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풀살롱 황제’ 이경백 씨 수사 시작으로 유흥업소 대대적 조사연 12조 원대 ‘검은돈’ 몰리는 유흥업계, 진짜 '황제들'은 누구일까
  • 7월 6일 ‘문화일보’는 검찰이 강남의 한 술집을 압수수색한 것을 중요하게 보도했다. 그런데 문제의 술집은 보통 술집이 아니다. 겉에서 보면 지상 18층 규모의 초대형 관광호텔만 보인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가면 ‘아방궁’이 펼쳐진다.


    檢 압수수색한 서울 논현동 소재 ‘어제, 오늘, 내일’

    6일 ‘문화일보’는 “검찰이 단속 무마 등을 대가로 경찰에 금품 로비를 한 혐의로 국내 최대 규모의 룸살롱을 압수수색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 ‘강남 풀살롱의 황제’로 불렸던 이경백(40. 구속 수감 중) 씨 주변 수사를 통해 밝혀낸 지역 경찰과 유흥업소 간의 ‘검은 거래’를 추적한 결과라고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국내 최대의 룸살롱’은 서울 논현동 경복아파트와 차병원 사이에 위치한 ‘어제, 오늘, 내일’이다. 이 술집은 2010년 7월 처음 오픈하면서부터 ‘접대’를 자주 하는 사람들 사이에 강남의 D 룸살롱 등과 함께 ‘빅 3’로 꼽혔다. 이것이 포털 인기검색어에 등장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 검찰이 압수수색한 거대 룸살롱 '어제 오늘 내일'의 입구. 왼쪽 지하층 출입구로 내려가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사진출처: 룸살롱 홍보 블로그]
    ▲ 검찰이 압수수색한 거대 룸살롱 '어제 오늘 내일'의 입구. 왼쪽 지하층 출입구로 내려가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사진출처: 룸살롱 홍보 블로그]

    ‘어제, 오늘, 내일’은 밖에서 보면 지상 18층, 지하 5층 규모의 관광호텔 ‘S 호텔’로만 보인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180여 개의 룸을 갖춘 초거대 룸살롱이 나타난다.

    다음은 2010년 여기서 근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개점 당시 ‘어제, 오늘, 내일’에는 일명 ‘상무’라 부르는 웨이터들이 700명, 정규직 여성 접대부 500여 명 등 1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했다고 한다. 술값과 ‘화대’도 다른 곳보다 비싸고 소위 ‘물’도 더 좋다고 했다.

    S호텔도 사실은 룸살롱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룸살롱 ‘오너’가 호텔 주인이라고 했다. 때문에 룸살롱 손님을 위한 ‘대실(貸室)’은 되지만 숙박은 안 된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장사가 너무 잘 돼서라나. 유흥업소에서는 손님이 가장 없다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재벌들과 고위급 인사도 온다고 자랑했다.

    18층 호텔의 객실은 모두 196개. 이들 객실이 숙박을 받지 않아도 빈 방이 없을 정도라니 다른 룸살롱이 모두 문을 닫는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까.

    실제 토요일 오후 10시를 넘겨 S호텔 인근에서 지켜봤다. 애스턴 마틴 DB9 볼란테,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등 수억 원이 넘는 호화 외제차들과 국산 대형 리무진들이 계속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규모가 아니었다. ‘진짜 오너’가 누구인지, 그들이 어떻게 법망을 피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었다.


    ‘법인’으로 위장한 룸살롱, 4대 보험 가입된 접대부

    2010년 이 룸살롱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유흥업계 사람들은 ‘어제, 오늘, 내일’의 ‘회장’이라는 김 모 씨는 오너가 아니라 ‘전문 경영인’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과거 호남 출신의 유명한 ‘조직폭력배’ 출신이지만 수십 년 전 ‘손을 씻고’ 건설 등 각종 사업을 벌였다고. 하지만 그의 ‘입김’은 여전히 강남 바닥에서 통한다고 했다.

    김 씨의 경영방식은 독특했다. ‘어제 오늘 내일’은 ‘법인 룸살롱’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고, 사업을 했다. 하지만 여기서 판매되는 술값과 소위 ‘2차 봉사료’도 정상적으로 신고를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접대부를 채용하고 관리하는 것도 특이했다. 수많은 접대부들을 고용하는 건 ‘PD’라 불리는 마담들이 주로 맡았지만, 강남에 등장한 ‘술집 접대부 기획사’를 통하기도 한다고 했다. 현재 강남에는 룸살롱 접대부를 스카우트하는 ‘기획사’가 2~3곳 활동한다는 소문이 있다.

    이렇게 채용한 접대부는 가짜 인적사항과 급여를 기본으로 ‘4대 보험’에도 가입시켰다. 룸살롱 접대부도 사실 ‘원칙적’으로는 4대 보험에 가입하는 게 맞다. 하지만 고정 급여가 없고, 소위 ‘2차’로 버는 수입 자체가 불법이라는 점, 접대부들이 룸살롱 소속이 아니라 마담(또는 PD)에 고용돼 일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룸살롱 측에서 접대부들에게 4대 보험을 들게 한 것이 사실은 ‘탈루’와 세금 감면을 보기 위한 ‘꼼수’가 아닌가 의심됐다.

