 언제 이루어졌느냐 하는 문제는 어느 것을 무시하고 어느 것을 절대시하는 감정적 태도에 의해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학문적 및 법률적 이론을 토대로 객관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일이다.
     
      임시정부 수립이 곧 대한민국의 건국이라고 말하는 인사들의 제시하는 논거들을 하나씩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승만 박사가 1948년 5월 31일 제헌의회의 의장에 선출된 직후에 행한 인사말에서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29년 만의 민국의 부활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여 민국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1919년의 임시정부의 수립이 곧 대한민국의 건국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임시정부수립이 대한민국의 건국이었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의 대부분은 이승만이라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폄하하고 김구라면 성인시하는 인사들이다. 그런 인사들이 이승만 박사의 이 말만은 진리처럼 받들고 있는 것이 우습다.
     
      이 박사가 한 이 말은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남한정부 수립을 위한 5·10선거가 성공적으로 치루어지고 그 결과 제헌국회가 구성된 것에 대한 그의 감격의 표현이며,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간판을 등에 업고 5·10선거를 방해하면서 5·10선거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만든 정부는 임시정부의 정신과는 상반된 것이며 민족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라고 헐뜯는 데 대한 반론인 것이다. 그리고 이 박사의 그러한 말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 대한민국 국회가 결의한 사항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 박사가 말하는 ‘민국의 부활’이니 ‘민국연호의 기미년 기산’은 정치적인 수사(修辭)에 불과한 것이며, 그런 말을 이 박사가 임시정부의 수립이 곧 건국이라고 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 ‘민국의 부활’은 실체로서의 국가의 부활이 아니라 임시정부 정신의 부활을 말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1910년 이래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었는데 어떻게 부활한다는 말인가? ‘민국연호의 기미년 기산’은 기미년에 국가가 건국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연호의 기산은 국가통치세력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정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건국시기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건국이 되기 전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있었으면, 그것을 기리기 위해 그 사건 발생 연도를 연호의 기산 시기로 정할 수도 있는 것이며, 건국한지 한참 후에 연호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정치체제를 민주공화제로 선택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기 때문에 임시정부수립이 곧 건국이라고 주장한다. 制憲국회에서 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한 것은 임시정부가 곧 국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이 새 국가의 명칭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선택한 것이다. 새 국가의 정치체제를 민주공화정으로 선택한 것은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정을 가진 국가였기 때문에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니라 새 국가의 정치체제로 그것이 옳다고 판단해서 그 체제를 선택한 것이다. 제헌의회의 국호나 정치체제 관련 논의에서 임시정부는 국가이며 임시정부가 그런 국호를 가졌기 때문에 새 나라에서도 舊 국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임시정부라는 국가의 헌법이 민주공화제를 천명했기 때문에 민주공화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없었다. 제헌의회 의원들 가운데 임시정부수립이 국가의 건국이었다고 주장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셋째, 1948년 8월 15일 기념식을 하면서 ‘건국’을 기념하지 않고 ‘정부수립’을 기념한 것을 보면, 정부수립의 주역들이 그날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이 아니라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판단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므로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에 건국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시 남한의 모든 국민은 임시정부를 국가로 보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임시정부 구성원들도 자신들이 국가를 건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임시정부 사람들은 귀국 후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과도정부를 구성하려 했으며, 그런 사실이 곧 그들이 국가를 건국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들이 국가를 건국했고 임시정부가 국가의 정부라면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건국 主役들이 대한민국 건국 선포식을 갖지 않고 정부수립 선포식을 가진 것은 난관을 극복하고 이루어진 정부수립이 너무도 감격스러운 나머지 그것을 축하하느라 그런 정부수립이 새로운 국가의 건국과정을 마무리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토의 절반이 통치권 밖에 있는 불완전한 국가여서 새로운 국가를 창건했다고 자축하기가 쑥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한에서는 정부수립을 기념한 데 반해 1948년 9월 9일 북한에서는 새로운 국가의 창건을 기념한 것과 대조된다. 북한에서는 이미 1947년에 정부수립을 완료해놓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하는데 있어서 북한지역 내에서 중대한 장애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국가 창건을 기념할 여유를 가졌던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건국주역들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하고 대한민국 건국을 선언하지 않은 것은 실수이다. 그러한 실수를 빌미 삼아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이루어지지 않고 1919년 임시정부수립 때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남의 약점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것과 비슷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건국을 선언했건 안 했건 그날 대한민국 건국과정이 완료되었다는 객관적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영토와 국민이 확보된 조건에서 정부가 수립된 것은 한 국가의 창건과정이 완료된 것이며, 국가의 창건과정이 완료된 날은 곧 건국일이다.
     
