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모의 덮어주었던 장도영 장군 별세

조갑제 조갑제닷컴대표 | 최종편집 2012.08.05 21:36:39
5.16 모의를 알고도 덮어주었던
張都暎 장군 별세 

 
  그는 5.16 군사혁명 준비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
혁명의 성공을 도왔다는 의심을 사 왔다.
필자는 '朴正熙 傳記'에서 미국 CIA 자료를 인용,
이 의심이 사실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趙甲濟   
 
 張都暎 전 국방부 장관(사진)이 8월3일 밤(미국 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에서 별세했다. 향년 89세.


5.16 군사혁명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故人은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계엄사령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국방부 장관으로 추대되어 혁명 지도자 朴正熙 소장과 같이 일하였으나 같은 해 6월 해임된 뒤 8월22일 중장으로 예편했다. 反혁명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돼 1962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그 해 5월 형집행 면제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1969년 美 미시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93년까지 미시간대 정치학 교수를 지냈다.

은퇴 후에는 부인과 함께 플로리다에서 살았다. 평안북도 용천 출신인 고인은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마친 후 1944년 일본 동양대학 재학중 일본군에 들아가 장교로 복무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 직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 建軍에 참여하였다. 6.25 전쟁중 6사단장 등으로 戰功을 세웠다. 張勉 정부 시절이던 1961년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그는 박정희보다 여섯 살이 아래였지만 줄곧 상관으로 근무하면서 인간적으로 가까웠다. 유족으로는 부인 백형숙 씨와 4남1녀가 있다. 장례식은 오는 8일 미국 LA에서 열린다. ☎02-798-3155, 011-264-2524(장정열)
  
 그는 5.16 군사혁명 준비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 혁명의 성공을 도왔다는 의심을 사 왔다.
필자는 '朴正熙 傳記'에서 미국 CIA 자료를 인용, 이 의심이 사실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관련 대목을 소개한다. 
  ,,,,,,,,,,,,,,,,,,,,,,,,,,,,,,,,,,,,,,,,,,,,,
▲ 5.16 쿠데타 당시의 장도영 중장(왼쪽)과 박정희 소장.

  張都暎, “張勉은 모른다”
 
 1961년 4월24일 미 CIA 극동과가 서울 지부로부터 받은 정보 보고를 요약한 내용은 이러하다.
 
  <4월24일: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의 쿠데타 모의에 대한 견해. 장 장군은 박정희를 체포하고 싶어도 증거가 없다고 한다. 그는 박정희의 체포는 쿠데타를 촉발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또 이범석과 족청계는 박정희의 쿠데타를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4월25일의 두 가지 보고서는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4월25일: 한국 육군 방첩대가 쿠데타 음모를 수사하고 있다. 만약 쿠데타가 4월26일에 기도되지 않는다면 주동자들은 좀더 유리한 기회를 기다릴 것이다. 4월24일 현재 장도영에 따르면, 장면 총리는 쿠데타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그러나 한 신문 발행인이 4월25일, 장면 총리에게 쿠데타에 관한 정보를 설명하기로 되어 있다.
 
  4월25일: (비밀이 해제되지 않아 최소한 한 줄 이상 비공개) 4월24일에 장도영 총장과 한 시간 동안 만나서 쿠데타에 대한 제보가 우리 사무실에 들어 왔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정보를 신속히 매그루더 사령관에게 전달할 것이며, 매그루더는 이 문제로 장도영 장군과 의논하려 할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장도영은 일주일 전 박정희가 자신한테 한 말이 있다면서 급작스러운 거사는 임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4월26일자 미 CIA 보고서는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4월26일: 장면 총리는 불만을 품은 군부 내의 한 집단이 어떤 종류의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다는 요지의 소문들을 알고 있다. 그는 이런 說(설)들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으며 상황이 그리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장면은 참모총장의 업무 자세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다. 그는 장도영이 박력 있고 유능하며 미군 측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장 장군을 2년간 데리고 있을 계획이다>
 
