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군사협정 논란 여야 공세에 靑 ‘무거운 침묵’ 내부 책임론 부각임기 말 靑 야권 친일프레임에 ‘벌벌’? 주변 둘러봐도 아군은 없다
  • 이명박 정부가 레임덕의 끝을 달리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터진 ‘한일군사협정’ 논란에 청와대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논란은 가열되고 있지만,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못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누구 하나 편을 들어주는 곳이 없다.

    입을 다문 대통령은 ‘꿀 먹은 벙어리’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행정부 수반으로 사안을 주도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할 시점에 부하 직원들에 대한 ‘질책’을 먼저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이제는 그런 대통령의 의중을 읽어 일을 추진하거나 책임져줄 측근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 고립무원, 사방이 적

    야권이 국무총리 해임안을 입에 올렸다. 한일군사협정을 밀실 처리한 것에 대한 책임론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는 의지를 공포한 셈이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1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하금열 대통령실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이 같이 지적했다.
    “(협정안을) 국무회의 즉석 안건으로 처리한 것은 절차도, 내용도 문제다. 총리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며 대통령이 총리를 해임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불신임안 결의가 나갈 수밖에 없다.”

    여권도 이번만큼은 야권을 거드는 모습이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영토 분쟁을 도모하는 국가와의 군사정보협정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이 쏠린 사안이었다. 이번 사안은 민의의 전당인 국회와 논의 절차 거치면서 신중히 처리해야 했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은)엄중히 국익을 따져서 일을 결정해야 하고, 충분한 국회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민의 우려가 없도록 진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정부는 다시는 이런 혼란이 없도록 만반의 조치를 해 달라.”
    오히려 새누리당의 청와대 겨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인천공항 매각과 국방부의 차세대전투기 기종 선정 사업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굵직한 국책 사업을 친박계라는 차기 권력으로 넘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 이명박 대통령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제19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명박 대통령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제19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끌려가는 靑, 책임자 찾기에만 분주

청와대는 정치권 공세에 전전긍긍이다. ‘한일군사협정은 국익을 위한 일’이라는 입장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다. 야권의 공세인 '책임자 찾기'에 끌려다니는 모습이다.

원칙적으로 ‘한일군사협정=국익’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정치권 공세에 대한 반박이 먼저 나와야 한다.
“한일군사협정은 이미 러시아를 비롯한 24개국과도 체결을 했고 앞으로 중국과도 체결이 필요한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협정이다.”
하지만 이날 이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를 전한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서 이 부분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반면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의 협정안 통과를 미리 보고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가 관건이 됐다.

청와대조차 ‘이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 것이냐’가 아니라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을 먼저 따지기 시작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절차상 문제’를 들어 수석비서관들을 강력하게 질책했다. 협정 체결이나 국무회의 통과가 지나치게 급했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날 이 대통령은 3∼4분간 마무리 발언을 통해서 다른 문제는 제쳐놓고 거의 군사정보협정 처리 과정의 미숙함에 대해 질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협정안을 통과시킬 줄 몰랐다.”
이는 곧 대통령은 스스로 책임론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이며, 이에 따라 이번 한일군사협정 논란은 정부 고위 당직자가 책임지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현재 청와대 분위기는 협정추진보다 책임자 색출과 징계를 먼저 해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대통령의 질책에 청와대 내부는 벌써부터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다. 책임자로 찍히지 않으려는 몸사림이다.

이미 한 사람이 지목된 분위기다. 순방 기간 동안 국내에 남아 협정 체결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태효 대외전략기획관이다. 지난해 협정이 공식 추진된 이후 외교부와 국방부 간에 추진 주체를 놓고 서로 미루자 직접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는 아직까지는 책임론에 대해 일체 부정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협정 체결에 대한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아직 형성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이를 사전·사후 설명 없이 국무회의에서 처리한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파악 중이다.”

“아무리 국익을 위한 일이라고 해도 일본과의 협정 체결에 대해서는 정무적 판단이 있었어야 했다.”
  •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 대통령 ⓒ 자료사진
    ▲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 대통령 ⓒ 자료사진

    ◆ 대선 앞두고 친일 프레임에 매몰되나?

  • 한일군사협정에 대한 정치권 공세에 청와대가 이처럼 힘없는 반응을 보이는 것에는 대선 정국을 앞두고 일어난 ‘친일 논란’이 한 몫하고 있다. 4·11 총선에서 종북논란이 거세게 일어난 후라 더욱 예민한 문제로 보고 있다.

    실제로 종북 논란으로 수세에 몰렸던 야권은 물론 좌파 매체들은 이번 한일협정 체결을 ‘친일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야당은 이번 파문을 대선 국면에서 최대 호재로 이용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고, 여당 또한 여기에 이렇다 할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따라가는 형국이다.

    ‘절차의 문제’를 ‘협정 자체의 문제’로 몰아가는 정치권 공세에 청와대 역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는 하금열 대통령실장과 천영우 외교안보수석도 참석했지만, 군사정보협정 처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태효 대외전략기획관은 불참했다.

    이에 대해 사실상 김 기획관이 이번 협정과 관련해 ‘배제’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번 사태의 파장을 고려할 때 김 기획관이 회의에 직접 참석해 대통령에게 직접 소상하게 보고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때문에 이미 힘이 빠질 대로 빠져버린 청와대에서 이번 협정 체결은 임기 내 처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이제 협정을 책임지고 추진할 사람조차 없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방식의 문제가 있었지만, 대통령의 의중을 실천한 사람을 문책한다면 누가 국무에 책임감 있게 나서겠냐는 불만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이미 총리가 유감 표명을 했으니 대통령이 추가로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일 처리 과정의 문제점에 따라 문책을 하는 스타일이지 정치적 맥락에 따라 인사를 하진 않는다. 김 기획관에 대한 문책이 따르진 않을 것으로 본다.”


    Point

    핵심은 이 대통령의 의지다.

    한일군사협정을 추진할 생각이 있다면 절차상 문제를 들어 수석비서관들을 질책하기에 앞서 스스로 나서 협정의 이점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무회의 안건을 대통령이 몰랐다는 것을 국민은 물론 정부 관료들도 납득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는 대통령의 책임으로 봐야 한다. 보고 체계 부실에 대한 내부적 징계는 있어야겠지만, 스스로 말한 것처럼 국민에게 협정 내용을 알리지 않고 ‘밀실처리’한 것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가 선행돼야 향후 협정체결이 가능할 수 있다.

    “나는 몰랐다”는 식의 말은 대통령이 해야 할 언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더불어 책임을 지고 일을 추진한 부하 직원에게 ‘격려’보다 ‘질책’을 먼저 한다면, 임기 말 더욱 가속화되는 레임덕에서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며 마음을 다해 대통령을 도울 사람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