  • '어제 오늘 내일' 내부 룸의 모습. 수십 명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룸도 있다. 여기서는 '아가씨'가 모자라는 일이 없다고 한다. [사진출처: 룸살롱 홍보 블로그]
    ▲ '어제 오늘 내일' 내부 룸의 모습. 수십 명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룸도 있다. 여기서는 '아가씨'가 모자라는 일이 없다고 한다. [사진출처: 룸살롱 홍보 블로그]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나왔다. 이 룸살롱 회장이라는 김 씨의 뒤에 있다는 ‘실제 오너’의 정체였다. 내로라하는 재벌 오너와 거물 정치인을 포함, 10여 명의 ‘투자자’가 거액을 투자한 뒤 매달 배당을 받아 챙긴다는 주장이 여러 곳에서 나왔다. 조폭은 그저 ‘관리자’에 불과하고 이들이야말로 ‘실세’라는 것이었다. 당시 ‘불법사업’을 취재하면서 만난 룸살롱 ‘투자자’ N씨는 이렇게 말했다.

    “경복아파트 사거리를 기준으로 호남과 영남에 근거를 둔 조직들이 4개 구획을 정해놓고 영업을 합니다. ‘어제 오늘 내일’도 그 중 한 조직의 핵심 사업장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S호텔 맞은편인 차병원 쪽 구획은 안마시술소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습니다. 대각선 맞은 편에는 호텔을 중심으로 한 룸살롱들이 있죠. 강남은 4개 연합조직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직들은 각 구역의 ‘주인’이 아닙니다. 이 지역의 실제 주인은 ‘법인 룸살롱 오너들’이죠.”

    당시 취재 중 만난 유흥업 종사자들은 “이 지역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인과 검찰, 경찰, 재벌, 부동산 부자들, 조직폭력배, 국세청까지 모두 각자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모였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정말 정부가 단속할 의지가 있다면 왜 불법영업 하는 ‘콜띠기(불법영업 자가용)’ 조직도 그대로고, 2차 나가는 룸살롱도 그대로 있겠어요? 여기서 일하다 보면 죽어나가는 사람도 있어요. 저도 직접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자살’이나 ‘사고사’로 처리되잖아요?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에요.”

    유흥업계에서 일하는 한 접대부의 말에 ‘찍 소리’도 못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 경쟁, ‘강남 판도라의 상자’ 열 수 있을까?

    6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회종)는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어제 오늘 내일’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했다고 밝혔다.

    언론들은 “검찰이 ‘어제 오늘 내일’의 실질적 소유주인 김 씨가 정기적으로 경찰에 금품상납을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고, 김 씨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것에 대비해 탈세, 성매매 혐의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룸살롱 고객들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진술을 듣고 있다”고 전했다.

  • 지난 6월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있었던 조현오 前경찰청장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장. 그의 자서전에도 '룸살롱 황제'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 지난 6월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있었던 조현오 前경찰청장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장. 그의 자서전에도 '룸살롱 황제'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검찰은 ‘강남 풀살롱의 황제’ 이경백 씨로부터 금품을 받고 구속된 경찰들로부터 강남 유흥업소 80곳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뇌물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 리스트도 만들었다고 한다. 인근 대형 안마시술소들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업주 3~4명을 불러 로비 의혹을 추궁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경찰도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검찰과 경쟁하고 있다. 이미 사퇴한 조현오 前경찰청장이 최근 출간한 자서전 ‘도전과 혁신’ 속에도 이경백 씨에 대한 수사 과정이 들어 있다.

    조 前청장은 자서전 속에서 “2007년 경찰청 특수수사과까지 개입된 대형 비리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 씨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경찰 고위간부가 개입한 사실은 보도된 바 있다. 해당 경찰간부는 현재 수배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검찰과 경찰의 경쟁 수사 속에서도 유흥업계 종사자들은 강남 유흥가를 지배하는 ‘거대 조직’의 실체가 밝혀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권력’까지도 유흥가와 이권으로 연루돼 있는데다 자신들의 ‘밥줄’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 지난 6월 10일 자유청년연대 등 우파단체들이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룸살롱 황제 이경백 씨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강력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였다. 하지만 언론의 반응은 싸늘했다.[사진출처. 뉴스파인더]
    ▲ 지난 6월 10일 자유청년연대 등 우파단체들이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룸살롱 황제 이경백 씨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강력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였다. 하지만 언론의 반응은 싸늘했다.[사진출처. 뉴스파인더]

    일부 통계는 우리나라의 유흥업계 종사자 수는 100만 명, 연간 매출규모는 12조 원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개인들이 벌이는 성매매는 포함되지 않았다. 불법은 물론 종사자들의 인격까지 망가뜨리는 유흥업으로 돈을 버는 생태계의 최고 정점에는 누구가 있는 걸까. 모두가 궁금해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적은 없다.

    하기야 재벌 회장이 대통령 측근을 ‘접대’ 한답시고 연예인을 불러놓고선 공중파 방송 인수를 논의하는 현실에서 과연 강남 노른자위를 차지한 ‘불법 조직’의 배후와 실체를 검찰의 힘만으로 밝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