  이상의 정보 보고는 CIA 서울 지부장 피어 드 실버가 장도영과 접촉하여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 CIA 서울 지부와 장도영 총장은 박정희의 쿠데타 음모를 훤히 알고 있으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그 대책까지 서로 논의하고 있다. 더구나 장도영 총장은 자신과 미국 측이 알고 있는 이 엄청난 정보를 장면 총리한테는 보고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미국 CIA 보고서를 읽고 있으면 미군과 정보기관은 장면 총리가 장도영 총장에게 속고 있음을 알고도 경고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CIA 서울 지부장과 장도영이 한 패가 되어 매그루더와 장면의 눈을 가리고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이런 의심과 관련하여 새겨둘 만한 것은 김종필의 증언이다.
 
  “장도영 장군을 추대하여 미국 측이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했다. 5·16 뒤 이 사실을 밝혀내 미국 측 공작원들을 추방하고, 양국 정부의 합의하에 덮어버렸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장도영은 박정희와 미국 양쪽으로부터 쿠데타 지도자로 추대받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장도영은 이런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張勉(장면)은 5·16을 앞두고 벌어진 제2공화국 상층부의 희한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기록을 남겼다.
 
  <5월16일 일주일 전에 나는 군 일부에서 군사 쿠데타 모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 전에도 2, 3차 다른 부류의 쿠데타 모의가 있다는 미확인 정보를 입수하고 비밀리에 內査(내사)케 한 일이 있었다. 내사 결과 쿠데타 모의가 전혀 없었는지 내사가 철저하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여튼 2, 3차 모의설은 불발이었다. 그러던 차 이것이 네 번째의 정보였다.
 
  나는 당시 육군 참모총장인 장도영을 불렀다. 내가 입수한 정보는 박정희 소장을 주동으로 한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 모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입수한 정보를 장도영에게 전하고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물었다. 내 말을 들은 장도영은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태연한 대답이었다. 내가 입수한 정보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구체적인 것이었다. 대구 어느 중국 음식점에 몇몇이 모여 모의한 사실과 민간인 모 씨가 자금 조달을 위해 활약하고 있다는 내용도 알았다.
 
  “염려 말고 안심하십시오”라는 말만 반복하는 대답이 불만스러워 나는 정색을 하고 그에게 말했다.
 
  “참모총장이 먼저 알아서 나에게 보고해야 될 성질의 사건을 반대로 내가 참모총장에게 지시하고 있으니 책임지고 내사해 보시오.”
 
  “알아는 보겠습니다만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나는 이 사건에 관련된 민간인도 확인해 보라고 검찰에 명했다>
 
  이 기록은 1966년에 희망출판사가 펴낸 《政界秘史(정계비사)─사실의 전부를 말한다》에 실려 있는 張勉의 수기에 들어 있다. 이 만남에 대한 장도영의 회고록의 일부도 소개한다(1984년 8월호 <신동아>).
 
  <4·19 혁명 1주년이 지난 후의 어느 토요일 오후, 총장 공관 바로 뒤에 있는 미 8군 골프장에서 골프 게임을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나의 부관 金東洙(김동수) 소령이 달려왔다. 총리실에서 속히 오라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나는 총리 공관이던 반도호텔로 달려갔다. 비서실에 들어서니 지금 누가 와서 총리와 면담을 하고 있으니 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약 30분 가량 지나고 나서 총리실에서 나온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어느 부인이었다. 그 부인은 오래 전부터 이범석 장군과 친근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부인과 지나가는 인사를 하고 넓은 총리실에 들어서니 장면 총리 옆에는 李太熙(이태희) 검찰총장이 앉아 있었다. 총리께서 먼저 나에게 물었다.
 
  “여보, 장 장군. 족청계 장교들이 쿠데타를 한다는데 알고 있소?”
 