      넷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始源이었기 때문에 임시정부수립일이 대한민국의 건국일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없었으면 대한민국도 없다는 주장으로 확대된다. 실제로 전개되었던 역사는 이러한 주장과는 크게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형성에 필요한 3대 요소 중 영토와 국민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의 영토와 국민을 확보하는 데 임시정부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국가형성의 나머지 한 요소인 주권적 통치체의 조직, 즉 정부의 수립에 임시정부는 기여하지 않았다. 1945년 말 이후 신탁통치반대운동과 자율정부수립운동 과정에서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우익세력이 이승만 박사의 건국 운동에 협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48년 1월 이후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결정적인 단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임시정부 세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필요한 정부수립을 심각하게 방해했다. 그들은 북한 공산정권의 꼬임에 걸려 평양에서 왜곡된 형태의 남북협상을 벌이면서 정부수립을 위한 5·10선거를 저지하려 했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점들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始源이었으며, 임시정부가 없었으면 대한민국도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임시정부가 전개한 독립운동은 매우 가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임시정부로 인해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백보를 양보하여,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始源이었으며, 임시정부가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없었다고 하더라도, 임시정부 수립일자를 대한민국 건국일자로 정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부모님의 합방일자를 자식의 생일로 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부당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대한민국이 통치이념면에서 임시정부를 계승했기 때문에 임시정부의 수립을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이 통치이념면에서 임시정부를 계승했고, 임시정부의 구성원 중 다수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통치제도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계승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계승(繼承)은 동일(同一)과는 다르다. 통치이념의 계승은 정신을 계승한 것이며, 대한민국 통치제도에 참여한 임시정부 구성원들은 대한민국 통치제도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들이 아버지를 계승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한 인물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한 것은 부자간의 계승보다 훨씬 약한 계승이므로 대한민국과 임시정부가 동일한 실체가 아닌 것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상과 같이 볼 때, 임시정부 수립이 곧 대한민국의 건국이며, 따라서 대한민국의 건국은 1948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919년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주장은 황당무계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건국의 준비조직을 구성한 것과 건국을 달성한 것 간의 차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잘못된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임시정부의 구성원들조차도 자신들이 조직한 임시정부가 국가를 건국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은 임시정부가 1941년 11월에 선포한 ‘대한민국건국강령’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앞으로 건국이 이루어질 때 행해져야 할 계획 또는 희망을 정리한 것이 ‘건국강령’이므로 자기들이 이미 건국을 실행했다면 그런 ‘건국강령’을 선포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가 선포했던 건국강령 제3장 1항은 임시정부가 활동하던 시기를 복국기(復國期)로 규정했고 건국기(建國期)는 “적의 통치기구를 국내에서 완전히 박멸하고 국가의 수도를 전정(奠定)하고 중앙정부 및 중앙의회의 정식발동으로 주권을 행사하며 선거와 입법과 임관과 군사와 외교와 경제 등에 관한 국가의 정령이 자유로 행사되며 삼균제도의 강령 및 정책을 국내에 추행(推行)하기 시작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고 규정했다.
     
      이처럼 임시정부의 구성원들조차도 잘 알고 있었던 임시정부수립이 건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보다 훨씬 개명된 오늘날의 학자들이 잘 알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건국연도는 1948년이 아니라 1919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건국회보 제357호 게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