  나는 그런 설이 있어서 현재 조사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장 총리는 또 조금 소리를 높여 “내가 알기로는 그 음모가 상당히 진척됐다고 하던데 총장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고 물었다. 총리의 나에 대한 태도는 내가 무슨 잘못이나 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좀더 면밀하게 조사하여 보고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총리실을 나왔다. 승강기에 몸을 싣고 내려오면서 나보다 앞서 총리를 만난 그 부인이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내가 총리실에 들어설 때부터 냉랭한 분위기였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후 나는 계속 족청계 군부 거사에 관한 정보 수집, 특히 확실한 증거 포착에 힘을 썼다. 그러나 증거가 될 만한 보고는 없었다>
 
  장면은 자신이 박정희 장군 중심의 쿠데타 모의에 대해서 조사해 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고, 장도영은 총리가 족청계에 관한 정보를 주면서 조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뒤에 나오지만 여러 증언들과 앞서 소개한 CIA 보고서를 종합하여 판단할 때 장도영의 증언엔 너무나 허점이 많다.
 
  양다리 걸치기?
 
  이날(1961년 5월6일) 장면 총리가 장도영 총장을 부른 이유는 민주당 尹炳漢(윤병한) 의원이 중요한 제보를 했기 때문이다. 공보비서관 송원영이 질린 표정으로 찾아온 윤 의원을 총리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윤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박사님. 제가 잘 아는 吳(오)라는 사람이 있는데 金德勝(김덕승)이라는 사람과 친합니다. 공사가 있다 하여 대구로 갔는데 김덕승이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장군한테 데리고 가더랍니다. 공사는 주지 않고 박 장군은 ‘쿠데타를 하는 데 돈 500만 환만 대라’고 하더랍니다. 그 자리에서 거절하기가 곤란해서 ‘돈은 서울에 가서 주마’하고 나왔대요. 만일 돈을 주면 자기도 쿠데타 모의에 관련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다가 어젯밤에 저를 찾아와서 전모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 보고를 들은 장면 총리가 검찰총장과 육군 참모총장을 부른 것이다. 그렇다면 총리는 박정희 장군을 거명하여 조사를 지시했을 것이다. 장도영의 주장대로 장 총리가 족청계만 수사하도록 지시할 리가 없다.
 
  장도영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 모의에 대한 정보를 몇 차례 들었다고 기록했다. 5월6일쯤, 즉 장면 총리로부터 쿠데타 모의설을 조사하란 지시를 받은 무렵 육군 방첩부대 副부대장인 白雲祥(백운상) 대령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이런 보고를 하더란 것이다.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하는 군대 거사설이 박 장군에 대한 모함이 아니라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족청계 쿠데타설은 아직 그 계획이 진척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혹은 역정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박 소장의 계획이 사실이며 그것이 더 많이 진척된 것 같습니다.”
 
  “무슨 증거라도 있는가.”
 
  “그게 문제입니다. 서울에서는 너무 복잡해서 그 증거를 잡기가 아주 곤란합니다.”
 
  “그럼 대구에 직접 내려가서 조사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럴까요.”
 
  “여보, 이것은 중대한 문제이니 내일 당장 당신이 직접 내려가서 조사하시오.”
 
  4, 5일 후 백운상 대령이 다급하게 장도영 총장 집 현관으로 들어서더니 좀 흥분된 어조로 수집한 정보를 자세히 보고했다고 한다. 그 보고는 결론적으로 ‘박정희 소장의 지휘하에 쿠데타를 하려 한다는 것은 확실한데 그 세부 방법과 조직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보, 2군 사령부 참모들은 박정희 소장을 포함하여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그런 음모를 한다면 내가 전혀 모를 리가 없는데.”
 
  “조직은 주로 육군본부에 있고 모의는 2군 사령부 밖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육본의 주모자들을 체포하여 조사하면 증거가 나올 것입니다.”
 
  “무슨 증거를 가져야지, 이 혼란한 시기에 장성들을 쿠데타 음모 혐의로 체포했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질질 끌려가면 군의 내외가 어떻게 될 것 같소.”
 
  “증거라고는 박 소장이 잘 다니는 중국 요리집과 청수장이란 한식집에서 장교들과 식사를 하는 것뿐인데 어떻게 합니까.”
 
  “나도 대구에서 근무할 때 그 두 군데서 때때로 장교들과 같이 식사를 했는데 그것만으로 무슨 증거가 될까. 여하간 실제 모의에 관한 시일과 장소 내용, 또 조직 등 무엇이든지 간에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장성들을 체포하려면….”
 
  장도영이 이렇게 말하자 백운상 대령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더라고 한다. 장도영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백 대령, 좀 수고스럽지만 다시 대구에 내려가서 무엇이든 증거가 될 만한 것을 하나만이라도 잡아 오시오. 일거에 육본 내의 조직을 일망타진합시다.”
 
  백운상은 무슨 착상이 생긴 것같이 “알았습니다. 내일 새벽 대구로 다시 내려가겠습니다. 돌아와서 보고하겠습니다”고 하더니 일어서더라는 것이 장도영의 증언이다. 그 2, 3일 후 2군 사령부 인사참모 宋仁律(송인율) 대령이 원효로에 있는 장도영 총장의 집으로 찾아왔다. 육사 5기 출신인 그는 두 번 장 장군의 직속 부하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송 대령은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거사 모의를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장도영은 “그런 일이 있으면 속히 알려 주어야지”라고 나무란 뒤 “빨리 돌아가서 잘 알아보고 속히 보고를 해달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상의 장도영 증언을 읽고 있으면 진행 중인 쿠데타 음모에 관해서도 철저하게 증거주의를 요구하는 장도영 총장의 인권 의식에 감동하기보다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쿠데타 음모의 증거는 관련자들을 일단 연행, 조사하면 저절로 나오는 것인데 내사 단계에서 증거를 요구하고 있으니 이상한 것이다.
 
  미 CIA 보고서에 따르면 장도영 총장은 보름 전인 4월24일에도 미국 정보 기관원에게 ‘박정희를 체포하고 싶어도 증거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쿠데타가 임박했다는 정보가 여러 군데서 들어오고 더구나 총리가 직접 그를 불러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고 있는 가운데 왜 장도영 총장은 증거론을 주장하면서 수사를 미루고 있었던가.
 
  박정희가 주장했던 대로 4월 중순 장도영은 박정희로부터 자신을 지도자로 추대한다는 혁명 계획서를 받아 보았던 것은 아닐까. 그 자리에서 장도영은 “지금은 혁명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린 뒤 ‘거사를 하면 혁명 지도자가 되고, 안 하면 그만’이란 양다리 걸치기의 심정으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박정희 측근의 거의 일치된 견해이다.
 
  6관구 사령부의 참모장으로서 쿠데타 모의에 핵심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김재춘 대령은 이런 기억을 갖고 있다.
 
  <박 장군이 장도영 총장에게 혁명 계획서를 들고 간 사이 나는 남강이란 음식점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돌아온 박 장군은 “지금은 때가 아니라면서 서류를 서랍에 넣어버리더군”이라고 해요. 제가 “그러면 우리는 그만둘 겁니까”라고 했습니다. 박 장군은 “그만두기는 왜 그만둬”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계속 그분을 지도자로 모시는 겁니까”라고 물었는데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 이후 장도영 장군은 일종의 이용 도구로 전락한 셈이지요>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press@newdaily.co.kr
[자유민주·시장경제의 파수꾼 - 뉴데일리/newdaily.co.kr]
Copyrights ⓒ 2005 뉴데일리뉴스 - 무단전재, 재배포 금지
※ 청소년에 유해한 댓글 과 광고/반복게재 된 댓글은 작성을 금지합니다. 위반된 게시물은 통보없이 삭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